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23)
마존현세강림기-1825화(1822/2125)
마존현세강림기 74권 (9화)
2장 훈련하다 (4)
먼저 뒤로 한 발 물러선 건 백연 홍이었다.
그가 양손을 가볍게 들어 딱히 싸울 의사가 없다는 뜻을 전했다.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하 군.”
강진호의 가라앉은 눈이 그런 백
연홍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평범한 이들이 보기에는 그저 무 표정한 얼굴에 지나지 않겠지만, 백 연홍은 그 두 눈에서 불타오르는 진 득한 살기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 다.
영혼이 저릿저릿해 오는 살기를 말이다.
‘흑왕과는 또 다르군.’
정제되어 전신을 조여 오는 흑왕 의 마기와는 그 결이 확연히 다르 다. 강진호의 마기는 뜨겁게 불타오 르는 화염과도 같았다.
손이 절로 움찔거렸다.
‘무기를 가져오지 않길 잘했어.’
지금 그의 손에 애병이 들려 있 었다면 참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애 병이 없다고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지는 이미 넘어선 지 오래지 만, 감정의 영역은 또 다른 법이니 까.
“딱히 지금 뭔가를 해볼 생각은 없어.”
강진호의 눈이 살짝 꿈틀댄다.
“남의 영역에 흙발로 들어와 놓고 는 의도가 없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니까.”
백연홍이 싱긋 웃었다.
“영역에 들어온 것 정도로 칼부림 을 할 필요는 없잖은가.”
강진호가 들고 온 커피를 최연하 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럼 꺼져.”
“성미가 급하시군.”
백연홍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간단한 대화 정도는 나눌 수 있 을 거라 기대했는데 말이야.”
강진호가 슬쩍 백연홍을 보며 말 했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군.”
“꺼지라고 했을 텐데?”
백연홍이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은 물러나지. 내가 실례를 한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곧 내가 찾아……
“으아아아아아아!”
백연홍과 강진호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말 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뛰 어온 누군가가 날듯이 백연홍의 팔 을 잡고 늘어졌다.
“제발! 제발 좀! 제발 사고 좀 치 지 마시라고 했잖습니까! 여기 보는 눈이 몇인지는 알고 이러십니까!”
“아, 아니, 그냥 인사만……
“죽고 싶으면 그냥 접시 물에 코 를 박으면 되지! 뭔 자살 아티스트도 아니고, 왜 이렇게 다채로운 방법으 로 뒈지시려고 안달이세요! 왜!”
백연홍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 개를 돌려 먼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는 강진호의 얼굴에도 황당함이 어렸다.
“……오늘은 이만 가지.”
팔에 매달린 곽소를 확 밀어낸 백연홍이 강진호를 보며 뒤틀린 미 소를 지었다.
“곧 다시 보게 될 거야. 그때까지
적당히 삶을 정리해 두는 것도 나쁘 지 않겠지.”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 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버린 백연홍이 미련 없다는 듯 그들에게 서 멀어져 갔다.
“뭐야, 저 새끼?”
최연하가 그 광경을 보며 짜증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 를 홱 돌려 강진호를 바라본다.
“ 괜찮아요?”
“……그거, 내가 물어야 할 말 같
은데.”
“나야 뭐 항상 멀쩡하지. 진호 씨 가 문제지.”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럴 때는 정말 최연하의 터프함이 너무 고맙다.
“또 정신병자 하나 붙은 것 같은 데, 내 남자 가만 보면 여자보다 남 자한테 인기가 더 많은 것 같아.”
“……부정 못하겠다는 게 문제네 요.”
최연하의 시선이 슬쩍 강진호의 표정을 살폈다.
어차피 물어봐야 아무것도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게 자신을 안 심시키기 위한 강진호 나름의 대응 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때때로는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 다.
‘속이 썩네, 속이 썩어.’
더욱 그녀의 속을 썩게 만드는 건 저 강진호의 얼굴에 어린 표정이 었다.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표 정. 화가 난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즐거워하는 것도 같고…….
작게 한숨을 내쉰 최연하가 고개 를 내저었다.
‘딱히 다를 것도 없지.’
어차피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게 남과 여라면 더더욱.
그저 서로 영원히 이해할 수 없 는 부분은 묻어두고, 맞춰 나갈 수 있는 부분을 늘려 나갈 뿐이다.
“진호 씨.”
“네?”
“시럽 안 탔어요?”
강진호가 힘없이 커피 잔을 들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발 좀! 제발!”
백연홍이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
았다.
“제발 좀! 상식적으로 좀 살자구 요! 안 그래도 지금 목이 반은 떨어 져 있는데, 대체 뭘 어쩌려고 그러 십니까? 사람들 다 보는 와중에 마 왕이랑 붙었다는 말을 흑왕이 들으 시면 전투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 을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간만에 얼굴도 보고 좋겠군.”
“끄으읍, 급!”
곽소가 숨이 넘어간다는 듯 목을 움켜잡았다.
“호들갑 떨 것 없어. 그래서 검도 두고 온 것 아닌가.”
“파리채 없으니 파리 못 잡는다는 소리와 뭐가 다릅니까, 그게!”
“도인으로서 살생은 피해야 하는 법이지.”
“그게 검공께서 할 말씀이십니까? 도인의 삶은 전생에 불과하다고 쳐 죽인 사람이 몇인데.”
백연홍이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 다.
“여하튼 인사치레로 온 것뿐이 야.”
백연홍의 시선이 뒤쪽의 카페로 향했다.
“진짜는 이다음이지.”
백연홍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는 것을 본 곽소가 눈을 찌푸렸다.
“ 희한하네요.”
“뭐가?”
“훙미를 보이시다가도 막상 목표 를 눈앞에 두면 반쯤은 식어버리던 게 검공 아니십니까. 그런데 이번에 는 그런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으 시니 말입니다.”
“훙미라……
백연홍이 낮게 웃었다.
‘저런 자를 보고 흥미가 떨어질 수가 있나.’
가히 충격적일 정도다.
그가 마인을 본 게 이번이 처음 일 리는 없다. 지난 생을 살 때도 마인들은 종종 마주했고, 이번 생에 서는 마인의 휘하로 들어가지 않았 는가.
하나 저놈은 지금껏 그가 알던 마인과는 다르다.
“개와 늑대를 비교하는 것 같군.”
“예?”
“훈련된 사냥개는 늑대를 잡을 수 있지. 견종에 따라서는 딱히 훈련이 안 되어도 늑대를 이길 수 있는 개 도 있고 말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지만 개는 개고, 늑대는 늑대 지. 늑대보다 강한 개가 존재한다고 해서 늑대의 흉포함이 줄어드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그에게 있어서 강진호란 그런 자 였다.
진짜 마인.
그는 저 무표정한 얼굴 아래 얼 마나 짙은 살기와 야성이 숨어있는 지 능히 짐작해 낼 수 있었다.
“생각해 봐.”
“예?”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개를 사냥 하는 맛과 늑대를 사냥하는 맛이 같
을 수는 없지. 그렇잖은가?”
백연흥이 희게 웃었다.
“적천마존…… 과연 적천마존이 야. 진짜 마인이라는 건 저런 거로 군.”
백연홍이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렸 다.
꾹 쥐어진 주먹을 풀자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버린 손바닥이 그 모 습을 드러냈다. 아무리 태연한 척하 려고 해도 그의 몸은 확실히 강진호 를 대적으로 인정하고 과히 긴장했 다.
‘노린내가 날 것 같은 야성이
라……
이 평화로운 시대에 저런 이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나 다름없 다. 제아무리 험한 과거를 지닌 이 들이라고 해도 현대의 문물에 젖어 살다 보면 대부분은 그 야성을 잃어 버린다.
수천을 학살한 장군이라 해도.
그 주먹으로 세상을 위진시킨 무 인이라 해도.
심지어는 사상 최악이라 불릴 만 한 범죄자조차 이 평화로운 세상 속 에서는 본디 가진 흉포함을 대부분 상실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아니다.
“늑대가 아니지.”
늑대는 길들여 개로 만들 수 있 으니까.
그 위상과 그 업적을 감안한다면, 짐승의 왕이라 불러주기에 충분하 다.
“돌아가지. 오래는 못 참을 것 같 으니까.”
곽소가 한숨을 내쉬며 앞서가는 백연홍의 뒤를 따랐다.
강진호가 모니터에 뜬 화면을 보
며 아연한 눈을 했다.
“이놈인 것 같은데.”
“이렇게 봐서는 잘 모르겠군.”
“오, 사인도 받는데?”
강진호의 힘없는 시선이 이현수에 게로 돌아갔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너 평소에도 이렇게 감시하 냐?”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건 스토커죠. 이번에 회주님 말씀을 듣고 빠르게 CCTV를 확보한 것뿐 입니다.”
“30분 만에?”
“후후후, 간만에 제 능력에 감탄 하셨군요. 칭찬은 그 정도로 됐습니 다. 쑥스러우니까요.”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 라보았다.
‘얘는 왜 약할까?’
바토르 정도면 됐어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풀스윙으로 후려쳐 버 릴 수 있을 텐데. 약해 빠져서 손가 락으로 때려도 죽을까 봐 건드리지 도 못하겠고.
“어땠습니까?”
“죽일까 생각 중이야.”
“그건 당연한 거고요.”
“응?”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아, 저놈 이야기로군.”
“……그럼 누굴 죽일까 생각 중이 셨는데요?”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넘어가시죠.”
괜히 이야기가 길어지지 않게 이 현수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강했습니까?”
“그렇더군.”
“ 얼마나요?”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이사들의 시선이 강진호 의 입에 고정되었다.
“글쎄, 손도 섞어보지 않고 정확 한 무위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겠지 만……
강진호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 다가 입을 열었다.
“홍왕과 승부를 해볼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최대로 잡아서요?”
“최소로 잡아서.”
이현수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최소 홍왕급?
아니, 아니다. 승부를 해볼 수 있 다는 게 대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강진호의 말대로라면 최소한 으로 잡아도 홍왕과 승부가 가능하 다는 뜻이니까…….
“삼왕급이군요.”
“정확하지는 않아.”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저쪽의 무위는 내가 파악하기 힘 든 종류니까. 기본적으로 내 감각과 마기를 밀어내거든.”
“예‘?”
“도가 계열이다. 제대로 배웠어.”
웬만해서는 강진호의 말에 끼어들 지 않는 장민이 황당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도가 계열이면 도사 놈들이라는 건데, 그런 놈들이 왜 청마의 밑 에?”
“••••••글쎄?”
장민이 입을 쩌억 벌렸다.
“그게 많이 이상한 겁니까?”
“마인의 부하가 소림승이면 이상 하지 않겠나?”
“그, 그렇죠. 그건 이상하죠.”
“딱 그 꼴이로군.”
위긴스가 그래도 이해가 안 간다
는 듯 턱을 문질렀다.
“될 수 있으면 외국인도 알 수 있 게 설명을 해주십시오.”
“악마 숭배자 밑에 카톨릭 주교가 들어가 있는 겁니다.”
“미쳤군.”
위긴스가 중지를 들어 올렸다.
“그게 뭔 개 같은 소리야? 카톨 릭을 모욕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그런 상황이라잖습 니까.”
“허.”
위긴스가 복잡하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이거…… 이거, 생각 이상으로 좋지 않은 소식 같은데.”
“예?”
“지금 그 사람은 종교인 같아 보 이지 않았어. 그 말인즉슨 전생에 그런 삶을 살았다는 뜻이겠지.”
“그렇죠.”
“그럼 혹시 흑왕의 심복이라는 놈 들이 다 그런 것 아닐까?”
위긴스의 말을 이해한 이현수가 얼굴을 굳혔다.
“이전에 자네가 말했지. 아무리 청마라도 사람을 삼왕급으로 키워내 는 건 불가능하다. 회주님은 청마라
는 작자를 너무 고평가하고 있다.”
“그걸 왜 여기서……
“그런데……
위긴스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키워낼 필요가 없다면?”
“예?”
“재능이라는 건 깨우치기 위해 필 요한 요소일 뿐이지. 이미 아는 이 들에게는 의미가 없단 말이야. 일 더하기 일이 몇인지 이해하는 데는 머리와 재능이 필요하지만, 그걸 알 아버린 순간에는 더는 필요치 않아 지는 거지. 다시 말해……
위긴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 다.
“회주님께서 현대에 다시 태어나 며 머리가 나쁜 이의 몸으로 태어났 다 해서 가진 경지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까 그 말씀은……
“키우는 게 아니야. 찾아내는 거 지, 귀환자를. 그저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만으로 전생의 자신을 되찾 을 수 있는 회주님 같은 귀환자들을 말이야!”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한 이들의 심장에 서늘한 비수가 박혀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