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87)
마존현세강림기-1789화(1786/2125)
마존현세강림기 72권 (22화)
5장 돌아보다 (2)
“후욱…… 후욱, 후욱.”
거친 숨소리가 쉴 새 없이 흘러 나왔다.
콰득.
심장에 박아 넣은 검이 뒤틀리며 이미 식어버린 시체를 들썩이게 만 든다.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섬뜩 한 광경이겠지만, 이건 딱히 죽은 이에게 모욕을 주기 위한 행위는 아 니었다. 그저 바닥에 닿은 검조차 제대로 잡고 있지 못할 만큼 지쳤을 뿐이다.
욱신.
길게 갈라진 팔뚝에서 끔찍한 고 통이 느껴진다. 조0K)가 할퀴고 지 나간 옆구리는 세 줄기의 긴 자상이 나 금방이라도 내장이 쏟아질 것 같 고, 부러진 발목은 그의 체중을 지 탱하지 못해 제멋대로 덜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부상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부상을 입은 대가로 다섯 마 두의 목숨을 끊어놓을 수 있었으니 까.
더없이 고통스럽게 말이다.
“……저놈이 또 살아남았군.”
“지긋지긋한 놈’.”
“중원에서 교로 귀의한 놈이 이토 록 높이 올라온 건 처음이 아닌가. 보통은 다들 쥐 죽은 듯이 숨만 붙 어 있기 마련인데.”
“저리 독한 놈■이니 강호공적이 되 어 여기까지 도망쳤겠지.”
강진호.
아니, 이곳에서는 적귀(赤鬼)라고 불리는 이가 턱까지 차오른 숨을 겨 우겨우 고르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 었다.
피에 젖어 붉어진 머리카락 사이 로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이 드러난 다.
그건 사람의 눈이라기보다는 숫제 짐승의 눈에 가까웠다.
위엄 넘치는 범의 눈도 아니고, 여유로운 용의 눈도 아니다. 굶고 또 굶어 아사하기 일보 직전이 된
승냥이의 눈이 딱 저럴 것이다.
그 눈빛을 받은 이들이 슬쩍 고 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적귀가 고개를 내려 자신의 검을 바라본다.
정중앙에 크게 금이 간 검은 더 는 검으로서 가치가 없었다. 상대의 심장에서 뽑아낸 검을 바닥에 내팽 개친 적귀가 상대의 손에 잡힌 칼을 잡아당긴다.
하나 죽어 굳어버린 시신은 손에 잡은 물건을 쉽사리 내놓지 않았다. 적귀가 바닥에 피 섞인 침을 뱉고는 칼을 잡은 채 굳어버린 시신의 손을
짓밟는다.
우드드득.
섬뜩한 뼛소리와 함께 손이 으스 러진다.
그 틈을 타 칼을 빼낸 적귀가 시 체의 허리춤에 달린 칼집까지 뜯어 내고는 칼을 밀어 넣는다.
그런 후.
절뚝.
발목이 부러진 다리로도 용케 걸 어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적귀가 절뚝이며 멀어지는 것을 본 이들이 눈을 찌푸리며 쓰러진 인 물을 바라보았다.
“귀혼부(鬼魂浮)까지 당할 줄이 야.”
“벌써 저 적귀 놈에게 당한 이가 몇이야?”
“모르긴 몰라도 백은 한참 전에 넘었지.”
노골적인 적의.
그리고 미묘한 두려움.
적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그 두 가지가 흔재되어 있었다.
중원의 추적을 피해 교에 귀의하 고도 교의 설법에는 별 관심이 없는 이방인에게 호의를 보일 이는 존재 하지 않는다.
거슬리는 놈.
강자가 곧 법인 마교에서는 그것 만으로도 죽을 이유는 충분했다. 수 많은 이들이 적귀에게 시비를 걸었 다. 때로는 비슷한 실력자가 생사결 을 걸었고, 때로는 적귀가 감히 상 대할 수 없는 대마두와의 승부가 벌 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살아남은 이는 적귀 였다.
“……진짜 명줄이 질긴 놈이군.”
“다른 놈 같았으면 벌써 열 번은 죽었어. 오늘만 해도 보라고, 귀혼부 가 어디 적귀 따위에게 당할 이던
가. 그런데 다른 이들과 같이 합공 을 했는데도 적귀 하나를 못 당해 서……
사람은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면 우선은 경원시한다.
그러고는 점점 두려워하게 되기 마련이었다.
적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 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불안함과 공포심이 떠올라 있었다.
“이러다가……
누군가가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정말 적귀가 마(魔)의 칭호라도
받는 것 아닌가?”
“어림도 없는 소리!”
그 말에 바로 발작적인 고함 소 리가 돌아왔다.
“마라니! 그럼 적귀가 적마(赤魔) 가 되기라도 한다는 뜻인가? 지금까 지 외부인 출신이 마의 칭호를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걸 모르지 는 않겠지?”
“그야 그렇지……. 하지만 외부인 출신으로 저기까지 간 이도 없지 않 은가.”
“그래 봤자야, 그래 봤자!”
마교도들이 미묘한 시선으로 적귀 가 멀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를 인정하는 이든, 인정하지 않 는 이든, 적귀라는 놈이 지금까지 그들이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독특한 이라는 것만은 인정하지 않 을 도리가 없었다.
“……시체나 치우라고.”
“쯧.”
졸졸졸졸.
독한 화주가 쩍 갈라진 상처 위 로 부어진다. 술이 상처에 닿는 순
간 뭐라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 올라왔지만, 강진호는 눈 하나 깜빡 하지 않고 그 고통을 참아냈다.
졸졸졸졸.
으스러진 뼈를 맞추고, 부러진 뼈 를 바로잡는다. 베인 상처는 술을 부어 소독하고, 깨끗한 천으로 동여 맨다.
딱히 대단할 것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것을 하지 못 해 죽어 나가는 이가 이곳에는 부지 기수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에게는 너무도 간단한 상식이 이 시대를 살 아가는 이들에게는 기이한 지식이
되어버린다.
만약 강진호가 이 시대의 사람이 었다면, 아마 벌써 죽어 구천을 떠 도는 망령이 되었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망령이나 다름없지.’ 죽었음에도 아직 죽지 못했으니 까.
그게 망령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꾸우우욱!
상처를 동여맨 붕대를 꽉 조인 강진호가 술병에 남은 화주를 벌컥 벌컥 들이켰다.
상처를 입은 이가 술을 마신다는
게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 모르지 는 않지만, 도수 높은 술이 목을 타 고 넘어가는 화끈한 감각이 살인으 로 들뜬 가슴을 조금은 진정시켜 주 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또옥.
술병이 이내 바닥을 보인다.
강진호가 손에 든 술병을 바닥에 내던졌다.
‘ 피곤하군.’
그리고 지겹다.
싸우고 또 싸운다.
죽이고 또 죽이고, 베고 또 벤다. 이 세상은 그에게 친절하지 않다. 그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 이 야만의 대지에서는 상식이 아니 게 된다. 아니, 오히려 지독한 무례 가 될 때도 많았다.
겹겹이 쌓인 오해는 피를 부르고, 피는 원한을 쌓았다. 원한을 풀기 위해 달려드는 이들에게 맞서 싸우 다 보니 어느새 이 중원의 끝, 가장 지독한 이들이 모여드는 사교의 땅 까지 밀려났다.
‘그리고 이곳에서조차 이방인이로 군.’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하기야.
이 세상에서 그가 이방인이 아닐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가 이런 세상이 아니라, 먼 미 래에서 왔다는 말을 해봐야 누가 믿 어줄 리도 없다. 평생 그는 이곳에 서 누구와도 뒤섞이지 못한 채 이대 로 싸우고 또 싸우다가 죽겠지.
다시 또 말이다.
그럼?
그다음에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지 는가.
그때는 정말 죽을 수 있는가? 아
니면…….
‘ 피곤하군.’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부상이 깊기 때문인지 몸이 물먹은 솜처럼 늘어진다.
그래도 독한 술이 한 병 더 있으 면 좋겠…….
휘이익.
강진호가 고개를 홱 돌리고 손을 뻗었다.
턱.
그의 손에 묵직한 술병이 잡힌다.
“필요할 것 같아서 가지고 왔습니 다.”
강진호가 반쯤 뜬 눈으로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이를 바라보 았다.
기이한 인상의 사내였다.
아니, 기이하다는 말은 조금 이상 하다. 새하얀 피부를 가진, 선 여린 사내는 바깥세상에서는 혼한 사람일 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지독하기 짝이 없는 마인 들만 모여 있는 이 마교에서 저런 인상은 확실히 독특했다.
마인이라기보다는 무인.
무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문사.
강진호는 순간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바깥에서는 평범할지도 모르는 이 가 이 마교라는 곳에서는 독특한 인 상을 가진 이가 된다. 그건 이 세상 에 어울리지 못하는 강진호와 꽤나 닮아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누구지?”
“청귀(靑鬼)라고 합니다.”
“청귀?”
“예. 당신과 비슷한 이름이지요. 적귀.”
스스로를 청귀라 말한 사내가 빙 그레 웃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이내 그 이름을
머리에서 지워 버렸다. 이곳에서 타 인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의미가 없 는 일이다. 아니, 이곳이 아니라 어 디에서도.
“무슨 일이지? 너도 내 목을 노 리러 왔나?”
“저는 오늘 당신 손에 뒈져 버린 놈들처럼 멍청하지 않습니다.”
강진호가 살짝 고개를 꺾으며 청 귀를 바라보았다.
“그럼?”
“저는 당신과 손을 잡고자 왔습니 다.”
“•…”손을?”
“예.”
더 묻지 않았음에도 청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대로 가면 당신은 곧 죽습니 다.”
“이미 당신은 싸우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교 내에서도 당신에게 원한을 가진 이 들이 산처럼 쌓일 지경이지요. 당신 이 아무리 악운이 있다고 해도 이대 로라면 석 달을 넘기기 전에 갈기갈 기 찢겨 개먹이가 될 겁니다.”
술병의 뚜껑을 연 강진호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탁.
그러더니 거칠게 술병을 내려놓고 는 입가를 문질러 닦았다.
“다 지껄였으면 꺼져.”
“내가 그 술병에 독이라도 탔으면 당신은 지금 죽은 겁니다.”
청귀가 비릿하게 웃으며 입을 열 었다.
“당신은 더없는 무위를 가졌지만, 홀로 설 만한 경험도, 두뇌도 없죠. 결국은 반쪽짜리에 불과합니다.”
“죽고 싶나?”
강진호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퍼졌 지만, 청귀는 그 목소리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저도 마찬가지죠. 저는 더없는 경험과 머리를 갖췄지 만 홀로 설 만한 무력이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뭐가?”
“혼자서는 서지도 못하는 병신들 이라도 등을 맞댄다면 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당신을 교주로 만 들어 드리죠. 그러니 당신은 제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주십시 오.”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착각하는 모양인데……
“..착각?”
“나는 그런 데 관심이 없어. 내가 왜 교주가 되어야 하지?”
“착각은 그쪽이 하고 있습니다.”
“•…”뭐?”
청귀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마교의 교주라는 자리는 되고 싶 다고 되는 자리도 아니고, 되기 싫 다고 거부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닙니 다. 싸우고 또 싸워 이윽고 더는 싸
울 이가 없어지면, 그때 이미 교주 의 자리에 앉아 있게 될 겁니다.”
“어차피 싸울 것 아닙니까?”
강진호가 청귀의 눈을 똑바로 바 라보았다.
알 수 없다.
저자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지 그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 다. 저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눈에서 는 그 어떤 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어차피 싸울 거라면 조금 영리하 게 싸우게 해드리죠. 그럼 아마 지 루하기 짝이 없는 당신의 삶도 조금
은 흥미롭게 바뀔 겁니다. 약속드리 죠.”
말없이 청귀를 바라보던 강진호가 씹어뱉듯 말했다.
“다시 말하지.”
“다 지껄였으면 꺼져. 목을 잘라 버리기 전에.”
청귀가 싸울 생각이 없다는 듯 양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뒤로 물러 났다.
“좋습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죠.”
“내일 다시 술 한 병 들고 찾아오
겠습니다. 술 한 병이면 목을 건사 하는 대가로는 나쁘지 않겠죠.”
청귀가 빙그레 웃는다.
“그러니 내일 다시 봅시다.”
몸을 돌려 멀어지는 청귀의 뒷모 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강진호가 작 은 헛웃음을 흘렸다.
“미친놈.”
하기야.
제정신인 놈■이 자신에게 다가올 리가 없지.
강진호가 거칠게 술을 들이켰다.
마치 몸에 밴 짙은 피 냄새를 지 워내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