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04)
마존현세강림기-1806화(1803/2125)
마존현세강림기 73권 (15화)
3장 짊어지다 (5)
“그……
이현수가 슬쩍 강진호의 눈치를 살폈다.
‘ 이상하네.’
조금 전 회의에서 사자후를 토해 낸 것치고는 강진호의 표정이 그리 무겁지 않다. 되레 평소보다 조금
더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저기……
“음?”
직접 내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던 강진호가 무슨 일이냐는 듯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화나신 것 아니었습니까?”
“ 화?”
“ 예.”
“내가 왜?”
심드렁한 얼굴을 한 강진호가 손 가락을 까딱댔다.
“아니, 뭐, 말하자면 화는 좀 났
지. 그런데 그건 거기까지고, 굳이 계속 화를 낼 필요는 없지.”
저기요, 회주님?
예전에는 안 그러셨거든요?
예전에는 한 번 빡치시면 뒤끝이 사흘은 갔는데, 어쩌다가 그리 담백 해지셨습니까?
이상하다. 이 양반이 이런 양반이 아닌데…….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고.”
강진호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소 파에 둥을 기대자, 이현수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했다.
“……솔직히 말씀해 보시죠.”
“응‘?”
“회주님도 풀어져 노셨는데, 괜히 이사님들만 닦달하려니 민망해서 그 러시는 것 아닙니까?”
강진호의 눈이 이현수를 짓밟았 다. 그러자 이현수가 슬그머니 강진 호의 시선을 피했다.
“크홈.”
강진호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저 인간은 한 번씩 아픈 데를 쿡 쿡 찌른다니까.’
강진호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사실 그가 느낀 허무함을 다른
이사들이라고 느끼지 않을 리가 없 다. 심지어는 이사들이 아닌 평범한 총회의 회원들도 갑작스레 적이 사 라져 버린 상황에 탈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무렇지도 않다 는 듯 평상심을 유지하는 이현수가 이상한 거지.
“이해하는 건 이해하는 거고, 다 잡을 건 다잡아야지.”
“물론입니다.”
“그래서……
강진호가 이현수를 빤히 보며 말 했다.
“생각한 게 전혀 없어?”
“끄응, 그게……
이현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게 생각보다 단순한 일이 아니 더라고요. 총회 자체를 사업체로 변 화시킨다든가 다들 다른 일을 하게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무인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며 다른 일을 하게 만드는 거죠.”
“그렇지.”
“그런데 이게 또 여기서 둘로 나 뉘는데……
이현수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 갔다.
“무인으로서 수련을 하면서 다른 일을 가질지, 그러니까 투잡을 할지, 그게 아니면 무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지.”
“이게 영 정하기가 쉽지 않습니 다. 이걸 정해도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첫 산부터 난관입니 다.”
이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떻게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은 참 옳은 말이다. 하지만 막상 시행하려다 보니 왜 이중걸 같은 인 간이나 삼왕계의 괴물들까지 이런
일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않았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솔직히 이건 답이 없는 문젭니 다.”
“답이 없다고?”
“예.”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왜냐면 이건 총회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무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 입니다. 저 양반들이 큰돈 벌어 성 공하고 싶었으면 사업을 하고, 안정 적으로 살고 싶었으면 공무원 시험 을 쳤겠죠. 무인으로 사는 목표가 미래의 안정적인 삶은 아니었을 것
아닙니까?”
“심지어는 군인이라는 가장 완벽한 대체 선택지가 있는 상황인데도 산골 에 처박혀서 수련하는 양반들입니다. 그런 양반들한테 이제부터 다른 일도 하면서 돈 좀 벌어보자고 하면 이 게…… 하〜 이게 그러니까……
“틀린 말은 아닌데 먹히지 않는 다?”
“그거죠! 예! 그거죠!”
이현수가 반색하며 소리쳤다.
“물론 회주님이 강제로 시키면 어 디 오지에 가서 희귀 동물 잡아오는
일이더라도 군말 없이 하겠죠. 하지 만 그게 정말 승복하고 이해해서 하 는 일은 아니라는 거죠.”
“ Q.”
M..•
강진호가 볼을 긁었다.
내용은 그렇다 치고, 이현수가 이 렇게 울분을 토하며 말하는 걸 보면 확실히 답답한 문제이기는 한 모양 이었다.
다만…….
“어차피 단번에 해결될 거라고 생 각한 적은 없어.”
“네 말대로 앞으로도 그저 무인으
로 살아가고 싶은 이들도 있을 거 고, 다른 삶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 겠지.”
“그렇기는 하겠죠.”
“그럼 거기에서 시작하면 돼. 이 제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이들 이 뭘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 어 하는지부터 알아봐.”
강진호가 턱을 쓰다듬었다.
“네 가장 큰 문제가 그거야.”
“예? 제 문제요?”
“그래.”
“제 문제라뇨? 뭐가……
“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살다 보니 알게 되더라고. 대부 분의 문제는 노력하면 반드시 답을 찾아낼 수 있지만, 어떤 문제는 뭘 해도 답이 없어.”
“회주님 같네요.”
“응?”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늘게 뜬 눈으로 이현수를 노려 보던 강진호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 었다.
“세상에는 그럼에도 반드시 정답 을 찾아내야 하는 이들이 있지.”
“회주님처럼 요?”
“……부정은 못하겠는데.”
사실 강진호에게도 그런 성향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
“완벽한 답을 찾으려는 이들은 답 이 없는 문제를 발견하면 보통 같은 선택을 하더군.”
“……손을 놓는군요.”
“그래.”
이현수는 강진호가 무슨 말을 하 려는 건지 이해했다. 그가 지금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략을 짜내 고 또 짜낼 수 있던 이유는 반드시 답이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답이 없는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면, 이현수가 그토록 머리를 짜낼 수 있었을까?
‘무리지.’
이현수는 자신을 잘 안다.
지금 강진호가 말한 것처럼 차라 리 다른 방법을 찾을지언정, 안 되 는 일을 해내려고 악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걸로 충분했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정답을 찾아내지 못해도 조금 더 나은 방향 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지.”
이현수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 다.
강진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다.
“이번 일은 지금까지처럼 명쾌한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닐 거야. 하 지만 답이 있든 없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지.”
“예, 회주님.”
“노력해. 나도 노력할 테니까.”
이현수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여유가 생기고 달라졌다. 예전처 럼 급하지 않고, 조금 더 논리적이
됐다.
이걸 성장이라 불러야 할까?
글쎄, 잘 모르겠다. 비슷한 느낌 이지만, 강진호에게 성장이라는 말 을 붙이는 건 좀 이상하다.
다만, 확실한 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람으로서 완성되어 있다고 생각한 강진호조차 조금씩 더 나아간다.
그러니 이현수도 총회도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잘하겠다는 말씀은 못 드리겠지 만……
이현수가 빙그레 웃었다.
“더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그래.”
강진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 다.
“그거면 됐다.”
부우우웅.
담배를 입에 문 강진호가 액셀을 조금 더 세게 밟았다.
‘답이 없는 문제라……
이제는 강진호도 안다.
사람은 저마다 저 나름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는 사소하기 짝이 없고, 그냥 무시
해 버릴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있겠 지만, 당사자에게는 한없이 커다랗 고 중요한, 그런 문제들을 말이다.
그런 문제들을 짊어지고 조금씩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이 세상을 채우고 있다.
하루하루 삶을 버텨내며 꿋꿋하게 걷는 이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어제 보다 조금 더 나은 삶, 지금보다 나 아진 자신.
‘다를 게 없지.’
더 강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무 인들이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 하는 평범한 이들이나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다를 게 없다.
강진호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 라간다.
그러니 집착하고 매달릴 필요가 없다.
더는 싸우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는 또 내일을 위해서 노 력할 테니까. 지금보다 더 나은 삶 을 살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사람이란 그렇게 평생 동안 드높 은 산을 올라가는 것이다.
“굴러 떨어지지는 말아야 할 텐 데.”
강진호가 액셀을 살짝 밟았다.
그의 앞에는 수많은 문제가 여전 히 산적해 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런 문제들이 그의 발목을 잡지는 않는 느낌이었 다.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다고 해 도, 노력하고 또 대화하다 보면 언 젠가는 길이 보일 것이다.
설사 그 길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해도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 헤매는 동안 지금과는 또 다른 것을 보게 될 테니,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눈앞의 도로가 조금 더 넓어진
느낌이다.
분명 그의 손은 핸들을 잡고 있 고, 몸은 운전을 하고 있지만, 그의 의식은 차를 넘어 조금 더, 조금 더 퍼져 나간다.
마치 세상과 동화되듯.
강진호의 입에서 낮은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부우우웅.
길가에 차를 댄 강진호가 차문을 열고 내렸다.
그의 눈에 불이 켜져 있는 그의 집이 들어온다.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진호가 담배를 꺼내 물 었다.
저 안에 그의 가족들이 있다.
이 아무것도 아닌 광경을 손에 넣기 위해서 참 먼 길을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는 너무도 쉽게 주어지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 도 힘겨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쉽지는 않다.
힘겹게 손에 넣었기에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저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이들보다 더 소중 하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강진호가 깊이 담배를 빨아들였 다.
이제 말할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적천마존이 아니며, 이 세상을 힘겨워하던 강진호도 아 니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되찾았으며, 또한 과거와는 다른 미래로 나아가 고 있다. 현세에 강림한 마인은 이 제야 현대인 강진호로 완전히 거듭 난 것이다.
그러니…….
“딱 적절한 타이밍이야.”
“그렇습니까?”
그의 집 대문 앞에 기대고 있던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조금 이르지 않을까 걱정했 습니다.”
“적당하지.”
강진호가 희게 웃었다.
“예전부터 너는 인내심이 강한 편 이었으니까.”
사내의 표정이 묘해진다.
미묘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던 사내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많이 변하셨군요.”
“당신에게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고 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확실히. 경 험과 시간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 모 양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 던 당신조차 변하는 걸 보면 말이 죠.”
강진호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맞군.”
“네. 맞습니다.”
사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제가 아니라고 부정한다 고 해도 당신의 눈을 속일 수는 없 겠죠.”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온다.
짙게 드리운 그림자를 벗어난 사 내가 달빛 아래서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강 진호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존이시여. 이제야 당신께 문안을 드리는 제 무 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진호가 사내를 탄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다른 세상인데, 굳이 과 거처럼 굴 필요는 없겠지.”
“물론입니다.”
사내가 환희 웃었다.
강진호가 그 미소를 보며 입꼬리
를 뒤틀었다.
저 웃음.
입은 환하게 웃고 있지만, 눈은 조금도 웃지 않는 저 웃음이 너무도 익숙하다.
“오랜만이다.”
강진호의 목소리가 작게 퍼져 나 갔다.
“ 청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