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44)
마존현세강림기-1846화(1843/2125)
마존현세강림기 75권 (5화)
1장 뛰어넘다 (5)
“……애쓴다.”
“예‘?”
무슨 말인지 못 들었다는 듯 강 진호가 화들짝 놀라 되묻는다.
최연하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애쓴다, 애써.’
백 미터 밖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듣는 사람이 그녀가 하는 말 을 듣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만큼 지금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런 기색을 절 대 보이지 않겠다는 듯 필사적으로 태연한 척을 하는 중이다. 자기에게 는 아무런 고민도 없다는 듯 말이 다.
“어휴, 내 팔자야.”
박복한 년은 서방복도 없다더니.
어쩌다 이런 다사다난한 인간을 만나서…….
“제가 뭔 실수라도?”
“아니요.”
최연하가 빙긋 웃었다.
“기다려요.”
“네?”
최연하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 다. 조금 뒤에 돌아온 최연한의 손 에 차가운 아이스 커피와 조각 케이 크가 들려 있었다.
“여기요.”
“……제 건가요?”
“네, 드세요. 받자마자 빈 컵에 남은 얼음 괴롭히지 마시고요.”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의외로 섬세하다니까.’
이 기꺼운 감정은 최연하가 그를 위해준다는 것에서 나오는 게 아니 다. 그녀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해 있고, 그의 상태를 언제고 살피고 있다는 것에서 나온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상대를 지켜보는 것.
그게 호의의 시작이 아니던가.
“드세요.”
“네.”
강진호가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들어 쭉 빨았다.
‘이게 별 도움이 안 될 텐데.’
사람이란 참 이상하다.
그의 몸은 몸 안에 들어온 대부 분의 물질들을 완벽하게 분해해 낸 다. 카페인이든 니코틴이든 평범한 사람들은 치사량이 될 정도로 들이 부어도 몸의 상태는 변화가 없다는 의미다.
그가 커피를 마시든 줄담배를 피 워 대든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 다.
그럼에도 강진호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초조한 마음이 가라앉는 느
낌을 받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이란 물질이 아니라 행위 자체에서 위안 을 받는 건지도 몰랐다.
“이번에는 누가 문제예요?”
“네?”
“표정이 딱 그런데?”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네?”
강진호가 정말 진지한 얼굴로 물 었다.
“진짜 제 표정에서 그런 게 다 보 입니까?”
“푸우읍!”
최연하가 입에 머금을 물을 격하
게 뿜으며 허리를 굽혔다.
강진호가 무인이라 피할 수 있던 거지, 평범한 이들이라면 지금쯤 물 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을 것이다.
“크흠! 으흐흠!”
티슈로 재빨리 입을 닦은 최연하 가 황당함을 어찌하지 못하는 눈으 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이게 그렇게 진짜로 뿜을 일입니 까?”
“아니, 얼굴이 너무 진지하잖아!”
“……진지하게 물은 거니까.” 뭔가 억울한 강진호이지만, 이 억
울함을 풀 곳이 있을 리 없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무리 그 래도 표정만 보고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그게 되는 사람이면 배우로 전직하면 남우주연상 10연패하겠 네!”
“그럼 어떻게……
“애초에 진호 씨가 자기 일로 그 렇게 끙끙대는 경우가 없으니까요.”
응?
그런가?
“제가 그렇게 남 생각을 하는 사 람은 아닌 것 같은데.”
“아, 그건 오해예요. 말을 제대로
들어주세요.”
“예?”
“진호 씨가 남을 잘 생각해 주는 좋은 사람이란 뜻은 아니에요. 요즘 좀 자뻑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거 좀 안 좋은 버릇이니까 주의해 주세 요.”
“진호 씨는 남에게 친절한 게 아 니라, 자기한테 너무 가혹해요. 지금 뭐 때문에 그렇게 우울해하는지 모 르겠지만, 똑같은 일이 본인에게 벌 어졌으면 별것 아니라고 넘겼을걸 요?”
“어……
그러네.
강진호가 뒷머리를 긁었다.
만약 지금 심마에 든 게 본인이 었다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어차피 이겨낼 자신도 있고, 혹여 이겨낼 자신이 없다고 해도 다른 방 법을 찾을 거라는 확신이 있을 테니 까.
“그러니까……
최연하가 뭔가 말을 하려다가 어 깨를 으쓱했다.
“됐어요.”
“왜 말을 하시다 말고……
“아뇨. 뭐, 요즘 자꾸 제가 진호 씨 만나면 잔소리만 하는 것 같아 서.”
“사실 뭐, 제가 잔소리만 한다고 해도 마주 앉아 얼굴만 봐도 힐링이 되겠지만.”
강진호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변했 다.
저런 말을 들어서 떨떠름한 게 아니라, 그 말을 들어도 반박을 할 수가 없다는 게 떨떠름하다.
“뭐예요? 그 얼굴은 제가 뭐 틀 린 말이라도 했어요?”
“틀린 말이라는 게 아니라……
“돼요, 안 돼요?”
“……됩니다.”
아니, 근데 그건 최연하가 예뻐서 힐링이 되는 게 아닌데.
“그래야지.”
하지만 최연하는 이미 강진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의 기양양하게 볼을 부풀리는 최연하를 보고 있자니 웃음밖에는 나오지 않 았다.
“흐음, 말이랑 표정이 좀 다른 것 같은데……
“네?”
“집으로 가요?”
“네? 집은 갑자기 왜?”
“얼굴만으로는 힐링이 안 된다는 것 같아서, 그럼 다른 걸……
“아니요. 충분합니다!”
최연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야? 거부하는 거야?”
“뭐, 뭘 거부해요.”
“쯧쯧, 이래서 장가는 어떻게 가 려고.”
날이 갈수록 최연하의 들이댐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한 번 분위기를 풀어낸 최연하가
부드러운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 다.
‘이상하지.’
이 사람과 있으면서 그냥 막 좋 았던 적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그 사람과 좋 은 기억만을 쌓아가는 것을 의미한 다면, 그들의 관계는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매력이지.’
딱히 자신의 일에 전념하는 사람 에게 큰 매력을 느끼는 타입은 아니 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사람 나름
인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한 번 좋게 본 사람은 모든 면이 좋아 보 이든가.
‘나도 콩깍지가 안 벗겨지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 는 일이었다. 감히 자신을 만난 남 자가 앞에서 다른 생각을 하다니.
그런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였다 면, 더 말을 섞을 것도 없이 그 자 리에서 일어났겠지. 굳이 자신을 중 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과 대화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강진호가 무엇으로 또 고민을 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는 걸 보면…….
‘나도 이제 끝났네.’
피식 웃어버린 최연하가 새삼스러 운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더 알고 싶다.
더 이해하고 싶다.
강진호를 알고 이해할 때마다, 강 진호가 아닌 그녀가 바뀌어간다. 불 과 일 년 전의 그녀를 생각하면, 그 때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았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을 깎아 상대 의 틀에 맞춰 나가는 건지도 모른
다. 서로가 서로에게 걸맞게 말이다. 예전의 최연하는 강진호가 그녀와 함께 있으며 설레기를 바랐다. 조금 더 그녀를 생각하고, 그의 안에 그 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길 원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건 별 상관 이 없다.
적어도 이 사람이 그녀를 앞에 두고 있을 때만큼은 다른 때보다 조 금 더 편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아니. 충분하지는 않은 것 같아.”
“예‘?”
“ 흐음.”
최연하가 다리를 꼬았다.
“배려 충분히 해줬으니까, 이제는 내 턴이에요. 나한테 좀 맞춰요.”
“……뭔 배려를?”
“안 해줬다고?”
“추, 충분히 받았습니다.”
그게 뭔지 전혀 모르겠지만, 여하 튼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뭔가 긴장한 둣한 표정의 강진호 를 보며 최연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 사람은 날이 갈수록 얼이 빠 져가는 것 같다. 아니, 그저 인간적 으로 변해가는 거겠지. 그녀가 변했
듯 강진호도 변했다. 사람이란 변하 지 않으면서도 변한다. 조금씩 변해 가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 할 뿐.
“이제 왜 그런 표정인지 말해 봐 요.”
강진호가 침음을 홀리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홉연실 빨리 다녀오시든가.”
“……귀신이세요?”
“그건 세 살짜리도 맞추겠다.”
‘뭔 담배 못 피워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담배 밭마다 족족 찾아내서 불을 질러 버리든 해야지’라고 중얼
거리는 최연하를 보며 강진호의 이 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딱히 뭐 대단한 건 아니고……
“네.”
“ 그냥••••••
강진호가 머리를 긁어 댔다.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데…… 딱히 제가 도와주지도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어서 그게 마음에 걸리네요.”
“마음에 걸려요?”
“예.”
“ 왜?”
“……말했다시피 직접적으로 도와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요.”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진호 씨 말대로라면 나는 진호 씨를 도와준 게 아무것도 없는 거네 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왜요? 직접적으로 도운 게 없는 데? 내가 해준 거라고 해봐야 돈 몇 푼 벌어다 준 것뿐인데, 그건 진 호 씨한테는 말 그대로 푼돈이잖아 요.”
“돈이 문제가 아니죠.”
“그렇죠?”
최연하가 빙그레 웃었다.
“꼭 뭔가를 해줘야 도와주는 게 아니죠. 때로는 그저 지켜봐 주는 것도 위안을 줄 수 있고, 때로는 그 저 믿어주는 것만으로 힘이 될 때도 있는 거죠.”
“반드시 뭔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 각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예를 들 면…… 음, 팬 같은 거죠.”
“ 팬?”
“네. 제 팬들요.”
최연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 다.
“팬이라는 게 참 오묘한 존재거든
요. 특히나 직접적으로 뭔가를 구매 해 줄 수 있는 가수가 아니라 배우 의 팬들은 진짜 오묘한 존재예요.”
강진호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그게 뭐랄까…… 뭔가 있으면 도 움이 되는 것도 같은데, 막상진짜 도움이 되는 건 별로 없고.”
“내가 나오는 영화는 꼭 봐준다고 하는데, 제 팔로들 중 10프로만 영 화관에 가줘도 망하는 영화는 없을 텐데, 또 영화가 재미없으면 절대
안 보거든요.”
그거…… 진짜 미묘하네.
“이게 참 있으면 좋은데, 있어서 정말 도움이 되냐고 하면 그것도 잘 모르겠고. 오히려 팬이라는 애들이 사진 한 장 올리면 ‘이거 하지 마 라’, ‘저거 하지 마라’ 잔소리나 해 대고.”
최연하 씨, 불만이 참 많아지셨네 요.
“그런데도……
“음?”
최연하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아무것도 아닌 팬들이 사람이 힘이 나게 해줄 때가 있어요. 그래 도 세상 어딘가에 나를 좋아해 주 고,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가족끼리도 사이가 안 좋은 경우 가 많은데, 제대로 얼굴 한 번 마주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다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죠. 예전 에는 그게 소중한지 몰랐지만.”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최연하가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저 믿어주고, 잘되길 바라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 어요.”
그 말을 들은 강진호가 슬쩍 고 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믿어준다라……
이미 충분히 믿고 있다고 생각했 다.
이현수나 다른 이들 앞에서는 확 신을 담아 말하지만, 최연하 앞에만 오면 숨겨뒀던 그의 약한 부분이 드 러난다.
“어렵네요.”
“세상에 쉬운 게 뭐 있어요?”
“그렇죠.”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걱정 말아요. 제일 큰 산은 넘었 잖아.”
“큰 산이요?”
“진호 씨 인생에 어려운 게 아무 리 많아도 날 꼬시는 것보다 더 어 려운 일은 없을 테니까.”
“자신감 가져도 좋아요. 제가 인 정해 드림.”
“……감사합니다.”
헛웃음을 지은 강진호가 조금 느 슨해진 자세로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근육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 나는••••••
그저 대화하고, 고민을 나누고, 그리고 서로를 마주 보는…….
이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지켜 나가고 싶다.
이 평범한 일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