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643)
마존현세강림기-1645화(1642/2125)
마존현세강림기 67권 (3화)
1장 시작되다 (3)
우득.
손끝이 살짝 접히며 날카로운 뼛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드득.
완전히 주먹을 쥔 강진호가 다시 손을 펴고는 물끄러미 내려다보았 다.
한참 동안 손을 내려다보던 강진 호가 살짝 눈을 감았다.
‘나지 않아.’
예전에는 그의 손에서 항상 피 냄새가 풍겨왔다.
너무 많은 전투를 치르고,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기에 배인 피 냄 새.
그건 실제로 나는 혈향이 아니다.
강진호의 강박이 만들어낸 혈향이 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의 손에서는 더 이상 그런 피 냄새가 나지 않는 다. 그건 강진호가 긴 삶 동안 자신
과 함께해 온 강박에서 완전히 벗어 났다는 증거다.
다만…….
강진호는 그 사실을 딱히 기쁘게 여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은 죄스럽다.
‘이래도 되는 걸까?’
피 냄새가 사라진다고 해서 그의 손에 묻은 그 많은 피가 없던 것이 되는 건 아니다.
죄를 지은 이는 벌을 받아야 한 다. 그런데 강진호가 자신에게 주어 진 벌에서 벗어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강진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깊게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그저 그를 묶고 있던 족 쇄들이 풀려 나가는 것에 기뻐해야 한다. 그럴수록 강진호의 몸은 조금 더 가벼워질 거고, 그럴수록 강진호 는 더 날뛸 수 있을 테니까.
우득, 우드득.
주먹을 쥐어본 강진호가 미소를 입에 담았다.
가볍다.
몸이 너무 가벼워 날아갈 것 같 다.
이 세상에 돌아온 이후…… 아니, 이전 삶을 모두 통틀어서도 이만큼 몸이 가벼운 적은 없던 것 같다.
“만전(萬全)이라는 건가?”
강진호가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 다.
그의 머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 의 몸은 싸움의 시기가 다가오면 다 가올수록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들어 내고 있다.
마치 전투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고개를 두어 번 내저은 강진호가 수련실을 나섰다.
그러고는 수련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현수를 마주했다.
“무슨 일?”
“정부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뭐래?”
“하루만 시간을 더 달랍니다.”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시간을 끈다고 달라질 게 없을 텐데?”
“아마 지금쯤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얻어내 분석하는 중일 겁니다. 누가 이길지 말입니 다.”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전쟁을 앞두고 승패를 논한다 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군. 하 지만 이기는 방식은 아니야.”
“저들에게는 이상한 일이 아닙니 다. 왜냐면 저희가 진다고 해도 대 한민국이 전쟁에서 지는 게 아니니 까요. 사실 극단적으로 보는 이는 그저 무인계의 주인이 바뀌는 것뿐 인데, 왜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하느 냐고 주장하고 있겠죠.”
“멍청하군.”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고개를 돌리고 싶어 집니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지요.
저들이 약한 게 아닙니다. 그저 평 균적인 사람이 그런 법이죠.”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 다.
이현수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인계가 무너진 일본이 무슨 꼴을 당하고 있는지를 빤히 보 고 있으면서도 그런 주장을 한다는 건 너무 우스운 일이 아니던가.
“어떻게 될 것 같나?”
“돕지 않을 겁니다.”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 자 강진호가 눈에 이채를 띠고 이현 수를 바라보았다.
“합리적으로 본다면 그게 맞습니 다. 가진 전력으로만 평가한다면, 저 희는 죽어도 삼왕계를 이길 수 없을 테니까요.”
“그렇지.”
“그러니 괜히 편을 들었다가 보복 을 당하고 싶지는 않겠죠.”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한다는 건 가‘?”
“평범한 국민들에게도 그게 나을 지 모릅니다. 저들에게 명분을 주었 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수도 없이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차라리 실리는 주더라도 명분은 주지 않겠
다는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 다.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든 비난하 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실 저들의 법을 어기고 저들에게 칼을 들이댄 것은 총회다. 지금까지 이 정도의 관계를 유지해 온 것도 용할 지경인 데, 이 이상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미국은?”
“접촉 중입니다. 그쪽은 우리의 요구가 그리 어렵지 않은 모양입니 다. 일단 지원은 분명히 이뤄질 것 같습니다만……
이현수가 살짝 말끝을 흐리더니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모든 거래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이지요. 저들이 중국에서 무엇을 원 할지가 관건이 될 겁니다.”
“다 줘.”
“••••••예?”
“원하는 건 다 줘버려.”
“……회주님?”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이현수를 바라봤다.
“머리가 좋은 이들의 단점이 뭔지 알아?”
“글쎄요? 생각이 너무 많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 야.”
이현수가 입을 다물었다.
강진호가 가만히 이현수를 보며 말했다.
“우리가 뭘 하려는지 잊지 마. 우 린 중국을 정복하고 싶은 것도 아니 고, 중국인들을 노예로 삼고 싶은 것도 아냐. 일본처럼 저들의 재계에 침투하여 돈을 벌려는 것도 아니지. 우리가 원하는 게 뭐지?”
“생존입니다.”
“그래, 생존.”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그것 하나만 이룰 수 있으면 다 른 건 모두 줘도 상관없어. 그러니 원하는 것은 다 가지라고 해. 대 신……
강진호의 눈이 차게 빛났다.
“어설프게 배하나 빌려주고 생색 낼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해. 저들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똑똑히 전해.”
“예. 명심하겠습니다.”
이현수가 살짝 몸을 떨었다.
‘확실히 이런 면은 변하지 않으셨 어.’
강진호는 예전부터 그랬다.
평소에는 이현수나 위긴스의 의견 에 전적으로 따르지만, 전투가 가까 워져 오면 누구보다 빠르게 핵심을 짚어낸다. 이기기 위해서 무엇을 해 야 하는지 남들과는 다른 감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바로 강진호였다.
“비상 조치를 취했습니다. 오늘부 로 총회의 모든 인원들은 총회 내에 서 대기합니다. 그리고 때가 무르익 으면 서해로 이동하여 배를 타고 중 국으로 들어갈 겁니다.”
“서해 어디?”
“가까운 곳이면 어디든 좋습니다.
인적을 통제해 버릴 테니까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건 편하군.’
과거에 그들이 정부와 밀접한 관 계를 맺지 못했을 때는 단체로 이동 하는 것도 커다란 부담이었다. 하지 만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그들의 행 적을 가려줄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두 배는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다.
“ 알겠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회주님께서는 호출이 가 면 최대한 빠르게 총회로 돌아와 주
십시오.”
“아니. 나도 총회에서 대기한다.”
“……굳이요?”
강진호가 고개를 슬쩍 돌려 이현 수를 바라보았다.
“아뇨. 그…… 그런 의미가 아니 라…… 음……
이현수가 뒷머리를 벅벅 긁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회 주님, 우리가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는 하지만,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은 없잖습니까?”
“그래.”
“그럼 어쩌면 이 순간이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릅니 다. 그렇다면 차라리 가족분들과 보 내거나 이사님을 만나시는 게……
“특별대우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 어.”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회원들이 총회에서 대기한다면, 나도 여기서 대기한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야.”
이현수가 미간을 좁혔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기는 내일부 터 하겠습니다.”
강진호가 떨떠름한 눈으로 이현수
를 돌아보았다.
“어차피 내일 정부가 입장 표명을 해줘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차라리 그때 가서 대기를 하는 걸로 하죠.”
“이 실장.”
“오해 마십시오.”
이현수가 손을 살짝 내저었다.
“저도 하루 더 시간을 줄까 고민 하던 찰나였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현주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습니다.”
이현수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뒷
머리를 긁었다.
“전쟁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결 호……
“사망 플래그 꽂지 마, 미친놈 아!”
강진호가 이현수의 옆구리를 걷어 찼다.
이현수가 벽에 처박히고는 앓는 소리를 냈다.
“아니, 뭐, 그런 미신을……
“알았으니, 하지 마!”
“……네.”
이현수가 고통과 즐거움이 반쯤 뒤섞인 얼굴로 옆구리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전에는 솔직히 회주님을 좀 이 해 못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큰일을 앞두고 왜 자꾸 가족분들이나 이사 님을 보러 가는가 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그게…… 예. 그게 마음을 다진다는 것이겠죠.”
“그러니 하루, 딱 하루만 마음을 다지자고요.”
강진호가 이현수를 빤히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강진호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총회의 회원들은 아니겠 지.
압도적인 대승을 거둔다고 해도 사망자는 반드시 발생한다. 그들에 게 가족과 친구를 만날 수 있는 마 지막 시간을 주는 게 나쁜 일은 아 닐 것이다.
“궁금한 게 있다.”
“네?”
“지금 어떤 기분이지?”
“……무슨 의미신지 잘 모르겠습 니다.”
“나는 이런 전쟁을 준비하면서 누
군가의 지시를 따라본 적이 거의 없 다. 그래서 너희가 어떤 생각인지 잘 모르겠군.”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좀
“……그렇지?”
이현수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지.
멍청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한 강 진호가 피식 웃고는 몸을 돌리려 했 다.
“하지만 대충은 압니다. 다들 믿 는 거죠.”
“ 믿는다고?”
“예. 회주님을요.”
이현수가 빙그레 웃었다.
“각자 어떤 마음을 품든, 평소 회 주님을 따르던 이든 싫어하던 이 든…… 전쟁을 앞두고는 그저 바랄 뿐이죠. 회주님이 미칠 듯이 강하고 제가 미칠 듯이 유능하기를요.”
그래야 자신들이 살아날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가니까.
“우리가 해야 할 건 그 기대에 부 웅하는 것뿐입니다. 저는 미칠 듯이 유능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회주 님은 어떠십니까?”
“빤한 소리를 하는군. 나는 우주 에서 가장 강하다.”
“……뗀뻔해지셨네요.”
“내가 할 말이야.”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농담은 아니 다. 서로가 그리 믿고 각오를 다진 다.
이기기 위해서.
“저도 간만에 현주 만나서 꽁냥꽁 냥 좀 해야겠습니다.”
“저번에 봤잖아?”
“셋이 만난 건 안 칩니다. 제가
회주님 앞에서 뭘 하겠습니까!”
이현수가 궁시렁댔다.
“슬슬 프로포즈하려고 반지도 사 놨는데. 적당히 시간 봐서 청혼도 하고, 집도 옮겨서 신혼집도……
“그, 그만.”
숨 쉴 듯 사망 플래그를 꽂는 이 현수를 보며 강진호가 식은땀을 흘 렸다.
“애는 아들이랑 딸 둘 낳아서 나 중에는 정원 딸린 집에서 강아지 도……
“그, 그만하라고!”
이현수가 씨익 웃었다.
“뻥입니다. 저는 여전히 비혼주의 자라고요.”
“……답도 없네.”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강진호를 보며 이현수가 단 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저 농담은 아닙니다. 전쟁에서 이긴다면 어쩌면 얻을 수 있는 미래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전쟁에서 진다면 미래 자체가 사라 질 겁니다.”
“ 알아.”
강진호가 몸을 돌렸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가서 데이트 라도 해.”
“회주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집?”
“집은 충분히 봤어.”
강진호가 살짝 어정쩡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잔소리 들으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