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88)
마존현세강림기-1790화(1787/2125)
마존현세강림기 72권 (23화)
5장 돌아보다 (3)
찰칵.
“후우우우우.”
아침의 햇살이 발끝으로 드리운 다. 강진호는 한적한 골목에 쪼그려 앉아 느릿하게 담배를 빨았다.
‘별일이네.’
옛날 꿈을 꾸다니.
한 손이 까치집을 튼 머리를 긁 어 댄다.
큰 부상을 입거나 해서 몸 상태 가 좋지 않을 때는 한 번씩 과거의 꿈을 꾸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멀쩡 할 때 과거의 꿈을 꾸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천천히 담배를 빨아들인 강진호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 묘하군.’
예전에는 두 번째 삶의 꿈을 꾸 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두 번째 삶은 벗 어나고 싶은 트라우마에 가까웠으니
까.
하지만 이제는 그때의 꿈을 꿔도 딱히 무거운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벗어났다느니 하는 말을 굳이 꾸며 내지 않아도 과거의 삶이 그에게 있 어서 조금 가벼워졌다는 것만은 분 명한 사실일 것이다.
“흐음.”
강진호가 필터 끝까지 담배를 태 우고는 다시 새 담배를 꺼내 물었 다.
‘청마라……
찰칵.
타들어 가는 담배 끝을 바라보며
강진호가 가만히 눈을 가라앉혔다.
“끝난 인연을 이어 붙이는 것도 할 짓은 아니지.”
담배 연기가 하늘로 천천히 퍼져 나갔다.
“ 아들?”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강진 호를 본 백현정의 얼굴이 화색을 띠 었다.
“어디 나가니?”
“……그냥 씻었는데요.”
백현정의 얼굴이 재빨리 평소의
무덤덤함을 유지한다. 그 표정의 변 화를 본 강진호의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났다.
“이왕 씻었으니 좀 나가봐.”
“갈 데가 없는데……
“ 아들.”
“ 네?”
백현정이 사람좋은 얼굴로 웃는 다.
“엄마가 어제 인터넷 동영상을 좀 봤는데……
“……그런 것도 보세요?”
“내가 아들보다는 좀 빠르지.”
부정할 수 없는 팩폭에 강진호가 입을 닫았다. 그가 전자기기는 물론 이고, 현대의 인터넷에 굉장히 무지 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여하튼 그걸 보니까 요즘 그 뭐 지? 히…… 흐]? 아, 그래. 히키모 리!”
“……은둔형 외톨이요?”
“그래. 그게 사회 문제라고 하더 구나.”
강진호의 눈가가 경련을 일으켰 다.
“제가 사회성이 좀 부족한 건 사 실입니다만, 그래도 그 정도까지
는..”
“아니야. 동영상에서 그러던데, 그 런 식으로 안심하는 게 제일 위험하 다는구나.”
백현정이 강진호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 아들이 참 힘들었을 텐데, 혹시 걱정되는 게 있거나 마음이 불 편한 게 있으면 엄마한테 이야기해 주렴. 엄마는 언제나 네 곁에 있 을..”
“……외출할게요.”
“그래?”
백현정이 방긋 웃었다.
“잘 생각했어, 우리 아들.”
엄마는 못 이긴다.
엄마는…….
* * *
박유민의 볼이 순간적으로 실룩였 다.
“그래서 여길 왔다고?”
“남의 연습실에? 말도 없이?”
박유민이 더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나는 날이 가면 갈수록 얘를 이 해를 못하겠어.’
아니. 강진호는 언제나 그의 자랑 스러운 친구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자랑스러운 친 구라는 항목 옆에 ‘빙구 같은 친구’ 라는 항목이 추가될 기세인 게 문제 지.
“ 영기는?”
“안 그래도 먼저 가봤는데.”
« o ”
흐 •
“장사 방해하지 말고 꺼지래.”
“……네가 그냥 창가 테이블 하나 잡고 앉아만 있어도, 장사에 도움이
됐으면 됐지, 방해가 되지는 않을 텐데.”
“그러고 있었는데, 짜증 난다고 꺼지래.”
영기야.
돈보다 자존심을 선택했구나. 자랑스럽다, 내 친구.
“……그럼 좀만 기다려. 나 감독 님한테 이야기하고 나올게.”
“그냥 연습실 구석에 의자 하나만 내줘도 돼. 혼자 놀다 갈게.”
“그래도 그럴 수는 없지. 괜찮아. 어차피 지금 스크림도 없고, 반쯤은
휴식 기간이니까.”
박유민은 그렇게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자를 눌러쓴 박유민이 마스크까지 착용하 고 밖으로 나왔다.
“병 걸렸어?”
“……얼굴 좀 가려야 돼. 알아보 는 사람이 많아져서.”
“ 응?”
박유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월챔 우숭하고부터 알아보는 사 람이 너무 많아져서. 얼굴 안 가리 고 나가면 사인해 주다가 시간 다 보내거든.”
“……박유민이 건방져졌네. 옛날 같았으면 사인해 달라는 거 다 해주 고 사진까지 찍어줬을 텐데.”
“세 시간 동안 사인해 본 적 있 냐‘?”
음.
그건 확실히 사람 할 짓이 아니 네.
박유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 다.
“나도 일할 것 하고 남는 시간이 면 얼마든지 사인하지. 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거지. 솔직히 우리는 팬
이 없으면 그냥 게임 폐인이잖아.”
“그렇지.”
프로 스포츠가 다 그렇겠지만, 함 께 즐겨주고 경기를 봐주는 팬이 없 다면 그건 선수들끼리의 게임에 지 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프로라고 불 리는 이들은 항상 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뭘 할 수가 있어야지. 저 번에는 은행 한 번 갔다가 일도 못 보고 두 시간 동안 사인하다가 도망 쳤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박유민
의 얼굴에서 혼이 빠져나간다.
하기야.
예전부터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이 는 걸 무서워하던 박유민이 아니던 가.
“너도 고생이 많구나.”
“……고생이라고 하면 안 되는데 말이야.”
박유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너 TV에도 나오고.”
“……진호야, 그건 좀 넘어가자.”
최근 찍은 CF가 떠올랐는지 박유 민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찍은 본인이라고 해서 자신이 발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못 알아보는 게 아니다. 나름 잘해보려고 하는데 결과가 그렇게 나오는 걸 어떻게 하 라는 건가.
“안 찍는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 데……
“그런데 왜 찍었어?”
“CF 찍으면 캠페인 진행해서 모 금된 돈이랑 내 출연료랑 전부 기부 한다더라고.”
“……그럼 해야지.”
“그래, 그래서 했지.”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인기가 많아져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닐 지경이 되어도 박유민 은 박유민이다.
붕붕이에 박유민을 태운 강진호가 경쾌하게 액셀을 밟았다.
“어디 가려고?”
“아무 데나. 너도 바람은 쐬어야 지. 연습실에만 있어서 답답할 텐 데.”
“진호야, 나는 연습실이 제일 편 해.”
“……좀 답답해져 봐.”
박유민을 보고 있으니 백현정과 강은영이 왜 그에게 그리 잔소리를 해 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
다. 딱히 불만이 있다기보다는 이대 로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은 느 낌이 랄까?
“은영이는 자주 보고 있어?”
강은영의 이름이 나오자 박유민이 움찔했다.
그러고는 슬쩍 강진호의 눈치를 봤다.
“……그렇게 자주는 안 봐. 진짜 야.”
“뭔 죄진 사람도 아니고……
죄는 아니지.
근데 니가 죄처럼 만들었잖아, 인
할 말은 많지만, 굳이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박유민이었다. 긁 어 부스럼이라고 이제 겨우 봉합되 어 가는 일을 다시 끄집어내고 싶지 않았다.
“은영이도 요즘은 좀 바쁘니까.”
«으 »
“그동안은 내가 시간이 없어서 잘 못 봤는데, 이제는 은영이가 바빠서 잘 못 보네. 상황이라는 게 참 희한 하다니까.”
그 말에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나랑 같군.’
그와 최연하가 처한 상황과 비슷
하다.
결국 사람들이 사는 건 다 비슷 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이게 어른이 된다는 거겠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는 게 말이 다.
부우우웅.
차가 도로 위를 빠르게 달려 나 갔다.
“와, 바다네.”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한 손에 든 박유민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마스크까지 벗어던진 뒤라 그런지, 그 미소가 확연하게 강진호 의 눈에 들어왔다.
“바다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구네.”
“잘 볼 일이 없으니까.”
박유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때때로 나와서 기분 전환을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잘 안 되 더라고. 그런데 막상 나와보니 확실 히 좀 필요한 일 같애. 고마워, 진 호야.”
“……왜 네가 고마워하냐?”
“그래도.”
박유민이 빙긋 웃는다.
그 얼굴을 본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상하게 박 유민과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 다.
“요즘은 좀 어때?”
“어떤 거?”
“일 말이야. 일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긴 한데.”
“흐음.”
박유민이 뭘 묻는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뭐랄까. 음, 이런 말은 안 하고 싶은데……
“ 웅?”
“뭐가 잘 안 되긴 해.”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박유민을 바라본다. 생각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가 아는 박유민이라면 걱정하지 말라고 너스레를 떨었을 텐데 말이 다.
“왜?”
“음, 이게 좀 복잡미묘한데……
“팀원하고 잘 안맞는다든가?”
“아니, 그런 건 아냐. 환경이나 그런 건 더없이 좋지. 월챔 우숭하 고 나니까 지원도 빵빵해지고, 사람 들도 더 좋아해 주고. 과하면 과했
지, 모자랄 건 없거든.”
박유민이 살짝 고민하는 듯 미간 을 좁혔다가 입을 열었다.
“문제는 나한테 있겠지.”
“•…”네가?”
“응.”
박유민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다.
씁쓸함이 입안에 감도는지, 눈을 찌푸린 박유민이 강진호를 바라보았 다.
“진호, 너는 봤겠지만…… 나 진 짜 열심히 했거든.”
“좀 과했지.”
한번 정점을 찍릉 사람이 전혀 다른 종목에서 바닥부터 기어 올라 간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난 정말 다시 한번 최고가 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거든. 그래서 정 말 한계까지 노력하고 또 노력해 서……
“결국 이뤘지.”
“그래. 운이 좋았지만.”
박유민이 공치사가 어색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었다.
“처음에는 너무 좋았어. 내 노력 이 보답받은 느낌이었고, 아직 내가 녹슬지 않았다는 걸 내 팬들에게도
보여준 것 같고. 무엇보다 성취감이 장난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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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 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럼 이걸 또‘?”
“뭐, 그럴 수 있지. 원래 선수라 는 건 그런 거잖아.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걸 걸고, 그거 이루고 나면 새로운 목표를 또 세우 고.”
“그렇지.”
“그럼 월챔을 한 번 더 먹고 나면
그다음에는? 또 월챔을 다시 노려야 할까, 아니면 다른 목표를 세워야 할까?”
강진호가 박유민을 가만히 바라보 았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어떤 생각?”
“나는 항상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목표를 세웠거든. 이루고 싶은 게 있어서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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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노력할 명분을 찾기 위해서 목표를 세우고
있는 것 같더라고.”
“물론 진호, 너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겠지. 그런데 나라는 사람은 그 렇게 근성 넘치고 파이팅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거든. 그래서 나를 더 몰아붙일 목표를 만들고 그걸 위해 노력한다는 게 조금 쉽지가 않아.”
“이해한다.”
“웅?”
“이해한다고.”
예전이었다면 이해 못했겠지 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지금 딱 그 꼴이거든.”
“네가?”
“왜? 이상해?”
박유민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강 진호를 바라본다. 한참 동안 그렇게 빤히 바라보던 박유민이 고개를 저 었다.
“아니. 하나도 안 이상해.”
“그럼 다행이고.”
한동안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던 박유민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 진호야.”
“응?”
“나는 내가 어른이 되면 조금 더
확고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 각했어. 덜 고민하고, 덜 주저하고, 삶에 대한 주관이 확연히 서 있는.”
“••••••응.”
“그런데 나이가 들어도 별로 달라 지는 건 없는 것 같아.”
“네가 아직 어른이 아니라 그렇겠 지.”
“그래? 그럼 너는 어른이 됐어?”
“나도 아직 아니고.”
“뭐야, 그게.”
박유민이 웃어버렸다.
“그럼 너나 나나 아직은 애네.”
“그렇지.”
강진호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났 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조금 후 련해졌다.
어쩌면 사람이란…….
평생에 걸쳐 삶의 이유를 찾아가 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