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09)
마존현세강림기-1711화(1708/2125)
마존현세강림기 69권 (19화)
4장 씁쓸하다 (4)
“쿨럭.”
왕옌홍이 낮게 기침을 토했다.
‘대체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 지?’
왕옌홍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도 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강진호는 딱히 그를 금제하지 않
았다. 반대의 경우였다면 왕옌홍은 당연하게 단전을 부수고 팔다리를 잘라 버렸을 것이다. 경지에 오른 무인이란 그만큼 위험한 존재니까.
하지만 강진호는 그의 단전을 부 수지도 않고, 딱히 근육을 건드리지 도 않았다. 그저 그를 이 안에 가둬 뒀을 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왕옌홍을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왜 달아날 수가 없지? 어째서?’ 알고 있다.
이게 흔히 말하는 사술의 일종이 라는 것을. 아마도 그에게 특정한
암시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가 지 않는 건…….
‘본인이 없는 곳에서도 이렇게 강 력한 암시를 건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어찌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온다.
그가 아는 마왕은 말 그대로 무 력의 화신. 압도적인 힘과 무위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폭력의 결정체 같은 존재다.
그런데 그 마왕이 지금 껏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수준의 섭혼술 을 사용한다는 현실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혼란스러운 모양이군.”
왕옌홍이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이현수의 모습이 들어 왔다.
왕옌홍은 도무지 이 상황을 어떻 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가 한국으로 들어온 이유가 뭔가. 바로 저 이현수를 죽이기 위해서다. 저 나약해 빠진 놈의 목에 손가 락만 가져다 댈 수 있어도 그 목을
부러뜨리는 것은 너무도 간단한 일 이다.
하지만 바로 코앞에서 이현수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왕옌홍은 아무것 도 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혼란스러운 모양이군.”
핏발이 선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 는 왕옌홍에게 이현수가 느긋하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느릿하고 여유로운 말 투와 달리 이현수의 눈빛은 그리 부
드럽지 못했다.
이현수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 리고 불을 붙이기 전, 슬쩍 왕옌홍 을 바라봤다.
“한 대 피우겠나?”
왕옌홍이 이를 드러냈다.
“죽여라.”
“거참.”
이현수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피식 웃었다. 그의 웃음을 타고 담 배 연기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창왕의 수하면 나름 머리가 돌아 갈 줄 알았는데, 멍청한 소리만 늘 어놓는군.”
“……무슨 의미지?”
“내가…… 널 그렇게 쉽게 죽여줄 리가 없잖아?”
이현수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이런저런 이유를 다 빼도, 나를 죽이려고 한 놈인데 말이야.”
이현수가 낮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왕옌홍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이 빌어먹을 세뇌만 아니었 으면 네 껍데기를 벗겨 죽였을 것이 다.”
“그것참 잔인한 말이로군. 하지만 뭐, 참고하지. 네가 그걸 원한다면
말이야.”
이현수가 빙글빙글 웃었다.
“그러니 그리 흥분하지 말고 우리 침착하게 대화를 한 번 해보자고. 너도 창왕에게 배운 게 있다면 맹목 이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는 건 알 테니까.”
“죽여라.”
“……말이 안 통하는군.”
이현수가 깊게 담배를 빨아들였 다. 그러고는 차갑기 짝이 없는 얼 굴로 왕옌홍을 바라봤다.
“어이.”
“대충은 이해해. 너 역시 그리 호 락호락한 놈은 아니었겠지. 어쩌면 네 손으로 고문해 죽인 사람의 수가 세 자릿수는 넘어갈 수도 있고.”
“……뭔 말이 하고 싶은 거냐?”
“그런데 말이야……
이현수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무 심한 눈으로 왕옌홍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떨까?”
이현수의 목소리가 낮게 방 안을 울렸다.
“네 눈에 나는 어떤 놈으로 보이 지? 네가 죽여 달라면 죽여주는 호 구? 아무리 악을 써봐야 네 입 하
나 열지 못하는 머저리?”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거야.”
이현수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천 천히 뿜어져 나온다.
“나를 증명하는 건 너무 쉬운 일 이지. 지금부터 딱 5분이면 내가 어 떤 놈인지 네가 뼈저리게 이해하게 해줄 수 있어. 그리고 지금의 나는 평소 이상으로 과도한 의욕으로 가 득 차 있지.”
왕옌홍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알고 있다.
이현수가 어떤 놈인지.
누군가를 암살하러 출발하면서 상 대에 대해 조사하지 않을 만큼 왕옌 홍은 멍청하지 않다. 그렇기에 이현 수가 얼마나 지독하고 끔찍한 인간 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니.
그런 게 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저 창왕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현수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건 다른 의미 로는 더없이 완벽한 인정이니까.
그 창왕의 인정을 받은 이가 호 락호락할 리가 없다.
“그런데 왜 내가 지금 참고 있는 줄 알아?”
이현수가 희게 웃었다.
“지금 내가 별로 냉정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어설프게 손을 쓰기 시작 하면 적당한 수준에서 멈출 자신이 없거든.”
이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천천히 왕옌홍에게 다가 가 담배를 꺼내 그의 입에 물려주었 다.
찰칵.
왕옌홍이 문 담배 끝이 타오른다. 왕옌홍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에
물려진 담배를 살짝 빨아들였다.
“그러니 좋게좋게 가자고. 너는 편히 죽을 수 있으니 좋고, 나는 사 고를 치지 않아도 되니 좋지. 이런 걸 윈윈이라 하는 거지.”
“……‘살려준다’도 아니고, ‘편히 죽는다’인가?”
“왜? 설마 살 수 있을 거라 생각 했나?”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살려줄까?”
“대답만 잘한다면 살려줄 수도 있 지. 네가 아는 창왕에 대해 모조리
털어놓는다면 말이야. 심지어 나는 그 인간의 팬티 사이즈까지 궁금하 거든.”
“크크큭.”
왕옌홍이 키득대며 웃더니, 핏발 이 잔뜩 선 눈으로 이현수를 노려본 다.
“강진호에게 감사해라, 이현수. 그 가 아니었다면 네가 감히 내 앞에서 이렇게 지껄여 댈 수 없었을 테니 까.”
“감사? 아, 섭혼을 말하는 건가? 그렇지. 항상 감사하고 있어. 이런 편리한 수단이 있어서 말이야.”
“이런 사특한 짓거리를 잘도 저질 러 대는군.”
그 말에 이현수가 미묘한 비웃음 을 입가에 담았다.
“감사해야 한다고 했나?”
“그렇다. 이 망할 섭혼이 아니었 으면……
“감사해야 한다고?”
이현수의 목소리에서 점점 고저가 사라진다. 그 대신 뭔가 듣기만 해 도 섬뜩한 기이한 울림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아니지, 아니야. 왕옌홍, 넌 지금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군. 이 어이없는 섭혼에 감사해야 할 사 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지.”
“••••••뭐‘?”
그 순간, 이현수가 왕옌홍의 얼굴 을 그대로 걷어찼다.
퍼억!
왕옌홍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 랐다가 벽에 부딪치며 바닥으로 처 박혔다.
“ 끄으••••••
빤히 눈에 보이는 일 수지만, 피 할 수가 없다.
이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괴사
에 왕옌홍이 신음을 흘렸다.
“멍청한 새끼가.”
이현수가 저벅저벅 왕옌홍에게 다 가가 그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쭉 끌 어당겼다.
이현수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왕옌 홍을 노려보았다.
“이 섭혼이 아니었으면 너는 지금 숨만 붙어 있는 고깃덩어리가 되었 을 거야. 팔다리의 근육은 열두 등 분을 냈을 거고, 단전에는 불에 달 군 쇠꼬챙이를 쑤셔 박았겠지. 척추 에 염산을 붓고 눈을 뽑아버렸을 거 다. 내가 필요한 건 네 주둥아리뿐
이니까.”
“회주님에게 감사해라. 그분 덕분 에 적어도 네 시체가 세 배쯤은 온 전해질 테니까.”
왕옌홍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건 협박도 뭣도 아니다. 이현수 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어 려 있으니까. 이놈은 지금 정말 자신 을 해체하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다.
“나는 말이야, 네가 지금 당장 입 을 열어 모든 걸 말했으면 좋겠어. 그런데 반면에…… 절대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커. 웬
줄 알아?”
대답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왕옌홍의 입은 그가 의식 하기도 전에 이미 열리고 있었다.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으니 까.”
“잘 아는군. 칭찬해 주지, 꼬마 야.”
이현수가 왕옌홍의 볼을 톡톡 두 드렸다.
“자, 선택해 봐. 말할 건가, 말하 지 않을 건가.”
왕옌홍은 대답 없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현수가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지.”
이현수가 왕옌홍의 머리채를 놓고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구석으로 물 고 있던 담배를 집어 던졌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까?”
왕옌홍은 본능적으로 저 말은 들 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 챘다. 하지만 그는 귀를 막을 수 없 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인간은 호기
심을 버리지 못하는 법이니까.
“너는 이미 회주님의 섭혼술에 걸 렸어. 그건 두 가지를 의미하지.”
이현수가 손가락을 가볍게 좌우로 저었다.
“하나는 네 마음이 이미 한 번 꺾 였다는 것. 섭혼이란 굳건한 의지를 가진 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더군. 하지만 너는 이미 한 번 고통 앞에 스스로를 놓았어. 다시 말해 너는 고문이 통하는 인간이라는 거지.”
“개, 개소리!”
“아니야, 아직 아니야, 왕옌홍. 진 짜 재미있는 건 두 번째 의미야.”
이현수가 슈트 상의의 단추를 열 었다. 그러고는 옷 안쪽에서 손바닥 보다 조금 긴 단검을 꺼내 들었다.
이현수가 뽑아 든 단검으로 자신 의 목을 가볍게 찔러 댔다. 살짝 닿 기만 했는데도 살이 갈라지며 핏방 울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잘 생각해 봐. 너는 이미 섭혼에 걸렸어. 여기서 달아나지도 못하고, 나를 공격하지도 못하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회주님은 이제 눈짓 하나로 네 입을 열 수 있어. 회주님이 알고 있
는 걸 모두 말하라고 지시한다면, 너는 그저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뜻 이지.”
왕옌홍의 눈이 흔들렸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아니…….
이미 불가능은 충분히 겪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제 와 새삼 불가 능을 논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회주님은 너를 내게 맡 겼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이현수가 빙그레 웃으면서 왕옌홍 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입가에 맺힌 웃음을 본 왕
옌홍의 체온이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네 가장 큰 불행은 죽지 못한다 는 거야. 회주님은 네게 죽음을 허 락하지 않으셨거든. 그러니 이제부 터는 나하고 놀아보자. 나도 궁금해, 네가 얼마나 참아낼지.”
이현수의 눈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왕옌홍의 턱이 절로 떨리기 시작 했다.
이놈은 뭔가 이상하다.
그도 그동안 제정신이 아닌 놈들 을 수 없이 봐왔지만, 이놈은 그런
이들과도 뭔가 달랐다. 과격하거나 광기에 휩싸인 것도 아니다.
마치…….
마치 머릿속 어딘가가 망가진 인 간 같았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이현수가 빙그레 웃었다.
“재미있는 일이지만, 나름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무인들은 자신의 정신력도 그 무력에 비례해 강해진 다고 믿더군. 그런데 말이야……
“적어도 내가 확인해 본 바로는 무력과 정신력은 별 상관이 없더라
고. 내 앞에 잡혀온 놈치고 약한 놈 은 없었는데…… 그놈들이 마지막에 어떤 말을 하며 죽어갔는지 말해줄 까?”
“미, 미친놈이……
“좋아, 그런 반응.”
이현수가 낄낄 웃으며 왕옌홍의 발을 움켜잡았다.
“네가 증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 군. 무인들의 정신력이 강하다는 걸 말이야.”
왕옌홍을 보며 윙크를 한 이현수 가 그의 신발을 벗겨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