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94)
마존현세강림기-1796화(1793/2125)
마존현세강림기 73권 (5화)
1장 평온하다 (5)
창으로 따뜻한 햇살이 부드럽게 밀고 들어온다.
손등을 간질이는 햇살에 살짝 고 개를 숙인 사내가 잔을 들어 조금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향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마시는 커 피는 향보다는 분위기를 즐기는 것 에 가까우니까.
딸깍.
커피 잔이 유리 테이블에 닿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진다.
시간이란 때때로 너무도 지루하고 느리게 흐르는 법.
그 시간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 지 못했다면, 지금과 같은 여유를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내가 가만히 고개를 들어 창밖 을 바라본다.
잘 조경된 정원에 햇살이 내리쬐
고 있다.
더없이 맑은 날, 더없이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똑똑.
안타깝게도 그때 마침 들려온, 문 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내의 평화를 방해하고 만다.
“들어오지.”
닫혀 있던 문이 조심스레 열리고, 한 남자가 안으로 걸어 들어 왔다.
“쉬고 계시는데 죄송합니다.”
“ 괜찮아.”
사내가 빙긋 웃는다.
“마침 지루하던 참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안으로 들어온 이가 살짝 마른침 을 삼켰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에게는 지금 이 광경이 굉장히 익숙하다. 그의 주인은 원래 이런 사람이다. 그리 급하지 않고, 느긋하 고 여유로운.
하지만 이 사람의 명성을 들은 이들은 결코 이런 그를 상상하지 못 할 것이다.
‘혹왕.’
검은 왕.
중원을 지배하는 세 왕 증 하나.
‘아니, 이제는……. 아니지. 지금 도 왕은 셋이군.’
창왕이 죽었지만, 그 대신 마왕이 있으니까.
이리 보면 더없이 수려한 사내지 만, 대외적인 활동을 해야 할 때마 다 흑왕은 전신은 검은 붕대로 친친 감아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감춘다.
그 기행을 이해할 수 없어 물을 때마다 혹왕은 이리 답했다.
“누군가 나를 알아볼지도 모르니 까.”
그 대답의 의미를 남자는 지금까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이 깊군.”
“……죄송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 을 했습니다.”
“생각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혹왕이 고 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래, 할 이야기가 뭐지? 조금은 재미있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는데. 할 짓이 없던 참이었어. 보던 드라 마도 끔찍하게 끝나 버렸고.”
“……결말이 별로였던 모양입니
다‘?”
“작가라는 놈들은 항상 잘 가다가 마지막에 그러더라고. 하기야…… 인생 역시 그■리 다를 바가 없지. 나 는 항상 마지막이 문제거든.”
사내가 빙긋 웃었다.
“계속하지. 그래, 무슨 일이야?”
“우선은 홍왕계에 대한 보고입니 다. 그들이 창왕계의 영역을 착실하 게 접수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조금 심각한 어조로 보고 를 했지만, 사내는 그 보고에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정리가 끝난다면 홍왕계가 중국 최대의 계파가 될 것이 확실합니다.
어쩌면 조금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 다.”
“그럴 수도 있겠지.”
사내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뿐이야. 오를 수 있는 이는 오로지 맹수뿐이지. 길들여지 지 않는 이만이 정상을 향할 수 있 어. 목줄이 채여 버린 늑대는 늑대 가 아니라 개일 뿐이지. 아니, 홍왕 의 경우는 고양이라고 해야 하나?”
고양이가 아무리 거대해도 호랑이 가 될 수는 없다.
아무리 세력을 쌓아 올려도, 그 권위로 위압을 한다고 해도 그 본질
이 무너진 이상은 의미가 없다.
“그 이야기가 전부라면 실망할 것 같군. 조금 더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나?”
“그분께서 자신은 준비가 되었으 니 직접 오라 하셨습니다.”
커피 잔을 잡아가던 흑왕이 손을 멈춘다.
허공에서 조금 망설이는 듯하던 손이 이내 커피잔을 잡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흑왕이 곤 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그래?”
“ 예.”
“흐음, 성급하시군.”
혹왕이 턱을 괴고는 낮게 웃었다.
“게다가 예상하던 반응도 아니야. 그 사람이라면 관심조차 주지 않거 나, 제 발로 직접 쳐들어올 줄 알았 는데.”
“실망하셨습니까?”
“실망이라…… 그 반대지.”
흑왕이 빙긋 웃으며 남자를 바라 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변하기 마련이지.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이들도 알고 보면 조금씩이라도 변 하지. 본인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뿐.”
“그렇습니다.”
“그게 재미있는 거지. 변하지 않 는 이를 다시 마주한다는 건 재미 없는 일이야.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으니까.”
흑왕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 었다.
“정확하게 다시 말해보게. 그분께 서 뭐라 하시던가?”
“본인께서는 준비가 끝나셨으니 쓸데없이 애들 보내지 말고 직접 오 라 하셨습니다. 뭐든 상대해 주신다 고.”
흑왕이 키득키득 웃었다.
“과연 적천마존이시군.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느낌이야.”
“그리고……
“음?”
“배려에 감사한다는 말도 전하라 하셨습니다. 이제는 직접 올 게 아 니면 아무도 보내지 말라고……
흑왕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 예.”
U Q..히
M…•
흑왕의 입에서 깊은 침음이 흘러 나온다.
그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자, 사내는 숨을 죽여 혹왕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이상한 기분이군.”
흑왕이 가볍게 웃었다.
“뭐랄까…… 기억이 흐려질 만큼 오래된 인연을 다시 만났는데, 그 사람이 내가 기억하는 것과 너무 많 이 달라졌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은가?”
“저라면 아쉬울 것 같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흑왕이 미묘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글쎄…… 모르겠군.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어떤 건지 말이 야. 한 번씩 그분이 자신의 감정이 닳아버린 것 같다는 말을 흘렸을 때 는 그저 하는 말이겠거니 했는데.”
이제는 이해할 것 같다.
감정이 닳아버린다는 게 무엇인 지.
“감시는 모두 물려.”
“들키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 다.”
“너희로는 무리다.”
흑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조금 격한 말을 쓰고 싶을 정도로군. 그를 함부로 얕잡아보지
마라. 너희 나름은 조심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는 너희의 모든 것 을 걸어 대해도 부족한 사람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 입으로 직접 말했다면 들어드 리는 게 예의겠지.”
흑왕이 빙그레 웃었다.
“이제는 내가 직접 가야 한다는 거로군.”
“어찌하시겠습니까?”
“글쎄.”
흑왕이 손을 뻗어 커피 잔을 잡 았다.
다 식어버린 커피를 바라보는 흑
왕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전에 내가 술은 숙성을 하기에 의미가 있다고 했던가?”
“예. 그러셨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때로는 식기 전 에 마셔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지. 이 커피처럼 말이야.”
혹왕이 커피잔을 살짝 밀어낸다.
그의 시선이 창밖으로 고정되었 다.
“ 다만••••••
그의 입가가 미묘한 호선을 그렸 다.
“나는 그를 너무 오래 기다렸지.”
“그래서 그분께도 기다리는 마음 을 조금은 알게 해드리고 싶군.”
“ 하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혹왕이 반쯤 가라앉은 눈으로 말 했다.
“그전에 내가 참기가 어려워질 테 니까 말이야. 나 역시 궁금하니까.”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 그리 알고 있겠습니다.”
“부탁 하나 해도 될까?”
“예. 물론입니다.”
“콜라 한 병 가져다주지.”
“••••••예?”
“어려운가?”
“아, 아닙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 겠습니다.”
남자가 의외라는 얼굴로 흑왕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이전에도 콜라를 마신 적이 있던가.
하나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다.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는 방을 빠 져나갔다.
조금 뒤,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고용인이 흑왕의 앞에 콜라와 얼음 잔을 놓고 나간다.
흑왕이 가만히 시선을 내려 콜라 캔을 응시했다.
“말해봐야 모를 거야.”
“알 리가 없지.”
흑왕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당연히 알 리가 없는 일이다.
콜라 캔을 딴 혹왕이 콜라를 쭉 들이켰다. 그러고는 조금 무표정한 얼굴로 콜라를 내려놓았다.
탁.
가만히 콜라를 바라보던 흑왕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배려에 감사한다라……
남들이 듣기에는 그저 감시를 하 며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흑왕의 귀에는 그 말이 그런 의미로 들리지 않았다.
“너무 변해 버리셨군.”
낯설게 말이다.
배려라니.
과거의 적천마존이라면 결코 입에 담지 않았을 말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 하던 흑왕이 손을 뻗어 인터폰을 눌 렀다.
[예.]“한국으로 가는 티켓.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인터폰에서 손을 뗀 혹왕이 비틀 린 미소를 지었다.
“여유 있는 척 지껄여 대놓고는 꼴사납군.”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더는 참기가 어려우니까.
* * *
“콜라 좀 그만 마셔!”
“이 썩어, 이! 아니, 이 인간은 저 렇게 콜라를 달고 사는데 왜 이가 저리 하얗지?”
배를 긁적이는 강진호의 복근을 본 강은영의 이마에 핏대가 돋았다.
지금까지야 그냥 그러려니 했지. 강진호도 나름 열심히 살던 사람이 니까.
하지만 소파에 드러누워 굴러다닌 지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도, 저 복근의 데피니션이 유지가 된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린 가.
‘세상은 불공평해.’
그녀는 활동기만 되면 헬스장에서 몸을 지옥같이 굴려야 겨우 배에 살 이 사라지는데, 심지어 그것만으로 도 축복받은 몸이라는 말을 듣는 사 람인데, 저 아저씨는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런데……
“옹?”
“요즘 들어 갑자기 콜라 너무 많 이 먹는 것 아냐? 전에는 한동안 입에도 안 대더니.”
“……딱히 안 먹으려 한 건 아니 고.”
“음‘?”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내려 손에 들린 콜라 캔을 바라본다.
“옛날 생각이 나서.”
“대체 무슨 옛날 생각이 나면 콜 라가 땡기는 건데?”
강진호가 웃어버렸다.
“그러게.”
“여하튼 적당히 먹어. 몸에 좋을 것 없어.”
“알겠습니다.”
강진호가 콜라 캔을 테이블에 올 렸다.
“흐음.”
딱히 의식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옛 생각을 하며 그때의 감정이 조금 옮아온 모양이다.
“은영아.”
“응?”
“내가 있어서 좋아?”
“……곱게 미쳐 주시면 감사하겠 습니다, 강진호 씨.”
“……네.”
강은영이 오만상을 찌푸리고 방으 로 향하자, 강진호가 피식 웃어버렸 다.
강은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강 진호는 강은영을 볼 수 있어 행복하 다. 적어도 첫 번째 삶에 비한다면
강은영은 백배는 더 행복해 보이니 까.
물론 그건 강은영만은 아닐 것이 다.
‘나도 과거에는 비할 수 없이 행 복해졌지.’
강진호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래.
그는 행복해졌다.
하지만…….
그가 만약 정말 청마라면?
그는 지금 껏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가?
‘어째서 그가 이 시대에 살아 있
는가’보다 그쪽이 더 궁금했다.
강진호가 과거보다 행복해진 것처 럼 그도 과거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고 있을까?
의문은 많지만, 그 모든 의문은 그를 직접 만나기 전에는 풀리지 않 을 것이다.
살짝 얼굴을 주무른 강진호가 심 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라 고.”
이쪽도 더는 참아주기 힘드니까 말이다.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 든 강진호
가 휘적휘적 걸어 집 밖으로 나갔 다.
아무래도 오늘은 쉽게 잠들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