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66)
마존현세강림기-1768화(1765/2125)
마존현세강림기 72권 (1화)
1장 대면하다 (1)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폭염과 함께 등 뒤에서 밀려 들 어오는 열기에 강진호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웬만해서는 표정에 감정을 드러내 지 않는 강진호지만, 둥 뒤에서 뿜
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화염에는 그 눈을 부릅뜨지 않을 도리가 없었 다.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던 그의 발 이 절로 멈춰지고, 쉴 새 없이 휘두 르던 검이 아래로 늘어뜨려진다.
강진호의 눈에 순간적인 갈등이 어렸다.
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예전의 강진호라면 이보다 더한 상황이 닥친다고 해도 절대 뒤를 돌 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소수만 살아
남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모두가 함 께 죽는 것보다는 백배는 더 나을 테니까.
다만…….
‘ 안다고.’
강진호가 이를 악물었다.
알고 있음에도 단번에 결단을 내 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의 그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희생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사 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희생’ 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안 다.
“주인!”
바토르의 재촉에 강진호가 적루를 움켜잡았다.
‘빌어먹을.’
타오르는 불꽃이 눈에 화인처럼 새겨진다.
한눈에 보아도 저 불꽃은 평범한 불꽃이 아니다. 매캐한 검은 연기를 구름처럼 뿜어내는 연기는 마치 지 옥에서 타오르는 지옥 불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저 불꽃 안에서 타오르는 건 다름 아닌 총회의 회원들이다.
“바토르! 위긴스!”
“예, 로드!”
“가서 도와라!”
“……하지만 로드!”
강진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앞은 내가 뚫는다. 어떻게든 뚫 어낼 테니, 가서 도와! 한 사람이라 도 더 살려내!”
“알겠다, 주인!”
“예, 로드!”
평소라면 한마디쯤 더 말을 했을 지 모르는 둘이지만, 강진호의 단호 함이 그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가라!”
위긴스와 바토르가 뒤로 달리기
시작하자, 강진호가 핏발이 선 눈으 로 앞을 바라보았다.
우드드득.
적루를 부러뜨릴 듯 움켜잡은 강 진호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 다.
등 뒤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게 아니라, 가슴속이 타오르는 것 같다.
‘……빌어먹게도 오랜만이로군.’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것도 말이 다.
차갑게 식은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마기의 부작용에서 완전 히 벗어난 이후로는 적과 싸우면서
도 이성을 잃어버린 적이 없던 강진 호지만, 지금 이 순간 그가 느끼는 충동은 과거 그가 느끼던 광기와 그 리 다르지 않을 정도였다.
“창와아아아아아앙!”
거칠게 고함을 내지른 강진호가 마기를 흩날리며 앞으로 돌진한다.
마치 불타오르는 검은 유성처럼.
전보다 배는 더 과격해진 기세를 눈으로 확인한 창왕계의 무사들은 감히 맞상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강진호의 검은 그런 이들 에게조차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타오르는 검이 사신의 낫처럼 휘
둘러진다.
그리고 첫 번째 검격이 채 끝나 기도 전에 두 번째 검격이 떨어진 다.
맹렬하게 돌아가는 칼날이 황금빛 밀밭을 가르고 지나가는 것처럼, 강 진호의 검은 사람의 숲을 밀고 들어 갔다. 푸른빛으로 가득 찬 대지의 한가운데에 선명하고도 섬뜩한 붉은 선이 그어진다.
겁에 질려 비명을 내지르는 이의 목을 단숨에 쳐 날린 강진호가 그 목이 하늘로 치솟기도 전에 달려들 어 또 다른 이의 허리를 끊어놓는
다.
명백히 감정적인 강격(强擊).
강진호가 상처 입은 야수처럼 거 친 숨을 토해냈다.
창왕을 상대할 여력을 남기기 위 해서 나름 자제를 하고 있었지만, 이젠 더 이상 여유를 부릴 틈이 없 다.
몸을 휘감고 있던 마기마저 검으 로 돌린 강진호가 전신을 피로 물들 인 채 격렬하게 적을 몰아쳐 갔다.
한 발을 내딛고, 일검을 날릴 때 마다 그의 전신에서 피가 빗방울처 럼 비산했다. 머리카락 끝을 타고
튀어 오른 피가 눈을 가리며 떨어져 내렸다.
“아아•••••• 아•…”
인의 장막에 가로막혀 달아날 수 없게 된 이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더니 짐승처럼 달려오는 강진 호의 모습을 보고는 넋을 잃어버린 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공포 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 공포를 충 분히 느낄 시간도 없이 그들의 육체 는 조각나 버렸으니까.
“비키라고, 이 새끼들아!”
“아아아아악!”
공포에 질린 이들이 앞사람의 머 리를 타 넘으며 경공을 전개한다. 반드시 앞사람을 뚫어낼 필요가 없 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진영에 커 다란 변화가 생겨났다.
너도나도 앞사람을 타 넘고 몸을 날린다.
급박하게 경공을 전개하다 보니 서로 뒤엉켜 떨어지는 이도 있고, 운 좋게 순식간에 벗어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달아나려던 이들은 빽빽하던 뒤쪽의 진영이 한 결 느슨해지는 것을 직감했다.
생각하고 자시고도 없다.
살아날 곳이 있으면 그저 그곳으 로 달릴 뿐이다. 설사 그곳에 죽음 이 기다린다고 해도, 이곳에서 맞이 해야 할 확정된 죽음보다는 훨씬 낫 지 않은가.
늑대를 본 토끼는 뒤를 생각하지 않고 달렸고, 늑대는 달아나는 토끼 의 뒷목에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주저 없이 달아나는 이들을 베어 넘긴 강진호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후욱.”
얼마나 베었을까.
또 얼마나 죽였을까.
코끝으로 밀려 들어오는 피 냄새 가 이제는 잘 느껴지지도 않는다. 피에 절어 붉게 물들어 버린 손이 두 눈에 틀어박힌다.
웃기는 일이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여야 한다. 더 이상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싸워 야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아이러니가 언 제부터 시작됐던가.
전투의 한중간에서 단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강진호 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는 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피의 길에 적잖은 피
로를 느끼고 있었다.
실감한다.
그는 더 이상 전장에서 살아 있 음을 느끼는 악마가 될 수 없다.
악마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악 마처럼 칼을 휘둘러 댈 수는 있지 만, 이제 그는 더 이상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지옥에서 편안함과 즐거움 을 느끼지 못했다.
한때 그는 살아 있음에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죽어감에 고통을 느낀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야.’
한 몸으로 느끼는 감정이 극단적 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어이없지만, 그 달라짐을 가장 확연하게 실감하 는 곳이 결국은 또 전장이라는 사실 이 강진호를 진저리치게 했다.
검끝이 무겁다.
힘이 빠진 것이 아니다.
그가 죽이고 죽여온 생명들이 그 의 검끝을 짓누른다.
어쩌면 저들에게도 강진호와 같은 가족이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저들도 강진호처럼 함께하 고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함께 술을 마셔주는 친구가 있고,
말없이 어깨에 손을 올려주는 동료 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그러하겠지.
반드시.
우드득.
핏기가 모두 가실 정도로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안다.
이제는 안다.
그가 휘두르는 검에 죽어가는 이 들. 그들의 생명 어느 하나 무가치 한 것이 없다.
그의 검은 사람의 목을 잘라내고,
사람의 생명을 지우고, 그들의 관계 를 끊어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검끝에 죽어갔을까.
얼마나 많은 인연이, 얼마나 많은 마음이 이 검끝에서 잘려 나갔을까.
강진호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멍청한……
이건 전투의 와중에 떠올릴 만한 생각은 아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싸 운 뒤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알고 있음에도 강진호는 자신의 머리를 짓누르는 무게를 벗어던지지
못했다. 그는 더 이상 악마가 아니 라 사람이었으니까.
별것 아닌 일에 기뻐하고, 별것 아닌 일에 슬퍼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어 떻게든 지키고 싶어 하는, 그저 나 약하고 어리석은 한 명의 사람일 뿐 이니까.
돌아갈 수 없다.
이제는 그의 의지로도 과거처럼은 돌아갈 수 없다.
“아••••••
강진호가 몸을 웅크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짐승 같은 울부짖음으로 답답하게 눌린 속을 토해낸 강진호가 핏발 선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나는 왜 싸우고 있는 거지?’ 대답이 없다.
‘나는 왜 죽이고 있는가.’ 이곳에서 피를 뒤집어쓰고 울부짖 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왜 죽고 있지?’
그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무엇 때문이었나.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 다.
“결국은 하나지.”
그그그극.
늘어뜨려진 두 검이 바닥을 긁는 다.
이내 강진호의 눈이 한곳으로 고 정되 었다.
느껴진다.
수많은 기운과 기운, 눈으로 보이 는 것 이상으로 혼란스럽게 요동치 는 거대한 용광로 같은 기운들 너머 로…….
너무도 차가워 이질적으로까지 느 껴지는 기운이 그의 감각에 걸려들 었다.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그건 미소라기보다는 일그러짐.
웃음이라기보다는 광기.
“그래. 하나야.”
강진호가 몸을 살짝 웅크린다.
콰득.
그의 발이 반쯤 바닥을 뚫고 내 려간다. 자세를 낮추고 다리에 한계 까지 기운을 밀어 넣은 강진호가 완 전히 붉게 물들어 버린 눈을 일렁이 며 이를 드러냈다.
“창왕!”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폭탄이 터진 것 같은 폭음과 함
께 강진호가 자리하고 있던 곳의 바 닥이 붕괴하며 토사가 역으로 솟구 친다.
그 어마어마한 반동으로 강진호가 말 그대로 빛살처럼 앞으로 돌진했 다.
‘비켜.’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의 바다를 검으로 베어내고…….
‘비키라고!’
절벽처럼 그를 가로막은 인의 장 막을 어깨로 부수며…….
피에 굶주린 야수처럼 강진호는 돌진했다.
“막아아아아아!”
창왕계의 무사들도 그리 쉽사리 당하지는 않았다. 창왕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정예들이 배치된 다. 그들은 공포에 떨지언정 앞쪽에 배치된 이들처럼 이성을 잃고 달아 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강진호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겠다는 의지 하나로 강진호에 게 몸을 던져 온다.
하나 무의미한 짓.
일검에 대해를 가르고, 일검에 절 벽을 부순다.
이곳에 강림한 무(武)는 그동안
그들이 봐온 것과는 그 격을 달리했 다.
이윽고…….
저벅저벅.
모든 것을 분쇄하듯 휘둘러지던 검이 그 움직임을 멈췄다. 더는 베 어낼 것이 없으니까.
또옥.
검끝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 다.
양손으로 검을 늘어뜨린 이가 등 을 보이고 천천히 걸어감에도 그 뒤 를 바라보는 누구도 감히 공격할 생
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뚫어낸 길을 다시 채울 생 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경악과 경의, 공포와 환희가 뒤섞인 눈으로 멍하니 그 모습을 바 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저벅.
사내의 걸음이 멈춘다.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강진호가 검을 바닥에 찔러넣고는 손을 들어 얼굴을 완전히 적시고 있는 피를 훑 어 냈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정면.
그리 멀지 않은 곳.
서로의 눈빛이 닿고, 서로의 표정 을 알 수 있는 곳.
그 짧디짧은 거리를 두고 두 사 람의 눈이 얽혀들었다.
“ 나는••••••
강진호가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작은 목소리는 모두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수많은 적을 베고, 수많은 이를 죽이고, 수많은 이의 원한을 이 몸 으로 받았다.”
“하지만……
강진호의 눈이 핏빛의 안광을 토 해냈다.
“누구도 나를 이렇게까지 화나게 한 적은 없었어.”
“……그거 영광이로군.”
“일어나라, 창왕.”
강진호가 적루와 청루를 움켜잡았 다.
“너는 나를 건드린 걸 후회하게 될 거야. 절대 쉽게 죽이지는 않는 다.”
피에 젖은 악마가…….
아니.
잃어버린 것의 무게에 처절하게 짓눌린 인간이 처음으로 검을 들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