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28)
마존현세강림기-1730화(1727/2125)
마존현세강림기 70권 (13화)
3장 끌어내다 (3)
“그래서……
탁.
이명환의 자리 앞에 커피 잔을 내려놓은 강진호가 조금 황당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평정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고 싶 다?”
“예, 회주님.”
강진호가 뭔가 떨떠름한 얼굴로 이명환을 바라봤다.
그동안 이명환과는 꽤 오래 같이 지냈지만, 이명환 쪽에서 먼저 면담 을 신청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간만에 신청한 면담의 목 적이 이런 거라니.
“부탁드립니다, 회주님.”
강진호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몰라.”
“••••••예?”
“나도 모른다고.”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오고 갔다.
이명환이 뭔가 떨떠름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봤다.
“ 아니••••••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주저하던 이명환이 강진호에게 억울한 시선을 보냈다.
“전쟁 전에 제일 침착한 건 회주 님이잖습니까?”
“누가 그래?”
“••••••예?”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전쟁 전에는 긴장된다.”
“아니, 겨우 그 정도로 얼버무릴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사실 겁이 나 서 정신이 없을 정도다.”
“……그 얼굴로요.”
“무표정은 천성인데?”
이명환이 뭔가 불만 가득한 눈으 로 강진호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건 강진호가 어찌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목숨이 오가는 일을 앞에 두고 불안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
한 거지.”
“확실히 그건 맞는 말입니다만.••… 이명환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놈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으 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저 때문에 분위기가 좋지 않아집니다.”
“홈••••••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이명환의 건너편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한창 바쁘실 텐데 이런 쓸데없는 일로.”
“괜찮아.”
강진호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 다.
“나름 재미 있으니까.”
손가락을 튕겨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심마인가?’
아니, 아직 그런 수준은 아니다.
애초에 심마라는 건 무학을 완전 하기 전의 빈틈이 정신적으로 몰려 오는 현상에 가깝다. 이명환이 무척 이나 강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심마를 논할 단계는 아니었다.
그럼…….
‘나약함. 혹은……
강진호가 머리를 슬쩍 긁었다.
“무학이라는 건……
“예?”
“어린아이 손에 칼을 쥐어 주는 것과 별다를 게 없는 거야.”
강진호가 가만히 이명환을 보며 말했다.
“사람이란 원래 그만한 힘을 휘두 르게 되어 있지 않아. 무학이라는 걸 익혀 무인이 된 이들은 사람이 아니게 되지.”
이명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이었다면 딱히 공감이 가지 않을 말이지만, 지금은 강진호의 말 이 뭘 의미하는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예전에는 정파 놈들이 심법 을 익히고 정신을 수양하는 짓을 바 보짓이라 여겼어. 어차피 사람을 죽 이는 수법을 갈고닦는 주제에 정의 를 논하고 수양을 논하는 게 위선처 럼 느껴졌거든.”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의도에는 공감할 수 없지만, 그 수련의 필요 성에는 공감하고 있어. 마교가 왜 결국에는 이리 쇠퇴해 버렸는지도 말이야.”
예전에는 그의 부재가 마교를 쇠 퇴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한 일이다.
강진호가 적천마존의 이름으로 천 하를 지배하기 이전의 마교 역시 그 저 강호 변방의 새외 세력에 불과했 다. 마교의 무학이 그토록 뛰어나고 강하다면, 그 이전에도 확연한 힘을 보여주었어야 한다.
하지만 강진호 이전의 마교는 그 저 중원을 위협하는 힘 중 하나일 뿐, 확고한 중원의 대적자조차 되지 못했다.
마공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겨나 고, 마교도에 대한 완전한 배척이
시작된 것은 강진호가 죽고 난 뒤 다. 다시 말하자면, 그 이전까지 중 원인들은 마교도를 그리 위험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다.
다시 말하자면…….
“마공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무학이야.”
그 위력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강진호는 여전히 마공이 정공보다 배는 뛰어난 무학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무학을 익히는 건 사람이라는 점이다.
“어린아이가 칼을 쥐고 다니면 결 국 누군가는 다치게 될 수밖에 없
어. 그건 남일 수도 있고, 자신일 수도 있지. 정공은 그 검을 넣어둘 검집을 만드는 무학이다. 하지만 마 공은 되레 그 칼을 더 날카롭게 갈 지.”
결국 마공은 그걸 다루는 이가 초인이 되어야 하는 무학이다.
어린아이가 아닌 어른이 잘 벼려 진 칼을 다룬다면 더없는 위력을 발 휘할 테니까. 하지만 그런 초인이 흔하겠는가.
“천시적종. 그래, 천시적종이라고 하더군. 천마에서 시작해서 내게서 끝난다. 다시 말하자면, 그 오랜 기
간 동안 그 검을 제대로 다룰 사람 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지. 이 말이 명확하게 마공의 한계를 보 여주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 다.”
이명환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는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갈 증이 자신의 무학 수준이 올라가며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 다. 하지만 강진호의 말을 듣고 보 니 그것과는 분명 다른 원인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제가 지금
부터 정신적인 수양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렇지.”
“그럼 어떻게 합니까?”
“나도 모른다니까?”
두 사람이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 하는데?”
“실망이라는 건 생각보다 참 쉬운 감정이구나……라는.”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뭔가 해결책이 필요한 것도 아냐.”
“ 예?”
“우선 내가 어떤 상황이라는 걸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반은 나아지니 까.”
“아……
이명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영길이 아니었다면 그는 강진호 를 찾아와 이런 말을 늘어놓지도 않 았을 것이다. 확실히 자신의 상태를 아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는 달라진 다.
“그리고 근본으로 들어가야지. 왜
초조하지?”
“그건••••••
이명환이 입술을 살짝 깨물고 대 답했다.
“이번 전쟁에서 죽을까 봐입니다. 죽어서 더 가볼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르지 못하고 끝날까 봐.”
“뒤는 사족이군.”
“••••••예?”
“그냥 너는 죽는 게 두려운 거 야.”
이명환의 눈이 찌푸려졌다.
“그건 아닙니다. 저는……
“그럼 죽는 게 두렵지 않다는 건
가?”
“예. 이미 증명했잖습니까! 저
“난 무섭다.”
“••••••예?”
강진호가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이번 전투에서 내가 죽을까 봐 너무 겁이 난다.”
맥이 탁 풀린다.
이상한 일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이유를 물을 것도 없다. 사람이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니까.
하지만 그 말이 강진호의 입에서
나오자 뭔가 부조리함을 보고 있는 듯한 위화감이 들었다.
“그게 이상한가?”
“이상하지는 않습니다만……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예전에는 나도 너처럼 생각했다. 딱히 삶에 미련도 없고, 싸우다 죽 는다면 그걸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 각했지. 내가 죽는 것보다는 내 주 변 사람들이 죽는 게 더 무서웠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내 주변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싸우 는 거야. 살고 싶으니까.”
이어져 왔다.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고 강진 호는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 간을 살아왔다. 그러면서 수많은 인 연을 만들고, 예전에는 없었던 관계 도 만들어졌다.
모노톤으로 바래져 있던 세상이 이제는 총천연색으로 빛난다.
“나는 내 삶을 잃고 싶지 않다.”
“지금처럼 너와 이야기를 하고 있 는 시간도 의미가 있다. 이현수와
시덥지도 않은 농담을 하며 웃어 대 는 시간도 의미가 있어. 하루하루가 의미 있는 삶이지.”
과거, 그가 적천마존일 때는 상상 도 할 수 없던 삶.
이 세상에서 강진호는 자신이 원 하던 삶을 찾았다. 아니, 원하던 것 이상의 삶을 찾아냈다.
“그래서 나는 잃고 싶지 않다. 그 리고 그걸 잃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 보다 내가 살아야 하는 법이지.”
이명환이 멍하게 고개를 끄덕인 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강진호의
입에서 들으니 뭔가 색다른 느낌이 었다.
“너는?”
“ 저는••••••
“넌 정말 단순히 더 높은 경지로 가고 싶어서 살고 싶은 건가?”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딱히 이 말이 그에게 대단한 충 격을 주어서는 아니다. 그저 그렇다 고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껄끄러움이 생겼을 뿐이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 아는 것만 으로도 상황은 나아진다고. 자신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으로도 나아진
다.”
강진호가 새 담배를 입에 물었다.
“말했잖아, 결국은 무인도 사람이 라고. 겁을 먹는 건 당연한 거야. 죽음이 두려운 것도 당연하다. 도망 가고 싶은 것도 너무 당연한 거지.”
“하지만 말했다시피 무인은 사람 이 아닌 취급을 받지. 적을 앞에 두 고 두려움을 느끼고, 제 목숨을 아 끼는 이는 반푼이 취급을 받아. 그 잘못된 인식이 너한테도 박혀 있을 거야.”
이명환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 그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전쟁을 앞두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더 위대하고 옳다 고. 그렇기에 강진호를 찾아온 것 아닌가.
“무서우면 무섭다고 인정하면 된 다. 필사적으로 괜찮은 척을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야.”
“……회주님은 인정하셨습니까?”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뭘 들었어? 말했잖아, 무섭다고. 무서워 죽겠다고.”
“……하지만 회주님은 숭리를 자
신하시잖습니까?”
“누구? 창왕?”
“예.”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 아.”
“그럼 왜……
“멍청한 소리 하네. 필승의 자신 을 가지는 것과 두려움은 별개의 문 제야. 이길 수 있는 이는 두려움이 없을까? 아니지. 내가 창왕을 이긴 다고 해도 전쟁에서는 어떤 일이 벌 어질지 몰라. 그런데 왜 내가 두려 움이 없어야 하지?”
이명환이 뭔가를 알 것 같다는 얼굴을 했다.
그는 그가 가진 두려움이 자신의 나약함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싸워 이길 자신이 없으니 두렵다. 살아남 을 자신이 없으니 두렵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는 이길 자신 이 있어도 두려움은 여전히 마찬가 지라 하고 있다.
“……인정하라는 거군요.”
“그래. 넌 겁쟁이지.”
“나도 마찬가지고.”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은 아니잖아.”
“사람들이 비웃을 텐데요.”
“비웃으라고 해.”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비웃음받고 살아남는 게 멋지게 죽는 것보다 백배는 나아. 거름통에 처박혀서라도 살아남는다. 두려워하 지 않는 사람은 삶을 누릴 자격도 없어.”
“……진짜 추합니다.”
“이 새끼가?”
강진호가 눈을 부라리다가 웃어버 렸다.
“그래서 너는? 멋지게 죽어서 영 웅이라도 되어볼 텐가?”
“……아니오. 생각해 보니 제가 회주님보다 먼저 죽으면 좀 억울할 것 같아서요.”
“……묘하게 기분 나쁜데, 그 말.”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그럼 겁쟁이들끼리 한잔할 까?”
“……그럴 시간이 있습니까?”
“시간은 항상 없고, 항상 있지.” 이명환이 강진호를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애들도 부르게 해주십쇼.”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럼 술값은 네가 내.”
“……벼룩의 간을 내어 먹지.”
“싫으면 말고.”
“……제가 내죠. 대신에 오늘 집 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 얼마든지.”
이명환이 영 못미덥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얼 굴은 그새 한 결 개운해져 있었다.
“애들 시켜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방을 나서는 이명환의 등을 보며 강진호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