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73)
마존현세강림기-1775화(1772/2125)
마존현세강림기 72권 (8화)
2장 격돌하다 (3)
왜 싸우고 있었던가.
이 고통을 이겨내며 싸워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그런 건 이미 머릿속에 남아 있 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공격을 막아내고, 본 능적으로 검을 휘두른다.
나의 빈틈을 찔러 들어오는 주먹 을 피해내고, 상대의 목을 향해 전 력으로 검을 날린다.
남은 것은 그저 짐승과도 같은 본능.
아니, 그 말은 적당하지 않다.
어떤 짐승도 목숨을 걸어가며 싸 우지는 않으니까. 짐승에게 있어서 싸움이란 생존을 위한 방편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인간.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승리를 탐닉한다.
지금 강진호와 창왕처럼 말이다.
고오오오.
창왕이 참오에 든 고승처럼 두 눈을 반개했다.
단전 앞에 모은 양손 사이로 새 하얗다 못해 투명하기까지 한 내력 이 모여들고 또 모여든다.
응축.
모여든 내력이 웅축되고 또 응축 된다. 남은 내력은 물론이고, 선천지 기까지 모조리 끌어낸다.
남은 생명 모두를 그곳에 담겠다 는 듯 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도 같은 장대한 내력이 겨우 두 손으로 감쌀
만한 작은 공간 안에 끝도 없이 모 여들었다.
마지막 일격.
패한다면 어차피 남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이 일격에 모든 것을 걸지 않을 이유가 없다. 숨을 쉬고 뱉을 마지막 기운까지 모조리 끌어 올린 창왕이 기운을 응축하고 또 응축했다.
우드드득.
그 기운의 반동을 이기지 못한 손이 팔꿈치까지 으스러졌지만, 창 왕의 표정은 조금의 변화조차 보이 지 않았다.
여기에 모든 것을 건다.
모든 것을!
그리고 그건 강진호 역시 마찬가 지.
영혼의 한 방울까지 짜내듯 끌어 올린 마력이 검으로 밀려 들어간다.
쩌적.
길고 긴 전투의 부담과 밀려 들 어오는 과도한 내력을 감당하지 못 한 적루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사실조차 알 아채지 못했다.
한계까지 끌어 올린 집중력과 이 제껏 겪어보지 못한 극한의 전투는 그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으로
끌고 들어갔다.
전신의 세포 하나하나에 남은 기 운까지 모조리 끌어낸다.
그의 시선과 모든 신경은 오로지 창왕에게 쏠려 있다. 마치 이 세상 에 오로지 그 둘만이 존재하는 것처 럼 말이다.
이윽고 어느 순간.
부릅뜬 두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 다.
증오, 분노, 적의.
두 눈에는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제는 그런 모든 것 이 무의미하다.
그저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뿐.
“ 하아••••••
낮은 탄식과도 같은 소리와 함께 창왕의 손이 천천히 앞으로 뻗어진 다.
그와 동시에…….
우우우우 우우우웅 !
그의 단전 앞에 모인 기운이 절 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응축되고 또 웅축되어 마치 구슬 같아 보이는 기 운.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인 것처 럼 형용할 수 없는 빛으로 빛나던 기운이 눈부신 광채를 발했다.
그와 함께 이어지는 붕괴.
완벽한 균형으로 응축되어 있던 기운에 균열이 인다. 한계까지 짓눌 린 기운들이 마치 세상의 시작을 알 리듯 일순 터지며 가공할 기세로 분 출되 었다.
그 어떤 것도 그 기운의 폭발 앞 에서는 제 형체를 유지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어떤 무학과도 다르다.
만사(萬邪)의 조종.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 창왕은 자신의 한계를 다시 한번 뛰어넘었 다. 스스로도 정립하지 못한 무학이 그 형태부터 먼저 완성된다.
도도하게 흐르는 강은 지형조차 바꿔 버리는 법이지만, 극한의 세기 로 분출되는 물줄기는 철판조차 뚫 어버리는 법.
압력과 힘을 동시에 갖춘 내력은 닿는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렸다.
강진호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미증유의 거력을 보며 눈빛을 가라 앉혔다.
‘창왕.’
모든 것을 무너뜨릴 듯 밀려오는 장력의 뒤로 고목나무처럼 말라 버 린 창왕의 모습이 보인다.
이 일격에 얼마만 한 결의가 담
겨 있는지 모를 수가 없다.
강진호의 입가가 뒤틀렸다.
살아생전 이만한 결의를 상대한 적이 있던가.
“정말••••••
강진호의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살아 있는 기분이로군.”
쿵!
강진호의 왼발이 강렬한 진각을 내밟았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
목이 터져라 고함을 내지른 강진 호의 적루가 불타오르는 마기를 두 른 채 쏟아지는 장력의 해일을 향해
떨어진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세상에 터져 나가는 굉음이 산을 뒤흔들었다.
산을 채우고 있던 나무가 모조리 부러져 나가고, 멀찍이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창왕계와 총회의 무사들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태풍 앞의 나뭇잎처럼 날아간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가는 이현수 의 손을 위긴스가 부여잡았다.
“큭!”
하나 그 위긴스조차 이 충격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는지 다른 한 손 으로 바닥을 부여잡고 있었다.
고통 속에 고함을 멈추고 숨을 들이쉬려던 이현수가 남은 한 손으 로 목을 부여잡았다.
‘숨이••••••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격돌로 만들어낸 충격 파가 이 일대의 공기마저 모조리 밀 어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충격적인 상황조차도 이현수를 놀라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두 사람의 격돌 에 쏠려 있으니까.
‘누가 이긴 거지?’
눈앞에서 기운의 폭풍이 휘몰아치 고 있다. 검고 흰 기운이 서로를 잡 아먹을 듯 뒤엉켜 소용돌이친다.
그 안에 누가 서 있는지 눈으로 는 확인할 수 없다.
‘제발!’
이현수가 생의 모든 간절함을 담 아 기원했다.
‘회주님은 지지 않는다!’
그의 조악한 상상력으로는 그 사 람이 쓰러지는 광경을 생각해 볼 수 도 없다. 강진호는 절대 지지 않는 다.
이윽고…….
콰아아아아아아아 !
충격에 밀려 나갔던 대기가 완전 히 비어버린 공간으로 다시 쏟아져 들어온다. 강풍이라는 말조차 무색 한, 어마어마한 바람의 폭풍.
바람에 얻어맞아 몸이 부서지는 느낌이다.
그 강풍 속에서 이현수는 보았다.
세상의 마지막 날, 선과 악이 서 로를 물어뜯으며 싸우듯 뒤엉켜 휘 몰아치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그러드 는 모습을 말이다.
이현수가 눈을 부릅떴다.
누가!
누가 이겼지?
바람이 잦아든다.
지형 자체가 바뀌어 편평해진 대 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그 대지 위에 오롯이 남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이현수의 눈에 아 프게 박혀들었다.
또옥.
짙은 정적.
숨소리 하나, 바람 소리 하나 들 리지 않을 만큼 무겁고 또 무거운 정적 속에서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
지는 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려온다.
너무도 크고 선명하게.
또옥.
짓뭉개진 강진호의 손끝.
검의 손잡이를 타고 흐른 피는 갈 곳을 잃고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원래 피가 타고 흘러내렸어야 할 검 날이 있던 곳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 지 않았다.
오랜 세월 강진호와 함께 수많은 전투를 치러 온 적루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문제는 부러진 검 따위가 아니었다.
강진호의 몰골은 사람의 그것이라 고 말하기 어려웠다.
살이 통째로 뜯겨 나간 가슴에 허연 뼈가 드러나 있다. 검을 잡은 손은 원래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 울 만큼 짓뭉개져 있고, 길게 갈린 목에서 숨 쉴 때마다 핏물이 울컥울 컥 쏟아진다.
뜯겨 나간 입술과 바스러진 머리 카락.
살아 있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 의 부상이었다.
“후욱•••••♦
강진호의 입가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광경을 본 이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본 적이 없다.
저런 강진호의 모습은.
부상이 아니라 제 몸 하나 지탱 하지 못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이는 강진호의 모습은 그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것이었다.
반면…….
창왕의 육체에는 별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상처가 없다는 것이 그가 멀쩡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창왕은 강진호와는 다르게 우뚝 서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 우뚝 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 른다.
바스라질 것 같다.
사람을 보고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참 이상한 이야기지만, 지금 창 왕의 모습을 본 이라면 누구라도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진호는 피를 흘리고 있지만, 창 왕은 그 몸을 가르고 짜내도 물 한 방울 흘러나올 것 같지 않다.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퍼석 퍼석 가루가 되어 흩어질 것 같은
피부.
육체를 채우고 있던 근육은 어디 로 가버렸는지 뼈에 겨우 껍질만 붙 여놓은 것 같은 몸이 용케도 그 육 신을 지탱하며 서 있다.
검고 길게 자라난 머리는 금방이 라도 가닥가닥 끊어질 듯한 백발로 화해 있고, 언제나 자신감이 가득하 던 그 얼굴은 표정을 알아볼 수 없 을 만큼 기괴하게 말라붙어 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쏟아냈을까?
대체 얼마나 많은 것을 걸어야 저런 몰골들이 될 수 있을까?
승패를 떠나 그 광경을 지켜보는
무인들은 그 모습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지상에서 가장 강대한 이들이 자 신의 모든 것을 걸고 겨룬 승부가 이제 마침내 그 끝에 도달했다.
“후욱.”
강진호가 한 발을 앞으로 뻗는다.
그러더니…….
털썩.
부러진 발목이 뒤틀리며 강진호가 그대로 앞으로 쓰러진다.
“흐..
바닥에 처박힌 강진호가 입가를 뒤틀더니 부들거리는 팔로 몸을 밀
어 일으킨다.
굳이 부러진 발목을 논하지 않더 라도 다리에 그 육체를 지탱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아 보이지만, 강진호는 용케 쓰러지지 않고 몸을 일으켜 세 웠다.
그러고는 창왕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간다.
창왕이 반개한 눈으로 그런 강진 호를 바라본다. 체념한 것도 아니고, 의지를 잃은 것도 아니다. 그저 모 든 것이 빠져나간 몸으로는 그것밖 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저벅.
강진호가 마침내 창왕의 앞에 선 다.
한계를 넘어선 두 사람이지만, 강 진호에게는 아직 몸을 움직일 힘이 남아 있고, 창왕에게는 숨을 들이쉬 고 내쉴 힘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 다.
이대로 내버려 두기만 해도 창왕 은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전력을 다해 싸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턱.
강진호의 손에서 손잡이만 남은 적루가 떨어진다. 강진호가 거의 짓
뭉개진 주먹을 가만히 틀어쥐었다.
피조차 말라붙어 버린 입이 천천 히 열리며 말라붙은 성대를 타고 쇠 를 긁는 듯한 음성이 새어 나온다.
“너는…… 강했다.”
그 말을 들은 창왕의 눈이 파르 르 경련을 일으킨다.
있는 힘을 다해 눈을 뜬 창왕이 입을 벌린다. 그저 입을 열었을 뿐 인데, 입 주변의 피부가 바스라져 바닥으로 떨어진다.
“……다.”
거의 들리지도 않는 음성.
하지만 창왕은 자신의 남아 있는
생명까지 모조리 불태우겠다는 듯이 힘겹게 입을 움직였다.
“••••••진호.”
가라앉은 강진호의 눈과 초점 없 는 창왕의 눈이 마주친다.
마침내…….
창왕의 입에서 마지막 힘을 담은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가 이겼……다.”
“내가……
창왕의 입꼬리가 미소라고 할 수 도 없는 괴이한 곡선을 만들어낸다.
“……내가 이……겼다.”
바로 그 순간.
강진호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돌아간다.
동시에 강진호는 보았다.
어느새 그와 창왕의 옆에 모습을 드러낸 이를.
혹의.
너무도 짙어 오싹함마저 느껴지는 혹의를 입은 사내였다.
옷 아래로 드러난 부위는 모조리 검은 붕대로 칭칭 감겨 있다. 손과 발은 물론이고, 얼굴까지 모두.
광적일 정도의 검은색 일변도에
다른 색을 가진 부분은 붕대 사이로 드러난 하얀 눈밖에 없다.
강진호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 라보았다.
자신이 바로 옆에 누군가가 나타 날 동안 느끼지도 못한다?
이건…….
“••••••소개하••••••지.”
창왕의 입꼬리가 완전한 미소를 만들어낸다.
“흑……왕. 너를 지옥……으로 보 내줄 이다.”
강진호의 피가 싸늘하게 식기 시 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