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00)
마존현세강림기-1802화(1799/2125)
마존현세강림기 73권 (11화)
3장 짊어지다 (1)
“표정이 조금……
“네?”
“아니, 표정이 아니라 인상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조금……
조규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강진 호를 바라보았다.
뭐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
이지만, 조규민은 강진호의 인상이 변했다는 느낌을 확연하게 받았다.
더 환해졌다거나, 더 무거워졌다 거나.
그런 단순한 말로 설명할 수 있 는 변화가 아니다.
굳이 조악한 단어를 맞춰보자면 더 ‘깊어졌다’ 정도가 맞겠지만, 그 걸로도 설명이 완벽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조규민이 볼을 살짝 긁었다.
강진호에게서 여유가 느껴진다.
이건 참 기이한 일이었다.
예전의 강진호는 말 그대로 길들 여지지 않은 맹수 같았다. 물론 그 이빨을 이리저리 들이대지는 않지 만, 함부로 손을 대는 순간 바로 목 줄을 물어뜯을 것 같은 야성이 있었 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뭐랄 까…….
사람.
그래, 사람 같다.
느긋하게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 는 사람.
보이는 그대로 말이다.
“뭔가 묘하네요.”
“아까부터 사람을 앞에 두고 품평 을 하시는데……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단호하게 고개를 숙이는 조규민을 보며 강진호가 민망해했다.
아, 이현수가 아니지.
이현수라면 이런 말 정도는 능글 맞게 받아넘겼을 텐데.
주름 한 점 없는 슈트를 입은 조 규민이 빙긋 웃으며 강진호를 바라 보았다.
“여하튼 밝아 보이셔서 다행입니 다.”
“감사합니다, 실장님.”
조규민이 슬쩍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회장님은 지금 회의 중이시 라……
“괜찮습니다. 회장님을 만나러 온 게 아니니까요.”
“음, 역시나 보육 재단 때문에?”
“예.”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 다.
“안 그래도 보유원에 들르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관리가 잘되고 있더군요.”
“신경 좀 썼죠.”
조규민이 미소를 짓는다. 칭찬을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역시나 윗사람에게서 인정받을 때는 기분이 좋은 법이다.
강진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제 슬슬 일을 좀 해야 할 때 같아서……
조규민이 흥미롭다는 눈으로 강진 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는 딱히 이래라저래라 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때때로 커다란 일 거리를 들고 온다.
‘안 그래도 좀 심심하던 차였는
데.’
그의 일이 전문화되면서 회사에서 그가 맡고 있는 일이 꽤 줄어들었 다. 그러다 보니 슬슬 남는 시간이 생기던 차였다.
“뭘 하실 셈이십니까?”
“재단을 다시 재정비할 겁니다.”
“ 재단을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육원 자체는 꽤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보육 교사님 들이 힘을 써준 덕이라 계속 이런 방식을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 죠.”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최근에 느낀 건데……
강진호가 살짝 어색한 얼굴을 했 다.
자신의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하 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개인이 노력하는 것과 시스템을 바꾸는 것.”
강진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작은 영역일 때는 개인의 노력이 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일은 조금 다릅니다.”
“……세상에.”
조규민이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면 조규민은 절대 놀라지 않 았을 것이다. 이건 너무도 당연한 정론이 니까.
하지만 그 말이! 그 정론이 다름 아닌 강진호의 입에서 나왔다는 건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조규민이 안경을 벗고 눈가를 훔 쳤다.
“드디어 사람답게 말하실 수 있게 되셨군요. 이 이사장 대리는 더없이 기쁩니다.”
순간, 강진호의 눈썹이 꿈틀꿈틀 경련했다.
“여하튼 그래서……
한번 한숨을 내쉰 강진호가 말을 이었다.
“유명무실한 재단 사무실을 제대 로 한번 만들어보려 합니다.”
“……재단 사무실을요?”
“네.”
“ 흐음.”
조규민이 볼을 긁었다.
애초에 법인을 설립할 때, 사무실 을 만들어두기는 했다. 하지만 웬만 한 일은 보육원에서 직접 처리하거 나 조규민이 알아서 해결하다 보니 사무실은 거의 비어 있는 실정이었 다.
“강진호 씨, 사무실을 제대로 만 든다는 게 어떤 의미이신지? 거기에 일을 처리할 사람들을 고용해 사무 실을 제대로 운용하시겠다는 뜻입니 까?”
“아니요.”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 작은 사무실 말고, 재단 건물 을 임대할 겁니다. 그러고 나서 제 대로 보육원들을 지원하려고요. 제 가 없어도 재단 자체만으로 돌아갈 수 있게.”
조규민이 눈을 크게 떴다.
“혹시?”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재단에서 손을 떼겠다는 게 아니라.”
“아아, 이해했습니다.”
말은 이해했지만, 이유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사실 조금 전 강진호 씨가 말씀하셨다시
피 지금 보육원들은 추가적인 인력 없이도 나름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대한민국에 있는 어떤 보육원 들보다 훌륭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네, 그렇죠.”
“한데 여기에서 굳이 필요 없는 인력을 고용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무실이라는 형식이 필요하시면 각 보육 재단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사무 인력들을 차출하여 사무실에 모으는 형태도 가능합니다만……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걸로는 안 됩니다.”
“어째서입니까?”
“제가 하려는 건 지원이 아니거든
요.”
강진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새로운 분야 를 고민할 수 있으려면 여력이 있어 야 합니다. 지금 자신의 업무가 바 쁜 이들을 한데 모아놓는다고 시간 을 쪼개가며 일하지는 않죠.”
조규민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얼마 전까지는 그걸 하라고 하시 던 분이 본인이면서.’
황정후도 못 말릴 근성론주의자이
지만, 강진호에 비하면 복지 천사다.
조규민이 보기에는 강진호야말로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꼰대였다. 그 런데 지금 그 꼰대가 조규민이 보기 에도 선진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 다.
“어떤 지원을 할 생각이십니까?”
“그건 사무실을 꾸리며 생각해야 죠.”
“••••••예?”
조규민의 물음에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담배를 꺼냈다.
“피워도 됩니까?”
“……별걸 다 물으시네요. 진짜
사람이 죽을 때가 된 것도 아닐 텐 데.”
떨떠름한 얼굴을 한 강진호가 담 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짧게 담배 연기를 내뿜은 강진호 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사실 저는 보육원과 인연이 있어 적당히 옆에서 지켜본 것뿐이지, 그 런 쪽에 전문가가 아닙니다.”
“확실히 그렇죠.”
“그런 제가 방향을 정한다는 건 이상한 거죠. 저보다 더 알고 저보
다 더 많이 고민하는 사람들을 모으 고 싶습니다. 그럼 그 사람들이 저 보다 나은 생각을 해내겠죠.”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여유를 제 공하는 걸로 충분하죠.”
조규민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니까 그 말씀인즉슨……
뭔가 말을 하려던 조규민이 한차 례 머뭇거리더니 신음을 흘리듯 말 했다.
“강진호 씨는 맘 편하게 돈을 내 시고. 저는 그 돈을 받아 여유를 가 질 수 있으면서도 절대 돈 먹고 처
놀지 않는 열정을 가진 이들을 선별 해서 재단에 밀어 넣어라?”
어?
그게 그렇게 되나?
조규민의 얼굴이 파들파들 떨렸 다.
“그…… 어…… 아니, 뭐, 제가 물론 강진호 씨를 모시고 살기로 결 심한 몸이라지만, 그래도 나름 재경 에서 월급 받는 몸인데……
“아, 안 그래도 그 문제 역시 해 결하려고 합니다.”
“••••••예?”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모양이 좀 이상하긴 하죠. 앞으 로도 계속 제 업무를 처리해 주셔야 하는데 재경 소속이라니.”
이 이상하게 꼬여 버린 상황은 결국 황정후와 강진호의 관계 때문 에 벌어진 일이다. 황정후는 강진호 를 아들처럼 여기는 동시에 어려워 한다.
그리고 강진호도 황정후를 더없이 친하게 여기는 동시에 존중하는 면 이 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만 있어서는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황정후가 재경과 강진호를 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조규민을 재 경에 눌러 앉힌 것이다.
“이 기회에 이직하시죠.”
“……재단으로 가면 됩니까?”
“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장 아래의 대표이사 자리를 신설하겠습니다. 재단 대표이사로 오시죠.”
조규민이 눈을 끔뻑였다.
요즘 재경에서 그가 하는 일이 애매해지다 보니 그 역시 생각하고 있던 일이다. 하지만 그걸 강진호가
먼저 말해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 지 못했다.
강진호는 딱히 문제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굳이 기존의 체계를 뒤흔 드는 사람이 아니니까.
“대표이사요? 제 나이가 몇인 데……
“제가 이사장인데 문제없죠.”
“그, 그렇긴 한데……
너무 황당한 제안이라 뭔가 말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
“복지 재단 쪽만 맡기에는 애매하 다 싶으시면, MK에 자리 하나 마 련해 드리겠습니다. 체력이 남으시
면 양쪽 업무를 동시에 보셔도 됩니 다.”
“둘을요?”
“네. 문제라도?”
“그……
조규민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입을 열었다.
“……그럼 월급도 두 배로 주십니 까?”
“아, 아니면 절반이라도?”
“……두 배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강진호 씨! 아니, 이 사장님! 제가 신명을 바쳐 일하
겠……
쾅!
그 순간, 문이 부서져라 열리더 니, 황정후가 버럭 고함을 지르며 안으로 들어왔다.
“이 베은망덕한 것들이! 하다못해 남의 회사 회장실에서 배반질을 해?”
조규민이 움찔하여 고개를 슬쩍 돌렸다.
저 앞쪽에 놓여 있는 ‘회장 황정 후’라는 명패를 보니, 뭔가 잘못을 해도 크게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여기서 할 말은 아니지.’
하지만 강진호는 태연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저, 저……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어, 호랑이 새끼를!”
강진호가 빙긋 웃옸다.
“제가 누가 키워주고 어쩌고 할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뭐?”
황당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본 황정후가 손에 든 지팡이를 바르르 떨었다.
“끄으으응,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이내 수긍하고는 터덜터덜
걸어와 소파에 앉았다.
“안 돼.”
“그냥 내주십쇼.”
“아! 안 된다니까!”
황정후의 지팡이가 허공을 누볐다.
“너도 내 나이가 되어봐! 이제는 혼자서 안경도 못 찾아! 그런데 늙 은 놈 수족을 빼앗아가겠다고? 네가 양심이 있는 놈이냐, 양심이?”
“거, 정정해 보이시는구만.”
“에라이, 이 썩을 놈아!”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억압하기도 하는 거
죠. 실장님을 비서실장 자리에 앉혀 두고 묵히는 건 낭비입니다. 정 그러 시면 사장 자리 하나 빼주시든가요.”
“ 사장?”
황정후가 눈을 부릅떴다.
“이놈이 뭐 벌써 사장이야! 아직 한참 멀었어!”
“저는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놓아주십시오. 회사는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키워 야 하는 거죠. 실장님이 평생 회장 님 비서로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황정후가 묘한 표정으로 강진호와
조규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끄응, 여하튼 젊은것들은.”
“안 젊은데.”
“몸이 젊잖아, 몸이!”
황정후가 새하얀 머리를 벅벅 긁 으며 말했다.
“몇 년만 더 지켜보다가 경영 수 업을 시키려고 했는데……
“그럼 몇 년 참아보겠……
“일없어, 이놈아! 얼른 짐 싸!” 황정후가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한 회사에서 볼 수 있는 건 한계 가 있는 법이야. 그놈의 재경맨이 어쩌고 하는 놈들이 다 망해 자빠진
이유가 있는 거지.”
“가서 많이 보고, 많이 배워. 그 러고도 재경으로 돌아오고 싶다면, 그때는 내가 받아주지.”
감동한 눈으로 몸을 떠는 조규민 을 본 강진호가 슬쩍 입을 열었다.
“그럼 자제분도 회사로 돌려
“나가, 이놈아! 나가아아아아!”
자신이 아직 정정하다는 걸 증명 이라도 하듯, 황정후의 커다란 고함 소리가 재경 건물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