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31)
마존현세강림기-1733화(1730/2125)
마존현세강림기 70권 (16화)
4장 침공하다 (1)
그 목소리에는 묘한 무거움이 있 었다.
“에이, 왜 이사님이 도움이 안 돼 요.”
“글쎄.”
최연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도움이야 되겠지. 물론 진호 씨
는 나에게서 정서적인 안정감과 아 름다움을 바라보는 심미적인 충족감 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테니까.”
아…….
재수 없다.
농담이라는 걸 아는데도 재수 없 다.
“하지만 그건 뭐랄까…… 그래, 열심히 땀을 홀리며 웅원을 하는 치 어리더 같은 심정이랄까? 내가 하는 응원이 이 숭부에 도움이 된다고 생 각은 하지만, 어딘가 만족되지 않는, 그 미묘한 부분이 있잖아.”
“……알 것 같네요.”
싸우는 이를 응원하는 것과 함께 싸우는 게 같을 수는 없으니까.
“지금이 무슨 쌍팔년대도 아니고, 딱 전쟁터 가는 남편 배웅하는 심정 이라니까.”
“……그것참 공감 가네요.” 전쟁터도 보통 전쟁터가 아니다. 최연하 역시 대충 상황은 알고 있다. 강진호는 얼버무렸지만, 그녀 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루트가 강 진호만은 아니니까. 당장 이현주만 해도 그녀의 등쌀을 이겨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걱정시키지 않겠다는 이유로 말 을 안 해주는 것도 좋은 게 아니 지.’
오히려 더 걱정하게 될 수도 있 으니까 말이다.
“에휴, 내가 21세기에 이런 기분 을 느낄 줄은 몰랐지. 현주 씨는 안 불안해?”
“……불안하죠.”
불안하기는 오히려 최연하보다 이 현주가 더하다.
이현주는 무인의 싸움이라는 게 얼마나 격하고 위험한지 잘 아니까.
그저 귀로만 듣는 사람에 비해 위기 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그 무공인지 뭔지 좀 가르쳐 달라니까 죽어도 안 가르 쳐 주는 것 있지? 인간이 치사하 게……
이현주가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꼭 그런 이유는 아닐 것 같은데 요.’
이현주도 무학을 익힌 최연하는 보고 싶지 않다. 지금도 한 번씩 감 당이 안 되는데, 무학까지 익혀놓으 면 그걸 누가 감당하겠는가.
강진호가 하루 종일 밀착 마크를
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분명 어디서 사고가 터져도 단단히 터질 것이다.
“저도 불안해요. 그래서 같이 싸 우러 가고 싶어요. 그런데……
이현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아니까 요.”
과거였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 을 것이다.
하지만 이현주는 안다.
그녀는 더 이상 무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곳은 오로지 자신의 삶을 지킨 이들만이 내디딜 수 있는 전장이다.
어설프게 반쪽 다리를 걸치고 다른 삶을 살아버린 이들은 이물질 이상 도, 이하도 되지 못한다.
그 이물질로라도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함께하겠지만, 지금의 그 녀는 방해만 될 뿐이다.
이건 가진 실력과는 또 다른 문 제였다.
언제라도 자신의 목이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 한 이들은 공포를 전염시킬 뿐이다.
‘할아버지.’
이중걸은 그녀가 당당한 무인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총회를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가 후계자로 삼은 것은 이성휘였 다.
과거의 이현주는 그 사실이 불만 이었다. 엄격한 훈련은 시키면서 어 째서 자신에게 총회를 물려줄 생각 을 하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 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나는 아니었던 거지.’
이성휘는 끝끝내 강진호에게 저항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게 비록 더없이 어리석고 의미 없는 짓
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다 버리면서까지 항거를 멈추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현주는 스스로의 운명을 위해 타협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 다.
물론 강진호에게 고개를 숙이고 다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것 까지 는 항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 지만 결국 무의 길을 포기하고 MK 를 맡게 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 는 일이다.
결국 이중걸은 그녀가 끝도 없는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게 아니면 그녀가 차마 그런 길을 걷는 걸 볼 수 없든가.
‘어느 쪽이든……
세상 사람들이 다 이중걸을 욕해 도 그녀만은 그를 부정하고 싶지 않 았다.
“뭐, 알아서 하겠지. 바보 남자 들.”
최연하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한 숨을 내쉬었다.
“그냥 불안한 걸지도 모르겠어. 우선 내가 없는 데서, 내가 볼 수 없는 데서 모든 게 끝나 버릴 수도
있다는 게 불안한 거지.”
“그렇죠.”
“그래도 뭘 어쩌겠어, 그런 양반 들인데. 사람에게는 변화할 수 있는 부분과 변화할 수 없는 부분이 있잖 아. 나는 서로에게 맞춰주는 게 애 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진호 씨가 나 더러 배우 일 그만하고 집에서 살림 이나 하라고 하면 엿이나 까 잡수라 고 할 거야.”
최연하가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올 렸다.
“……과격하시네.”
“그런 거지.”
최연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예전에는 내가 그 양반을 이해를 못했거든. 막말로 이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돈도 많이 벌어놨겠다, 적 당히 발만 빼면 앞으로 편히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잖아.”
“ 그게••••••
“그거 다 핑계야. 방법은 언제나 있는 법이지.”
이현주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어쩌면 최연하의 말이 맞을지도 모 르겠다. 강진호가 다른 이들을 생각 하지 않고 무인계에서 발을 빼는 걸
최우선적 과제로 움직였다면, 상황 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몸 다쳐 오지, 그렇다고 뭐 대단 한 걸 얻어 오는 것도 아니지. 도무 지 이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더라 고.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을 한 거지.”
“어떤 생각이요?”
“나더러 연기를 그만두라고 하면 어떤 기분일까?”
이현주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 를 끄덕였다.
확실히 연기를 하지 않는 최연하
는 상상이 가질 않는다. 다른 일을 한다고 해서 이상하다는 소리는 아 니지만, 그녀는 연기인으로 살 때 가장 빛이 난다.
“그만두라고 말할 명분은 충분하 지. 연기라는 게 은근히 사람을 혹 사시키거든. 거기다가 이제는 전국 도 아니고, 대륙을 넘나들고 있고. 그런데 그렇게 해서 번 돈은 자기가 버는 돈에 비하면 쥐꼬리란 말이 야.”
“쥐꼬리까지는……
“ 아냐?”
“••••••맞죠.”
이건 최연하가 돈을 못 버는 게 아니라 강진호가 돈을 너무 많이 버 는 거다. 지금쯤이면 강진호도 자기 재산이 얼마인지 모르지 않을까?
……아니. 원래 몰랐을 수도 있겠다.
“그럼 왜 연기를 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돈도 충분하 고 몸은 힘든데.”
“글쎄요.”
“그냥 자기만족이거든.”
최연하가 어깨를 으쓱한다.
“변명거리를 엄청 찾아봤는데, 결 국은 자기만족이더라 이거야. 그런 데…… 이건 다른 데도 똑같이 통용
되는 거야. 어차피 자기 생활을 유 지할 만한 벌이 이상의 무언가는 다 자기만족이 될 수밖에 없어. 그 일 에서 보람을 찾는 거지.”
“좀 극단적이긴 한데, 그리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래. 그런데 ‘나는 내 자기만족 을 할 테니, 너는 그냥 그런 거 포 기하고 편히 살아라’라고 말할 수 있겠어?”
이현주가 입을 닫아버렸다.
“내로남불이잖아. 물론 뭐, 그 양 반의 자기만족이라는 게 좀 많이 과
격하고, 좀 많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연하가 턱을 괸 채 한숨을 쉬 었다.
“내가 ‘한국에서 영화나 드라마 찍으면서 만족하면 안 돼?’라는 말 에 대답할 수 없다면, 적당히 덜 위 험한 일을 찾으라고 할 수도 없는 거지. 이게 참 사람 짜증 나는 일이 야.”
이현주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최연 하를 바라봤다.
이 사람의 시선은 그가 아는 평 범한 이들의 시선과는 참 다른 것
같다.
강진호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을 단순한 자기만족으로 치부하는 건 굉장히 폭력적인 시선일지도 모른 다. 하지만 이현주는 그 짧은 단어 가 어쩌면 이 모든 것의 핵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건 사람의 핵심 이겠지.’
최연하가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 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린 그녀의 얼굴은 더없이 아름답지만, 한 편으 로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거지. 만족 할 만큼 잘 놀고 돌아오라고 할 수 밖에. 결국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건 나의 만족을 충족하는 동시에 다 른 이의 만족을 배려한다는 의미잖 아. 그쪽에서 양보할 수 없는 게 있 다면 내가 양보할 수밖에. 적어도 그건 내가 아주 양보할 수 없는 부 분은 아니니까.”
“뭔가 어렵네요.”
“사실은 다들 그렇게 살잖아.”
최연하가 웃으며 이현주를 바라봤 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도 결국
에는 내 만족이지. 함께 있으면 좋 고, 함께 있고 싶다. 심지어 예전 영화에서나 나오던 ‘내가 부족하니 까 더 좋은 사람에게 보내준다’는 개념도 실제로는 그 사람이 더 행복 했으면 좋겠다는 자기만족이잖아?”
“……그걸 그렇게 해석해도 되나 요?”
“ 달라?”
“글쎄요……
최연하가 별 의미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나는 말하는 거지. 가 서 충분히 놀다 와. 막아서 너를 불
편하게 하지는 않을게. 대신에 돌아 올 때는 딴 데 새지 말고 여기로 바로 돌아와.”
“……엄마가 애들 놀이터 보내는 것 같네.”
“나도 말하다 보니 그러네.”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낮은 웃 음을 터뜨렸다.
어쩌면 지금 최연하는 강진호를 막지 않을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막을 수 없다면 스스로 납득이라도 해야 하 니까.
그래서 조금은 서글픈 이현주였
다.
“대신 대가는 언제나 있는 거야.”
“네?”
“주말에 마누라를 버리고 낚시 가 는 남편은 주중에는 돌쇠처럼 지낼 각오를 해야 하는 법이잖아?”
“그렇죠.”
“만족의 영역은 건드리면 안 된 다. 그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만한 만족감을 느꼈다면 다른 부분 은 자기가 양보해야지. 이번에 진호 씨가 다시 돌아오면 정강이부터 걷 어차 버릴 거야.”
이현주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
다.
‘이상한 사람이라니까.’
딱히 생각 없이 욕망으로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으로는 이현 주가 따라갈 수 없는 어떤 깊이가 있었다.
‘그래서 회주님과 잘 맞은 건지도 모르지.’
두 사람 다 평범한 이들과는 다 른 면이 있으니까.
“나는 여전히 바빠.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지. 그러니까 그 양반이 중국에서 깽판을 치는 동안 여기서 눈물 빼며 기다리고 있을 생각은 없
어. 나도 내 삶을 살아야지.”
이현주가 가만히 최연하를 보다가 입을 살짝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왜‘?”
“아뇨, 아무것도.”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럼 돌아오지 않으면?’
강진호가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하 면 최연하는 어쩔 셈인 걸까?
하지만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건 금지 되어 있으니까.
조금은 지쳐 보이는 눈의 최연하 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네? 갑자기?”
“밥 먹고 힘내야지. 왜요? 밥 먹 었어요?”
“아뇨. 아직 식사 전이기는 한 데……
“가자, 전우끼리.”
어정쩡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이현 주의 손을 최연하가 잡아끌었다.
“그런데요, 이사님.”
“응‘?”
“반말을 하시려면 반말을 하시고, 존대를 하시려면 존대를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안 돼요.”
“••••••왜요?”
최연하가 씨익 웃었다.
“이러면 친하면서도 예의 발라 보 이잖아. 둘 다 놓치기 싫은데.”
확실히 이 사람은 좀 이상하다. 확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