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21)
마존현세강림기-1823화(1820/2125)
마존현세강림기 74권 (7화)
2장 훈련하다 (2)
“잠시만요. 이건?”
입국 심사장.
짐을 검사하던 세관 직원이 눈을 찌푸리며 새하얀 천에 친친 감긴 긴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이 내 천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새하얀 천이 풀려 나가자 그 안
에서 기다란 검이 그 모습을 드러냈 다.
검의 모습을 확인한 직원이 눈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이 검의 주인에게로 향 했다.
청바지 위에 검은 티셔츠, 그 위 에 조금 짧은 느낌의 점퍼를 입은 사내. 복장은 딱히 특이할 게 없지 만, 길게 자란 머리를 원블록으로 밀고, 그 바로 위를 땋은 형태의 헤 어 스타일이 더없이 인상적이었다.
“이건 안 됩니다.”
“예?”
직원이 중국어로 상황을 설명한 다.
“15센티 이상의 도검은 반입이 금지됩니다. 죄송하지만, 이 물건은 가져가실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내, 백연홍이 빙 긋 미소를 지었다.
“그 조건이라면 문제가 없습니다. 이건 날이 서 있지 않은 장식용 도 검이거든요.”
“마찬가지입니다.”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대한민국은 장식용 도검의 반입 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15센티 이상
이라면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을 들은 사내가 짧게 한숨 을 쉬더니, 손을 쭉 뻗어 직원의 손 에 들린 검을 빼앗아 들었다.
“무, 무슨 짓을!”
“보안! 보안!”
사내가 검을 쥐자 당황한 이들이 뒤로 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이들의 행동에 개의치 않고 느 긋하게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한 손을 검으로 가져가 날을 꾹꾹 눌렀다.
“ 어?”
꾹 누른 검날의 끝이 살짝 밀려
들어가는 것을 본 직원이 눈을 동그 랗게 떴다.
“그쪽에서 말하는 도검이라는 건 금속으로 만들어진 날이 있는 물건 을 뜻하는 거겠죠?”
“예? 아…… 일단은 그렇습니다.”
“이건 플라스틱입니다. 설마 장난 감 칼도 반입이 안 된다고 하지는 않겠죠?”
직원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검을 바라보고는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백 연홍이 태연하게 검을 직원에게 넘 겨주었다.
검을 받아 든 이가 날을 손으로 만져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이건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직원이 검을 검집에 넣어 다시 짐 위에 올렸다. 백연홍이 그 광경 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꽤 철저하군.”
입국 심사장을 빠져나온 백연홍이 내리쬐는 햇살을 보며 빙그레 웃었 다.
“공항도 꽤 큽니다.”
“그러게 말이야. 이 작은 나라의
공항이라기에는 과할 정도로 크군.”
로비를 걸어 나온 백연홍이 가볍 게 턱가를 주물렀다.
“이제는 무기를 좀 바꾸실 때도 되지 않으셨습니까? 매번 번거로워 서.”
“무기라는 게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야. 재질을 바꾼 것 만으로도 많이 양보한 거라고.”
“예. 애들 장난감 칼 들고 다니느 라 고생이 많으시지요.”
“뭔 불만이 그렇게 많아?”
백연홍이 눈치를 주자 짐을 끌고 오던 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 보십시 오. 흑왕께서 그냥 넘어가실 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검종(劍宗)이라 하 실지라도 그분의 진노를 감당할 수 는 없잖습니까?”
“죽이기야 하겠어?”
백연홍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너도 나만큼 살아보면 알겠지만,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세상사에 훙 미가 사라지는 법이다. 자극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반복 될수록 역치 가 떨어져. 아무리 좋은 술도 천 번 을 마시면 맹물이나 다름없고, 끝내 주는 미인도 천 번을 보면 그냥 사
람이지.”
“너무 오래 사셨네요.”
“그렇지.”
백연홍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런 나에게 그 이름은 더할 수 없는 자극이야. 이건 단순한 강함의 문제도 아니고, 명성의 문제도 아니 야. 적천마존의 이름이 우리에게 어 떤 의미를 가지는지 너는 이해하기 힘들 거야.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삶 에 쏟아진 감로수와 같지.”
백연홍이 피식 웃자, 사내가 한숨 을 내쉬었다.
“모두가 다 검종 같은 건 아닙니 다. 모두가 그럴 것 같으면 저는 검 종께서 하시는 일에 일일이 놀라지 않겠지요. 이미 무뎌졌을 테니까.”
“그도 그렇군. 그럼 내가 특별하 다고 해두지.”
백연홍이 피식 웃으며 사내를 바 라보았다.
기본적으로 싸늘함이 있기는 하지 만, 일전의 리우양을 대할 때와는 꽤 다른 태도였다.
“내게 있어 이만한 재미는 다시 찾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잔소리 적당히 해.”
“저번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지요. 그때 흑왕께서 기분이 조금만 더 나 빴더라면 아마 지금쯤 검종께서는 말려놓은 오징어 꼴이 되어 있을 겁 니다.”
“오징어는 자네고.”
“그 말이 아니잖습니까! 그 말 이!”
타악.
주머니에서 꺼낸 솔잎향 사탕을 입안으로 던져 넣은 백연홍이 어깨 를 으쓱하며 말했다.
“물론 나도 참아보려고 애는 썼 지. 하지만 적천마존이라는 이름을
듣고 참을 수는 없지. 안 그런가?”
“끄웅, 그런 마두 놈 때문에……
“마두는 목을 베어줘야지.”
“저기, 검종께서 뭔가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그놈은 이 세계에서 평 범하게 그냥 잘살고 있습니다. 조사 해 보니 가족에겐 좋은 아들이고, 친구에게는 좋은 친구고, 애인도 예 뻐요. 무지하게 이쁩니다.”
“•••그래?”
“거기에 이놈은 복지 재단을 차려 서 보육원을 후원하고 있단 말입니 다, 보육원을! 그것도 생색만 내는 게 아니라 제대로 돈을 퍼붓고 있단
말입니다! 검종께서 돈을 벌어 부동 산 놀음이나 하시는 와중에 이놈은 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고요!”
“이러면 대체 누가 악당입니까, 누가?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더 악 당 같습니다!”
“……가식은 아니고?”
“가식이라도 돈을 그만큼 퍼부을 수 있으면 인정해 줘야지요.”
“마두 놈이 별짓을 다 하는군.” 백연홍이 고개를 내저었다.
과거에 죄를 지은 이가 그 죄를 숨기기 위해 호인을 자처하는 경우
야 꽤 흔하지만, 이건 경우를 좀 넘 었다.
“개과천선한다고 해서 과거가 사 라지는 건 아니지.”
“아니, 그게……
“뭐라 말해도 나는 생각을 바꾸지 않을 테니, 힘 적당히 빼지.”
사내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 었다.
아무리 말해봐야 이 양반이 들어 먹을 리가 없다는 것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대체 혹왕께서는 이런 인간들을 어떻게 통제하는 거지?’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사실 그가 모시는 백연홍이 조금 더 과한 건 사실이지만, 애초에 흑 왕계의 비수라는 놈들은 하나같이 이런 인간들이다.
왜 그런 꼬인 인간들만 모여 있 느냐고?
꼬인 인간들만 모인 게 아니라 자격을 갖춘 인간들은 모조리 꼬여 있다는 쪽이 맞다.
이유?
너무 간단하지.
‘살아생전 실패라고는 안 해본 인 간들의 인성이 제대로 박혔을 리가
있나.’
인간이란 실패를 바탕으로 나아가 는 존재다.
콧대가 높은 인간의 콧대는 실패 가 꺾어주고, 자존심 높은 이의 자 존심은 좌절이 뭉개준다.
어릴 적에는 하나같이 자신이 세 상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살던 사람 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수많은 좌 절을 겪으며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 되는 법이다.
하지만 백연홍 같은 인간은 살아 생전 좌절을 겪어보지 못했다.
너무도 뛰어나 질시를 받을지언정
능력이 부족해서 고개를 숙여야 하 는 경험을 해본 적은 없다. 설사 실 패를 경험하더라도 결국 마지막에는 성공해 버리기에 그 실패조차 성공 을 위한 자양분이라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성공을 거듭해 온 정치인이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처먹지 않게 된다거나, 모두가 만류하는 일을 어떻게든 추진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완벽한 성공으로 끝난 인생을 살 아온 이들이 자신의 방식을 바꿀 이 유가 없지.’
결과적으로는 항상 옳았으니까.
그런 이들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 는다. 극도의 오만함과 극도의 자기 확신이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게 자 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깊은 한숨을 내쉰 사내, 곽소(郭 素)가 고개를 내젓고는 입을 열었 다.
“진짜 하실 거죠?”
“물론.”
“정말로요?”
“여기까지 와서 물어보기에는 너 무 의미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끄응, 그럼 나중에 흑왕께서 벌 을 내리신다면, 저는 말렸다고 해주 십시오.”
“얼마든지 해주지. 그게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백연홍이 그리 말하고는 빙긋 웃 으며 걸어 나간다.
“같이 가시지요!”
이리저리 타박을 받았지만, 백연 홍은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 그의 기분은 최 근에 다시없을 정도로 유쾌했다.
“여기에 적천마존이 있다는 거로 군.”
알고 있다.
흑왕. 그러니까 청마는 지금 그가 찾고 있는 적천마존보다 더 강하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적천마존을 상대하는 것은 단순히 강자를 찾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였다.
‘적천마존이라……
백연홍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 았다.
“재미있겠지. 정말 재미있을 거 야.”
백연홍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간만에 심장이 뛰는 느낌이 난다.
드높은 고층에서 개미처럼 기어 다 니는 인간들을 내려다볼 때 느껴지 는 감각 따위는 이 흥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살아 있다는 건 이런 거겠지.
슬쩍 백연홍의 눈치를 살핀 곽소 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시겠습니까? 가장 확실한 방 법은 놈의 집 주변에서 기다리는 겁 니다만?”
백연홍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출신이라는 걸 굳이 따지는 것도 우습지만 말이야.”
“예.”
“그래도 내가 나름 정파인 아닌 가.”
“나름이 아니지요! 검종이시면 적 통 중의 적통 아니십니까!”
“그래. 나름 적통이란 말이지. 물 론 이제는 내가 도가(道家)의 가르 침을 맹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 킬 것은 지켜야지. 아무리 마두를 상대하는 일이라고는 하나, 가족은 건드리는 게 아니지.”
“음, 그럼 적당히 접촉할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게 좋아.”
백연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마인이라고는 하나 가족 에게는 그 시신을 보여주는 법이 아 니지. 최대한 깔끔하게 처리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십 시오.”
“차를 빌려놨나?”
“차는 무슨 놈의 찹니까? 택시 타야 하니까 이리 오시라고요.”
“……그러지.”
“거, 대충 아무 데서나 자면 그만 이지, 뭘 또 높은 데를 찾으셔가지 고 숙소를 도시 반대편에 잡았잖습 니까! 또 한참 가야겠네, 한참!”
백연홍이 눈을 질끈 감았다.
‘후손만 아니었어도 그냥.’
전생의 유일한 오점이 이어지고 또 이어져서 여기까지 왔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른 쪽은 아직 움직임이 없겠 지?”
“없지요. 흑왕께서 그리 신신당부 를 하셨는데, 설마 그 명을 어길 만 큼 간 큰 분이 검종 말고 또 있겠 습니까? 설사 그럴 의도가 있다고 해도 검종만큼 성격이 급한 사람은 없겠죠.”
“그럼 볼만하겠군.”
“예?”
“내가 그 적천마존의 목을 가져갔 을 때, 그놈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 지 말이야. 특히나 그 중대가리 놈 은 피를 토하겠지.”
“……그건 저도 솔직히 좀 기대가 되는군요.”
“가지.”
“예.”
두 사람이 공항의 로비를 걸어 입구 쪽으로 향했다.
‘적천마존이라……
백연홍의 입가에 기이한 미소가 걸렸다.
“하필이면 이 시대로 돌아온 게
불행이겠지.”
“예?”
“아무것도 아니야.”
사내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공 항을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