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95)
마존현세강림기-1797화(1794/2125)
마존현세강림기 73권 (6화)
2장 이어지다 (1)
“회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요?”
“그렇다니까.”
이현주가 살짝 크게 뜬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그럴 분이셨나요?”
“물론 그럴 분이 아니셨지.”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건 언제든 변 하기 마련이니까.”
“음, 하기야……
생각해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이현주가 강진호를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의 강진호는 거의 다른 사 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변하는 건 당연하지.’
강진호가 기이한 것은 시간과 상 황을 고려해 보면 극단적으로 바뀌 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 옆에 있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변하 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었
다.
“미래 먹거리라……
“……그것참 기업 같은 표현이군.”
“맞는데요, 뭐.”
“절묘하다는 거지.”
이현수가 피식 웃고 말았다.
미묘하게 다르긴 하지만, 틀린 말 은 아니었다.
“좋은 변화라고 생각해요.”
“ 응?”
“저는 한 번씩 회주님이 등산가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등산가?”
“네.”
이현주가 턱을 괴며 말했다.
“그게 꼭 회주님에게만 통용되는 말은 아니죠. 무인이라는 사람들의 삶이 다 그러니까. 누구나 최고가 되기를 바라고, 더 높은 경지에 오 르기를 바라죠.”
“그렇지.”
“그런데 거기에 목적이 별로 없거 든요.”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뭐랄까…… 내가 더 강해지고 더 높은 경지에 올라서 뭔가를 이뤄 보 겠다가 아니라, 그냥 강해지고 싶다 는 거죠.”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등산가들이 말하는 ‘산이 거기에 있어서’인가?”
“그렇죠.”
그저 산이 좋아서 산을 오르는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처럼 무인들 은 더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에 인생 의 모든 것을 건다.
그 노력과 열정을 다른 곳에 투 자한다면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 번 무학에 홀린 이들은 고개를 돌릴 줄 모른 다.
“처음에는 저도 그게 너무 당연하
다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저도 무인 이었으니까. 그런데 더는 못 올라가 겠다 싶어서 산을 내려오니까…… 느껴지더라고요, 왜 그랬어야 했나.”
« Q.99
M..•
뭔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 서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었다.
아마도 이현수는 무인이 아니기에 이현주의 말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려는 건지는 이해했다.
“그래서 회주님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죠.”
“ 뭘?”
“이 사람이 정상에 서버리면, 그
다음에는 대체 뭘 할까?”
이현주가 커피 잔에 든 빨대를 휘적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 오르지 못하니까. 정상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불과 한 줌뿐이니 까. 대부분의 무인들은 산을 오르다 생을 마치죠.”
이현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 다.
“하지만 회주님은 거기에 올라 버 리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정상에 서 고는 거기에서 더 큰 산을 찾아내고 는 다시 산을 오르죠. 그걸 평생 반 복해 온 거예요.”
“……듣고 있자니, 굉장히 끔찍한 삶인데.”
“그렇죠.”
이현주가 고개를 내저었다.
예전에는 그녀도 그런 삶을 동경 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동경 하지 않는다. 그 길을 걷는 이가 얼 마나 힘들어하는지를 두 눈으로 보 았기 때문이다.
“오르고 또 오르다가 어느 날 더 오를 산이 없다는 걸 알아버린 사람 은 대체 뭘 해야 할까요?”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그건 우리 같은 사람은 아 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겠 지.”
강진호의 고민은 강진호가 아니면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고, 조언조 차 해줄 수 없는 일이었다.
이현수가 턱을 괴었다.
“글쎄, 모르겠어. 나는 그런 것보 다……
“ 네?”
“나는 회주님이 굉장히 강인한 사 람이라고 생각해.”
“그렇죠. 강인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일이죠.”
“예전에 나는 강인함과 유약함이 공존한다는 건 말하기 좋아하는 사 람들이 그냥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 각했어. 회주님 같은 강인함은 적당 히 만들어낸 겉모습으로는 불가능하 니까.”
이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
“어떤 이야기요?”
“미국의 한 댐은 너무 크고 두꺼
워서 내부의 콘크리트가 아직 다 마 르지 않았다는군.”
“아••••••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럴 수 도 있다는 이야기겠지. 그럼 사람들 이 보기에 어마어마한 강인함을 가 진 사람은 사실은 그 내부까지 단단 하게 만들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닐 까?”
“회주님이 그렇다는 건가요?”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이현수가 말끝을 흐렸다.
“단단하다는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겠지.”
“그도 그래요.”
이현수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편 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좋아. 당장 내일 누구 와 싸우고, 누굴 죽여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 같은 거지.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 는 것 자체가 말이야.”
이현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 다.
계략을 짜고 사선 위를 걷는 것 에 그리 큰 거부감이 있는 건 아니 지만, 이왕이면 심적인 부담이 없는 쪽이 좋다.
“미래도 생각해야 하고 말이야.”
“예를 들면 결혼 같은?”
“……응?”
“예를 들면 결혼 같은.”
“예를 들면……
“드, 들었어.”
그러니까 세 번씩 강조 안 해도 돼.
이현수가 덫에 잡힌 쥐 같은 표 정으로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내가…… 어…… 내가 꼭 미루려 는 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 잖아. 회주님이 새로운 걸 생각하시
는..”
“네. 이게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 자는 거잖아요?”
“그, 그렇지. 이건 내 의사가 아 니거든.”
“그걸 끝내면 다시 새로운 문제가 생길 거고……
“그다음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 겠죠.”
이현수가 연신 눈알을 굴렸다.
“그리고 막상 결혼을 준비하면 또 이리저리 잴 게 생기는 거죠. 안 그 래요?”
“하, 하하……
이현주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 다.
“내가 아는 언니한테 들었는데……
“잠깐. 그 아는 언니가 설마 최 씨 성은 아니겠지?”
“뭐, 별 상관 없잖아요. 여하튼 아는 언니한테 들었는데, 너무 똑똑 한 사람은 결혼을 못한대요. 완벽하 게 자신한테 준비된 상황을 기다리 다가 다 놓쳐 버리고 나중에 가서 후회한다 그러거든요?”
“나, 나는 후회 안 할 것 같은 데?”
“내가 한다. 왜?”
이현주가 생글생글 웃었다.
“이리되니까 내가 꼭 매달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영 찝찝하기는 한데 – 뭐, 지금 나도 이거저거 가릴 처 지는 아니니까.”
“아니야. 좀 가려도 돼.”
가려도 되고 말고. 아니, 좀 가리 세요.
“여하튼 그러니까, 이제 날짜 잡 아요.”
“••••••으웅?”
“날 잡으라고.”
이현수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 어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말을 짜 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이현 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섬뜩한 살 기에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순진한 처녀 꼬셔서 지금까지 만 나놓고, 결혼할 때 되니까 슬그머니 발을 빼시겠다?”
“아, 아니, 발을 빼는 게 아니 라…… 아직 그때가 아니라 이거 지.”
이현주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 었다.
“아니. 지금이 그때예요.”
“좋은 말로 할 때 날 잡아요. 아 니면 내가 왜 이씨 집안 손녀인지 알게 될 테니까.”
차마 나도 이씨라는 말은 하지 못한 이현수였다.
와그작.
“……뭘 그걸 끝까지 먹고 있어 요?”
와그작.
강진호가 마지막 팝콘을 입에 털 어 넣었다.
“영화는 어땠어요?”
K 으 »
“재밌었어요?”
U 으 99
“……님, 주무심?”
“아니, 다 보긴 봤어요. 봤는 데……
강진호가 뒷머리를 긁었다.
아직 그는 영상물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재 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뭐가 더 재
미있고, 뭐가 더 재미가 없는지를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다만…….
‘상관없지.’
영화가 재미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영화를 함께 본다는 게 중 요한 거다.
이제는 강진호도 그런 사실을 알 고 있었다.
“팝콘은 맛있었어요.”
“진호 씨, 그러다 돼지 돼요.”
“ 네?”
“……아니, 내가 말실수를 했어 요.”
그럴 리가 없지, 그럴 리가.
최연하가 강진호의 얼굴을 탄히 바라보았다. 안경과 마스크를 쓴 얼 굴에서 딱히 느껴질 게 있을 리 없 지만, 그녀에게 그런 건 그리 중요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아니, 그냥.”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내 남자, 참 사람 됐다 싶어서.”
“살다 보니 진호 씨하고 영화를 보는 날도 오네요.”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물론 아직은 이런 상황들이 강진 호에게 큰 감흥을 주지는 못한다. 여전히 그는 이리 영화를 함께 보는 것보다는 드라이브를 하는 쪽이 좋 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보 다는 마주 보는 쪽을 선호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안다.
좋아하는 것만을 하다 보면 세상 은 그만큼 좁아진다.
그가 즐길 수 있는 세상은 무학 에만 있지 않고, 강해지는 것에만 있지 않다.
아직 그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 들 중에서는 어쩌면 무학의 길 이상
으로 그를 즐겁게 만들어줄 것이 있 을지 모른다.
그러니 낯설더라도 한 걸음씩 가 야 한다.
결국은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그럴 가능성이 더 높 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지금 이 시 간들도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또 오실 생각은?”
“다음에는 드라마로.”
“웅? 내가 일부러 액션 영화 예 매했는데? 당신 좋으라고?”
“……하품이 나와서.”
“너무 느려요. 어설프고.”
아…… 그렇겠네.
새삼 이 인간이 평범한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최연하가 빙 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봐요. 나는 액션 좋아하 거든.”
“왜요?”
“……느긋하게 연기하고 있는 걸 보면, 관객으로 못 봐. 연구해야 돼.”
“아••••••
최연하와 강진호가 떨떠름한 얼굴
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직업이 직 업이다 보니 적당한 영화를 선정하 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럼 영화관은 포기하죠.”
“동감이에요.”
최연하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 다음은 노래방! 진호 씨, 노래방 가본 적 있어요?”
“……몇 년 전에 한 번 가봤는 데.”
“그러고는 안 갔다고?”
“네. 딱히 갈 이유가 없어서.”
최연하가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노래방 가죠! 진호 씨, 노래 좀 해요?”
“……일단 아는 노래가 없는데. 최연하 씨는요?”
“후후후, 내가 예전에 가수로 데 뷔할 뻔했다는 말을 했나?”
“오 ?”
강진호가 놀랐다는 눈으로 최연하 를 바라보았다.
“작곡가가 와서 노래 실력 체킹해 보고는 그날 바로 엎어졌죠.”
“내가 그때 그 양반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아직도 못 잊어. 그러
니까 진호 씨는 표정 관리 잘하고.”
“……네.”
“가요!”
최연하가 앞장 서서 성큼성큼 걸 어갔다.
그런 최연하의 뒷모습을 보며 강 진호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즐겁냐고?
글쎄…….
그런 건 아직 잘 모르겠다. 이런 평범한 삶에서 확연한 즐거움을 느 끼기에 그의 감정은 너무 무뎌졌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 평온하군.’
굳이 과하게 즐겁지 않더라도 이 시간을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 하지 않을까?
오후의 나른한 햇살을 받는 것처 럼 더없이 평온한 얼굴을 한 강진호 가 미소 지으며 최연하를 쫓아 걸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