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93)
마존현세강림기-1795화(1792/2125)
마존현세강림기 73권 (4화)
1장 평온하다 (4)
우드드득.
검끝이 목뼈를 끊는다.
“끄륵••••••
목이 꿰뚫린 이가 믿을 수 없다
는 눈으로 자신의 목에 틀어박힌 검
을 바라본다.
“그..
뭔가 말을 하려는 듯 벌린 입으 로 선지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턱 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아래로 떨어 져 검을 붉게 물들였다.
털썩.
서걱.
강진호가 쓰러진 이의 목에서 검 을 뽑아낸다. 그러고는 차갑게 가라 앉은 눈으로 그의 주변을 채운 시체 들을 바라보았다.
겹겹이 쌓여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는 시체들을 보며 강진호의 눈이 조금 더 가라앉는다.
‘시산혈해라……
시체가 산을 쌓지는 못하고, 피는 그저 발목까지 잠길 웅덩이를 이룬 정도지만, 이 광경을 보고 있으면 그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다.
“끄으윽……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이들 중 하나가 덜덜 떨며 고개를 들어 올린 다.
고통의 겨운 눈동자가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강진호를 찾아내고는 경련 을 일으켰다.
“마, 마귀……
퍼석.
새하얀 신발이 그런 이의 뒷머리
를 내리밟는다.
“뒤처리가 그리 깔끔하지는 못하 시군요.”
신발에 묻은 피를 아무렇지도 않 게 털어낸 사내가 빙그레 웃으며 강 진호를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강진호가 무심한 눈으로 청귀를 응시한다. 한 점의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을 본 청귀가 오싹하다는 둣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쓸모를 증명하는 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질린 얼굴이지만 오만함을 잃지
않는다.
참 이상한 사내다.
한없이 공손한 것 같으면서도 은 근히 사람을 깔보는 것 같고, 자신 을 낮추는 것 같으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사람을 그리 많이 겪 어보았다 자신할 수는 없지만, 강진 호의 삶을 통틀어 저런 유형의 사내 는 명백히 처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인간에게 관심을 두지 않던 강진 호도 이상하게 이 사내에게는 자꾸 시선이 간다.
그와 시선을 마주한 인간의 반웅
은 대체로 둘 중 하나다.
고개를 도려 그의 시선을 피하거 나, 아니면 도발적으로 그를 맞 쏘 아보거나. 하지만 지금 청귀의 반응 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재미있 다는 듯 두 눈에 웃음기를 담고 그 저 느긋하게 그의 시선을 받아낼 뿐 이다.
“이제 대답을 들을 수 있겠습니 까?”
청귀의 말에 강진호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대답을 원하지?”
“이런, 남의 말에 관심을 영 가지
지 않는 분이시군요. 이 정도면 제 가 당신을 모실 자격이 있는지를 여 쭙는 겁니다.”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모실 자격이라니.
보통은 수하를 받아들이는 이가 자신의 주인 될 자격을 증명하는 것 아니던가. 게다가 청귀는 교의 직위 상으로는 오히려 그보다 상급자였 다.
상급자가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이에게 부하 될 자격을 중명하다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그리고…….
‘증명이라……
강진호의 시선이 주변을 향했다.
수많은 시체.
그중에는 강진호도 감히 무시할 수 없는 강자가 즐비했다. 이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웠더라면 강진호 역시 죽음을 각오해야 했을 것이다.
설사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족히 한 달은 정양해야 할 상처를 입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는 어떤가.
그의 몸에는 겨우 생채기나 조금 나 있을 뿐이다. 물론 겉으로 보기 에 멀쩡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봐야 피육의 상처. 며칠 지나지 않아 회복될 상처에 불과했다.
그저 저놈의 말대로 싸웠을 뿐이 건만…….
계략도 아니고, 함정도 아니다.
그저 먼저 싸워야 할 곳을 알았 을 뿐이고, 먼저 죽여야 할 이를 이 해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전장 은 간단하게 강진호의 발아래에 짓 밟혔다.
강진호조차 어이없을 정도로 말이 다.
“적귀, 당신은 강합니다.”
“어쩌면 당신은 스스로의 강함에 취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알고 있겠지요. 이대로 살 아간다면 당신은 반드시 죽습니다.”
청귀가 빙긋 웃었다.
“교에는 당신보다 강한 이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으니까요. 지금까지 의 당신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 다. 이제는 슬슬 거물들이 움직일 때가 되었다는 건 당신도 알고 계시 겠죠?”
강진호의 눈이 살짝 꿈틀댔다.
“교를 지배하고 있는 노마두들은 지금껏 당신이 상대해 온 이들처럼
녹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지옥 에서 지금껏 살아남아 스스로를 증 명한 이들입니다. 아무리 당신이라 고 해도 세력 하나 없이 그들과 맞 서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그 말과는 달리 청귀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저라면 당신이 이 교를 지배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 과 나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 다.”
강진호가 소매로 입가를 문질러 닦았다. 흘러내린 피가 소매를 더없 이 붉게 물들였다.
“하나.”
“예.”
“왜 나지?”
그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 겨 있었다.
왜 이 많은 교도들 중에서 하필 자신을 택했는가.
청귀의 말대로 그는 수많은 마교 도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처음 부터 마교도가 아니던 이이기에 시 작부터 큰 멍에를 짊어지고 있다.
그런데 왜 자신인가.
“글쎄요.”
청귀가 비릿하게 웃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죠. 우 선은 무학이 발전하는 속도가 제 생 각을 가볍게 초월했다는 것.”
청귀가 가볍게 손가락을 가로 젓 는다.
“적어도 교 내에서는 제 예상을 그리 철자하게 박살 낸 사람은 지금 껏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신 이 한 달 내로 죽을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당신은 지금까지 잘도 살아 있습니다.”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저런 말을 듣고 나면 살심이 치 솟아 오른다. 그가 저 오만한 주둥
아리에 칼을 박아 넣지 않은 이유는 그 뒤에 무슨 말이 나올지에 대한 궁금함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당신이 이상할 정도로 강인하다는 점.”
“……무슨 의미지?”
“당신의 무력은 그리 대단할 게 못됩니다. 아니, 앞으로는 대단해지 겠지만, 지금 당장은 별 의미가 없 죠.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대단한 건 당신의 정신이죠.”
청귀가 고개를 돌려 시체들을 바 라본다.
“아무리 저들이 당신의 목숨을 노
렸다고는 하나, 그래도 사람은 사람. 저만한 수를 하나하나 쳐 죽이다 보 면 어찌할 수 없이 흔들리기 마련이 지요. 사람이니까.”
“하지만 당신에게는 흔들림이 보 이지 않습니다. 벌레를 짓밟아 죽이 듯, 사람을 죽여 대고 돌아서면 아 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립니다. 보통 위악을 떠는 이들은 태연을 가장하 는 법인데, 당신은 정말 타인의 죽 음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청귀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 다.
“지옥에서 온 악귀라는 말이 더없 이 어울리는 사람이죠.”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제멋대로 지껄여 대는군.’
강진호가 제 손으로 타인의 목숨 을 끊어내고도 딱히 영향을 받지 않 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곳은 그의 세상이 아니니까.
사람 같지도 않아 보이는 것들을 죽여 댄다고 해서 마음이 흔들릴 리 가 없다. 어차피 그 역시 이 세상에 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스스로 죽을 용기도 없어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갈 뿐.
‘아니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런 자신이야 말로 이들의 입장에서는 악귀나 다 름없을 것이다. 딱히 바라는 것도 없고, 목적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여 대는 존재를 악귀가 아 니면 뭐라 부르겠는가.
“마지막으로……
청귀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당신이 비어 있는 인간이라서입 니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강진호
가 눈을 찌푸리며 청귀를 바라보았
다.
“무슨 의미지?”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실수는 욕 망과 욕구에서 나오는 법이지요. 대 업을 이룰 수 있는 인간도 그 직전 에 작은 욕구를 참지 못해 대계를 무너뜨리고는 합니다.”
“바라는 것이 없는 인간이라면 그 럴 위험은 없겠지요. 그래서 당신은 완벽합니다. 적어도 내게는.”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차가운 눈으로 청귀를 노려보았다.
“사람을 가지고 놀겠다는 거로 군.”
“흐음, 비슷하게 들리기는 하겠군 요.”
“하나 묻지.”
“네. 얼마든지.”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리 잘 아는 놈이 무슨 배짱으로 내 앞에서 그딴 말을 함부 로 지껄여 대는 거지? 내가 너를 죽이지 않을 것 같은가?”
“예.”
“……뭐라고?”
“당신은 나를 죽이지 않습니다.”
청귀가 빙글빙글 웃었다.
“당신이 지금까지 수도 없는 사람 을 죽여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대부분은 당신을 죽이려 했거나, 선 공을 한 이들뿐이죠. 최소한 시비라 도 건 인간들입니다. 내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당신이 먼저 누군가를 공 격한 경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당신을 두려워해 야 합니까.”
강진호가 차가운 눈으로 가만히
청귀를 응시하다가 몸을 돌렸다.
“거절입니까?”
강진호가 그 자리에 멈추더니 낮 은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한 놈이…….
“지껄이기 전에 생각을 하는 게 좋아.”
“그거, 굉장한 지적이군요. 살면서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네 말대로……
강진호가 낮게 중얼거리듯 말했 다.
“나는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뭘 위해 너를 받아 들여야 하지?”
“그것 아주 재미있는 답변이군요. 그럼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무시하고 가려는 강진호의 귓가에 청귀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제가 그걸 찾게 해드리죠.”
강진호가 멈춰 섰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청 귀를 바라보았다.
청귀가 그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 다.
“지루하고 따분하지 않습니까. 어 차피 해야 할 것이 없다면, 하고 싶
은 것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저 거들먹거리는 장로들을 쳐 죽이고, 마를 자청하는 것들을 짓밟으며.”
청귀가 살짝 숨을 골랐다.
“오르고 또 오른다면 언젠가는 다 른 것이 보일지도 모르죠. 그럼 어 쩌면 당신의 삶도 조금쯤은 즐거워 지지 않겠습니까?”
강진호의 눈이 가라앉았다.
“장담하죠.”
청귀가 강진호를 향해 한걸음 더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적어도 제 보필을 받는다면 당신
의 삶은 지금보다는 몇 배 더 재미 있어질 겁니다.”
“그 말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목을 치든가 말든가 마음대로 하 십시오.”
청귀가 씨익 웃었다.
“어차피 이대로 가치 없는 삶을 살 바에는 그냥 뒈지는 게 나을 테 니까요.”
“내 이야기인가?”
“아니요. 제 이야기입니다.”
강진호가 낮게 웃었다.
이상하고 기이한 놈이다.
다만…….
적어도 저놈이 지껄이는 걸 듣고 있는 동안은 이 끔찍한 위화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네 생각대로 움직여 줄 거 라 생각지 마.”
“당연히 그렇겠죠.”
“그리고……
강진호의 눈이 가라앉았다.
“이용하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그것도 선이라는 게 있겠지.”
청귀가 씨익 웃으며 깊게 포권했 다.
“물론입니다, 주군.”
강진호가 그런 청귀를 가만히 바
라보다가 몸을 홱 돌렸다.
‘이상한 놈.’
그날 이후.
교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라 불 리던 적귀에게 교에서 가장 껄끄러 운 존재라 불리던 청귀가 들러붙었 다.
훗날 강호의 역사를 논하는 이들 은 이 일을 기점으로 역사의 축이 뒤틀렸다 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