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07)
마존현세강림기-1809화(1806/2125)
마존현세강림기 73권 (18화)
4장 재회하다 (3)
카페를 나온 청마의 앞으로 검은 세단이 다가와 섰다.
다급하게 운전석에서 내린 사내가 뒤로 달려와 문을 열어 주자 청마가 말없이 차에 올랐다.
탁.
차 문을 닫은 사내가 운전석에
오른다.
“번거롭군.”
“그런 말씀 마십시오. 왕을 모시 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
굳이 대답하지 않고 시트에 둥을 기댄 청마가 고개를 돌려 불이 켜져 있는 카페를 바라보았다.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그러지.”
차가 천천히 출발하고, 청마의 시 야에서 카페가 사라진다.
차가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을 하던 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재회는 어떠셨는지 감히 물어도 되겠습니까?”
“재회라……
청마가 피식 웃었다.
“재회란 언제나 생각과는 조금 다 른 법이지.”
“그 재회를 기다린 시간이 길면 길수록 말이야. 내 머릿속에 있는 사람과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 완 전히 동일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것치고는 조금 즐거워 보이 십니다.”
“즐겁다라……
청마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 갔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아니, 그렇겠 지. 분명 그럴 거야.”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그 다름이 그의 즐거움을 깎아내지는 못했다. 설사 지금보다 더 다른 재회를 겪었다고 해도 청마 의 즐거움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 을 것이다.
강진호와 마주 앉는다는 것만으로 도 그의 목적은 충분히 이뤄졌으니 말이다.
다만…….
청마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시선은 분명 창밖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결코 차창 밖의 풍경이 아니었다.
그보다 조금 더 먼 곳.
어쩌면 아련하기까지 한 곳을 훑 고 있었다.
“모르겠군.”
운전석에 앉은 이가 룸미러를 통 해 청마의 표정을 살핀다. 그가 조 금은 나른해 보이는 얼굴로 입을 열 었다.
“사람이니 변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변하지 않았으면 실망했 을 게 분명해. 하지만 그 변화가 아 쉽게 느껴지는 건 나 역시 사람이기 때문일까?”
청마가 낮은 웃음을 홀렸다. 강진호.
적천마존에 대한 그의 감정은 그 역시도 정확하게 재단하기 어렵다.
한때 그가 모신 주인. 그리고 둘 도 없는 동료. 함께 사선을 헤치고 나간 전우.
그리고 어쩌면 친구.
그 모든 말이 강진호와 그의 관 계를 설명하지만, 그 어떤 말도 강
진호와 그의 관계를 설명하지 못한 다.
“ 아쉽군.”
조금 더 이야기를 해도 좋았을 것을.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이게 그들 의 마지막 만남은 아닐 테니까.
“다만, 왕이시여……
청마가 슬쩍 고개를 들어 앞쪽을 바라보았다.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왕께 서도 개인적인 감정이 있으시다는 건 이해합니다만, 이 중요한 시기에 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저자가 중요
하다고는……
“시간은 썩어 넘치게 있지.” 청마가 비릿하게 웃었다.
“내게 있는 건 시간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리고……
청마가 피식 웃었다.
“네까짓 게 감히 그의 가치를 판 단할 주제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운전을 하던 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용서 해 주십시오.”
“말이 막히는 건 좋지 않은 일이 지. 한 번 싫은 소리를 들었다고 입
을 다물지는 말도록.”
“ 명심하겠습니다.”
청마가 옅은 웃음을 흘리며 창밖 을 바라보았다.
“삼왕이라 싸잡혀 불리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저 하찮은 것들이 나와 비견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청마가 마음만 먹었다면 그들을 잡아 죽이는 것 정도는 언제든 할 수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 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대단한 무인들
이었지. 동일한 시간을 살았다면, 나 역시 그들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 다. 그들은 내 오랜 경험 속에서도 분명 특별한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왜 실패했는지 아느 냐?”
“저는 잘……
“그를 얕잡아 봤기 때문이다.”
청마가 낮게 말했다.
“홍왕과 창왕은 백 년에 한 번 나 올까 말까 한 무인이지. 그건 분명 한 사실이다. 하지만 적천은 그런
이들조차도 하찮게 만들어 버리는 존재다.”
운전을 하던 이가 핸들을 꽉 잡 았다.
그는 단 한 번도 저 사람이 누군 가를 저리 높이 평가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니, 아니지.’
그가 높이 평가하는 이는 오직 하나뿐이라고 해야겠지.
“지금의 그가 내게 미치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가 나를 상대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처음부터 그가 언
젠가 지금의 나를 상대할 것이라 생 각했다면…… 아마 그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거야.”
청마는 자신이 강진호에게 가진 아쉬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 았다.
‘절대성이로군.’
과거의 강진호는 날카롭게 벼려놓 은 날 같았다.
단 한시도 자신을 채찍질하는 걸 멈추지 않고, 단 한순간도 멈춰 있 지 않았다.
그건 너무도 어려운 일.
그런 가혹하기 짝이 없는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내던 이가 바 로 강진호다. 청마조차도 그건 엄두 도 낼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그를 얕보다가는 지옥을 보게 될 거다.”
“……그럼 저분을 적으로 생각하 시는 겁니까?”
“이해를 못하는군.”
청마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지금까지 뭘 들었나. 나는 저 사 람만은 절대로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아. 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경계를 하는 이가 있다면, 오로지 저 사람 하나뿐이다.”
“이미 오래전에 시작했어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인자중한 이유는 저 사 람이 이 세상으로 돌아올 시기를 정 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지.”
그가 말한 것에서는 아무것도 유 추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미 이 세상으로 돌아왔 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강진호의 존재는 더할 나위 없는 변수가 된 다.
그런 생각으로 모든 계획을 멈춘 채 최근까지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
렸다. 저 작은 나라에서 굉장한 무 인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그의 귀에 들려온 그 순간까지 말이다.
“하나 지금 저분은 왕을 방해하긴 어려워 보입니다만……
“너는 모른다.”
청마는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았 다.
강진호의 진면목을 보지 않은 이 에게 그가 어떤 인간인지를 설명하 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강진호는 마교에 도착하기 전에 죽었어야 한 다. 모든 강호가 공적이 된 그를 뒤
쫓고 천라지망을 펼쳤다. 그건 실력 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설사 그 불가능한 일을 이루어냈다고 한들, 마교에 입교한 이후에 죽었어야 한다.
그는 외인.
융화되지 못한 외인을 살려놓을 정도로 마교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 니었다. 그 적대성과 과격함만을 두 고 논한다면, 당시 천하의 어떤 곳 보다 지옥에 가까운 곳이 바로 마교 였다.
그런 마교에서조차 강진호는 살아 남아 교주가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그 작던 마교 를 이끌고 전 강호와 전쟁을 벌여 마침내 천하를 발아래 두었다.
이건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불가능을 깨부수고 비틀어낸다.
‘압도적인 능력과 천운.’
강진호에겐 그게 있다.
나이브하게 생각한다면 청마가 그 를 도왔기에 이룰 수 있는 일이었다 고 평가절하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당사자인 청마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먼저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것 역시 강진호의 능력이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 그리고 자 신에게 온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 결단력.
세상 모든 사람이 강진호를 얕잡 아 본다고 해도, 청마만은 그를 쉽 게 볼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 다.
“그럼 이대로 내버려 두실 겁니 까?”
“결정은 내가 하는 게 아니야. 그 가 하는 거지.”
청마가 슬쩍 뒤쪽을 돌아보았다.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카페의 모
습을 쫓던 청마가 가볍게 고개를 내 저었다.
“그가 정말 그의 세상만을 지키고 살겠다면, 나는 그걸 방해할 생각은 없어. 아니, 나는 정말 그걸 바라고 있지. 그럼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원한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강진호는 그의 모든 것을 무너뜨 렸고, 결국 그의 목숨마저 앗아갔다.
주군이라는 이유로, 친구라는 이 유로 접어두기에는 그의 가슴을 파 고든 검의 감촉이 아직 너무도 생생 하다.
하지만 강진호에 대한 호의 역시 그에게는 여전히 가득했다.
스스로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감정을 일에 끼워 넣을 수는 없는 법.
“하지만……
청마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 어진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모든 것 을 양보할 수 있지. 그가 원하는 것 은 뭐든 해줄 수 있어. 내가 이루려 는 목적을 조금 바꾸는 정도까지 도.”
“하지만 그가 정말 자신만의 새장 안에서 살 수 있을까?”
운전석에 앉은 이가 미묘한 표정 으로 룸미러를 바라보았다.
그로서는 알기 어렵다.
저 위대한 이가 원하는 것이 무 엇인지 말이다.
강진호가 그 새장 안에서 조용히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그게 아니면 그 새장을 깨고 나와 그를 막아서기 를 원하는지.
그가 청마의 심중을 이해하는 것 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차 시트에 몸을 기댄 청마가 살
짝 눈을 감았다.
‘나답지 않았어.’
강진호에게 한 마지막 도발은 유 치한 짓이었다. 평소의 그라면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마는 자신이 들떴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 다.
누구라도 그의 입장이었다면 들뜨 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례를 저질렀으면 사과를 해야 지. 적당한 선물을 하나 준비해야겠 어.’
조금 고민하는 듯하던 청마가 고 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군.”
“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미묘한 미소를 머금은 청마가 고 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교주이시여, 더없이 위대했던 이 여.’
예전의 예기는 찾아볼 수도 없다.
청마는 그의 앞에 앉은 이가 이 제 더는 적천마존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없는 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무위는, 그 실력은
오히려 과거를 능가할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청마가 왼손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꽉 움켜잡았다.
비틀린 욕망이 자꾸 비집고 올라 온다.
강진호의 삶을 뒤틀고, 그에게 더 없는 절망을 안겨주어 그를 다시 예 전의 그로 되돌리고 싶다는 욕망.
좋아하는 이의 머리를 잡아당기 는, 어린아이처럼 더없이 유치하고 노골적인 욕망이 말이다.
그 욕망의 발현이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청마는 자신
을 자극하는 충동을 참아내기가 어 려웠다.
‘웃기는군.’
과거 그 누구보다 냉정하던 청마 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몸을 떠는 이가 되어버렸고, 과거 활화산처럼 세상을 뒤덮은 강진호는 자신만의 작은 세상을 지켜내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당신도, 나도……
그의 눈이 새파란 빛을 내뿜었다.
‘더는 과거대로는 살아갈 수 없겠 지.’
그래서 재미있는 게 삶이 아니던
가.
“큭큭큭큭.”
청마의 입에서 낮은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 비틀리고 또 비틀려 버린 관 계가 어찌 흘러갈지는 그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청마를 태운 검은 세단이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를 조용히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