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23)
마존현세강림기-1725화(1722/2125)
마존현세강림기 70권 (8화)
2장 승부하다 (3)
“……내가 먼저 뒈지겠네.”
어느새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 방 진훈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 레 내저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기가 힘 들다.
처음에는 눈으로 쫓기도 힘든 공
방이 오고 가더니, 이제는 숫제 힘 대 힘으로 들이받는다. 방진훈 같은 이는 근처에 다가갈 수도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힘의 격돌이었다.
“체력도 좋지.”
“……공감이다.”
시간 개념이 잘 서지 않는다. 싸우기 시작한 때가 언제였더라?
얼마 되지 않은 것도 같고, 벌써 몇 시간 이상 흐른 것도 같다.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공간과 저 앞의 공간은 이어져 있되, 전혀 다 른 세상이었다.
방진훈도 방진훈이지만, 지금 이
곳에서 가장 큰 격동을 보이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바토르였다.
그는 이미 홍왕과도 수없이 맞붙 어보았고, 강진호와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대련을 해왔다. 그렇기에 저 두 사람에 능력에 대해 웬만큼은 알 고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서 펼쳐 진 광경은 바토르의 그 믿음이 얼마 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사람 머리통보다 더 큰 바토르의 주먹이 뒤틀리듯 꽉 쥐어졌다.
겨우 팔다리를 놀리는 어린아이가 어른과 몇 번 드잡이질을 해보았다 고 어른의 힘을 모두 알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착오가 있었다면, 바토르는 저들과 자신의 차이가 어 른과 어른아이 정도는 아니라고 생 각한 것뿐.
그 어이없을 정도의 커다란 격차 를 눈으로 확인하는 바토르의 심정 은 참담함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그의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장민 역시 마찬가지인 모 양이었다.
“허허허허.”
평소라면 강진호의 무위에 감격 어린 말들을 늘어놓을 장민이지만, 지금 장민의 얼굴에 어린 것은 감격 이 아니라 허탈함이었다.
“적당히 차이가 나야 호승심이라 도 생길 텐데.”
장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 다.
감히 강진호의 힘을 재단하려 든 적은 없다. 그는 무인이기도 하지만, 그저 믿고 따르는 이기도 하다. 누 군가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은 상대 의 능력을 재단하고 합리적으로 평
가하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맹목.
믿음이란 맹목이다.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든 불가능한 일이든, 그 저 그 의지를 믿는 것이 진정한 믿 음이 아니던가.
창왕과 싸울 때도 이미 강진호의 능력을 충분할 만큼 보았다. 하지만 그때는 그들 역시 급박하기 짝이 없 기에 냉정하게 지켜볼 수 있는 상황 이 아니었다.
비무이기 때문에 오히려 확실히 보인다.
가슴 졸이지 않기에 더 냉정하고
차갑게 이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 다.
하지만 그 객관적인 시선은 오히 려 지켜보는 이들에게 커다란 절망 감을 안겨줄 뿐이었다.
위긴스가 슬쩍 장민의 안색을 살 폈다.
지금까지 그들이 알던 장민과는 조금 다른 반응이다.
‘그럴 만도 하지.’
무력으로 이들을 따라잡는 건 이 미 포기한 위긴스였다. 언감생심 강 진호는 엄두도 내지 않았다. 그와 강진호는 애초에 타고난 것부터 다
르니까.
그런 위긴스조차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할 말을 잃었는데, 장민이 느끼는 충격이야 오죽하겠는 가.
“그래서……
그때, 그의 등 뒤에서 태연한 목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누가 이기고 있는 겁니까?” 위긴스가 할 말이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이 현수가 들어왔다.
“……눈이 없냐?”
“이런 분야에 있어서는 제 눈깔이 아무런 기능을 못한다는 것 정도는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주 제 파악을 잘 해야 하는 법이죠.”
거, 말이라도 못하면 후려쳐 버리 고 싶지는 않을 텐데.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고는 턱짓으 로 앞을 가리켰다.
“그냥 눈으로 봐라.”
“아니, 눈이 쓸모가 없다니까요.”
“ 알아.”
위긴스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이제 숭부가 날 거다. 명확하게.”
그들의 시선이 전투의 막바지로 향했다.
쿵!
절망이라는 것은 딱히 대단한 게 아니다.
슬프고 아픈 것이 절망이 아니다. 절망이란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개념 이다. 절망이라는 건 결국 희망의 부재를 의미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흥왕은 절망 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벽 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
승기가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확고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그의 표정이 살아 생전 단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표정을 만 들어내기 시작했다.
‘ 나는••••••
홍왕이 발작적으로 주먹을 내질렀 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이전 같지 않았다. 내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권이 제 투로를 찾지 못한 것도 아 니다. 속도는 더없이 빠르고, 그 위 력은 이전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뭔가 분명 다르다.
반사적으로 내뻗는 주먹에는 이전 과 같은 확신이 담겨 있지 못했다. 이 주먹으로 부술 수 없는 게 없다 는 믿음이 사라진 주먹은 아무리 같 은 위력으로 뻗어진다 하더라도 홍 왕의 권이라 할 수 없었다.
홍왕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스스로에 대한 믿 음을 되살리려 해도 눈앞의 벽이 그 걸 허락하지 않는다.
‘ 나는••••••
다르다.
그가 생각한 패배라는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저 멀리, 너무도 멀리 보이는 희 망을 찾아 걷고, 뛰고, 힘이 다해 기다가 손을 뻗다 쓰러지는 것이 그 가 생각한 패배였다.
하지만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어둠.
아무리 고개를 돌려봐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미약하기 짝이 없는 단 한 줄기의 빛이라도 보인다면 영 혼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빛 을 쫓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어찌 쫓으란 말인가.
통하지 않는다.
그가 평생을 갈고닦아 온 권도, 평생 동안 쌓아 올린 내력도, 참오 하고 또 참오하여 오른 무위조차 도…….
그 어떤 것도 그의 앞에 있는 이 사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보라.
있는 힘을 모두 끌어내 날린 권 력이 마기를 두른 검에 반 동강이 나 명멸한다.
“우오오오오오!”
홍왕이 두 눈에 핏발을 세우며 권을 날리고 또 날렸다. 마르지 않 는 우물처럼 끝없이 내력이 솟아오
르던 그의 단전이 바닥을 보일 지경 까지 내력을 뽑아내고 또 뽑아낸다.
마치 금빛의 물결이 밀려드는 것 처럼 권력의 강이 강진호를 휩쓸어 갔다.
하지만!
파아아아아아앙!
대기를 찢어발기는 검격.
검은 불꽃을 휘감으며 불타오르는 검은 밀려오는 강을 밀쳐 내고, 가 르고, 또 증발시킨다.
물론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분명 강진호 역시 상처를 입고 있다. 그 역시 내력을 소모하고, 육
체가 부서지고, 정신이 갉아 먹히고 있을 것이다.
하나.
아무리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다고 해도 결국 사람이 맨몸으로 하늘을 날 수는 없는 것처럼, 아무리 강진 호의 육체를 갉아내도 궁극적인 승 리에는 도달할 수 없다.
홍왕의 무인으로서의 감과 비상한 두뇌는 그 사실을 너무도 확연하게 인식했다. 아무리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가 의도하기도 전 에 육체가 먼저 결과를 찾아버린다.
‘나는 이기지 못하는가.’
예상했다.
거기까지는 예상한 일이다. 얼마 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길 가능성 조차 존재하지 않는 다는 건가?’
홍왕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도박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상대 를 이기기 위해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미 정해져 있는 패배로 향하는 시간 을 필사적으로 늦추는 것뿐이었다.
단 한 번도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다.
무학을 익히기 시작한 때부터, 아 니, 그전부터 홍왕은 강자였다. 물론 그 역시 날 때부터 홍왕은 아니었으 니, 그보다 더 강한 이들을 겪어보 지 못한 건 아니다.
하지만 설사 자신보다 더 강한 이를 마주한다고 해도 그에게는 언 젠가는 반드시 그들을 초월할 수 있 는 미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홍왕에게는 그 미 래가 보이지 않는다.
‘이게 절망인가?’
심장이 찢겨 나가는 것 같다.
창왕과의 전투에서 패배했음에도 홍왕은 마지막 선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제대로 붙는다면 패하 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으니 까. 설사 창왕이 그보다 더 강하다 해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 으니까.
하나 지금은…….
“그럴 리가 없어!”
홍왕이 발작적으로 주먹을 휘두른 다.
하지만 혼들린 마음은 권에 고스 란히 나타났다.
태산처럼 거대하던 그의 기운이 뒤흔들리고, 무겁지만 정교하던 권 이 미묘하게 제 길에서 어긋난다.
그리고…….
더 오를 곳을 찾지 못하는 절대 의 고수들끼리의 전투에서 이 작은 틈은 너무도 거대했다.
파아아아아앙!
무심하게 휘둘러진 강진호의 적루 가 권격 사이를 가르며 그 틈을 벌 려 낸다.
그런 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제트엔진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용솟음치는 마기의 불꽃이 살 아 있는 듯 넘실대며 그 틈으로 파 고들었다.
홍왕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가 거두지 않는 이상 단 한 번 도 밀려난 적 없던 그의 권격이 지 금 갈가리 찢겨 나간다. 그리고 그 찢겨 나간 세상으로 어둠이 밀려들 고 있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이!
“나는!”
홍왕이 진각을 밟았다.
그를 받치고 있는 대지를 터뜨려 버리겠다는 둣 혼신의 힘을 다해 내
리밟은 진각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나는 홍왕이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조리 짜낸 힘을 우수에 모두 밀어 넣는다. 그 의 인생에서 어쩌면 단 한 번도 뻗 어보지 못한 모든 것을 담은 일격이 그를 덮쳐오는 마기를 향해 쏘아졌 다.
콰 아아아아 아아 아아아아 앙 !
하늘이 무너지는 듯 거대한 소리 와 함께 홍왕의 몸이 태풍에 휩쓸린 가랑잎처럼 날아간다. 코와 입으로 피를 분수처럼 내뿜으며 튕겨 나간 홍왕이 바닥에 그대로 처박혀 경련
을 일으켰다.
“우욱••••••
목으로 치밀어 오른 피가 입으로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몸이 으스러진 것 같은 고통.
하지만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정신적인 고통에 비하면, 육체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 다.
저벅저벅.
잿빛으로 죽어버린 눈으로 그저 신음하는 홍왕을 향해 강진호가 천 천히 걸어왔다.
우우우우우웅.
아공간에 적루와 청루를 밀어 넣 은 강진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 내 들었다.
담뱃갑을 열어 겨우 한 개비 남 아 있는 온전한 담배를 꺼낸 강진호 가 그걸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후우우우.”
그 역시 그리 좋은 몰골은 아니 었다.
전신의 살이 모조리 검게 죽어 있다. 압력을 이기지 못한 육체가 터져 나가다 못해 괴사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결국 그는 승리했고, 홍왕
은 패했다.
담배 연기를 내뿜은 강진호가 홍 왕을 내려다보다 가만히 입을 열었 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빛을 잃은 홍왕의 눈이 강진호를 바라본다.
“지옥에 떨어져 보지 못한 인간은 언젠가는 한계를 맞이하기 마련이 지. 하지만 나쁘게 생각할 건 없어. 무인이든 사람이든 결국은 한계에 직면하는 순간, 새로운 길을 찾기 마련이니까.”
깊게 담배를 빨아들인 강진호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상대할 이가 없어서 외롭다고 했 나?”
다 피워 버린 담배를 바닥에 던 진 강진호가 미련 없이 몸을 돌렸 다.
“이젠 외롭지 않을 거야.”
홍왕과 마왕.
길게 이어져 온 숭부의 결착이 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