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99)
마존현세강림기-1801화(1798/2125)
마존현세강림기 73권 (10화)
2장 이어지다 (5)
어떤 이와 함께한 기억은 그와 함께 들은 노래에 머무르고, 어떤 이와 함께한 기억은 그와 나눈 대화 에 스며든다.
하지만 강진호가 가진 원장 수녀 님에 대한 기억은 바로 이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소리를 지르고, 울어 대는 아이들 을 돌보면서도 단 한 번도 미소를 잃지 않던 사람.
강진호에게 육체의 강함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준 사람.
그렇기에 그립고.
그렇기에 조심스럽다.
“좀 이상하긴 하다. 그렇지?”
“ 음?”
박유민이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 다.
“사실 원장 수녀님은 수녀잖아.”
“……그게 왜?”
“수녀님을 보고 싶으면, 성당으로
가야 하는데 말이야.”
강진호가 눈을 끔뻑였다.
“그러네……
그 빤한 사실이 이상하게도 새삼 스레 들리는 이유는 그들이 원장 수 녀님을 그저 종교인으로서 이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와서 이러는 게 좀 이상한가 싶기도 하고……
박유민의 말에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응?”
“수녀님도 그걸 바라진 않으실 거
야.”
그 말을 들은 박유민이 살짝 고 개를 돌려 거실을 바라본다.
“……그래. 그러실 거야.”
스스로 신을 모시는 입장임에도 원장 수녀님은 단 한 번도 아이들에 게 종교를 강요한 적이 없었다. 그 런 수녀님인 만큼 그들을 맞이하는 곳은 이곳이어야 할 것이다.
“좀 무심했네.”
“이제 와서?”
“아니.”
박유민이 고개를 저었다.
“애들도 데리고 올 걸 그랬어. 애
들도 오면 좋아할 텐데.”
그 말을 들은 강진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혼나도 할 말 없네.”
그들이 원장 수녀님을 그리워하는 만큼 아이들도 원장 수녀님을 그리 워할 것이다. 박유민이나 강진호는 성인이 되어 그분과 이별했지만, 다 른 아이들은 아직 부모가 필요할 때 강제로 헤어져야 했으니까.
박유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 진호야.”
“웅‘?”
“이제 와서 말하는 건데……
박유민이 살짝 뜸을 들이고는 입 을 열었다.
“수녀님이 계시긴 했지만, 나는 여기가 그렇게 그립지 않았어.”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돌려 박유 민을 바라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정말 여기가 그리웠으면 그새 몇 번은 와 봤겠지. 그런데 다들 여길 잊은 듯 살잖아.”
“그렇지……
박유민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수녀님이 있어서 행복했다. 그래 도 우리는 다들 서로를 보듬고 살았 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실제로 그게 아니라는 걸 다들 알고 있는 거지.”
“아이들은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할 거야.”
박유민이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본다.
“그래서 고마워, 진호야. 네 덕분 이야.”
“쓸데없는 소리 한다.”
“아냐. 뭐, 그렇다고 네가 원장
수녀님보다 낫다는 뜻은 아니니까.”
박유민이 성격이 좀 이상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강진호였다.
“수녀님은 그때 우리에게는 부모 님이고, 또 유일하게 기댈 곳이었어. 수녀님이 있는데도 힘들었던 게 아 니라, 수녀님이 있어서 그 정도로 참아낼 수 있던 거지.”
U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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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박유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릴 때는 항상 수녀님을 보면서 생각했어. 아, 나도 저런 사람이 되 어야겠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그
저 베풀고, 한없이 의지가 되어주는,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강진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 다.
그분을 보며 자란 사람이라면 누 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 힘든 거더라.”
박유민이 씁쓸하게 웃었다.
“나이를 먹고 사회에 나와보니 알 겠더라. 수녀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 이었는지. 조금씩 가까워는 게 아니 라, 가면 갈수록 오히려 더 멀어지
는 느낌이야.”
“너는 잘하고 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려고는 하는 데……
박유민이 뒷머리를 긁었다.
“모르겠다. 어떻게 그렇게 사실 수 있었는지. 진호야,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 애들하고 같이 자란 나도 그렇게 할 수 없는데……
“그래서 존경스러운 거지.”
강진호가 옅게 웃었다.
존경이라…….
강진호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이 아니고서는
원장 수녀님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 을 표현할 길이 없다.
“내가 있었다 한들 원장 수녀님이 없었으면 지금 같지는 않았겠지.”
“……그랬겠지.”
당시의 강진호도 지난 삶의 강진 호와는 많이 달랐지만, 원장수녀님 을 만나지 못했다면 과연 강진호가 지금 같이 변할 수 있었을까?
‘아니겠지.’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 모두 시작 됐다.
박유민을 만나고, 아이들을 만나 고, 수녀님을 만나…….
강진호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 지 않았더라면 강진호는 여전히 가 족만을 부여잡은 채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삭막한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박유민과 아이들이, 그리고 원장 수녀님이 그의 삶을 바꾸었다.
강진호가 총회를 바꾼 것처럼.
어쩌면 삶이란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인해 크게 변해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원장 수녀님의 유지를 이을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웅‘?”
“근데 어느 순간 보니까 내가 아 니라 네가 원장 수녀님이 하시던 일 을 대신 하고 있더라? 세상에, 그 강진호가.”
“……너, 성격이 많이 나빠졌다.” 애가 만날 캐릭터 죽이는 게임만 해 서 그런가, 뭔가 좀 예전하고는…….
“그런데 뭐 그리 이상하진 않아. 너는 원래 그런 놈이었잖아.”
“웅? 내가?”
박유민이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 다.
“네가 나 도와줄 때도 이유는 없
었잖아.”
“그래서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해. 아, 그렇게 이유없이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구나. 나 같은 사람이 그리되려면 좀 더 노력을 해 야 하는 거구나.”
“아니야.”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수녀님하고는 다르지.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한 거야.”
“수녀님도 할 수 있는 걸 한 거 지. 그냥 그 ‘할 수 있다’의 기준이 남보다 좀 넓은 거고.”
“수녀님은 그런 사람이었어. 자신 이 할 수 있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 조금만 여력이 있으면 먼저 가서 사람을 돌보려 하는 사람.” 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참 대단하신 분이야. 아무리 따 라 하려 해도 흉내도 못 내겠어.”
박유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수녀님이 계셔서 내가 이만큼 살 수 있었어. 그리고 지금 보육원 아 이들은 네가 있어서 나름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거지.”
강진호가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박유민이 틈을 주지 않고 선수를 쳤 다.
“그러니까 나도 열심히 하려고.”
“죽는 그날에, 단 한 사람의 입에 서라도 박유민이 있어서 행복할 수 있었다는 말을 들어보고 싶어. 수녀 님처럼은 어림도 없겠지만, 나도 내 나름은 최선을 다 해봐야지.”
박유민이 강진호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좀 건방진가?”
강진호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웃음이 너무도 멋져 보였으니 까.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다들 그렇겠지.”
“응‘?”
“진성이도 그렇고, 미혜도 그렇고, 다른 아이들도 그래. 다들 어떻게든 남을 도우려고 하잖아.”
조미혜는 스스로 알아서 보육원의 안살림을 떠맡고 있다. 보육교사들 이 있어서 굳이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말이다. 한진성은 어떻
게든 좋은 학교에 가서 보육 교사가 되려 애쓰고 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원장 수녀님이 뿌린 씨앗은 지금 이 순간에도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돈을 써 댄다고 한 들 애들을 편하게 만들어줄 수는 있 어도 바르게 자라도록 해줄 수는 없 어.”
“그건 내 몫이 아니겠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 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강진호를 더없이 강한
사람이라 말한다. 하지만 강진호에 게 있어서 강함이란 그런 게 아니 다.
사람으로서의 강함.
그 강함에 있어서 강진호는 원장 수녀님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 다.
“그래…… 따라잡을 수 없지. 한 참 멀었지.”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길 잘했다.”
“응?”
“……잘했어.”
강진호가 살짝 눈을 감았다.
이곳에 오니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생각이 난다. 이어지 는 전쟁 때문에 잊고 미뤄둔 것들이 이제야…….
‘바보 같네.’
잊어도 되는 일들이 아닌데 말이 다.
‘싸우고 죽이고…… 그런 게 전부 가 아니야.’
여기에 있었다.
그가 정말 놓지 말아야 했던 것 들이 말이다.
강진호를 강진호로서.
무인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서 의 강진호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청소 한 번 할까?”
“ O ”
M..•
박유민이 볼을 긁었다.
“이상하게 이대로 두고 싶네. 깨 끗해지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뭔가 좀 아쉬울 것 같다고 해야 할 까?”
“나도 그래.”
평온함을 깨는 느낌이 될 것 같다.
강진호가 가만히 보육원 안을 바 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 가자.”
“응? 벌써?”
“충분해.”
그 사람은 그가 여기에서 이리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걸 원하지 않 을 테니까.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강진호가 해야 할 일도 분명 있을 것이다.
추억을 돌아보는 것은 좋지만, 감 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제 손을 움직이지 않는 이는 그 저 방관자일 뿐이니까.
“할 일이 많아졌네.”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다른 보육원들도 한 번씩 돌아봐 야겠다. 그리고 원래 추진하려던 일 들도 하루빨리 시작해야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는 세상을 어지럽혔다.
그 때문에 죽지 않아야 할 이들 이 죽어갔을 것이고,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멈춰서 우는소리를 할 이유는 없다. 그가 저지른 것보 다 더 많은 것을 지금부터 이뤄갈 수 있을 테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생길 때까지 기
다리는 게 아니다.
‘ 먼저.’
그렇게 말하셨지.
“네가 먼저 손을 뻗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겠니?”
그 말을 생각할 때마다 강진호의 대답은 항상 달랐다.
하지만…….
하지만 이제는 당당히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요, 원장님.’
그렇게 될게요. 그렇게 할게요.
눈을 감고 앞으로 나가려던 강진 호가 고개를 뒤로 홱 돌렸다.
그러고는 떨리는 눈으로 멍하게 보육원 안을 바라본다.
“ 진호야?”
“••••••아니.”
멍한 눈으로 보육원을 바라보던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박유민의 어깨를 한 번 툭, 친 강 진호가 말없이 보육원을 나섰다.
– 고맙구나.
환청이 겠지.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문을 열고 나온 강진호의 위로 따뜻한 햇살이 내리쬔다.
“바빠지겠네.”
“응?”
강진호의 입가에 근사한 미소가 머물렀다.
“갈 곳이 없는 것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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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산이 있었어.”
“……뭔 소리야, 자꾸?”
“아니야. 가자.”
강진호가 펜스 위로 올라가 박유 민에서 손을 뻗었다.
박유민이 피식 웃고는 그런 강진 호의 손을 맞잡는다.
어쩌면 더 험하고 힘든 길.
하지만 그렇기에 의미가 있는 길 일지도 모른다.
‘거창하지 않아도 돼.’
그저…….
먼저 손을 뻗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충분하다.
박유민의 손을 꽉 잡은 강진호가 그를 힘껏 끌어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