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53)
마존현세강림기-1855화(1852/2125)
마존현세강림기 75권 (14화)
3장 올라서다 (4)
“그럼••••••
원탁 중앙에 앉은 위긴스가 다른 나이트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견은 없는 걸로 알겠습니다.”
대답은 딱히 돌아오지 않는다.
침묵은 긍정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 침묵의 의미가 결코 긍정은 아닐 것이다.
무언의 항의.
위긴스가 마스터의 자리에 앉는 것을 막을 힘은 없지만, 심정적으로 는 절대 동조할 수 없다는 의미였 다.
과거의 위긴스였다면 그 의미를 이해하고 조금 더 좋은 방향을 찾아 내기 위해서 애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의미하지.’
어차피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과거의 위긴스는 같은 결과도 과
정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고 여겼 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조금 다른 평가를 위해서 그 길고 지난한 설득 의 과정을 거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고 있었다.
그래, 쉽게 말하자면…….
‘독재자로군.’
힘으로 찍어 누르고 상대의 결정 을 강요한다.
과거, 그가 가장 혐오하던 행태 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그런 일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절로 쓴웃 음이 지어졌다.
다만, 그것뿐.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서 독재자 의 행태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 다.
“나이트 위긴스.”
“아니.”
위긴스가 가벼운 어조로 그 말을 정정해 주었다.
“마스터라 부르시오, 나이트 타바 레스.”
나이트 타바레스가 살짝 입술을 깨물고는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명백한 적의도 담을 수 없고, 그 렇다고 긍정의 의미도 담아낼 수 없
는 그의 눈은 더없이 흐려 보이기만 했다.
“나이트로서 나이트 위긴스께서 마스터의 위치에 오르는 것을 반대 할 생각은 아닙니다. 하지만 원탁에 는 원탁의 절차가 있습니다.”
“그래서?”
“원탁의 절차대로라면 마스터가 죽거나 실종되어 공석이 되지 않는 이상, 후임 마스터의 임명은 마스터 의 재가가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계속하시오.”
나이트 타바레스가 마른침을 삼켰 다.
“하지만 지금 마스터께서는 실종 된 것도 아니고, 사망하신 것도 아 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이트 위긴 스께서 후임 마스터의 직위에 오른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애초 에 나이트 위긴스…… 아니, 위긴스 공께서는 현직 나이트도 아니잖습니 까?”
위긴스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 를 끄덕였다.
“다들 저 말에 동의하시오?”
침묵.
돌아오는 낮은 침묵에 위긴스가 다시 낮게 웃었다. 언제나 의견이 넘쳐 나 왁자지껄하던 이 원탁이 이 리 조용한 적이 과거에 또 있었던 가.
똑같은 장소에 소리가 사라지는 것만으로 그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 다. 과거의 이곳이 나름의 즐거움을 갖춘 공론의 장이었다면, 지금 이곳 에는 힘과 권력이 묵직하게 내려앉 아 있다.
‘애초에 이런 거지.’
무엇을 좇았을까?
공평? 민주?
웃기는 소리.
마스터는 언제나 원탁의 중앙에 앉는다.
원탁이 정말 서로 대등한 존재들 이 대등한 발언력을 갖추고 허심탄 회하게 의견을 논하는 자리였다면, 상석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이가 없 고, 마스터라는 직위가 존재할 리가 없다.
얄팍한 속임수.
그도 한때는 이 얄팍한 속임수를 진리라고 믿었다.
완전무결한 방법은 아닐지라도 적 어도 그 완전무결에 가장 가까운 방
법이라도 믿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 만 이제는 이 모든 과정이 그저 허 울로만 보인다.
그가 세상의 또 다른 진리에 눈 을 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타락해 버렸기 때문 일까.
“나이트 타바레스께서 하고자 하 시는 말씀이 뭔지는 이해했소. 하지 만 그건 딱히 문제가 될 일이 아닌 것 같소.”
“무슨 의미이십니까?”
위긴스가 나이트 타바레스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이곳에 보낸 사람이 바로 마스터이기 때문이지.”
순간, 나이트 타바레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한참 말없이 위 긴스를 바라보던 그가 침음하듯 말 했다.
“위긴스 공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 만, 저는……
“믿기 어렵다?”
위긴스가 피식 웃었다.
“듣자하니 조금 우습군.”
위긴스의 시선이 원탁에 둘러앉아 있는 이들을 쭉 훑었다. 나이트들이
차마 그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 깔았다.
“나이트 타바레스의 말대로라면 그대들은 지금 전 마스터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뜻이겠지?”
“창왕과 손을 잡고 총회를 배신해 공격한 그 마스터를 말이오.”
“자, 잠시……
누군가 손을 들었다.
“말씀하시오, 나이트 코자크.”
“그건 나이트 타바레스의 개인적 인 의견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미 나이트 위긴스께서 마스터의 자리에
오르는 데 찬성의 의사를 밝혔습니 다.”
위긴스가 고소를 머금었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전임 마스터 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 오‘?”
“총회를 공격한 것은 저희의 의사 와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 배신은 단 한 번도 이 신성한 원탁에서 논 의된 적이 없었고, 그 누구와도 합 의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흐음•…”
“저는 스스로의 독단으로 원탁의 합의를 무시해 총회를 배신하고, 그
결과 원탁을 위기로 빠뜨린 전임 마 스터를 마스터라 인정하지 않습니 다. 극단적인 결과 덕분에 해임에 대한 안건이 제대로 상정되지 못한 것뿐, 다른 나이트들 역시 같은 의 견일 것입니다.”
위긴스가 다시 한번 나이트들을 바라보았다.
“그렇소?”
나이트들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 다.
위긴스를 지지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스
터의 편을 들어 총회의 진노를 사고 싶지도 않다.
“어떻소, 나이트 타바레스?”
위긴스의 말을 들은 나이트 타바 레스가 얼굴을 굳혔다.
“무, 물론 그렇습니다. 저 역시 전임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아닙 니다. 하지만 절차라는 게……
“어떤 절차?”
위긴스가 피식 웃었다.
“그럼 지금 이곳에서 전임 마스터 의 해임에 관한 투표를 하면 되겠 소? 그 의미도 없는 과정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자는 의견이신 거요?”
나이트 타바레스는 대답하지 못했 다.
그가 주변 나이트들을 둘러보았 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그에게 동 조하는 시선이 아니라 차갑기 짝이 없는 힐난의 시선이었다.
‘빌어먹을.’
누가 봐도 그가 옳은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원탁의 정의를 수호한다는 나이트라는 것들이 힘과 위세에 굴 복하여 모든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 고 저 외부인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고 있었다.
이게 무슨 원탁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건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나이트 타바레스가 독기 어린 시 선으로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위긴스 공 께서는 나이트가 아니십니다. 그런 분이 마스터의 자리에 오르는 건 원 탁의 법칙상 불가능합니다.”
“이보시오, 나이트 타바레스.”
“예.”
“내가 영국의 나이트의 자리에 다 시 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며칠이
라고 생각하시오?”
나이트 타바레스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옆으로 돌아간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앉아 있는 영국의 나이트가 그의 시 선을 받더니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이틀, 아니면 하루? 어쩌면 반나 절?”
딱!
위긴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삼십 분도 걸리지 않을 거요. 애 초에 나이트란 국가의 결정으로 선 임하는 것이지, 원탁에서 임명하는
것이 아니니까.”
위긴스가 마스터가 되기 위해서 나이트의 자리가 필요하다고 하면, 영국에서 반대를 하겠는가?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지, 막을 일이 아 니니까.
그 사실을 이곳에 있는 이들이 모를 리가 없다.
위긴스의 시선이 가만히 나이트 타바레스의 시선을 억눌렀다.
“티타임이라도 필요하신 거요? 굳 이 삼십 분의 휴식이 필요하다면,
내 그리 해드리리다.”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위긴스의 시선이 점점 더 날카로 워진다.
“빤한 말로 시간을 끄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도 되겠소?”
나이트 타바레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나이트 위긴스.”
한참 동안 침묵하던 나이트 타바 레스가 굳건한 의지를 담아 나이트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나는 한때 당신을 존경했습니다.”
“당신은 나이트의 표본이었고, 나 이트의 모범이었습니다. 언젠가 당 신이 마스터의 자리에 오르면, 나는 전심전력을 다해 당신을 지원할 생 각이었습니다.”
“홈.”
위긴스가 의자에 둥을 기댔다.
“하지만 지금 당신이 보여 주는 모습에서는 실망을 금할 수가 없습 니다. 원탁을 무력으로 겁박하여 마 스터의 자리에 올라서 대체 뭘 할 생각이십니까! 이게 당신이 생각하 는 정의입니까?”
훌륭한 용기였다.
위긴스 역시 그 사실은 인정했다. 개인의 무력으로나, 등에 업은 힘으 로나 원탁과는 비할 바 없이 강대한 이가 되어버린 위긴스를 상대로 핏 대를 세워가며 정론을 논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의 위긴스였다면 저 용기를 상찬하고 박수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예?”
“쓸데없는 감정론을 늘어놓지 말 고, 결론만 말하시오. 그래서 내가
마스터에 오르는 데 잘못된 절차가 무엇이오?”
“마스터의 부재 시 차기 마스터는 나이트들의 표결로 결정한다. 그렇 지 않소?”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하지 만 이건!”
“말해보시오. 뭐가 틀렸소?”
나이트 타바레스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가 고개를 홱 돌려 다른 나이 트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그저
그의 시선을 외면할 뿐이었다.
“나는 민주적인 절차를 선호하지.”
위긴스가 빙긋 웃었다.
“당신을 제외한, 아니, 심지어 당 신마저 내가 마스터가 되는 것을 찬 성했으니, 이건 더없이 민주적인 절 차가 아니오? 그렇지 않소?”
차마 뭐라 대답하지 못하는 나이 트 타바레스를 보며 위긴스가 고소 를 머금는다.
‘나치조차 표결로 집권했지.’
그 어떤 방식도 완전한 선일 수 없다. 위긴스는 이제 그 사실을 안 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그는
더 나은 방식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을 이용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더 이견이 없으면 오늘부로 내가 마스터가 되는 것으로 하겠소.”
위긴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다.
그런 후, 나이트들을 한 번 쭉 둘 러본 위긴스가 빙긋 웃었다.
“ 이견은?”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원탁은 잘 이 끌어 드리지. 물론 지금껏 당신들이 생각하는 방식과는 조금 다를 테지
만.”
“위긴스!”
나이트 타바레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얼음보 다 더 차가운 위긴스의 시선이었다.
“권리라는 것은 의무를 이행했을 때나 주장할 수 있는 거요, 나이트 타바레스.”
위긴스가 씹어뱉듯 말했다.
“당신들은 마스터의 행동을 방조 한 암묵의 동조자들이오. 회주님께 서 관대하셔 당신들에게 죄를 묻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아시오. 그게 아 니면 원탁의 긴 역사는 이미 끝났을 테니까.”
나이트들이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위긴스가 낮게 웃 었다.
‘정의를 위해 목숨조차 거는 이들 의 모임이라……
그런 건 여기에 없다.
처음부터.
“좋은 밤 되시길.”
나이트 위긴스.
아니, 마스터 위긴스가 몸을 돌려 원탁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