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666)
마존현세강림기-1668화(1665/2125)
마존현세강림기 67권 (25화)
5장 농락하다 (5)
세상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기가 가라앉고, 대지가 숨을 죽 인다. 하늘마저도 공포에 떠는 것처 럼 검게, 검게 물들어갔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대 치한다.
하나는 수십 년간 중국을 지배해
온 왕.
다른 하나는 혜성같이 나타난 새 로운 왕.
그 대치만으로도 주변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현수가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슬쩍 주변을 돌아보았다. 총회의 이 사들조차 손을 멈춘 채 그저 그 광 경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 바라본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짓눌린 듯한 느낌.
심지어는 저 바토르마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두 사람의 대치를 혼
이 빠진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현수는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내가 약해서 느끼지 못하는 무언 가가 있다.’
아마 저들에게서 홀러나오는 기운 이 다른 모든 이들을 짓누르고 있는 거겠지. 이현수는 너무 약해서 그 기운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고.
이현수가 슬쩍 고개를 돌려 차이 커창을 바라본다.
차이커창 역시 숨도 쉬지 못하는 얼굴로 저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이 커창.”
차이커창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현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 불신이 어려 있었다. 마치 눈빛만으로 ‘넌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입을 열 수 있 지?’라고 묻는 것만 같다.
“물어볼 게 있다.”
“••••••뭐냐?”
“너희는 어떻게 당한 거냐?”
차이커창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 다.
의식적으로 피해온 질문이다. 그 리고 이현수도 그걸 알기에 지금까 지 굳이 물으려 하지 않았다.
적이 있으면 싸우면 된다. 왜 패 했는가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 하지 만 이제는 더 이상 뒤로 무를 일이 아니다.
“아니. 정확하게 다시 묻지.”
이현수가 굳은 얼굴로 차이커창을 바라보았다.
“홍왕은 어떻게 패한 거지?”
차이커창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이 현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현수 는 조금도 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런 차이커창의 시선을 받아냈다.
미묘한 대치가 짧게 흐르고, 이윽
고 차이커창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 다.
“……이유 같은 건 없다.”
차이커창이 뭔가 머뭇거리다가 다 시 말을 이었다.
“아니, 이유는 넘쳐흐를 만큼 많 지. 무학의 상성, 소모한 내력의 양, 이어진 지속적인 전투로 인한 정신 이 소모, 그리고 저쪽에서 짜온 완 벽한 전략.”
이현수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럼••••••
“다시 붙는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거다. 나는 확신한다.”
차이커창의 단호한 말이 오히려 이현수를 침음하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홍왕의 패배는 이현수에게도 받아 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홍왕이 절대 무적이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저 홍왕이 강진호가 아닌 다른 사람에 게 패한다는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홍왕이 패배하는 과정에 서 반드시 뭔가의 개입이 있었을 거 라 생각했다.
그게 계략이든, 아니면 누군가 한 손을 거들었든.
최악의 경우에는 흑왕의 개입마저 머리에 넣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차이커창의 입에서 나온 말대로라면 홍왕은 창왕과의 정면 대결에서 밀 린 것이다.
이현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 다.
이건 상상할 수 있는 결과 중 최 악이었다.
이현수와 차이커창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뒤흔드는 지력에 홍왕과 단 독으로 승부를 겨뤄 이길 수 있는 무력을 겸비했다?
그런 이를 대체 어떻게 이기라는
건가.
“……홍왕이 패했다는 거로군.” 차이커창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변명할 거리는 산처럼 쌓여 있다. 하지만 여기서 아무리 변명을 해봐 야 그건 홍왕의 체면을 오히려 깎아 먹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너는 모른다.”
차이커창이 씹어뱉듯 말했다.
“저건 평범한 무인이 아니야. 더 강하기 때문에 이긴다는 개념이 아 니다. 나도 그런 건 처음 봤다.”
차이커창의 말에 이현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마왕이라고 한들 창왕을 당해낼 수는 없을 거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탈출 계획을 세워야 해.”
이현수가 미묘한 미소를 머금었 다.
“내 말을 허투루……
“그런 게 아니야.”
이현수가 차이커창의 말을 깔끔하 게 잘라 버렸다.
“탈출로는 지금도 계속 확인하고 있어. 문제는 그런 게 아니라……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저 양반이 눈앞에 적을 두고 물 러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멍청한 소리!”
차이커창이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마왕이 강한 건 이해했다. 내가 마왕을 얕봤다는 것도 인정하지. 하 지만 설사 마왕이 창왕을 상대로 승 리한다고 해도 남은 이들은 어쩔 건 가? 승리를 위해 죽을 셈인가?”
“그러니까, 그게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이현수의 시선이 강진호의 등으로 향했다.
수없이 봐온, 그리고 앞으로도 수 없이 봐야 할…….
그 등을.
“저 사람은 물러나는 법을 모르거 드 하
피부가 따끔거린다.
살을 엘 듯한 살기가 전신을 욱 씬하게 짓누르는 느낌이다.
그 감각 속에서 강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오랜만이군.’
이런 감각.
예전에는 꽤 자주 느꼈는데 말이
다.
홍왕과 싸울 때 그는 이미 절대 강자와 대치하는 기분을 다시 경험 했다. 하지만 이자는 홍왕과는 그 결이 다르다.
홍왕의 무학이 말 그대로 정통을 잇는다면, 이자의 무학은 사파의 느 낌이 난다. 어째서 사(邪)의 계열을 이은 자가 왕이라 불리고, 정공의 후예로 포장되는지는 알 수 없지 만…….
‘딱히 다르지도 않지.’
그가 마교를 이끌고 중원과 격전 을 벌일 때도 마찬가지. 사파라 불
리는 이들도 스스로는 정파의 후예 라 자처하는 일이 흔하게 벌어졌다.
나약한 이들은 그 말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졌고, 진정한 강자들은 거짓을 사실로 만들었다. 누구도 그 의 앞에서 진실을 지적하지 못한다 면 거짓이라도 진실이 되는 법이니 까.
아마 창왕은 후자의 경우겠지.
강진호가 깊게 담배를 빨아들였 다. 천천히 내뱉는 숨에 담배연기가 섞여 나왔다.
그 와중에도 이상하게 자꾸 웃음 이 난다.
‘홍왕의 몸에 바람구멍을 뚫었다 는 말이 거짓은 아니로군.’
살기가 몸을 찢어내는 느낌이었 다. 이 세상으로 돌아온 이후로 이 만큼 날카로운 살기를 받아본 기억 이 나지 않을 만큼.
적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근육이 절로 들썩거리고, 심장이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육체에 대 한 통제를 잃는다는 것은 그리 좋은 징조는 아니지만, 강진호는 굳이 그 변화를 막으려 들지 않았다.
마지막 담배를 빨고는 꽁초를 바 닥으로 던졌다.
그게 신호가 되었다는 듯 창왕이 일시에 거리를 좁히며 그를 향해 돌 진해 왔다.
촤아아악!
미끄러지듯 달리는 그를 따라 바 닥의 피가 허공으로 용솟음쳤다.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그런 창 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푸르고 검은 두 줄기의 유성이 지상에서 충돌한다.
카아아앙!
강진호의 적루가 창왕의 손과 충 돌한다. 세상 모든 것을 베어낼 것 만 같던 적루가 피육으로 만들어진
창왕의 손을 베어내지 못하고 허공 에서 멈췄다.
‘저거?’
강진호의 눈이 차게 빛났다.
창왕의 손이 뼈가 보일 정도로 투명하게 변해 있다. 강진호는 저 무학이 무언지 알고 있다.
그 투명함과 비례하여 단단해지는 손.
극성에 이르면 다이아몬드조차 으 깨 버리는 장법의 최고봉.
“구음백골조(九陰 白骨 JK)?”
“ 하?”
그그그극.
적루를 길게 긁어낸 창왕의 손이 강진호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강진호가 고개를 가볍게 젖혀 창왕 의 손을 피해냈다. 그의 손이 강진 호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옷자락을 길게 찢어냈다.
콰아아아앙!
연이어 휘둘러진 청루와 창왕의 좌수가 충돌했다. 충돌의 여파로 두 사람이 세 걸음씩 뒤로 밀려났다.
검을 들어 올린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게 아직 남아 있었나? 예전에 실전된 줄 알았는데?”
“……견식 하나는 최고라고 해도 되겠군.”
창왕이 비릿하게 웃었다.
“구음백골조를 알아본다면 이것도 알아볼 수 있을까?”
창왕이 왼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 다.
그의 왼손이 오른손과 다르게 새 하얗게 물들기 시작한다. 투명한 오 른손과는 완전히 그 결이 다르다. 마치 만지면 묻어 나올 것 같은 완 벽한 백색.
“……소수마공?”
강진호의 눈에 흥미가 생겨났다.
소수마공은 마공이라는 이름이 붙 었지만, 마교의 무학은 아니다. 정확 하게는 마공이 아니라 사공(邪攻)에 가깝다.
구음백골조를 익힌 자라면 소수마 공을 익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 다. 문제는 지금 창왕이 양손에 서 로 다른 무공을 운용하고 있다는 것 이다.
“양의심공인가?”
“굳이 그런 거창한 정공을 끌고 올 것도 없지. 그저 적당히 배분하 면 되는 문제니까.”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감각이 아니라 계산이라는 건 가?’
확실히 이놈은 보통 놈이 아니다.
“사람들은 착각하고는 하지.”
창왕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다른 삼왕들을 두려워해서 정면으로 맞붙지 않으려 한다고 말 이야.”
싸늘한 목소리가 강진호의 귀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효율을 추구할 뿐이야. 직접 나서서 변수를 만드느 니, 완벽하게 상대를 무너뜨릴 뿐이 지.”
“말과 행동이 맞지 않군.”
강진호가 가라앉은 눈으로 창왕을 바라봤다.
“지금 이건 조금도 완벽해 보이지 않는데?”
“완벽해질 거야, 강진호. 그래, 완 벽해질 거야.”
창왕의 오른손이 맹금의 발톱처럼 구부러졌다.
“네 죽음으로 말이지!”
“크큭.”
두 사람이 다시 서로를 향해 달 려들었다.
까아아아아아아아악 !
구음백골조가 허공을 가른다. 그 손에서 나온 파공음은 여인의 비명 소리와 닮아 있었다. 파공음마저 음 공이 되어 고막을 파고들어 내부를 뒤흔든다.
카가가가가가각!
강진호를 스치고 지나간 구음백골 조의 조강이 바닥에 거대한 흔적을 만들어냈다. 마치 집채보다 더 큰 괴조(怪鳥)가 바닥을 할퀴고 지나간 듯 말이다.
저 가공한 조강에 휩쓸린다면 몸 이 오체분시되는 건 당연히 각오해 야 할 위력이었다.
하나 진짜 무서운 건 위력 같은 게 아니었다.
까아아아아아악!
귀곡성과 함께 구음백골조가 다시 휘둘러진다. 강진호의 전면에 순식 간에 투명한 손의 형상이 수십, 수 백 개 생겨났다.
적루가 휘둘러진다.
한 번, 또 한 번, 그리고 또!
순식간에 수도 없이 휘둘러진 적 루가 강진호의 앞에 거대한 벽을 만 들어냈다. 그러더니 그 검의 벽과 몰아치는 구음백골조의 조강이 허공 에서 그대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
귀를 찢는 폭음이 터져 나온다.
그 충돌의 여파로 널려 있던 건 물의 잔해들이 탄환처럼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런 후…….
쿠우우우웅!
커다란 충돌음과 함께 강진호의 몸이 뒤로 쭈우욱 밀려나간다.
적루를 내린 강진호의 시선이 창 왕의 왼손에 고정되었다.
백색으로 물든 손.
과거, 중원에서도 천하오대장법이
라 불리던 소수마공의 일격이 마지 막 순간 강진호의 검을 후려쳤다.
뚫지 못했다.
강진호의 검벽은 그 공격을 완벽 하게 막아냈다.
하지만 소수마공은 상대를 찢어내 는 무학이 아니다.
욱신!
손목이 시큰거린다.
검과 손이 충돌하는 순간, 검을 타고 들어온 한기가 손목에 수백 개 의 바늘이 꽂히는 듯한 통증을 주고 있었다.
구음백골조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
기와 소수마공에서 밀려 들어오는 음기가 강진호의 몸에 독처럼 쌓이 고 있었다.
창왕이 그런 강진호를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웃음이 사라지신 것 같은데?”
그 여유 넘치는 목소리에 강진호 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무래도……
새하얗게 물든 그의 우수에서 검 은 마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조금은 즐길 수 있을 것 같군.” 강진호의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