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55)
마존현세강림기-1857화(1854/2125)
마존현세강림기 75권 (16화)
4장 기다리다 (1)
저벅.
저벅.
깊은 지하.
발소리가 깊고 깊은 통로를 타고 유령의 흐느낌처럼 퍼져나갔다.
어둠이 진득하게 내린 복도를 위 긴스가 작은 불빛 하나에 의지해 걷
는다.
‘어디까지 내려가는 거지?’
그가 원탁에 몸담은 지가 몇 년 이던가?
하지만 그 오랜 기간을 원탁에서 살아오면서도 지하에 이런 깊은 공 간이 있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상 상해 본 적이 없었다.
좁고 좁은 원형의 계단이 끝도 없이 아래로 내려간다.
마치 무저갱처럼 말이다.
이미 ‘공포’라던가 ‘불안’같은 감 정은 거의 사라져버린 위긴스지만, 이 길고 깊은 원형의 계단을 내려가
다 보니 잊고 있던 감정들이 스멀스 멀 가슴을 파고든다.
“ 신화같군.”
신화 속의 영웅들은 이런 곳을 내려가 그 심연의 끝에 있는 괴물과 마주했겠지.
그럼.
지금 위긴스가 잡으려는 괴물은 무엇일까?
위긴스가 낮게 웃었다.
‘웃기는 소리지.’
괴물을 잡으려는 영웅이라니.
천만에.
그가 괴물이다.
이곳의 이 음울함이 가장 잘 어 울리는 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위긴 스일 것이다. 한때 영웅을 꿈꿨지만, 이제는 영웅이 아닌 괴물이 되어버 린 자가 바로 위긴스다.
그래서 후회하냐고?
‘ 천만에.’
애초에 영웅은 그의 역할이 아니 다.
과거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적을 앞에 두고 계산하는 자는 절대 영웅이 될 수 없다.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일을 앞에 두고도 일말의 망 설임 없이 달려들 수 있는 이만이
영웅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위긴스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건 노력의 문제가 아닌 천성의 문제.
‘영웅이 될 수 없다면 괴물이라도 되어야겠지.’
최악은, 영웅이 되지 못하고 괴물 이 되는 게 아니다.
영웅도 괴물도 되지 못하고, 옆에 서 그들의 들러리를 서는 조연이 되 는 것이다.
위긴스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걸은 길은 주연이 되기 위
한 길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그가 어쩔 수 없는 이들이 있고, 대부분 의 삶이란 그들의 결정에 휩쓸려갈 뿐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아니다.
그 역할이 무엇이든 위긴스는 이 제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하는 이 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 이 길을 내려 가는 것이니까.
저벅. 저벅.
깊고 깊은 심연 속으로 들어가듯, 아래로 또 아래로 내려가던 위긴스 의 눈에 마침내 계단의 끝이 들어온
저벅.
발끝에 닿는 감각이 다르다.
위긴스가 깊은숨을 토해내며 무저 갱이라 불러도 될 깊은 구덩이를 둘 러본다.
등골이 서늘한 느낌.
‘다르지 않겠지.’
과거 이곳은 아마 영광의 장이었 을 것이다.
모든 경쟁을 이겨내고, 심지어 과 거의 영웅들과의 비교조차 극복해내 도전할 자격을 얻어낸 이만이 이 깊 고 깊은 곳으로 걸어 내려왔을 것이
다.
아마 그 걸음걸음은 상찬이 넘쳐 나고, 환희가 가득했겠지.
위긴스가 고개를 들어 허공을 올 려다본다.
지금은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 저 높은 계단들이 과거에는 빛으로 가 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쓰임새를 잃어버린 건 언젠가는 이리 되는 법.
원탁의 적과 원탁에서 버림받은 시험이라.
“뭔가 그림 같지 않은가?”
그의 눈에 한쪽 벽면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문이 보였다.
한때 이 문을 설명하는 말은 웅 장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가 이 문에서 느끼고 있는 감정은 위압감이 었다.
던전에 감정이 있을 리는 없지만, 이 던전은 아무리 봐도 그를 환영하 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위긴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떠냐?’
그는 원탁의 악당이다.
이 던전이 엘더 나이트를 만들어 내 원탁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면, 이곳의 가장 큰 적은 다
름 아닌 위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이 던전은 그를 물리쳐 원탁을 수호할 것인가?
아니면 버려지고 배신당한 자신의 처지를 절절히 실감하고, 위긴스를 가장 강대한 원탁의 적으로 완성시 킬 것인가?
저벅. 저벅.
문으로 다가간 위긴스가 가만히 손을 뻗어 거대한 철문에 양손을 가 져다 댄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문에 천천히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
했다.
우우우우웅!
낡고 녹슨 철문이 천천히 진동한 다.
그 진동음이 위긴스의 귀에는 마 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선택해라 망할 시련아.”
위긴스가 마치 강진호처럼 웃었 다.
“괴물을 막을 건지, 아니면 같이 괴물이 될 건지. 어차피 너나 나나 영웅이 되는 길 따위는 남아 있지 않으니까.”
우우우우웅!
철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어둠.
열린 철문 사이로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얼마나 짙은지 손을 대면 묻어나올 것만 같은 진득한 어 둠이 그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말없이 그 어둠을 가만히 바라보 던 위긴스가 무거운 첫 걸음을 뗐 다.
‘나는 돌아온다.’
반드시 이곳으로.
짙고 짙은 어둠이 위긴스를 완전 히 삼켰다.
쿠우우웅!
철문이 굳게 닫힌 그곳에는 처음 부터 아무도 없던 것 같은 깊은 침 묵이 내려앉았다.
타탓.
담배 끝이 빨갛게 타오른다.
멍한 눈으로 담배 끝을 웅시하던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 다보았다.
어두운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던 강진호의 입에서 낮은 숨이 새어 나 온다.
‘ 외롭군.’
강진호가 담배를 문채 가볍게 웃었다.
우스운 일이다.
과거 그 지독한 고독 속에서도 외로움이라는 생각을 머리에 담지 않던 강진호가 바로 이 현대에서 외 로움이라는 감정을 머리에 담다니.
‘청마가 보면 비웃을까?’
아니면 그도 강진호의 감정에 공 감할까?
“후우〜”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은 강진호 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가 생각한 것보다 지금 이 자 리에 없는 이들이 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모양이다.
과거의 그는 많은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가족만 그의 곁에 있다면 뭐든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 제부턴가 그 곁을 친구가 채웠고, 언제부턴가는 또 동료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욕심쟁이군.’
하나도 놓고 싶지 않다.
하나도 잃고 싶지 않다.
그의 세상은 점점 커져가고 그가
지켜야 할 이들도 점점 더 커져갔 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강진호가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 리에 고개를 돌린다.
이현수가 또 눈치 좋게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솔직히.”
“예?”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제가 또 대답을 해 드리는 데는 전문가 아니 겠습니까.”
“……혹시 내 사무실에 CCTV를
설치해 뒀나?”
“아니면 옥상에다 설치해 뒀던가.”
“쯔쯔 ”
X X.
이현수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 다.
“그래서 회주님은 아직 안 된다는 겁니다. 사람이 싸움을 잘하면 뭐합 니까? 현대 문명을 전혀 이해 못 하시는데.”
“••••••웅?”
“요즘은 그런 거 안 합니다. 위성 감시와 GPS가 있는데 뭔 CCTV7} 필요합니까?”
“……진짜 해?”
“농담이죠. 설마요.”
강진호가 고개를 내젓는다.
당연히 농담이라는 걸 알고 있지 만, 저놈의 입에서 나오면 그게 농 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아니, 정말 감시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튼 익숙해지셔야죠. 아마 지금 회주님 주변을 보고 있는 위성이 몇 개는 될 걸요?”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
“그걸 믿습니까?”
이현수가 피식 웃는다.
“홍왕계가 장악한 중국 정부가 정
말 과연 회주님을 감시하지 않을까 요? 홍왕이야 그럴 사람이 아니라지 만, 그 차이커창 놈이 정말로?”
“미국은요? 좋게 좋게 협의가 되 고 안 그러기로 했으니까 회주님 같 은 위험인물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 고요? 설마요. 저 같으면 위성만 열 개는 동원했습니다.”
“겉으로 알려진 위성의 수와 실제 위성의 수가 같을 리가 없죠. 요즘 이야 민간 기업에서도 하루에 위성 두어 개씩 쏘아 올리는 세상인데.”
강진호가 고개를 슬쩍 돌려 하늘 을 바라본다.
조금 전까지는 여러 가지 감상을 전해 주던 어두운 밤하늘이 이제는 감시 카메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 실제로도 그렇고.
“로망이 없는 세상이로군.”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죠.”
고개를 내저은 이현수가 강진호의 옆에 와 선다. 그러고는 자신도 담 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래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셨습니까?”
“아이러니.”
“예? 아이러니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현대에 다시 돌아온 내가 첫 번 째로 한 건.”
“예.”
“지켜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아도 될 사람은 구분하는 거였지.”
“그리고 내가 그 사람들을 지켜내 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강해져야 하 는 지를 파악하는 거였고.”
“ Q ”
이현수가 낮게 추임새를 넣자, 강
진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켜야 할 사람 은 점점 더 많아졌고, 나는 더욱더 강해져야 했지. 때로는 솔직히 버거 울 정도로 말이야.”
“이해합니다.”
이현수가 보기에도 강진호는 가시 밭길을 걸어왔다.
그가 지금 이룩한 성과와 지위, 그리고 가진 권력은 누구라도 부러 워할 만한 것이지만, 동일한 결과를 얻기 위해 강진호와 같은 길을 걸어 야 한다면 그 길을 선택할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끝까지 가다보니.”
“예.”
“이제는 내가 지키던 사람들이 나 를 지키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더 라는 거지.”
이현수가 피식 웃어버린다.
“그게 뭐 별거라고요.”
“너도 마찬가지고.”
알고 있다.
강진호가 울적해 옥상에 오를 때 마다 이현수가 따라올 수 있는 이유 는 그때마다 이현수가 항상 회에 있 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현수 역시 자신의 생활을 완전 히 내려놓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모두가 말이다.
“나를 구성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 라는 거지.”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네가 없는 나는 나일 수 있을까?”
“바토르가 없는 나도 나일 수 없 겠지. 적어도 지금의 나와 같지는 않을 거야.”
“갑자기 철학 공부라도 하셨나. 왜 이러시지.”
강진호가 뚱한 눈으로 이현수를 돌아보자 이현수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린다.
“뭐, 그래서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너도 마찬가 지라는 거지.”
“예?”
“현주가 없는 네가 너일 수 있을 까?”
“그럴 수 없겠지. 적어도 지금과 같지는 않을 거야.”
“그렇……겠죠.”
“그럼 현주는?”
이현수는 그제야 강진호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깨달았다.
“퍼져가는 군요.”
“그래. 세상 전체로. 내가 지켜야 할 것이 반드시 내 주위에만 머무르 지 않는 거야. 내 주위를 지키기 위 해서는 다른 것들도 지켜야 하는 거 지.”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 똑똑한 사람은 그 적절한 선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지. 하 지만 나는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아 니라 잘 모르겠어. 그래서.”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지켜야 한다면 모두 지켜야겠지. 그게 나를 지키는 길이니까.”
“미친 짓인데요?”
“그럴지도 모르지.”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든 걸 할 수는 없지. 나는 신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니까.”
“하지만 적어도……
강진호가 다시금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싸워야 할 이유는 알겠어.”
강진호의 미소를 본 이현수가 깊 게 한숨을 내쉰다.
“한 번씩……. 아니, 항상 느끼는 건데.”
“음‘?”
“회주님은 너무 느린 사람이에요.” 그 말을 들은 강진호가 낮게 웃 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 려다본다.
‘이유는 찾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움직이는 것 뿐.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았으 면 좋겠군.”
“그럴 겁니다. 성격 급하신 양반 들이니까요.”
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그의 주위가.
아니, 그가 완전하게 채워지는 순 간.
세상을 향해 그의 발이 움직일 것이다.
거침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