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20)
마존현세강림기-1722화(1719/2125)
마존현세강림기 70권 (5화)
1장 거침없다 (5)
강진호가 가만히 자신과 마주 선 이를 바라보았다.
거리는 불과 10여 미터.
멀다면 먼 거리다.
하지만 그 불과 10여 미터 앞에 있는 존재가 홍왕이라 불리는 자라 면 그 거리를 멀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화려한 금색의 복색이 아니라 수 수한 한푸[漢服]를 입은 홍왕이 그 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뭐라 해야 할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태산 같은 진중함이 느껴진다.
바토르처럼 거대한 육체는 아니지 만, 충분히 크다고 느낄 만한 몸은 바위로 만들어진 것처럼 단단하고 무거워 보였다.
그 몸 하나하나에 거력이 머물지 않은 곳이 없다.
강진호의 시선을 느낀 홍왕이 먼 저 입을 열었다.
“어울려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 나?”
“약속한 일이니까.”
“적당히 거절했다면 나 역시도 강 요할 방법을 찾지 못했겠지. 지금 상황이 그러하니까. 내 억지에 어울 려 준 것에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착각하지 마라, 홍왕.”
강진호가 흥왕을 보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나도 딱히 억지로 싸우는 건 아 니다. 슬슬 한 번 정리를 해둘 필요
는 있다고 생각했다.”
“흐음.”
홍왕이 살짝 주먹을 말아 쥔다.
강진호의 말끝에 묻어나는 여유가 조금 전부터 홍왕의 신경을 자극하 고 있었다. 반면에 홍왕은 조금 전 부터 미묘한 긴장감을 어쩌지 못하 고 있었다.
홍왕의 눈이 가라앉는다.
처음 그가 강진호와 조우했을 때 를 생각하면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 다. 그때의 강진호는 홍왕의 손에서 겨우 살아 돌아갔다.
비무였다면 홍왕의 숭리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싸운 전투에 서 서로 목숨을 잃지 않았다면 그건 승부를 내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무승부라 칭한 것뿐.
그 승부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 지는 홍왕도 알고, 강진호도 알고 있었다.
하나.
‘그 짧은 시간 만에 입장이 여기 까지 뒤바뀌었다는 건가?’
홍왕은 이미 자신만의 영역을 확 고하게 구축한 무인. 과거로 치자면 대종사의 반열에 든 이다.
그런 이가 상대와 자신의 차이를
가늠하지 못할 리는 없다. 지금의 강진호는 과거 그가 쉬이 상대한 이 가 아니다. 제대로 상대하기 위해서 는 홍왕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생사결이 아님이 아쉽군.”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평소의 강진호라면 ‘그래서 목숨 을 구한 거지’라는 말로 적당히 이 죽여 줬겠지만, 지금의 홍왕에게는 그런 조롱이 온당치 않다.
지금 홍왕의 발언은 생사결이었다 면 강진호의 목숨을 끊어놓을 수 있 다는 도발이 아니라, 서로가 뒤를 생각하지 않고 전력을 다할 수 없으
니 아쉽다는 의미니까.
“아쉬울 것 없어.”
“•…”음?”
강진호의 미소가 짙어진다.
“사정 봐줄 필요 없다는 소리지. 죽일 각오로 덤벼봐. 어차피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홍왕의 눈가가 미묘하게 일그러졌 다.
그가 아는 강진호는 기본적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승리할 것 을 의심하지 않는 이다.
과거, 그와 강진호가 목숨을 걸고 싸웠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홍왕
의 우위가 더없이 확실하던 그 순간 에도 강진호는 자신의 승리를 의심 하지 않았다.
그건 허세 같은 게 아니다.
실력이 차이 난다고 해서 승부의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건 아니다. 더 약한 이가 더 강한 이를 꺾는 상황 따위는 세상에 수도 없이 벌어 지는 흔한 일 아니던가.
그때의 홍왕은 강진호의 그 자신 감을 그저 웃으며 볼 수 있었다. 하 지만 지금은 저 자신감이 거슬린다.
강진호가 달라진 게 없다면 달라 진 건 당연히 홍왕일 것이다.
‘나는 잃었구나.’
과거의 홍왕은 자신에 대한 절대 적인 자신감과 신앙에 가까운 믿음 으로 뭉쳐진 사내였다. 하지만 이번 창왕과의 승부에서 패배하며 스스로 에 대한 확신이 옅어져 버렸다.
그렇기에 저 강진호의 태도가 그 의 신경을 자꾸 자극하는 것이겠지. 저 자신감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고 스스로 의심하고 있으니까.
흥왕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가 평범한 무인이었다면, 이 상 황을 부정했을 것이다. 자신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지금도 더없
이 강인하다며 위안했겠지.
하지만 홍왕은 스스로를 속이기에 는 너무도 완전한 마음을 지니고 있 었다.
‘외면하지 마라.’
자신을 속이는 짓따위는 가장 해 서는 안 되는 일이다.
“마왕이여.”
“음‘?”
“대답하라. 나는 약해졌는가?”
강진호가 이채를 띠고 흥왕을 바 라보았다.
단단하게 굳은 얼굴로 물어오는 홍왕에게는 어떠한 흔들림도 느껴지
지 않았다.
‘ 대단하군.’
극복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나약 함을 직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스 스로의 상태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면 상처는 곪아들어가 결국은 흉터처럼 남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직면한다 는 것은 커다란 고통을 동반하는 일 이다. 특히나 홍왕처럼 스스로를 확 고히 믿는 이에게는 평범한 이들과 는 비교도 안 되는 고통이 동반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홍왕은 그 고통을 피하
지 않고 직면하는 쪽을 택했다.
“기준이 어디냐에 따라 다르겠 지.”
“처음 대면했을 때보다는 강해졌 지만, 마지막 보았을 때보다는 못하 다는 의미인가?”
“……잘 아는군.”
홍왕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약해진 원인은 결 국 정신의 문제겠군.”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홍왕은 일가를 이룬 무인이다. 스 스로 자신의 상황을 대면할 용기가 있다면 스스로의 상태를 진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굳이 강진 호의 대답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 다.
“패배라……
홍왕이 웃어버렸다.
“나는 내 스스로 단 한 번도 패하 지 않았다는 것을 자긍심 삼아 살아 왔다. 하지만 패배를 경험하지 못했 다는 게 오히려 나의 발목을 잡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군. 적당한 시기에 패했더라면 이런 상황에 처 하지는 않았을 텐데.”
“패하지 않았기에 거기까지 갈 수 있던 걸지도 모르지.”
“……그 말도 틀리지는 않군.”
홍왕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이여, 아는가. 나는 지금 매 우 분노하고 있다.”
홍왕이 정광 어린 눈으로 강진호 를 노려본다.
“패배가 나를 무디게 만들었다는 것은 나는 창왕이나 창왕이 내게 준 패배에 겁을 먹었다는 의미겠지. 나 는 그걸 참아낼 수가 없다.”
우드드득.
홍왕이 주먹을 틀어 쥐었다.
“패배는 숭리로 지울 수 있는가?”
“무리지.”
강진호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더 강한 이를 이긴다 해도?”
“설사 네가 나를 이긴다고 해도 네 손으로 창왕을 극복하지 않는 이 상은 달라질 게 없다. 아니면 네가 절대로 다시는 창왕에게 지지 않는 다는 완벽한 확신을 얻는다면 또 모 르겠지만.”
강진호의 말이 맞다는 듯 홍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로군.”
홍왕이 웅혼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이기면 될 일이다.”
“말귀를 못 알아먹나?”
“아니. 충분히 이해했다. 네게 이 길 수 있으면 창왕에게 지지 않을 것 같거든.”
“……알아먹긴 했네.”
강진호가 피식 옷고는 양팔을 좌 우로 벌렸다.
우우우웅!
공간이 일그러지며 그의 손이 허 공 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다시 뽑 아낸 그의 양손에는 적루와 홍루가 들려 있었다. 두 자루의 긴 장검을 늘어뜨린 강진호가 가라앉은 눈으로 홍왕을 웅시했다.
“하지만 여전히 못 알아 처먹었 어. 만전의 상태도 아닌 네가 내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가?”
“어렵겠지.”
홍왕의 양 주먹에 황금빛 서기가 어렸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너도 무인이라면 알겠지.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는가, 포기하는가의 기 로에 선다면 선택할 것은 하나뿐이 라는 것을.”
“맞는 말이지.”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가 홍왕의 입장이라 해도 손을
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아갈 길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무인은 그 자리 에 안주하는 순간 끝난다.
아무리 멀고 지난해 보이는 길이 라 할지라도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걸어야 생기는 법이니까.
“걱정할 것 없어.”
강진호가 나직하게 속삭이듯 말했 다.
“창왕 정도는 언제든 이길 수 있 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지. 대신 더 큰 벽을 만나게 될 거야.”
“건방진 놈. 감히 누구에게.”
홍왕의 두 눈이 불타오르는 둣한 안광을 토해내었다.
“네가 네 입으로 전력을 다하라 했으니, 소원대로 해주지!”
홍왕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 쳤다.
그러자 강진호가 비웃듯 말했다.
“그만 지껄이고 덤벼.”
“오오오오오!”
홍왕의 몸이 한 줄기 금빛 섬광 이 되어 강진호를 향해 쏘아졌다.
강진호의 육체에서 검은 마기가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황금의 섬광과 검은 불꽃.
인간을 초월한 두 초인이 정면으 로 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
“아우!”
방진훈이 양팔을 들어 얼굴을 가 렸다.
괴물과 괴물의 충돌.
그 여파는 먼 곳에서 그 전투를 지켜보는 이들에게까지 미쳤다.
“……뭐가 이리 날아와?”
잘 보이지도 않는 거리다.
어설프게 휩쓸리면 방진훈 따위는 뼈도 추리지 못한다. 스스로 그 사
실을 잘 알기에 이 정도 거리면 폭 격이 떨어져도 괜찮다 싶은 곳까지 멀어졌건만.
“읏차.”
위긴스가 양손을 내뻗자 그들의 앞에 투명한 막이 쳐졌다.
“아! 감사합니다, 이사님.”
“괜찮네. 나도 좀 집중해서 보고 싶으니까.”
위긴스가 더없이 흥미롭다는 듯 두 사람의 격돌을 지켜보았다.
“……잘 보이지도 않는군.”
“그러게요.”
방진훈이 한 말의 의미는 거리가
너무 멀다는 뜻이고, 위긴스의 발언 은 저들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걸 의미했다.
아무리 안력을 돋워도 저들이 충 돌하는 속도를 눈으로 따라갈 수가 없다. 뭐가 번쩍번쩍하는 것이, 사람 과 사람의 싸움이라기보다는 특수 효과의 향연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하지만 눈으로 제대로 볼 수는 없다 해도 그 충돌이 만들어내는 무 시무시한 힘의 여파는 확연히 전해 져 온다.
그 힘을 느끼는 것만으로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그 증거로…….
“흐……
바토르가 두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두 사람의 충돌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거의 빨려 들어갈 기세였다.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는 바토르 를 본 위긴스가 슬쩍 고개를 돌려 장민을 바라봤다.
장민 역시 바토르와 비슷한 반웅 을 보이고 있었다.
꽉 쥔 주먹이 새하얗게 질려 있 고, 전신이 미미하게 경련을 일으킨 다.
위긴스는 새삼 이 두 사람이 자 신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실감 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그 무위가 높을수록, 그 경지가 높을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위긴스는 이 두 사람의 눈 에는 과연 어떤 것이 보이고 있을지 궁금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으윽!”
방어막에서 전해지는 충격에 위긴 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확실히 저 둘은 차원이 다르군.’
그 충돌의 여파만으로 총회 최고 의 무인들을 완전히 짓밟아 버리고 있었다.
위긴스가 굳은 얼굴로 황금빛의 섬광과 검은 불꽃의 충돌을 바라봤 다.
“눈을 떼지 마라.”
그 순간, 바토르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평생 다시는 못 볼 광경일지도 모르니까.”
그 말에 모두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