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90)
마존현세강림기-1792화(1789/2125)
마존현세강림기 72권 (25화)
5장 돌아보다 (5)
아이들을 재운 뒤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이 그네에 앉았다. 최연하가 심드렁한 눈으로 강진호를 보며 말 했다.
“동태 눈까리네.”
“아니, 뭐, 영감님인 걸 알고는
있는데.”
“여기서 갑자기 그게 왜……
“그래도 나름 겉보기에는 똘망똘 망한 맛이 있었는데. 이제는 영 쉬 어 버렸는데.”
“쉬다니……
보통 사람을 상대로는 쓰지 말아 야 할 표현이 아니던가. 뭐, 물론 최연하가 그런 걸 가리는 사람은 아 니지만.
“아직 영 회복이 안 되는 모양이 네요?”
회복이라…….
강진호가 옅게 웃었다. 이게 회복
의 문제인지는 그도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어떤 일을 겪어도 조금 쉬거나 마음을 다잡고 나면 평소의 그로 돌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 지만, 이건 일탈이라기보다는 변화 에 가깝다.
그 변화가 옳은 방향인지 아닌지 는 몰라도 말이다.
“ 딱히••••••
강진호가 뭔가를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닫았다.
그 모습을 본 최연하가 눈을 가 늘게 떴다.
“사람이 패기가 없어졌네.”
“내가 알던 강진호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미안합니다.”
“ 거봐.”
“ 네?”
최연하가 묘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본다.
“미끼 하나 던지면 멋모르고 덥석 물어버리잖아.”
“미끼요?”
“내가 알던 강진호가 뭔데요?”
그 말에 강진호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까 그랬잖아요. 정말 그 사람 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내가 아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알 지 못하는 모습도 이해해야 한다 고.”
“……그랬죠.”
“그런데 그 말에 진호 씨가 움찔 하면 안 되죠. 지금 이게 자연스러 운 거라고 당당하게 말해야죠.”
강진호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진호 씨, 그거 알아요?”
“네? 뭘요?”
최연하가 묘한 눈빛으로 강진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진호 씨는 사람 눈치를 너무 봐 요.”
“••••••예?”
“아닌 것 같아요?”
강진호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 로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눈치를 많이 본다고?
“지금 속으로 평소에 눈치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이게 뭔 소린가 하고 있죠?”
귀신인가?
아니면 그의 얼굴에 요즘 그렇게 표정이 드러나나?
강진호가 당황한 얼굴을 하자 최 연하가 피식 웃었다.
“이해를 잘 못하는 모양인데, 눈 치가 없는 거랑 눈치를 안 보는 건 다른 거죠. 진호 씨는 눈치를 안 보 는 사람이 아니라 눈치가 없는 사람 인 거고.”
이거 욕이지?
욕 맞는 것 같은데?
강진호의 표정이 미묘해지자 최연 하가 피식 웃었다.
“나는 한번씩 진호 씨 보면 이해 가 안 갔거든요.”
“……어떤 부분이요?”
“나는…… 나는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거든요. 내가 나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 같지만, 그래도 팬과 관계자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어요. 제멋대로 굴다가 망한 사람을 너무 많이 봤거든.”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지키지 못하면 추락하는 세 상이다.
“그래서 나는 진호 씨가 이해 안 가요. 겨우 나 정도 되는 사람도 때
때로 정말 하고 싶은 대로 막 질러 버리고 싶을 때가 많은데, 진호 씨 는 사실 눈치를 안 봐도 되는 사람 이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남 생각을 하 면서 사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잘 모르겠어요. 제가 딱히 눈치 를 보고 산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 서.”
“상대한테 맞추려고 하잖아요.”
“ 네?”
최연하가 빤히 강진호를 바라보았 다.
“나한테는 좋은 남자 친구가 되어 주려고 하고, 부모님에게는 좋은 아 들이 되어주려고 하고, 은영이한테 는 좋은 오빠가 되어주려고 하고.”
“직장에서는 좋은 상사, 배우는 이들에게는 좋은 스승. 내가 어떻게 해야 그 사람들을 좀 더 좋은 곳으 로 이끌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살잖 아요.”
“그건 누구나 그렇죠.”
“네. 누구나 그렇죠. 그런데 사람
은 대부분 그걸 생각만 하고 실천하 지는 않아요. 실천을 한다고 해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하죠. 그런데 진호 씨는 그걸 다 해 버리거든.”
최연하가 고개를 내저었다.
“예전에는 저도 그걸 참 대단하다 고 느꼈어요. 아이고, 내 남친. 참 잘났구나. 대단도 하지.”
“……말투가 이상한데?”
“아니, 정말로. 비꼼 하나도 없이 순수하게.”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그래요. 당신이라는 사람
은 처음 볼 때는 참 대단하고 멋있 는데, 계속 보다 보면 뭐가 좀 짠해 요. 밥도 좀 챙겨 먹여야 할 것 같 고, 옷도 좀 사 입혀야 할 것 같 고.”
“……돈 많은데.”
“그게 돈이랑은 좀 다른 거거든.”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그녀의 눈이 묘한 쓸쓸함을 머금 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의 그녀 는 안다. 그녀의 눈에 강진호는 자 신이 있을 곳을 찾지 못해 항상 발 을 동동 구르는 사람 같아 보인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 그가 누리 고 있는 것들이 언제라도 물거품처 럼 꺼질까 봐 겁이 나서 필사적으로 부여잡고 있는 것만 같다.
세상에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강진호가 왜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지 최연하는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사람은 사람마다 다른 무언가를 부 여잡고 사는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그러니…….
“진호 씨.”
“……네.”
최연하가 가만히 강진호를 바라보 다 웃었다. 그녀의 미소가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따뜻하게 보였다.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네?”
“진호 씨가 무슨 짓을 해도 나는 상관없으니까. 진호 씨가 지금처럼 게으름을 부려도, 어디에서 땡깡을 부리고 다녀도, 어울리지도 않게 명 품으로 치장을 한 채 갑질을 하고 다녀도 잔소리는 하더라도 밀어내지 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최연하의 밝은 웃음이 강진호의 눈으로 파고들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봐요. 당신이 편하면 그걸로 좋으니까.”
불어오는 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지 는 밤이었다.
부우우우웅.
강진호의 붕붕이가 경쾌하게 도로 위를 달렸다.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공기가 빨려 나간다. 재떨이에 재를 턴 강 진호가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스피커에서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던
강진호의 뇌리에 어제 최연하와 나 눈 대화가 떠오른다.
“하고 싶은 대로라……
이상하게 그 말이 정곡을 찌르는 것 같다.
알 수 없는 탈력감에 늘어져 있 으면서도 뇌리에는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불안함이 있었다. 어떻게 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빨리 뭔가를 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버 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뭔가 편 해지는 기분이다.
‘왜 이런 기분이 들었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명확하게 확 잡히는 건 없어도, 왜 그가 이렇듯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것처럼 무력감에 빠졌는지 말이다.
“끝난 거구나.”
그의 전쟁은 이제 끝났다.
생각해 보면 그는 이 세상으로 돌아온 이후 하루하루를 언제나 전 쟁처럼 살아왔다. 현대로 돌아온 처 음에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이 전쟁 이나 다름없었고, 무인계와 얽힌 이 후로는 정말 전쟁을 치르며 살아왔 다.
하지만 이제 본능적으로 알아버린 것이다.
이제야 이 긴 전쟁이 끝났음을.
혹왕의 존재가 남아 있다고 해도 그는 단독으로 총회를 노릴 수 없 다. 홍왕과 홍왕계가 중국에서 버티 고 있는 이상, 그들을 넘어야 한국 을 침공할 수 있다.
지금까지처럼 내일 당장이라도 누 군가 그들을 노리고 진격을 해오는 일은 더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의미 다.
‘창왕과의 전쟁이 끝난 게 아니었 구나.’
강진호에게 있어서 이 전쟁의 끝 은 이 세계로 돌아온 이후로 이어져 온 기나긴 전쟁의 마지막과도 같았 다. 그러니 지금까지 쌓여온 전쟁의 피로가 한번에 모두 몰려온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이성을 놓을 만도 하지.
그리고 그건 다시 말해서 이제야 강진호가 이 세상의 일원으로서 완 전히 적웅을 마쳤다는 의미와도 같 았다.
이토록 오래 걸려서야 말이다.
부우우웅.
강진호가 액셀을 조금 더 강하게
밟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해봐요. 당신이 편하면 그걸로 좋으니까.”
강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이래서 어쩔 수가 없다니까.’
그가 최연하에게서 느끼는 편안함 은 다른 사람들이 주는 편안함과는 조금 달랐다. 살아가며 채워지지 않 던 부분이 그녀로 인해 채워지는 느 낌이 다.
이상하지.
저 성격 나쁘고 제멋대로인 사람
이 세상 누구보다 그를 더 잘 이해 해 준다는 사실이 말이다.
“마음대로라……
강진호의 눈이 도로를 넘어 더 깊은 곳을 바라본다.
‘그럴 수가 없었어.’
그래서 망쳤으니까.
원하는 것을 제멋대로 해 대다가 모든 것을 무너뜨려 버렸으니까. 그 가 조금만 남을 더 배려하는 사람이 었다면, 그의 두 번째 삶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알고 있다.
강진호는 원래 그렇게 책임감이
넘치는 사람도 아니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사람도 아니다. 현대로 돌 아온 강진호가 지독할 정도로 타인 을 챙기게 된 이유는 두 번째 삶의 끝에서 직면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하나 최연하는 이제 그것마저 내 려놓으라 한다.
조금 더 자신을 편하게 만들어주 라고 말이다.
할 수 있을까?
이제 강진호는 그것마저 벗어나 정말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을까?
그의 차가 총회로 들어가는 도로 로 접어든다.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타고 한참을 올라간 차가 마침내 언 덕을 모두 올라 드넓은 연무장에 멈 춰 섰다.
구석에 차를 세운 강진호가 천천 히 차에서 내려 총회를 바라보았다.
이상하지.
익숙하면서도 조금 낯선 느낌이 났다.
하지만 강진호는 굳이 그 낯섦을 밀어내지 않고 가만히 발걸음을 옮 겼다. 사람 하나 없는 연무장을 가 로질러 총회의 건물에 접어든다.
저벅저벅.
바닥을 밟는 발자국 소리가 선명
하게 귀를 파고든다. 계단을 올라 회주실까지 이른 강진호가 빤히 문 을 바라보다가 가만히 손잡이를 돌 렸다.
끼익.
경첩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회 주실의 광경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강진호가 조금은 어색한 듯 발을 옮겼다.
저벅저벅.
안쪽으로 들어가 자신의 의자를 바라보던 강진호가 말없이 의자에 앉는다.
그러고는 책상 위에 있는 재떨이 의 뚜껑을 열고 담배를 물었다.
찰칵.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천천 히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익숙하다.
하지만 뭔가 아직은 편치 않다.
항상 있던 곳, 항상 그가 살아오 던 곳이지만 아직은 뭔가 들어맞지 않는 느낌이다.
“그래서 커피는 뭘로 하시겠습니 까?”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문 안으로 들어오는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혹시 회주님……
“웅?”
“CCTV란 게 뭔지 아십니까?”
“흠, 아니지. 커피는 다른 사람이 뽑아 올 테니까.”
이현수가 휘적휘적 걸어 가장 가 까운 소파에 앉았다.
“일단은 자리 선점부터.”
“•…”선점‘?”
“네. 몰려올 테니까요. 아, 저기 오네요.”
“응?”
그때, 열려 있는 문을 굳이 박차 며 장민이 안으로 뛰쳐 들어온다.
“마존이시여 어어어어어어!” 강진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마존이시여! 이리 존안을 다시 뵙게 되니, 속하, 더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 웅장한 용체를……
“장민.”
“예!”
“……제발 그만 좀 하자.”
하지만 이번에는 장민만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었다.
“뭐? 회주님이 왔다고!”
방진훈이 안으로 뛰쳐 들어오고.
“로드, 너무 오래 비우셨습니다! 저 망할 원탁 놈들을 어쩌실 겁니 까!”
위긴스가 거의 날듯이 안으로 파 고든다.
쿵!
“아니, 여긴 왜 항상 이렇게 좁 아!”
문을 통과하다 머리를 부딪친 바 토르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이제는 좀 괜찮으십니까?”
“너무 노셨지! 너무!”
“보고드릴 게 한두 개가 아닙니
“마존이시여어어어어!”
귀로 쏟아지는 왁자지껄한 소란을 들으며 강진호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내 평화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강진호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 라간다.
‘굳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여기에 있어도 되는구나.
여기에.
강진호가 더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 다들••••••
“네.”
살짝 머뭇거리던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봐서 반갑다.”
창밖으로 더없이 맑은 하늘이 펼 쳐져 있었다.
세상일이란 건 그런 면이 있다.
실타래가 엉킨 것처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일도 한 번 풀리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술술 풀리기 마련이다.
이현수는 이번 일 역시 그리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생각해 보면 강진호가 전투 후에 후유증에 시달린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이번은 유달리 심각하긴 했지만 말이다.
한데…….
“거……
이현수의 눈가가 경련을 일으킨다.
그의 눈에 커다란 중역의자에 앉아 책상에 발을 올린 채 휴대폰을 하고 있는 강진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회주님.”
“웅?”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이현수를 바라본다.
자신을 바라보는 강진호의 얼굴을 확인한 이현수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뭐 하십니까?”
“포 ”
“……그러니까 폰으로 뭐 하시는지를 묻는 겁니다만?”
“게임?”
게임?
아, 게임 좋지. 그거 참 건전한 놀이문화지.
근데 왜 출근해서 회주실에 반쯤 드러누워 폰 게임을 하고 있냐고, 이 양반아!
‘이럼 그냥 집에서 놀던 사람이 회사에 나와서 노는 것뿐이잖아.’
이게 뭐냐고, 이게!
이현수의 속에서 울분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하지만 이현수가 시동을 걸려는 순간, 강진호가 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예?”
“잔소리할 거면 나가.”
이현수의 눈이 커졌다.
“ 네?”
눈을 두어 번 크게 끔뻑인 이현수가 당황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이따가 회의할 거잖아?”
“……그렇죠.”
“그럼 그때 말하면 되지, 왜 굳이 회주실까지 쳐들어와서 잔소리를 하려고 해. 너 할일 없어?”
물론 그건 무척이나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그걸 당신이 지금 말하면 안 되지, 이 사람아!
“아니……
“됐어.”
“아, 말 좀 합시다, 말 좀!”
“나중에 말해, 나중에.”
이현수의 귀에서 김이 뿜어졌다.
‘아니, 이 양반은 왜 이제와 한량으로 진화를 하냐고?’
진즉에 좀 양아치처럼 굴지! 그럼 그가 이 개고생을 안했을 텐데!
“그럴 거면 뭐 하러 나오셨습니까!”
“여기가 편해.”
“끅…”
이현수가 심장을 움켜잡았다. 그의 지론대로라면 회장이 회사를 편하게 여기는 순간, 그 회사는 끝장이 난다.
회사는 치열한 전장! 모두가 언제나 부담을 느껴야 하는 곳이다.
“그……
“이 실장.”
“ 네?”
“ 나가.”
이현수가 힘없이 돌아섰다.
‘여긴 이제 망했어.’
점심 시간이 지난뒤 바로 열리 기로한 회의는 생각보다 조금 늦어 졌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고, 밥을 먹겠다고 차를 타고 나간 강진호가 생각보다 늦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미쳤지?”
“빠져 가지고.”
“이게 요즘 제정신이 아니네?”
“너, 마교에 입문 한 번 해볼래?” 이현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더러운 세상.’
아, 물론…….
그가 강진호랑 같이 밥을 먹으러 나간 건 사실이고, 복귀가 늦은 것도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욕을 들어 처먹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아니! 상식적으로 내가 늦었겠냐고!’
운전하는 사람이 저 사람인데, 어떻게 그가 늦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걸까?
당연히 저 양반이 늦었겠지. 점심시간 끝났는데 거기서부터 커피를 시키는 양반을 그가 무슨 수로 감당 하라는 말인가!
그리고!
“저기••••••
“ 뭐?”
“……회주님도 같이 늦었는데.”
“다물어라.”
“주둥아리 후려 버리기전에.”
“확, 마!”
이현수가 빙그레 웃음 지었다.
‘그래, 패라, 패.’
이 더러운 인간들아.
사실 그건 좀 무리한 요구이기는 하다. 아무리 그래도 회의 조금 늦 었다고 회주를 타박하는건 총회에 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적어도 장민이 있는 자리에서는 말이다.
모가지에 조강 꽂히고 싶지 않은 인간이라면 감히 그런 일로 강진호를 타박할 수는 없다. 솔직히 요즘은 강진호보다 장민이 더 무서우니까.
“다 갈궜어?”
심드렁하게 말하는 강진호를 보며 이사들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고분고분한 것 보소?
강진호에게서 칼날 같은 느낌이 거의 사라졌는데, 이상하게 이사들은 그런 강진호를 조금 더 어려워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해가 안 가면서도 이해가 가려고 한다.
지금 강진호를 보고 있으면 딱 생각나는 단어가…….
‘말년병장이네, 말년병장.’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지. 아니, 세상이 다 무서운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안 그래도 이사들이 내심 무서워하는 강진호가 말년병장 포스까지 내뿜고 있으니 껄끄럽기도 하겠지.
“이현수.”
“예?”
“언제 시작할 건데? 해 지면?”
이사들의 칼날 같은 눈빛이 이현수에게 와 꽂혔다.
‘그래, 다 내 잘못이지. 그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이현수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회주님이 자리를 비우신동안 진행한 일에 대해서 보고해 주시면 됩니다.”
“너부터 해.”
“눼
이현수가 소심하게 반항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사망자에 대한 장례는 모두 끝냈 습니다. 그리고 유족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했습니다.”
“ 얼마?”
“인당 5억 정도입니다.”
5억이라는 액수에 강진호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그거밖에 안 줬어?”
“마음 같아서는 오백억도 아쉽겠지만…… 회주님, 이건 회칙에 따라 지급해야 합니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지급하다 보면 불공정한 경우가……
“알았으니 오억 더줘.”
“회주님, 말씀드렸다시피……
“돈 모자라면 내 계좌에서 주고.”
이현수가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 양반, 말이 안 통한다.
“그리고..
“……네.”
“돈 줬다고 끝난 거 아니다. 오억이고 십억이고 가족을 잃은 걸 돈으로 보상할 수 없어. 회차원에서 지 속적으로 관리해서 적어도 앞으로 유족분들의 삶이 힘겹지 않도록해.”
이현수가 슬쩍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 풀어져 있던 강진호의 얼굴이 잠시 예전의 그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필요하다면 MK 쪽이랑 협의해서 도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도와.
그게 회를 위해서 목숨을 걸어준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고 속죄다.”
“명심하겠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소파에 반쯤 드러누웠다.
“계속해.”
“예.”
이현수가 살짝 마른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부상자들은 이제 거의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중에 영구적인 장애가 남은 이들이 좀 있습니다. 무인으로서의 복귀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흐 ”
r그’ •
강진호가 슬쩍 이현수를 보며 말 했다.
“어떻게?”
“……제 생각에는 탈퇴를 시키고 사망자처럼 보상금을 지급하는 쪽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른 탈퇴자처럼 MK 쪽과 연계해 서 생활 지원을 하는 쪽을 생각 중 입니다.”
“그전에……
“ 예.”
“물어봐, 나갈 건지.”
“약하다고 해서 무인이 아닌 건 아니지. 중요한 건 본인의 의사야. 무인으로 남겠다고 하면 받아주고 어떤 식으로 활용할 건지 계획 세워 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현수가 이채를 띠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미묘하네, 이거.’
강진호의 표정은 심드렁하다. 분 명 예전보다 회의에 진지하지 않게 참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진호의 지시에는 과거에
는 잘 없던 주관이 확고하게 서 있 다.
‘진짜 말년병장인가?’
툭툭 던지는 말이 딱 그 느낌이 다.
“다른 문제는?”
“정치권 쪽에서 회주님과 회동을
원하고 있습니다.”
“귀찮으니 거절해.”
“••••••예?”
“거절하라고.”
이현수의 눈이 떨렸다.
“……총리가 만나자는데요.”
“그런데?”
“아니, 그래도…… 그게 입장이라 는 게……
“안 만나면 문제 생길 게 있나?”
이현수가 살짝 고민을 했다. 아 니,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사실 이제 정치권과 총회가 논의할 일은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이전에도 거의 도망치듯 앞에서 사라졌는데, 지속적인 요청 을 묵살한다는 건 관계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쪽에서 자꾸 피한다는 인상을 주면 저쪽이 불안해합니다.”
“그럼 이 실장이 만나는 걸로.”
“부상 입고 골골댄다고 해. 만나 서 할 말도 없는데 뭐.”
아니, 이 양아치 같은 게 몸도 멀 쩡하면…….
“눈 깔아라.”
“넵.”
이현수가 재빨리 눈을 깔았다.
거, 귀신같이 알아채네. 거참.
“……그 외에는 별문제는 없습니 다. 일단 복귀한 애들 정비도 대충 끝냈고, 지난주부터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W 으 »
“그리고 중국 쪽 보고입니다만, 홍왕계는 창왕의 잔당들을 반 이상 처리했다고 합니다. 이대로 가면 2 주 내로 잔당의 칠에서 팔 할 정도 는 정리하거나 흡수할 수 있을 거랍 니다.”
“꽤 커지겠군.”
“조금 껄끄럽기는 합니다. 창왕계 가 와해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홍 왕계가 커지는 건 분명 불안 요소입 니다.”
“괜찮아.”
강진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늑대는 배가 고프면 사람을 물지 만, 개는 배가 고프면 밥을 달라고 칭얼대는 법이니까.”
“홍왕계는 더는 이쪽을 노리지 않 는다는 말이시군요.”
“여러 번 이야기했지.”
강진호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홀러 나왔다.
“애초에 홍왕이 원하는 건 중원의 일통이지. 그놈은 중화에 눈이 뒤집 힌 놈이니까. 그 이상을 바라지는 않을 거야.”
“그럼 예전엔?”
“그때는 내가 언제고 중국으로 치
고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아……
같이 지내보면서 강진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는 의미다. 하기야 강진호에게 중국 땅에 대한 야욕이 전혀 없다는 것쯤은 조금만 대화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는 사실 아니던 가.
“그러니 받을 것만 착실하게 받아 내.”
“그건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이현수가 보고를 끝내고는 슬쩍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 로드.”
“으 n
“예. 아직 마스터의 종적을 찾아 내지 못했습니다. 지속적으로 수색 하고는 있지만, 사람이 사람인지라 추적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겠지.”
텔레포트로 날아다니는 인간을 무 슨 수로 찾겠는가. 그가 마음만 먹 는다면 평생 잡지 못할 수도 있다.
근접할 수 있는 기사와 텔레포트 를 방해할 수 있는 마법사. 그리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근거리 텔레 포트에 대항할 수 있는 병력이 모두 필요하다.
문제는 이 많은 요구 조건을 갖 춘 채 마스터를 잡아내기 위해서는 우선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라도 알 아야 한다는 점이다.
“내버려 둬.”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는 배 신자입니다. 어떻게든 찾아내 응징 을 해야 합니다.”
“응징은 이미 받고 있지.”
강진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모든 것을 걸어서 무언가를 해보 려던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는 걸 버틸 수 있을 까?”
“곧 제 발로 내 앞에 나타나든가, 뭔가 말도 안 되는 짓을 꾸미다 나 락으로 떨어지겠지. 어느 쪽이든 상 관없어.”
그 목소리는 조금 서늘하게 들렸 다.
“그럼 마스터에 대한 수색은 이 시간부로 중지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원탁 말입니다만……
U Q »
“원탁의 나이트 중 대부분은 소환 에 응했지만, 두 명이 소환에 웅하
지 않았습니다. 소속 국가는……
“적당히 처리하고 갈아 치워.”
“……제거하라는 말씀이시군요.”
“뭐, 그냥 쫓아내기만 해도 되겠 지.”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따르지 않는 게 죄는 아니잖아.” 위긴스가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강진호는 연이어 그가 전 혀 예상하지 않은 말을 홀렸다.
“이제는 적대하지 않는 선에서 적 당히 자율권을 줘. 어차피 유럽이 한국을 노리는 건 이제 거의 불가능 하니까.”
위긴스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강진 호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원래 이렇게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나?’
뭔가 강진호가 바뀌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위긴스와 이사들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