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43)
마존현세강림기-1845화(1842/2125)
마존현세강림기 75권 (4화)
1장 뛰어넘다 (4)
또옥.
어디선가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또옥.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은 평소라면 듣지 못했을 소리마저 듣게 만든다.
또옥.
하지만 장민을 힘겹게 만드는 것 은 이 소리가 정말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인지, 아니면 그의 머리가 만들 어내는 환청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는 것이다.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 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자신이 보는 것, 자신이 듣는 것, 자신이 만지고 느 끼는 것.
그 모든 감각을 통해 세상을 구 성하고, 세상을 확신한다.
하지만 그 감각을 느껴야 할 자
신이 사라진다면? 무너진다면? 확 신을 주지 못한다면?
그건 세상의 붕괴와 이어진다.
또옥, 또옥.
규칙적이게 들리던 물방울 소리가 점점 빨라진다. 아니, 조금씩 불규칙 적으로 변해간다.
평온을 가장한 장민의 얼굴도 동 시에 비틀리기 시작했다.
비틀리고 뒤틀리던 그의 얼굴이 일순 악귀와도 같이 일그러졌다.
“후우우우우.”
깊은 심호흡.
영혼을 뱉어내는 것과 같은, 깊고 깊은 심히•이 이어지고서야 일그러 지던 장민의 얼굴이 다시금 평온을 되찾는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가.’
한 사람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어찌 말 몇 마디로 단순화 시킬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그는 불가능 한 것을 이루어내야 한다.
상식이 상식으로 머물러 있는 영 역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를 묶고 있는 사슬을 풀고 벽을 뛰어넘는 것 은 영영 불가능하다.
지운다.
하나 또 하나.
그를 구성하는 것, 그를 그로 만 드는 것.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지워 나 가던 장민은 자신 안의 한 가지가 다른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더욱더 커져 가는 것을 느껴야 했다.
이것마저 지워냈을 때, 그는 진정 으로 벽을 넘을 준비를 끝낼 수 있 을 것이다.
하나…….
장민의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된 다.
‘이걸 버리라고?’
그가 자신의 안에서 커져 가는 것을 관조했다.
버리면 그만이다.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했건만, 그게 무엇이든 버리 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자신의 안을 채우고 있던 실체를 직면하는 순간, 장민은 자신 의 생각이 너무도 안일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해야 했다.
그의 안을 마지막으로 채우고 있 던 것.
그건 믿음이었다.
아니, 어쩌면 신앙이라 불러야 할 것인지도 모르고, 또는 집착이라 불
러야 할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강진호에 대한 믿음.
교에 대한 신앙.
그의 삶에 대한 집착.
그건 나누어 분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걸 내려놓으라는 건가? 내게?’ 불가능한 일이다.
이걸 내려놓는다면, 대체 장민에 게 뭐가 남는단 말인가.
벽을 넘는다는 건 어쩌면 다시 태어난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질 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잃고 다 시 태어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무리 강해진다고 해도, 아무리 지금과는 다른 차원에 올라설 수 있 다고 해도 그건 장민이 장민일 때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그럴 수 없다.’
긴긴 시간.
너무도 긴긴 시간 동안 그는 오 로지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기다리 고 또 기다려 왔다.
정신 나간 늙은이라는 비난을 참 아내며, 혈육 같은 교도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버텨내며, 점점 쇠락해 가는 교의 종말이 다가오는 것을 그
두 눈으로 지켜보며…….
그는 오로지 버티고 또 버텼다.
전설로 전해 오는 것처럼 마존이 그가 사는 세상에 강림해 교도들을 성지로 이끌 확률은 천만분의 일만 큼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면 서도 그는 광인처럼 오직 그 예언만 을 믿고 기다렸다.
그 긴 기간 동안 오로지 한 가지 믿음만을 품고 살아온 장민이다. 그 에게 있어서 이 믿음은 단순히 마음 가짐의 영역이 아니었다. 이 믿음은 그를 구성하는 근간이자, 그의 원천 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데 이걸 대체 어찌 내려놓으 란 말인가.
대체 무슨 수로.
장민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 다.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마존이 시여.’
그가 답을 잃을 때마다 언제나 강진호는 답을 내주었다.
그동안 그의 삶은 굳이 많은 생 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저 믿 고 따르는 것만으로 대부분은 해결 을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것으로는 어렵 다. 벽이란 온전히 스스로 뛰어넘어 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는 강 진호의 의견을 구할 수 없고, 더는 강진호의 자취를 쫓을 수 없다.
망망대해에 홀로 표류하는 것 같 았다. 아니, 그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땅이 보이지 않는 대해의 한 중간에 떠 있다 한들 밤이 되면 별 이 뜨고, 낮이 되면 구름이 바람의 방향이라도 알려줄 테니까.
하지만 이곳에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끝없이 펼쳐진 무채색의 사막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 느낌.
이건 살아서 겪는 지옥이었다.
“마존이시여……
자신을 밝히던 촛불을 잃어버린 장민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다시 또 추락했다.
강진호의 미간이 살짝 찌푸러졌 다.
“바토르는?”
“……어제부터 보이지 않습니다.”
“장민도?”
“그런 것 같습니다.”
대답을 하는 위긴스의 얼굴도 그 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런 것 을 보면 사람의 마음은 분명 육체에 영향을 준다. 웬만한 질병 따위는 헛기침 한 번으로 치유해 버릴 수 있는 위긴스가 창백하게 질린 안색 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회주님.”
방진훈이 그답지 않게 조금 기죽 은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거, 진짜 괜찮은 겁니까?”
“아니, 뭐, 저는…… 저는 괜찮습
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뭐,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거든요. 그냥 뭐, 시험 앞두고 벼락치기한다고 일주일 밤샘한 것 같은 상태일 뿐이고……
보통 일주일 밤샘을 하면 죽는다 는 걸 생각하고 말을 해줬으면 좋겠 는데….
여하튼.
“저야 뭐, 이러다가 뭐가 잘못돼 도 크게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그 두 양반은 제 눈으로 봐도 일이 터지면 답도 없겠던데요.”
“괜찮은 겁니까?”
강진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방진훈의 말이 크게 틀리지 않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저 두 사 람이 벽을 넘지 못한다면 그 부작용 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벽에 도전하 여 그 벽을 뛰어넘은 이들보다 그 과정에서 찾아오는 심마를 이기지 못하고 폐인이 되거나 목숨을 잃은 이들의 수가 몇 배는 더 많을 게 분명하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할 수 있는 도전이다.
‘나오지 않았다라……
조금의 정신이라도 남아 있다면 수련에 빠질 이들이 아니다. 아마 지금 그들은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 르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이미 잊었을 것이다.
찰칵.
밀려오는 답답함에 강진호가 생각 없이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수 련을 하러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지 만, 이미 불은 붙어버린 뒤였다.
어색한 손짓이 담배를 비벼 끄려 고 하자, 방진훈이 혀를 찼다.
“아깝게 뭘 끄려고 하십니까. 이 왕 붙인 거, 피우십쇼.”
“……미안하군.”
“됐습니다.”
방진훈이 볼을 실룩였다.
강진호가 무심코 담배를 문 건 그만큼 저들이 신경 쓰인다는 의미 였다. 그가 다른 이사들을 걱정한다 는 것은 기꺼운 일이지만, 저 강진 호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 했을 만큼 심각하게 걱정을 한다는 건 그 나름대로 문제였다.
“우리가 뭐 할 수 있는 건 없습니 까?”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온전히 혼자 짊어져야 하는
일이야.”
“ O.”
M •
방진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그는 다른 이사들과 그렇게 심정적으로 친한 관계는 아니다. 그 는 총회에서 평생을 살아왔고, 다른 이사들은 겨우 몇 해 전 총회에 들 어온 이들이니까.
얼굴을 부대끼고 함께 사선을 넘 은 동지이기는 하지만, 그들과 개인 적인 교류를 해본 적은 없다. 좋게 말하자면 전우, 냉정하게 말하자면 직장 동료 이상은 될 수 없는 사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속이 답답해지는
것을 보면, 그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들어도 웬만큼은 든 모양이었다.
‘그 바위로 내려쳐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을 것 같던 양반들이……
장민이야 그렇다 치고, 저 바토르 가 그 꼴이 된 것을 생각하면, 심마 라는 건 그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위 험한 모양이었다.
“ 로드.”
«으 »
지금껏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위 긴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저는 지금 이 일련의 과 정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분들이 왜 그리 고통을 받는 건지도 제 상식으로는 해석이 안 되는군요.”
아무래도 서양의 무학을 베이스로 하는 위긴스다 보니 이런 말이 나오 는 모양이다.
“그래서 묻는 겁니다만, 저 심마 라는 건 대체 얼마나 이어지는 겁니 까?”
“ 으음••••••
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얼마나 이어지냐라……
“그건 언제쯤 결판이 나느냐를 묻 는 건가?”
“예. 그렇지요.”
성공해서 벽을 넘든, 그게 아니면 실패해서 목숨을 잃든.
“글쎄, 그건 저들이 뭘 얻으려고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면벽에 들어가 수십 년을 참오한 끝에 마침내 이뤄내는 이도 있고, 불과 며칠 만에 벽을 뛰어넘는 이도 있다. 단 열흘도 버티지 못하고 피 를 토하며 죽는 이가 있는가 하면, 수십 년의 수련 끝에 마지막 한 끝 을 이겨내지 못해 죽는 이도 있지.” 돈오, 각성, 탈각, 등선, 해탈.
수많은 말로 불리지만, 그 본질은 하나다.
스스로를 버리고 새로운 자신을 찾아낼 수 있는가.
그게 얼마나 걸릴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으음.”
위긴스가 눈을 찌푸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역시 어 느 정도는 지금 바토르와 장민이 겪 고 있는 것이 무언지를 이해했다. 그 역시 자신의 무학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으니까.
이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는 의미였다.
‘더 나아간다라……
위긴스의 시선이 슬쩍 옆으로 돌 아 방진훈의 안색을 살핀다. 분명 방진훈도 뭔가 달라지고 있었다. 과 도한 사색에 지쳐 있는 그와는 분명 그 결이 달랐다.
“……모 아니면 도라는 거군요.”
“그렇지.”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 오늘 수련은 빼주실 수 있 겠습니까?”
“ 이유는?”
“해야 할 게 생겼습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위긴스를 바라보 다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대로 해.”
“감사합니다, 로드. 그리고 부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뭐지?”
위긴스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자리했다.
그 미소를 본 강진호가 살짝 의 아한 듯 고개를 비틀었다.
“마스터를 만나야겠습니다.”
“부디 허가를.”
강진호가 빤히 위긴스를 바라보았 다. 그 역시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이 얼마나 무리한 부탁인지는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위긴스의 눈 에는 단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원하는 대로 해.”
“감사합니다.”
위긴스가 몸을 홱 돌려 총회를 향해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발버둥 치겠다는 거군.’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누 구든 같겠지. 적어도 이곳에 목숨을
건 도전을 무모하다고 비웃을 이는 없을 테니까.
“그럼 오늘은……
“좀 널널하겠는데?”
“••••••썩을.”
이사들 중 홀로 남은 방진훈이 한숨을 푹 쉬고는 주먹을 들어올렸 다.
“살살하쇼.”
“노력해 보지.”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스스로의 틀을 깨기 위해 필사적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