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663)
마존현세강림기-1665화(1662/2125)
마존현세강림기 67권 (22화)
5장 농락하다 (2)
홍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왕.’
강하다.
물론 지금 강진호가 상대하고 있 는 적들은 홍왕이나 강진호의 입장 에서 보자면 잔챙이 수준을 넘지 못 한다. 이전에 그와 맞붙은 강진호의
수준이었어도 저만 한 적들은 짓밟 는 데 딱히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 다.
하지만 홍왕은 강진호가 지금 보 여주는 무위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 다.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을 쓰러뜨리 는가, 얼마나 더 빠르고 과격하게 적들을 쓸어내는가.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강진호가 어떤 수준에 올라 있는가다.
진득하다 못해 숨이 막혀올 정도 의 마기.
공간을 격해 전해지는 그 마기에 홍왕의 육체가 절로 반응했다.
우드드득.
홍왕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 켜 쥐었다.
‘이거였지.’
전신이 떨려온다.
흥분과 공포가 반쯤 뒤섞인 것만 같은, 기이한 감각.
홍왕은 오랜 시간 만에 다시 느 껴보는 이 감각에 전율했다.
과거에도 그랬다.
과거의 강진호도 그를 떨게 만들 었다. 이건 무위의 고하와는 조금
다른 감각이다.
반드시 쓰러뜨려야 할 숙적에게서 느낄 수 있는, 기묘한 고양감.
그 고양감이 지금 홍왕의 눈을 강진호의 등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움찔.
홍왕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 렸다.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기파, 뿜어 져 나온 마기에 그마저도 긴장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두 배, 아니면 세 배?’
측정이 안 된다.
과거, 그와 싸운 강진호를 지금의
강진호에게 가져다 대는 것은 아무 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비교라는 것은 서로 비슷한 것일 때나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
지금의 강진호는 그때의 강진호와 는 숫제 다른 사람이다.
홍왕은 이 상황을 그때도 예상했 다.
마왕을 저대로 내버려 둔다면 감 당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질 거라고 말이다. 천하를 그의 색으로 물들이 려 한다면, 언젠가는 저 마왕이 가 장 큰 장애물이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는 옳았으되, 또한 틀렸
다.
강진호가 강해질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홍왕조차도 이 짧은 시간 만 에 강진호가 이토록 강해질 것이라 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홍왕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 다.
어찌할 수 없는 분노, 어찌할 수 없는 공포,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흥분.
그의 입장과 그의 목표를 생각한 다면, 이 상황은 분명 심각하게 받 아들여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 만 홍왕은 지금 이 순간, 그의 숙적
이 발하는 힘에 명백히 흥분하고 있 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무인이로군.’
홍왕계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위치 를 자각하려 매번 애쓰지만, 어쩔 수 없이 피가 끓어오른다. 홍왕계의 수장으로서의 자신보다 무인으로서 의 자신이 훨씬 크다는 뜻이리라.
“후욱.”
홍왕이 거친 숨을 터뜨렸다.
그의 눈이 강진호의 뒷모습에서 고정되어 떨어질 줄 몰랐다.
파문이 인다.
깊은 바다의 색처럼 검푸르게 물 든 장자커우가 크게 요동쳤다.
잠잠하던 바다에 폭풍이 이는 것 처럼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던 창 왕계의 무사들이 마치 거친 파도처 럼 들썩였다.
“뭐, 뭐야!”
“밀지 말라고, 이 자식들아!”
“앞에서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강진호의 난입을 눈앞에서 맞이한 이들은 이성을 잃고 달아나기 시작 했다. 일련의 흐름이 반전되며 사람 과 사람이 얽혀들고, 공포가 빠른
속도로 전염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강진호의 존재를 볼 수 있는 이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인파에 휩싸여 강진호를 볼 수 없는 이들에게는 그저 갑작스 러운 변화일 뿐이었다.
어디선가 터져 나온 섬뜩한 기파 에 흔들린 정신은 채 정비하기도 전 에 앞쪽이 밀려 나왔다. 어찌 저항 하려 해보지만, 도무지 밀고 나오는 기세를 막아낼 수 없다.
그제야 모두가 무언가 잘못되었다 는 걸 느꼈다.
밀려 나오는 앞만큼, 아니, 그 이
상의 수가 그들의 뒤를 받치고 있 다. 앞뒤로 완전히 포위된 형국에서 어마어마한 기세의 사람의 파도가 그들을 휩쓸어 버린다.
“아아아아아악!”
“아, 안 돼에에에에에!”
인간과 인간이 뭉쳐 들며 서로를 잡아 뜯고 짓밟기 시작한다.
그리고 강진호는 그 미쳐 날뛰는 양 떼에 뛰어든 한 마리의 늑대나 다름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검은 늑 대의 이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과격하고 날카롭다는 것.
그리고 그의 검은 배가 불러도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촤아아아아악!
비단 폭을 가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인간의 육신이 장난감처럼 조 각나 사방으로 비산했다.
찰박.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에 고인 피가 튀어 올랐다.
강진호의 눈이 붉게 빛났다.
적루와 청루를 따라 피가 방울방 울져 흘러내렸다.
마기로 전신을 뒤덮은 채 달아나 는 적을 갈기갈기 찢어내고 있지만,
강진호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차 가웠다.
‘ 이쪽인가?’
과거의 강진호라면 지금쯤 이성을 잃고 보이는 모든 것을 죽이는 것에 미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달아나는 이들을 똑바로 보며 그들의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
누가 겁에 질려 있는지, 누가 대 항하려 드는지.
그렇기에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촤아아아아아악!
적루가 다시 허공을 갈랐다.
아직 어정쩡한 자세로 대항의 의
지를 놓지 못하고 있던 이들의 허리 가 동강나며, 잘린 단면에서 피 분 수가 뿜어졌다.
그리고 그 참혹한 광경은 지켜보 는 이들의 심장을 공포로 물들이기 에 충분했다.
수백 마리가 넘는 들소 떼도 단 한 마리의 사자 때문에 광기 어린 질주를 시작하고, 수천 마리가 넘는 양 때도 단 한 마리의 늑대를 발견 하면 이성을 잃고 달아난다.
그건 이성이 아닌 본능의 영역이 다.
수천이 모여 있다면 한 명 정도
는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다. 하지 만 각각의 개체가 가지는 힘이 기하 급수적으로 차이가 나버린다면, 더 이상 그런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누가 자신의 죽음을 담보로 승리 를 얻으려 하겠는가.
머리가 충동으로 가득 차고, 등 뒤에 칼이 겨눠져 있다면 사람은 죽 음을 알고도 앞으로 나아간다. 전장 의 광기에 먹혀 버린 인간은 순간적 으로 죽음을 잊어버리게 되는 법이 니까.
하지만 이곳에서 죽음을 잊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들의 바로 눈앞에 죽음이 존재 하는데, 저 생생한 죽음을 무슨 수 로 외면한단 말인가.
눈앞에 존재하는 죽음을 느낀 이 들의 머리에서 투지가 사라졌다. 등 뒤를 찔러오는 칼의 존재도 잊는다.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어떻게든 저 것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본능뿐이었 다.
달리고, 기고, 또 발악하며 달아 나는 이들을 보며 강진호가 입꼬리 를 말아 올렸다.
차이커창이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이거?’
“막대한 수와 촘촘한 전열이 오히 려 독이 됐군.”
그의 옆에서 이현수가 싸늘한 목 소리로 조소했다.
창왕의 계획은 아주 간단하다.
파상공세 (波狀攻勢).
강진호도, 총회의 이사들도 결국 은 사람. 아무리 무인이라 해도 사 람인 이상 체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체력을 회복할 틈을 주지 않고 공격하고 또 공격해 서 넝마로 만들어 버린 뒤에 자신이
직접 끝을 보겠다는 계획이었을 것 이다.
이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세 가 지.
하나는 압도적인 수.
또 하나는 적에게 틈을 주지 않 는, 비상식적으로 촘촘하고 빽빽한 전열.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 한 것이 앞의 동료들이 고깃덩어리 가 되어가도 절대 멈추지 않고 달려 들 수 있는 투지와 군기였다.
강진호가 한 것은 아주 간단하다.
저들에게서 투지를 빼앗고 공포를
심어준다.
그렇게 되면 그 압도적인 수와 비상식적으로 좁은 전열은 오히려 독이 되어 자신들을 덮치게 된다. 지금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현수가 눈을 가늘게 뜬다.
과거의 강진호였다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적으로는 다르지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깔끔하지는 않았 을 것이다. 더 많은 피와 더 많은 죽음,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이 필요
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고작 두 세 번의 칼질만으로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만들어냈다.
과거의 강진호라면 그저 일점돌파 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쓸어버렸 겠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적의 약한 부분을 정확하게 노리고 있었다.
‘정말 이성이 있으시군.’
이현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전투에 들어간 강진호에게 이성이 존재한다는 게 과연 어떤 결과를 낳 을지는 이현수조차 궁금하게 생각해 온 일이다. 변화란 발전과 동의어가
아니니까.
아니, 때로는 발전조차 이전보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강진호는 그런 이현수의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냈다.
남은 건…….
“뭐 하십니까!”
이현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회주님이 흐름을 만들어주셨으 면, 그걸 굴려야죠! 놀지 말고 빨리 싸우십시오!”
이사들이 떨떠름한 눈으로 이현수 를 돌아보았다.
“저 새끼, 저거……
“한 번은 죽여야 되는데.”
하지만 이현수의 말이 틀린 것은 없기에 이사들도 입을 다물고 달아 나는 창왕의 무인들을 쫓기 시작했 다.
감탄은 나중이다. 우선은 싸워야 한다.
“흐아아아아아압!”
바토르가 포탄처럼 달려들며 달아 나는 이들의 등에 어깨를 박아 넣었 다.
콰아아아아앙!
그의 몸에 부딪친 이들이 볼링
핀처럼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맞부딪치는 순간, 전신이 으스러 졌으니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의식 이 끊겼을 테니까.
두 눈을 붉게 물들인 바토르가 강진호에게 감화라도 된 것처럼 울 부짖으며 폭풍처럼 주변을 휩쓸어가 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핫! 마존의 뒤를 따라 라!”
그건 장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긴스의 얼굴도 상기되어 있다.
방어에 치중하던 방진훈도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공격 일변도로 주먹을 쑤셔 박아댔다.
심지어 홍왕마저도 평소와는 전혀 다른 기세로 날뛰고 있었다.
평범한 창왕계의 무사들에게 기세 가 오른 이들을 막을 방법은 존재하 지 않았다.
그렇다면?
“멈춰라! 이 마귀 같은 놈‘!”
달아나는 무사들을 뛰어넘으며 한 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기세 를 뿜어내는 이가 강진호의 앞을 막 아섰다.
“나는 창왕 직속 태청단(太靑團)
의 단주인 저우양……
기세 좋게 목소리를 높이던 저우 양의 말이 멈췄다.
‘뭐지?’
뭔가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걸 본 것 같…….
저우양이 두 눈을 부릅떴다.
주르륵.
그의 이마를 타고 한 방울의 붉 은 핏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러 더니 그 핏방울을 따라 그의 몸에 세로로 긴 선이 생겨났다.
정수리에서 시작된 선은 얼굴을 가르고, 목과 가슴을 넘어, 이내 사
타구니까지 이어졌다.
‘어, 언제?’
안타깝게도 그의 생각은 더 이어 지지 못했다.
촤아아아악!
그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며 좌우 로 나뉘어 튕겨 나갔다. 쏟아져 나 온 내장과 피가 바닥에 지저분하게 널브러졌다.
처벅!
강진호가 그 피와 내장을 밟으면 서 걸음을 이어갔다.
적루를 휘둘러 피를 뿌린 강진호 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조무래기.”
그를 휘감고 있는 마기가 요동쳤 다.
게걸스레 피를 탐하던 마기가 이 걸로는 부족하다는 듯 강진호를 재 촉해 오기 시작했다.
그가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검은 하늘이 그의 눈에 똑똑히 들어온다.
하늘을 확인한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
그곳에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
고 있는 창왕이 있었다.
강진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어야지, 창왕.”
오늘이 지나면 더는 웃지 못하게 될 테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