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80)
마존현세강림기-1782화(1779/2125)
마존현세강림기 72권 (15화)
3장 혼란하다 (5)
철컹.
천천히 열리는 철창을 보며 레이 놀드가 이죽이며 웃었다.
“나오셔도 됩니다, 레이놀드 차관 님.”
자리에서 일어난 레이놀드가 어깨 를 으쓱하며 말했다.
“호칭을 보아하니 직위 해제는 면 한 것 같은데, 내 예상이 맞나?”
“그렇습니다!”
바짝 군기가 들어간 대답을 들은 레이놀드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대령.”
“예!”
“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가져오게. 시럽 듬뿍 넣어서 말이 야.”
찰칵.
“후우우우우.”
며칠 만에 피우는 첫 담배의 맛
은 뭐랄까…….
‘생각만큼 좋지는 않군.’
어질어질한 느낌이다. 간만에 입 안으로 들어온 담배의 맛은 쓰고 비 릿했다. 하지만 바로 이 쓰고 비릿 한 맛이 그리웠다.
달칵.
조심스레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 께 쟁반에 받쳐 든 커피를 들고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온다.
“복귀를 축하드립니다.”
“고맙군.”
레이놀드가 빙그레 웃으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자연스레 젖혀진 고개
에서 자신감이 묻어난다.
“상부에서는 아직 추가적인 연락 이 없나?”
“예. 대기하라는 말뿐입니다. 업무 에 복귀하라는 지시도 아직은 없습 니다.”
“흐음.”
레이놀드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겠지.’
그가 저지른 죄는 꽤 다양하고도 복합적이다.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군 병력 은 운용한데다 즉시 멈추라는 지시
에 통신마저 단절했다. 상황에 따라 서는 즉결 처형도 벌어질 수 있던 일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복귀는 불 가능하다. 불명예 전역이 문제가 아 니라 군사법정이 회부되어야 할 수 준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그런 속담이 있다고 하 더군.”
“어떤 속담 말입니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 다.”
“……존 해링턴이 한 말과 비슷한
말이군요.”
“그렇지.”
레이놀드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 다.
“아마 위에서도 지금쯤 머리가 아 플 거야. 도무지 나를 어떻게 처리 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을 테니까.”
그가 저지른 일은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반면에 그는 미합중국에 어마어마한 이득을 안겨주었다.
총회와 창왕계의 전쟁.
그 승산이 미약하던 전쟁을 완벽 한 숭리로 이끌어냈으니까.
지금 당장은 미국이 얻을 이득이 크지 않지만, 앞으로 얻어낼 이득은 어마어마했다.
당장 중국의 무인계가 세계로 뻗 어 나갈 예봉을 꺾었다는 것만으로 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더구나…….
“이제 총회를 막을 곳이 없지.”
“그렇습니다.”
홍왕계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창왕 계를 짓밟아 버린 이상 총회는 적어 도 동아시아에서만큼은 확고부동한 입지를 확보했다. 아니, 그 입지는 결코 동아시아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당장 원탁만 해도 총회의 지배에 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한중일은 물론이고, 유럽마저 총회의 영향권 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제국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 지.’
물론 실제로 세상에 존재한 제국 들에 비하면 그 강제력이 약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지만, 그 영향력이 끼치는 범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제껏 존재해 온 제국들에 뒤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제국과 황제라……
레이놀드가 낮게 웃었다.
실질적으로 국민을 통제하지 못하 는 제국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인계란 참 오묘한 곳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백사장에 지 어 올린 모래성처럼 무기력하다. 법 처럼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부분 이 극히 적으니까.
하지만 레이놀드가 보기에 그 점 은 무인계의 약점이라기보다는 강점 에 가깝다. 그들은 힘을 가지고 있 음에도 법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세상을 뒤 틀어 버릴 수 있는 거대한 폭력을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 다. 바로 이번의 전쟁처럼 말이다.
“후우우우우.”
천천히 담배 연기를 뿜어낸 레이 놀드가 미소를 지었다.
“ 이보게.”
“예, 차관님.”
“자네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어떻 게 생각하는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 니다.”
“말 그대로네. 세계의 경찰이라 불리던 미국이라는 나라가 법을 어 기며 폭력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
하는 무인계와 손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 만 하나는 알 수 있습니다.”
“그게 뭔가?”
대령이 씨익 웃었다.
“그게 도덕적으로 옳은지 그른지 는 몰라도, 무슨 선택을 했는지는 확연합니다. 미국은 총회와 손을 잡 을 겁니다.”
“ 이유는?”
“차관님이 풀려나셨잖습니까.”
“자네, 꽤 눈치가 빠른 사람이로 군. 마음에 들어.”
원하던 대답을 들은 레이놀드가 미소를 지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도덕성과 합리 성에 그 중점을 둔다. 하지만 그건 대외적으로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이미지에 불과하다. 실제로 미국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도덕성이 나 합리성이 아니라 바로 실리다.
이득만 된다면 국민을 학살한 독 재자와도 손을 잡아 그를 지원하기 를 주저하지 않고, 방해가 된다면 제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도 짓밟아 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결국 관건은 한 가지.
총회와 손을 잡는 일이 미국에 얼마나 큰 이득이 될 것인가다. 그 리고 그건 굳이 레이놀드가 고심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었다. 이미 그보 다 배는 머리가 좋은 이들이 미친 듯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테니 까.
‘그리고 결론이 났으니 나를 풀어 주었겠지.’
지금 총회와 미국의 연결 고리를 맡고 있는 사람이 바로 레이놀드니 까.
“이래서 도박은 할 가치가 있지.” 실패했다면 모든 것을 잃었겠지
만, 성공한 이상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한동안 그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총회는?”
“지금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습니 다. 중국에서 전세기를 마련해줬다 는군요.”
“흐음.”
레이놀드가 담배를 비벼 끄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출 금지 같은 쪼잔한 짓을 하 지는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차관님은 현재 어떤 통제도 받고 계시지 않습니다.”
“좋군.”
레이놀드가 빙긋 웃으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차를 준비하게. 친정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폐하께 문안 인사를 드 려야지.”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레이놀드가 기분 좋게 휘파람을 불었다.
‘사람은 줄을 잘 서야 성공하는 법이지.’
이번에 그가 잡은 동아줄은 결코 끊어질 일이 없을 것이다.
“저기 도착합니다.”
“흐음.”
고한봉이 조금 언짢은 얼굴로 활 주로로 진입하는 전세기를 바라보았 다.
“조금 더 빨리 움직였다면 저들이 중국 국적기를 타고 한국에 입국하 는 꼴은 보지 않았어도 될 텐데 말 이야.”
“죄송합니다. 제 불찰로……
“됐네.”
고한봉이 차가운 목소리로 변명을
끊어버렸다.
‘멍청한.’
세상을 움직인 거인들은 시대의 흐름을 보는 혜안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고한봉은 그런 거인이 아니 다. 그는 스스로의 주제를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고, 자신이 그렇고 그런, 주위에 굴러다니는 정치인들 에 비해 나을 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럼 평범한 정치인들은 어찌 살 아남아야 하는가.
그건 아주 간단하다. 한발 먼저 움직이지는 못할지언정 빤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세상을 움직이는 거인들의 무기가 미래를 읽는 혜안이라면, 평범한 정 치인의 무기는 바로 섬세함과 꼼꼼 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그들이 저 지른 실수는 무척이나 큰 패착이라 고 할 수 있었다. 그걸 만회하기 위 해서 고한봉이 바쁜 일정을 모두 미 루고 공항으로 달려오게 할 정도로 말이다.
‘나뿐만이 아니겠지.’
아마 정세에 관심이 있는 거물들 이라면 모두가 지금 이곳을 주목하
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총회와 강진호는 대한민국의 밤을 주무르는 거물이었 다.
‘하지만 이제는 그 격이 다르지.’
저 중국의 삼왕계를 상대로 완전 한 승리를 거둔 이상, 총회의 영향 력은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로 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동아시아 내의 영향력만 따지면 대한민국보다 총회가 더 높 을지도…….
“별생각을 다하는군.”
“예‘?”
“……아무것도 아니야.”
고한봉이 쓰게 웃었다.
조금 전에 한 생각은 비약에 비 약을 거듭한 것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 만큼이나 지금 총회가 이룬 업적 이 크다. 이대로 영향력을 키워 나 갈 수만 있다면, 비약이 더 이상 비 약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정도로.
“가세. 영웅이 돌아오면 가장 앞 에서 꽃을 흔들어야 하는 게 정치인 의 역할이지.”
“예, 총리님.”
고한봉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 다.
‘강진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 지 궁금한걸.’
이현수의 얼굴은 안 봐도 알 것 같지만 말이다.
우우웅.
비행기에 간이 계단이 설치된다.
공항 건물로 직접 들어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보 는 눈을 피하기 위해 새벽 시간을 선택해 돌아온 이들을 배려하려면 이 방식이 맞을 것이다.
곧 비행기의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격의 청년들이 빠르게 비행기에서
내려기 시작했다.
“답답해 뒈지는 줄 알았네.”
“빠르긴 한데…… 왜 창문도 못 열게 하냐, 속 터지게.”
“여기 담배 피우는 데 어디야? 여기서 피워도 되나?”
고한봉이 씁쓸한 얼굴로 그 광경 을 바라보았다.
‘군 같은 엄정함은 바라지도 않았 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왔는지에 대한 자각이 조 금쯤 있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새삼 이들이 새벽 시간대를 택해
한국으로 돌아온 걸 다행이라 여기 며 고한봉이 고개를 갸웃했다.
“회주님은 어디에 타셨는가?”
“가장 선두에 있는 비행기가 맞을 겁니다.”
“흐음.”
고한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를 받았음에도 굳이 다시 확 인한 이유는 문을 열고 가장 먼저 나온 이가 강진호가 아니었기 때문 이다. 보통 이런 경우는 가장 지위 가 높은 이가 먼저 내리기 마련이니 까.
“빨리 내려, 새끼들아!”
“뭘 계단 타고 내려? 옆으로 뛰 어!”
뒤쪽에서 욕지거리가 날아오기 때 문인지 총회의 무인들이 신속하기 짝이 없게 비행기에서 내렸다.
이윽고…….
저벅.
검은 트레이닝복을 차려입은 강진 호가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비행기 밖으로 나온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한번 둘러본 그가 깊게 한숨 을 내쉬었다.
찰칵.
‘저거, 경범죄인데.’
자연스레 담배를 뻬 무는 강진호 의 모습을 보니 눈이 절로 찌푸려지 는 고한봉이지만, 그 미묘한 감정이 오만한 상대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 지지는 않았다.
세상 다 산 듯 계단 위에 쪼그려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는 강진호의 모습은 공을 세우고 돌아온 권력자 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오랜 비행에 지친 동네 양아치와 더 닮아 있었 다.
“아, 활주로에서 담배 피우시면 안 된다고요!”
“……좀 봐줘. 진짜 죽을 것 같
다.”
“비행 얼마 하지도 않았구만.”
“저놈들이랑 같이 타고 오니까 스 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내가 차라리 원숭이를 데리고 타지.”
“그건 동감합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온다.
고한봉이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공을 세운 개선장군.
동아시아의 무인계를 지배하게 된 황제.
어떤 말이든 강진호를 수식하는
데 어색함은 없겠지만…….
‘확실히 어울리는 말은 아니군.’ 강진호는 강진호다.
그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강해지 든, 그의 입지가 어떻게 변하든 그 사실만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고한봉이 넥타이를 살짝 조이고는 강진호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