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66)
마존현세강림기-166화(166/2125)
마존현세강림기 7권 (17화)
4장 찾아내다 (2)
천천히 손을 뻗어서 청루와 적루를 잡았다.
우우우웅.
두 검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듯 이 울어 댔다.
특히나 적루는 수백 년 만에 주인의 손에 돌아왔다는 기쁨 때문인지
쉴 새 없이 울어 댔다.
하지만 강진호는 적루보다는 청루 에 더 눈이 갔다.
그의 옆구리에 박힌 청루를 뽑아 내던 순간이 아직도 손에 잡힐 듯이 선명했다.
‘청마.’
직접 숨을 끊어주기는 했지만, 청 마와 그의 인연 역시 보통 인연은 아니었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당신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당신은 죽을
겁니다.”
청마가 그에게 남긴 말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 짓?
강진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지난 일이다.’
옛 추억을 되찾는 것은 즐거운 일 이지만, 옛 기억에 얽매이는 것은 좋지 않았다.
이것은 그저의식.
앞으로 그가 다시 전투의 나날을 보내리라는 직감을 현실로 만드는의식이었다.
스르르릉.
강진호는 청루와 적루 옆에 놓인 검집에 천천히 두 검을 집어넣고 쌍 검을 허리에 찼다. 허리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감촉이 그의 마음 역시 뿌듯하게 채우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우우웅.
청루와 적루가 그의 말에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검에의지가 있을 리는 없지만, 강진호는 그리 생각하 고 싶었다.
제단에 놓여 있는 것은 청루와 적 루, 두 자루였다. 강진호는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몸을 돌렸다.
이 앞으로는 마교의 교주만이 들 어갈 수 있는 비동이 있다. 하지만 수라기가 아직 완숙에 접어들지 못 한 그로서는 아직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수라기의 명맥은 그를 마지막으로 끊겼을 테니, 비동은 그가 들어간 이후 한번도 열린 적 없이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그걸로 됐어.’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
굳이 둘 사이의 접점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건 이 두 자루의 검만으
로 충분하다.
강진호는 미련 없이 돌아서 동굴을 나섰다.
“……미치겠네.”
조규민은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 이었다.
‘왜 나만 저 양반이랑 두고 들어가 버리냐고.’
이런 산속에서 저런 괴인과 단둘 이 남겨진 사람의 심정이 어떨지는 생각 안 해보나?
겁이 나는 마음에 강진호를 따라 서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괴인이 눈을 부라리는 바람에 찍소 리도 못하고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했다.
‘아이고, 내 신세야.’
뭔가 눈가에 뭔가 반짝이는 느낌 이 난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잘나가는 대기 업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엘 리트 청년 조규민이건만,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고 말았단 말인가.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앞으로는 절대로 해외로 나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조규민은 초 조한 얼굴로 동굴의 입구를 바라보
았다.
“아!”
그때, 동굴 안에서 강진호의 모습 이 보이자 조규민이 반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진호씨!”
조규민이 허겁지겁 달려가자 강진호가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찾으시던 건 찾으신 모양이네요.”
강진호가 뭘 찾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허리에 길쭉한 뭔가가 달린 것으로 보아 뭔가를 찾긴 한 모양이었다.
“예.”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이 검을 찾으러 온 길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과거 마교의 흔 적이 아직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이렇게 괴인과 청루, 적루를 통해 과거 그가 살아간 시간이 이곳에 존 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걸로 됐다.
“마존이시여.”
괴인이 다시 오체복지를 하자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 일어나라.”
“예.”
“말하라,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이유를.”
“마존의 뜻대로 하겠나이다.”
괴인은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조규민은 괴인의 거처를 보며 침 음성을 냈다.
‘미묘한데……
괴인의 행색에 비한다면 무척이나 잘 정돈되어 있는 움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름 깨끗하기까지 한 걸
보면 살아 있는 멧돼지라도 통째로 뜯어먹을 법한 괴인의 이미지와는 걸맞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저런 몰골이 될 때까지 살라고 한다면?
‘난 못하지.’
괴인이 얼마나 고생을 하며 이곳을 지켜왔는지 알 것 같았다.
“제 이름은 장민(長民)입니다.” 괴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말린 풀로 우려낸 차를 강진호에게 대접 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명교 청파의 후예입니다. 제 아버님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
터 천마동을 지켜오셨습니다.”
“청파라……
강진호가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염기의 느낌이 난다고 했더니, 청마가 속해 있던 청파의 뒤를 이은 모양이다.
강진호의 적염기와 청마의 청염기는 두 사람만의 독문 무공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적파와 청파에서가 장 강하다고 인정받은 자가 적마와 청마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을 손 에 넣는 것이다.
강진호는 적마의 위에 올라 끊임
없는 전투에 몸을 던진 끝에 수라기 와 적천마존의 명칭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청마가 아니더라도 청염기를 후대에 전할 사람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청마의 진신절기를 잇지 못한다면 반쪽도 되지 못하는 청염기를 배울 수밖에 없다. 그 불완전한 청염기가 세월에 퇴색되어 여기까지 몰락한 모양이었다.
“누가 네게 천마동을 지키라고 한 건가? 청루와 적루를 이곳에 둔 것
은 누구고?”
“그건 저도 알지 못합니다.”
“알지 못해?”
“마존이시여,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습니다. 저희 일족은 그저 언젠가 마존께서 현신하실 때까지 천마 동을 지키는 것을 업으로 알고 살아 왔을 뿐입니다.”
“음……”
강진호가 침음성을 냈다.
‘언젠가 마존이 현신한다고?’
그 말을 남긴 이는 누구일까?
어쩌면 단순히 멸망해가는 마교의 후예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지
어낸 전설일지도 모른다.
후대에도래할 것이라는 미륵신앙 같은 전설이야 거대한 국가나 단체가 명멸할 때마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함께하는 것이니까.
다만,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 정리 해 버리기에는 굳이 청루와 적루를 이곳에 놔둔 이유가 마음에 걸렸다.
적루와 청루는 그의 신물이기는 하지만, 역대의 교주들이 써온 신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루와 적루를 보관한 이유는 정말 그를 기다리기 위해서 인가, 아니면 단순히 교주의 직위를
상징할 만한 신물이 이것밖에는 남 지 않았기 때문일까?
강진호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내저었다.
‘모르겠군.’
뭔가를 정리하고 풀기 위해 온 것이건만,의문만 더 생기는 느낌이었다.
“네 선대가 이곳을 지켜왔다고 했 나?”
“그렇습니다, 마존이시여.”
강진호가가만히 생각에 잠기자 괴인이 다시 자리에 엎드렸다.
“청마와 청파가 명교에 씻을 수
없는 대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 습니다. 저는 그 죄악을 갚기 위하 여 마존께 죄를 청합니다.”
“ 일어나라.”
“이 죄는 만고에……”
“일어나라고 했다.”
괴인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자리 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진호의 목소 리에 담긴 위엄은 그로서는 감히 거 역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선대의 죄를 후대가 갚아야 한다면, 그 죄에서 자유로운 이가 있을 리 없는 것을.”
강진호는 지체 없이 말을 이었다.
“너희가 어떤 죄책감을 느끼든 이 미 그 죄는 모두 사해졌다. 이제 너는 자유의 몸이다.”
“마, 마존이시여.”
괴인의 노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뭔가 말이 잘 통하는 느낌인데?’
강진호가 볼을 긁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까지 만나온 중 국인들보다 눈앞의 괴인이 말이 좀 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뜻이 통한다는 말이 아니라 언어가 좀 더 익 숙하다.
그리고 이 반응도 좀 이상했다.
과거의 선대가 지은 죄가 이제 사 해졌다고 해서 본인이 저리 격동할 필요가 있을까?
강진호는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 나가는 불길한 예감에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는 언제부터 이곳을 지 키고 있던 것이지?”
“마존의 후예가 나타나기를 백오 십 년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응?”
강진호가 눈을 껌뻑거렸다.
“ 언제라고?”
“백하고도 오십이 년입니다.”
“응?”
그러니까 백오십이 년이면…….
“현재 연세가?”
“곧 백팔십이 됩니다.”
강진호는 조용히 양손을 한곳으로 모았다.
“그, 그러세요?”
강진호의 반응에 되레 장민이 고 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마존이시여?”
“아, 아뇨.”
강진호의 이마에 식은땀이 홀러내 리기 시작했다.
‘황정후 정도 나이만 되도 비벼보 겠는데……
세 번의 삶을 모두 합하면 그의 나이도 그 정도에는 육박하니까 실 제로 나이가 많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비벼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백팔십 세라니…….
이건도무지 엉겨 붙을 수가 없었다.
“저, 정말 백팔십 세십니까?”
“제가 처음 태어났을 때는 나라의 이름이 청이었지요.”
“하하하……
강진호는 위엄을 되찾는 것에 실 패했다.
“마존의 후예를 기다리는 것은 너
무도 고통스럽고 지난한 나날들이었 습니다. 그래도 이 노구가 늙어 죽 기 전에 염원하던 업을 이룰 수 있 어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주름진 얼굴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니 강진호는 괜스레 자신 이 죄를 지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청마의 후예라면 그보다 배분이 훨씬 낮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후예라는 사람이 당대의 청마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보니 위화감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여튼 알겠습니다. 당신은 이제 자유입니다.”
“……자유라고 하셨습니까?”
“ 예.”
“하지만 마존이시여, 저는 이제 이 업이 없다면 더는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마교의 후예로 서 마존의 후예를 따르고 보필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강진호는 낮은 한숨을 쉬었다.
물론 과거 마교의 후예를 만났으니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 었다. 하지만 이 노인과 함께했다가는 보필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가 수발을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일단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게 좋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강진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양손을 들어 올려 청루와 적루의 손잡이 에 올렸다.
우우우웅!
두 검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장민이 지금까지 보 이던 선한 인상을 일순간에 변화시 키며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감히!”
금역에 침입자가 있다는 것을 그도 알아챈 모양이었다.
“나를 찾아온 모양이니 맞아주어
야겠죠.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마존이시여, 제가 처리하겠습니 다!”
“내가 기다리라 했을텐데?”
강진호의 목소리가 살짝 변한다 싶자 장민이 즉각 그 자리에 오체복 지를 했다.
“위대하신 마존의 명을 받드나이다.”
강진호는 장민을가만히 내려다보 다가 몸을 돌려 천천히 앞쪽으로 걸 어나갔다.
해가 지고 있었다.
밤이 찾아온다.
강진호는 눈을 감았다.
‘여전히 밤은 싫군.’
이곳의 밤하늘은 예전과 같다.
별이 한가득 쏟아질 것 같은 밤하 늘은 고통스럽기만 하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강진호는가슴속에 잠재워 두었던 흉성이 서서히 깨어나는 것을 느끼 며 미소를 지었다.
“때를 잘못 택했군.”
적어도 그를 상대하는 자들이라면 알아야 한다.
어둠 속에서 그를 상대하는 것은 물속에서 맨몸으로 상어를 상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둠이 내려앉는 숲을 향해 강진호가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