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24)
마존현세강림기-1726화(1723/2125)
마존현세강림기 70권 (9화)
2장 승부하다 (4)
“후우우우우.”
강진호가 소파에 늘어져 느긋하게 담배를 피워 물었다.
전신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어 디 한 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지 만, 이런 탈력감은 오히려 그에게 커다란 충족감을 안겨주었다.
“……기분 좋아 보이십니다?”
“음?”
이현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홍왕을 이기니 앓던 이가 빠지신 모양이네요.”
이현수의 말에 강진호가 피식 옷 었다.
“빤하게 이길 상대를 빤하게 이겼 는데 딱히 좋을 게 있나?”
“와, 진짜 재수없게 들리는 것 아 시죠?”
강진호의 눈가가 살짝 경련을 일 으켰다.
때때로는 홍왕보다 저놈이 더 짜 증 난다.
“그런데 생각보다 고전하신 것 같 은데요? 말씀하기로는 쉽게 이기신 다더니.”
“쉽게 이겼잖아?”
“반나절을 싸웠는데 쉽게요?”
강진호가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고개를 저어버렸다.
이건 쉽게 말하자면 원시인에게 컴퓨터 게임을 설명하는 격이다. 그 가 아무리 악을 쓰고 떠벌여 봐야 저놈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죽어라 설명하고 나면 ‘아, 그래 요?’ 한마디 하고 말겠지.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다.
“그리고……
이현수가 묘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봤다.
“처음 계획은 완전히 짓밟아서 다 시는 눈도 못 마주치게 만드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런 것치고는 굉장 히 신사적으로 끝난 것 같은데요?”
강진호가 슬쩍 이현수의 시선을 피했다.
눈을 못 마주치는 건 홍왕이 아 니라 강진호였다.
“ 호오‘?”
그런 반응을 살핀 이현수가 사냥 감을 본 하이에나의 눈으로 강진호 에게 다가왔다.
“제가 생각하는 게 맞는 겁니까?”
“.뭘?”
“아무리 봐도 밟은 게 아닌 것 같 은데.”
“솔직하게 말하시죠.”
강진호가 대답 없이 창밖을 바라 보았다.
‘귀신 같은 게.’
실력도 없는 놈이 이럴 때만 눈 치가 빠르다.
물론 강진호도 처음부터 홍왕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려던 건 아니었 다. 원래 계획은 흥왕을 완전하게 짓밟아서 다시는 강진호에게 항거하 지 못하게 만드는 거였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있잖은가.
벽에 막혀서 낑낑대는 사람을 보 면 어떻게든 한마디를 하고 싶어지 는 인종.
남이 장기를 두는 걸 옆에서 보 고 있으면 훈수를 두지 않고는 버티
지 못하는 사람 말이다.
평소에는 타인에게 그리 관심이 많지 않은 강진호지만, 무학에 관련 된 일이면 문제가 좀 달라지는 모양 이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이현수가 눈을 부라렸다.
“뭐, 자선사업…… 어…… 아니, 자선사업은 이미 하고 있고.”
“……그렇지?”
“사업을 할 거면 자기 분야에 전 념해야지! 그걸 왜 확장을 하십니 까, 확장을! 무분별한 확장이 회사 말아먹는 것 모르십니까?”
“MK는 그러고 있잖아.”
“……그건 좀 경우가 다르죠.”
말을 하다 보니 이현수도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 보면 강진호나 MK나 사 업적으로 하지 말라는 짓은 다 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름 성공을 거두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지.
“그런데 이럴 줄 알았다고?”
“예.”
“왜?”
“회주님은 원래 자기편이면 말도 안 되게 퍼 주잖습니까. 요즘 보니
까 홍왕이 적이라는 인식이 사라진 것 같던데요?”
강진호가 멍한 얼굴을 했다.
‘적이라는 인식이 사라졌다고?’
“뭐 그런 얼굴을 하십니까? 그럴 만도 하지. 위기에 처했다고 중국까 지 구하러 가고, 구하면서 같이 적 이랑 싸우고, 우리 집에서 요양까지 시켜준 판인데!”
강진호가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 다.
듣고 보니 그렇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적에게 할 만한 일은 아니
다.
홍왕이 적이라는 명확한 인식이 있었다면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 어도 강진호가 그를 돕는 일은 없었 을 것이다.
“여하튼 무인이라는 양반들은 알 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이게 무슨 80 년대 청춘 영화도 아니고, 싸우면서 정드나.”
이현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 다.
생각해 보면 뭐 그리 나쁜 상황 은 아니다. 홍왕을 찍어 눌러 후환 을 없애나, 두 사람이 나름 우정을
쌓아서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없애 나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니까.
뒤쪽은 영 뒷맛이 찝찝해서 그렇 지.
“그러다 홍왕이 엄청 세지면 어쩌 시려고 그럽니까?”
“괜찮아.”
강진호가 담배 연기를 천천히 뿜 어냈다.
“내가 더 세니까.”
“……답도 없네, 진짜.”
어이없는 근거다. 하지만 서글픈 것은 저 근거에 딴지를 걸 수 없다 는 점이었다. 센 놈이 지가 세다고
하는데 뭐라고 태클을 걸어야 한단 말인가.
이현수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고 개를 내저어 버렸다.
“그래서 홍왕은 이제 더 강해지는 겁니까?”
“모르지.”
“……도와주셨잖아요.”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옆에서 슬쩍슬쩍 거드는 정도로 문제를 해결하고 더 강해질 수 있는 거라면, 세상에 강자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어.”
요 Q..»
…•
“조금 쉬워지긴 하겠지. 가야 할 방향이 좀 명확해진 거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넘을 수 있는 건 아 니야. 특히나 홍왕 같은 놈은.”
추락해 본 적이 없다.
홍왕은 살아온 세월 내내 오르고 또 오르기만 했다. 단 한 번의 미끄 러짐도 없이 드높은 경지를 쌓아 올 렸으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그만큼 높이 올라갔기에 추락도 깊은 법이 다.
바닥에 굴러 떨어져 자신이 올라 야 할 곳을 다시 바라보면 까마득하
다 못해 아득할 지경이 아닐까?
“그럼 안 되는 겁니까?”
“그렇게는 말 안 했다.”
그렇다 해도 홍왕은 결국 오를 것이다.
그나 강진호가 눈앞에 보이는 산 이 있으면 오르지 않고는 버티지 못 하는 인종들이니까.
“……뭐, 좋습니다. 어쨌거나 지금 은 홍왕이 강할수록 좋으니까요.”
적어도 한동안 홍왕은 그들과 함 께 창왕과 싸워야 할 동료다. 그러 니 뒤는 어떻게 되더라도 지금 당장 은 강해지는 쪽이 좋았다.
애초에 먼 미래를 보지 않고 당 장 앞만 보고 달리는 게 강진호와 이현수의 스타일 아니던가. 차라리 이게 잘된 걸 수도 있다.
“홍왕은 언제 중국으로 가지?”
“원래는 비무 뒤에 바로 출발할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꿈도 크네.”
“그러게요.”
강진호와 싸운 뒤에도 큰 부상을 입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는 의미다. 참 홍왕다운 무모한 자신감이라고 해야 할까.
“상황이 달라졌으니, 부상이 회복
되는 대로 중국으로 가겠죠.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한 삼 일이면 되겠지.”
“……걸레짝이 됐던데, 겨우 삼 일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회주님 처럼 담배 피운다고 상처가 낫는 게 아닙니다.”
“……얼마 안 때렸어.”
“죽기 직전이던데.”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피육의 상처 같은 건 별게 아냐. 중요한 건 내상이지. 속이 뒤틀리지 는 않았으니, 얼마 안 걸릴 거야. 그냥 비무나 한 건데, 뭐.”
비무라…….
이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걸 비무라고 말하는 데서 이미 이 양반들은 스케일이 남다르다.
“여하튼 이걸로 홍왕계는 정리가 됐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이현수가 볼을 살짝 긁었다.
“이제는 이쪽만 남았다는 의미 죠.”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우리 쪽 준비는 방 이사님이 힘 을 써주고 계십니다. 곧 준비가 끝 날 겁니다. 그리고 위긴스 님이 원 탁 쪽을 맡아서 병력을 충원하고 있
습니다. 저는 정부와 미군 쪽과 협 상해야 하고요.”
“ 일본은?”
“걔들이야 이제 뭐 와서 싸우라면 싸우는 수준이라 딱히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이현수가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될 뒷말도 붙였다.
“그리고 거의 전력이라고도 볼 수 없는 총알받이 수준이라……
이현수가 생각할수록 짜증이 난다 는 듯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그러게 적당히 좀 쳐 죽이시지!
그때 쓸 만한 놈들 좀 살려놨으면 지금이 편할 것 아닙니까! 그걸 왜 싸그리 쳐 죽이다 못해 원정까지 가 서 죽입니까? 써먹을 놈들이 없잖아 요.”
“……네가 하라고 했잖아.”
“그랬죠.”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래서 사람 일이란 한 치 앞을 모른다고.”
저 새끼, 죽빵 한 대 갈기고 싶은 데…….
때리면 죽겠지?
강진호가 이현수를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예.”
“너, 좀 속이 편해진 것 같다?”
“맞습니다.”
이현수가 빙그레 웃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창왕과 싸운 다는 부담감에 거의 정신 줄을 놓고 있던 이현수다. 그런데 지금 이현수 는 강진호와 농담을 하고 놀던 평소 의 이현수 같았다.
“뭐 좋은 소식이라도 있어?”
“아니요. 그냥 내려놓은 것뿐입니
다.”
“ 뭘?”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얼마 전까지는 제가 머리로 창왕 을 이기지 못하면 떡 발릴 것 같아 서 꽁지에 불이 붙은 기분이었거든 요.”
“……그런데?”
“오늘 회주님이랑 홍왕이 싸우는 걸 보니까 살짝 현타가 오더라고요. 내가 아무리 전략을 짜고 날뛰어봐 야 결국에는 대가리끼리 맞다이 떠 서 이기는 쪽이 승자가 되겠구나.”
“그래서 그냥 마음 편히 먹기로 했습니다. 뭐, 좀 지면 어떻습니까. 마지막에 살아남으면 그게 이기는 거지.”
강진호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잘 좀 부탁드립니다.”
반쯤은 농담이겠지만, 분명 부담 이 덜어진 얼굴인 건 분명했다.
이런 식으로 뭐가 하나 해결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여하튼 좋아.”
강진호가 새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찰칵.
담배 끝이 타들어 가며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퍼져 나간다.
“후우.”
욱신거리는 감각이 기묘하게도 편 안하다. 홍왕 같은 강자와 싸우는 건 더없이 기분 좋은 일이다. 그리 고 그런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건 몇 배는 더 기분 좋은 일이고.
‘아직 남았지.’
아직 창왕과 싸울 수 있다. 그리 고 어쩌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 은 흑왕과 싸울 기회도 있을 것이
다.
언젠가는 다시 자신의 힘을 되찾 O..
아니, 그 이상의 힘을 얻은 홍왕 과 또 싸울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그 사실이 강진호의 가슴을 조금 씩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강진호는 이 전쟁을 두려워한다. 모든 것을 잃을까 봐 겁을 집어먹고 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다.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는 누구 보다 이 전쟁을 기다리는 또 다른
강진호가 있다. 과거처럼 명확하게 인격이 나뉜 건 아니지만, 그의 마 음은 확실히 이율배반적이었다.
‘아무래도 좋아.’
이 미묘한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싸운다.
그리고 이긴다.
그러면 강진호는 모든 것을 지켜 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바라고 바 라던 것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현수.”
“예, 회주님.”
“준비 철저히 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모든 걸 걸었습니다.”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 다.
“중국이라……
과거, 그가 날뛰었던 곳.
중원.
이제는 더 이상 중국을 그리 부 르는 이들은 없지만, 이들을 이끌고 중원으로 간다면 과거의 그처럼 모 든 것을 내려놓고 싸울 수 있을 것 이다.
그래.
마교를 이끌고 중원을 질타하던
적천마존처럼 말이다.
발끝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알 수 없는 쾌감에 강진호가 조금 격하 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기다려라, 창왕.’
내가 곧 갈 테니까.
그때는 확실하게 죽여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