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37)
마존현세강림기-1839화(1836/2125)
마존현세강림기 74권 (23화)
5장 다그치다 (3)
이현수가 멍한 눈으로 창밖을 바 라보았다.
그의 눈에 총회의 전경이 조금은 낯설게 틀어박혔다.
평소라면 금세 시선을 떼고 일에 집중했을 이현수지만, 오늘따라 그
의 시선은 총회의 전경에서 떨어지 지 못했다.
“홈.”
이현수가 고개를 홱 돌렸다.
어느새 그의 책상 앞에 강진호가 다가와 서 있었다.
“어, 언제 오셨습니까?”
“조금 전에?”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
“괜찮아.”
강진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 을 내젓고는 앞쪽에 있는 소파에 앉 았다.
이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강진호 의 맞은편으로 갔다.
“말씀을 하시지.”
“생각이 깊어 보여서.”
이현수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이 깊은 게 아니라 생각이 안 나서 그렇습니다.”
“응?”
이현수가 말없이 품 안에서 담배 를 꺼내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강진 호가 담배를 받아 들고 입에 물자, 이현수가 그 담배에 불을 붙여준다.
“ 일단••••••
이현수가 조금 침통한 얼굴로 입
을 열었다.
“크게 부상을 당한 놈들은 없습니 다. 백연홍, 그 미친놈이 회원들에게 는 살수를 쓰지 않았습니다.”
요 Q »
“그리고 그……
이현수가 머리를 긁었다.
“목숨을 잃은 마교도들에 대한 수 습은 모두 끝냈습니다. 대부분은 딱 히 가족이랄 게 없는 사람들이라 후 속 조치가 필요하지 않고, 가족이 있는 이들에게는 보상금을 크게 지 급할 예정입니다.”
“시신은?”
“중국으로 보내는 게 옳지 않겠습 니까?”
“그건 장민과 상의해.”
“예.”
될 수 있으면 그들이 태어난 땅 으로 보내 고향에 묻어주고 싶지만, 그들이 그곳을 고향으로 여길지, 아 니면 이곳을 자신의 고향으로 여길 지는 모를 일이다.
이건 장민이나 다른 마교도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할 일이었다.
“그 외에 다른 문제는 딱히 없습 니다. 놈이 난장을 피우기는 했지만, 그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아서…….
뭐, 적당히 무너진 담장이나 박살 난 건물만 다시 세우면 될 일이죠.”
“그래.”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현 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예?”
“생각이 없다는 말은 무슨 소리 야?”
강진호가 그걸 물어볼 줄 알았다 는 둣 이현수가 체념한 얼굴을 했 다.
“조금 현타가 와서 말입니다.”
“현타?”
“현자 타임이라고…… 이걸 뭐라 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허탈감이랄까요.”
이현수가 고개를 슬쩍 돌려 창밖 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대충 얼버무릴 수도 있지만, 강진 호에게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아시다시피 제가 총회를 강하게 만든답시고 인생을 바쳐 왔잖습니 까?”
“……뭘 몇 년이나 했다고.”
“거, 기간이 중요합니까? 열정이 중요하지.”
“그렇다 치고.”
떨떠름한 얼굴을 한 이현수가 강 진호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백연홍인가 뭔가 하는 놈이 총회에 혼자 쳐들어와서 날뛰고 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그냥 제가 그동안 한 건 다 뭔가 싶고……. 네, 그냥 그런 겁니다.”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럴 만도 하지.’
무학을 익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순간이 온다. 나는 하루하루를 죽어라 수련하고, 뼈가 부러져라 구
르고 있는데, 누군가는 그 머리 위 를 홀홀 날아 지나가 버리는 것 같 을 때.
도무지 따라갈 엄두도 나지 않는, 다른 차원의 고수를 보았을 때, 사 람의 좌절감을 넘어 박탈감마저 느 끼게 된다.
사람이 노력을 하는 이유는 더 나은 성과를 위해서다. 그 누구도 노력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 그 노 력으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는 성과 를 기대할 뿐.
그러니 자신의 노력에 어떠한 대 가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
은 이는 노력, 그 자체에 회의를 느 끼게 되는 법이다.
“백연홍을 본 게 충격이었던 모양 이로군.”
“사실 저도 이해가 잘 안 가는 게……
이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이미 홍왕을 겪어보았고, 또 한 창왕을 겪어보았다. 그들의 능력 이 저 백연홍에 비해 떨어질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이현수는 그 백연 홍에게서 홍왕과 창왕에게서는 느낄 수 없던 아득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게 참 이상합니다. 그…… 이현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게 백연홍의 뒤에 흑왕이 있다 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암담함은 아 닌 것 같은데, 저도 제 상태를 정확 하게 뭐라 판단을 못하겠네요.”
하지만 이현수와는 달리 강진호는 지금 이현수가 느끼는 암담함의 정 체를 알 것 같았다.
“내가 알던 세상이 깨어진 거지.”
“세상의 법칙이 말이야.” 이현수의 고개를 끄덕여졌다.
저 말이 그의 폐부를 찌르고 들
어온다. 그 스스로도 ‘아!’ 하고 탄 성을 내뱉을 만큼 말이다.
“그런가 봅니다.”
한숨을 내쉰 이현수가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한 대 피워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이현수가 담배를 물고는 불을 붙 인다.
천천히 담배 연기를 뿜어낸 이현 수가 고개를 까딱이며 입을 열었다.
“회주님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홍왕이나 창왕도 특별한
사람이죠. 세상에 그런 사람들은 여 럿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 있 잖습니까. 범재가 천재를 보고 좌절 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천재라는 이름으로 내가 올라가야 할 자리를 빼앗을 사람이 극히 소수이기 때문 이죠.”
“그렇지.”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 다. 삼왕은 특별하고, 그들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이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니 다른 무인들도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무학을 익힐 수 있 다.”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이 꼴이네요.”
“삼왕급의 무인이 열둘이나 더 있 는 세상에서 총회가 대체 무슨 가치 를 가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징징 대는 게 아니라 정말 의문이 들어서 그럽니다.”
삼왕이 서로 반목하기에 무인계의 균형이 지켜져 왔다.
하지만 알고 보니 무인계의 균형 은 이미 예전에 무너져 있었다.
십이비도.
‘ 열둘이라……
그 백연홍과 대등한 이가 열하나 나 더 있다.
거기에 흑왕을 더한다면 초극의 고수가 무려 열셋이나 있다는 의미 였다.
이건 황당하다 못해 아연해질 만 한 전력이다.
‘총회가 그들을 당해낼 수 있을 까?’
무리다.
강진호와 혹왕을 공평하게 제외한 다면, 삼왕급 고수 열둘을 총회만으 로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게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당장 이사들이 모두 나서고도 백 연홍 하나를 감당하지 못했다. 상황 을 최대한 좋게 봐 네 명의 이사가 어찌어찌 둘 정도는 막아준다고 해 도, 삼왕급이 열이 남는다는 의미다.
‘총회의 남은 전력을 모두 동원한 다고 해도 두 명이라도 감당할 수 있을까?’
솔직히 회의적이다.
이현수는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곳인지를 새삼 뼈저리게 실감해야 했다.
“솔직히 저는 총회가 눈부시게 발
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부분 의 공은 회주님께 있겠지만, 저도 나름 공헌해 왔다는 자부심이 있었 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부심을 어디 다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총회를 끝끝 내 키워내고, 그가 원하는 순간에 저들을 상대할 수 있다면, 어떤 수 를 쓰든 반드시 저들을 능가해 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저들이 총회에 그만한 시 간을 줄 리가 없다.
가만히 이현수의 말을 듣고 있던 강진호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낮 게 웃었다.
“……왜 웃으십니까?”
“듣다 보니 웃겨서. 직접 싸우지 도 않는 놈이 싸운 놈들보다 더 의 기소침해 있는 꼴이.”
“……싸우지 않아서 의기소침한 게 아니라, 싸우지 못하니까 의기소 침한 겁니다. 남들은 근성으로 들이 받아 본다는 선택지가 남아 있지만, 저는 그게 아니잖습니까.”
“그것도 변명이지.”
강진호의 시큰둥한 대답에 이현수 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에, 네에. 변명입니다. 회주님 께야 이게 별 고민도 아니겠죠.”
“그렇지도 않아.”
“••••••예?”
“상황이 암담하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특히나 나는 더 암담하 지. 저놈이 원하는 대로 고개를 조 금 숙인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이 살 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걸 고민하시는 겁니까?”
“아니.”
“뭐야, 이 인간?”
울컥한 마음에 막말을 내뱉어 버 린 이현수지만, 강진호는 웃음으로 그 막말을 받았다.
“얼마 전까지는 그랬지. 그런데 이제는 확신이 섰어.”
“……갑자기 왜요?”
“그놈이 벌이는 일이 세상을 뒤흔 들지 않을 리가 없지.”
이현수가 공감이 간다는 듯 고개 를 끄덕였다. 그만한 전력을 모은 채 기다리고 또 기다린 일이라면, 분명 뭔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
질 거다.
“생각해 보니 그렇더군. 내가 하 는 일은 그런 거야. 방공호를 파고, 식량을 보충하고, 바깥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신경을 쓰지 않으면 수십 년이고 수백 년이고 내가 같이 살고 싶은 이들과 숨은 붙어 있을 수 있 는.”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사는 게 아냐. 그저 숨이 붙어 있다고 사는 게 아니지.”
“……그렇죠.”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고는 강진호 를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뭘 어쩌시려고요? 솔직 히 우리 전력으로는 저놈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현수.”
“예‘?”
강진호가 씨익 웃었다.
이상하지.
이런 상황인데도, 저 웃는 얼굴을 보면 뭐라도 될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도 할 수밖에 없잖아.”
“답은 보이지 않고, 암담하기 짝 이 없지. 아무리 악을 쓴다고 해도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밖에 안 될지
도 모르지.”
“……잘 아시네요.”
“하지만 나는 손을 놓고 지느니, 악을 쓰다 피를 토하다 죽겠다.”
이현수가 헛웃음을 지었다.
‘대단도 하다, 진짜.’
강진호는 언제나 확신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의 끝도 없는 저돌성과 끈기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에는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 자신감과 확신을 잃은 강진호 는 어떤 모습일지 말이다.
그런데…….
‘달라지는 게 없네.’
허탈하고 우습다.
결국 세상은 그런 법. 멈추지 않 고 달리는 이는 언젠가는 멈추는 법 을 잊어버린다. 이제 강진호는 확신 을 잃어도, 자신감을 잃어도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회주님.”
“응?”
“저 이번만은 솔직히 진짜 자신 없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말아먹었다고 욕
하지 마십시오.”
“괜찮아.”
“ 진짜로요.”
“괜찮아.”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네가 없으면 망할 테니 까.”
구구절절한 말보다 저 한마디가 이현수의 배에 힘을 불어넣는다.
“이래서 내가……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 싹이던 이현수가 고개를 내저으며 웃어버렸다.
“진짜 답도 없으시네요.”
“항상 그랬지.”
강진호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언제고 내가 답을 내린 적은 없 었어. 내 안에는 그런 게 없었지. 답을 만들어준 건 항상 너희야.”
“그러니 이번에도 다를 게 없어.” 강진호가 이현수를 똑바로 바라보 았다.
“네가 계획을 세우고, 내가 시행 한다.”
“그거면 돼.”
이현수가 강진호를 똑바로 바라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 지옥까지 가봅시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우 리쯤 되면 발악은 하고 죽어야죠.”
“딱 듣기 좋은 소리로군.”
담배를 비며 끈 강진호가 손을 앞으로 내민다.
이현수가 강진호가 내민 손을 더 없이 강하게 움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