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59)
마존현세강림기-1861화(1858/2125)
마존현세강림기 75권 (20화)
4장 기다리다 (5)
소파에 앉아 있는 바토르를 바라 보는 이현수의 얼굴에 뭐라 말하기 힘든, 오묘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저게 앉아지네.’
물론 바토르가 그동안 소파에 앉 지 못한 건 아니다.
엉덩이 끝을 살짝 걸치는 것도 ‘앉는다’로 인정한다면 말이다. 물론 그 말도 안 되는 무게 때문에 심심 하면 뒤틀리는 소파를 수도 없이 갈 아대야 했지만…….
‘앉아져.’
어쨌거나 지금 바토르는 정상적으 로 소파에 ‘앉아’ 있다.
남들에게는 별것 아닌 일일지 모 르지만, 이현수를 비롯한 총회의 사 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세상이 뒤집힐 일이었다.
“……밥을 못 드셨습니까?”
방진훈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묻자 바토르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밥을 못 먹었다고 키가 줄어드 나, 키가 줄어?”
“아니, 너무 황당하니까 그렇지. 사람이 갑자기 반쪽(?)이 되어서 왔 는데.”
혼히들 말하는 ‘얼굴이 반쪽이 되 었다’는 그냥 비유라고 봐야 하지 만, 지금 바토르는 정말 말 그대로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다.
“거, 다이어트를 너무 심하게 하 신 것 같은데.”
방진훈이 영 이상하다는 투로 자 꾸 바라보자, 바토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벽을 넘고 육체를 재구성한 입지 전적인 업적이 다이어트 실패쯤으로 비하되는 이 상황에 그가 대체 어떤 반웅을 보여야 한단 말인가.
“ 여하튼……
하지만 방진훈은 방진훈 나름대로 할 말이 있었다.
살아생전 이런 일을 또 어디서 보겠는가. 사람이 나이가 들어 체구 가 줄어드는 일이 없는 건 아니지
만, 지금의 바토르처럼 형태 자체가 바뀌어 버리는 일이 어디 흔한가.
“거참, 신통방통하네.”
방진훈이 고개를 홱 돌려 강진호 를 바라보았다.
“이런 일이 혼합니까?”
강진호가 살짝 턱을 쓰다듬었다.
“혼하지야 않겠지. 기본적으로 환 골탈태라는 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학을 펼쳐 내기에 가장 적합한 육 체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강진호가 묘한 눈으로 바토르를
보며 말했다.
“좀 과하게 크긴 했지.”
“그건 그렇죠.”
“너무 과했지.”
바토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 다.
“이것들이……
하지만 바토르도 딱히 반박은 하 지 못했다. 그가 외공을 중심으로 한 무학을 익힌 것은 사실이고, 이 전까지의 그 거대한 육체가 외공을 익히는 데 큰 도움을 준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바토르의 무학은 외
공에 한정되지도 않고, 그 파괴력이 반드시 육체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 니다. 오히려 비대하기 짝이 없는 육체가 부드러움의 한계를 만들고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 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육체가 줄어든 건 사실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끄웅••••••
눈앞에 놓인 컵을 살짝 살짝 두 어 번 잡아본 바토르가 이내 손을 내려놓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끙〜 이거, 영 익숙해지지 않는 군. 물건들이 하나같이 너무 커.”
“……원래 바토르 님 몸이 너무 큰 거였죠.”
“안다고!”
바토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는데 잘 안 되는 걸 뭘 어쩌라 는 거냐!”
이현수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 다.
지금 바토르가 느끼는 감각을 굳 이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 자면,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몸 이 어린아이일 때로 돌아간 것과 비 슷하지 않을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좋은 일일지
도 모르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간단 하지 않다. 바토르 정도 되는 이니 까 그나마 아무 일 없다는 둣 움직 이는 거지, 평범한 이였다면 채 두 걸음도 걷지 못했을 것이다.
다리의 길이, 체간의 무게, 몸의 균형.
그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진 이 가 평소처럼 걷고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심지어 지금의 바토르는 저 컵을 잡을 때, 어느 만큼의 힘으로 잡아 야 하는지조차 감이 오지 않을 것이 다. 그러니 저 작은 컵 하나 손대지
못하는 거겠지.
물론 곧 익숙해겠지만, 아마도 한 동안은 고생을 좀 해야 할 것이다.
“ 어때?”
강진호의 물음에 바토르가 쓴웃음 을 지었다.
“위화감이 너무 심하다고 해야 하 나? 몸이 달라지면 알아서 적응이 다 될 줄 알았는데, 이건 좀 괴이하 군.”
“케이스가 많이 다르니까. 보통은 너처럼 극심한 체형의 변화를 겪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
“끄응, 그렇겠지. 하지만 차차 적
웅하고 있다.”
바토르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손에서 느껴지는 힘이 예전만 못 하다. 맨주먹으로 태산이라도 으스 러뜨릴 것 같던 그의 육체는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토르는 조금의 아쉬움이 나 허탈감도 느끼지 못했다.
육체에 실린 힘은 과거만 못하다 해도 그의 몸 안에는 태산이 아니라 하늘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 용솟 음치고 있다. 힘이라는 측면에 있어 서는 세상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
으리라 자신하던 바토르조차 그의 몸 안에 흐르는 힘에 당혹을 느낄 정도였다.
‘벽을 넘는다인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고 새로운 경지로 나아간다.
그동안의 바토르도 초인이라는 이 름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 람이었지만, 벽을 넘어보니 이제야 초인이 왜 초인인지를 실감할 수 있 었다.
“거, 많이 다릅니까?”
“응?”
방진훈의 물음에 이현수는 고개를
돌려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뭐, 세상이 느리게 간다든가, 투 시가 된다든가.”
“네놈이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게 알겠군.”
바토르가 피식 웃었다.
모든 것이 더 생생해지고,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는 것을 제외하면 큰 변화는 없었다. 변화는 밖이 아 니라 그의 안에서 일어났으니까.
“여하튼 산 하나는 넘었습니다.” 이현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벽을 넘는다는 건 그만한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다. 최악의 상황은 시 도한 이들 모두가 죽거나 폐인이 되 는 것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될 확 률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바토르가 벽을 넘어준 덕분에 어찌 되었든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지.’ 어쨌거나 지금 장민과 위긴스가 벽을 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있으 니까.
“장로님은 괜찮으실까요?”
“별걱정을!”
바토르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단 호하게 말했다.
“내가 넘은 걸 영감이 넘지 못할 리는 없어.”
“하지만 벽이라는 게…… 실제로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다면, 이제까 지 넘지 못할 이유도 없었잖습니 까?”
“그건 다르지.”
바토르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는 우리가 그 기생오래비를 만나기 전이었으니까.”
“기생오래비라면…… 백연홍을 말 하시는 겁니까?”
“그래.”
바토르가 낮게 코웃음을 쳤다.
‘그 싸움이 아니었다면 벽을 넘을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
사람에게는 적절한 자극이 필요한 법이다. 누군가의 등을 떠미는데 경쟁 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법이니까.
바토르도, 장민도…… 아니, 특히 바토르의 경우 입으로는 언젠가는 강진호를 넘어서겠다고 떠들어 댔지 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 먼 거리 의 격차에 절망한 뒤였다.
그때 나타난 이가 백연홍이다.
백연홍은 벽을 넘은 자다. 하지만
강진호처럼 어마어마한 거리감을 느 끼게 하지는 않았다. 강진호가 아무 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구름 위 에 있다면, 백연홍은 악을 쓰고 뛰 어오르면 발목이라도 잡아볼 수 있 을 만한 높이에 있었다.
그 거리감이 장민과 바토르의 호 승심에 불을 질렀다.
바토르가 그 호승심을 바탕으로 벽에 달려들었듯 장민 역시 지금 최 선을 다해 벽을 넘고 있을 것이다.
“그 영감이 뒈지는 건 말이 안 되 지. 막말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 봐도 사람보다는 요괴에 가까운데,
설마 이런 일로 죽기야 하겠어?”
“누가 요괴냐, 이 덩치만 큰 머저 리 놈이.”
바토르의 고개가 문 쪽으로 홱 돌아갔다.
“ 어?”
바토르의 입가가 살짝 경련을 일 으켰다.
“뭐……
문을 빤히 바라보던 바토르의 고 개가 강진호 쪽으로 홱 돌아갔다. 강진호의 얼굴에 뜻 모를 미소가 피 어 있는 것을 본 바토르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잡았다.
덜컥.
조금 낡은 문이 열리더니, 그 뒤 로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이 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자, 장로님!”
“ 영감!”
이현수와 바토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들의 눈이 문 뒤에 나타난 장 민의 모습을 재빠르게 훑는다.
그리고 그들과는 다르게 소파에 앉아 있던 방진훈이 고개를 절레절 레 내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나는 작아지고, 하나는 젊어지
고…… 젠장 나도 분장이라도 하고 나타나든 해야지.”
그 말 그대로…….
문을 열고 나타난 장민의 모습은 그들이 아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 다.
언제 정리했는지 깔끔하게 넘긴 리젠트는 여전히 인상적이고, 거칠 게 자라났던 옆머리도 완벽한 각을 맞춰 밀려 있었다.
다만…….
“……주름이 어디 갔어?”
그 헤어스타일 아래로 보이는 얼 굴은 미노년이 아니라 미중년에 가
까울 정도로 어려져 있었다.
“이 영감이 주책맞게 회춘을 해?” 바토르가 이를 갈며 소리치자, 장 민이 피식 웃었다.
“쪼그라든 놈이 소리를 질러 대니 우습지도 않군.”
“하••••••
바토르가 헛웃음을 흘렸다.
하나 그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격정이 일고 있었다.
“뭔 기색도 없이……
“네놈이 요란한 게지. 벽 하나 넘 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온
동네에 다 기운을 뿜어내느냐?”
“……넘은 건가?”
“당연하지.”
바토르가 격정에 차 다가가자, 장 민이 손을 뻗어 바토르의 어깨를 움 켜잡는다.
“ 영감!”
“비켜라, 이놈아!”
장민이 바토르를 구석으로 밀어 던져 버리고는 재빠르게 강진호를 향해 뛰어갔다.
“마존이시여어어어어!”
그러고는 평소와 조금도 다를 것 없이 바닥에 부복하며 소리쳤다.
“속하가 불민하여 마존을 오래 기 다리게 했나이다! 이 불충을 벌하여 주시오소서!”
그 광경을 본 이현수와 바토르가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뭐가 바뀐 거야?’
‘똑같구만.’
얼굴이 좀 어려진 것 말고는 달 라진 게 없었다.
하기야…….
바뀌면 장민이 아니겠지.
부복한 장민을 빤히 바라보던 강 진호가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기분은 어때?”
장민이 고개를 들었다.
더없이 진지한 눈으로 강진호와 마주한 장민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지난 것을 보고 왔습니다.”
“버렸나?”
“내려놓았습니다.”
“그래.”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된 거지.”
장민의 입가에도 미소가 어렸다.
“모든 것이 마존의 은혜이옵니다. 이 장민, 지금까지의 미욱함을 떨쳐 내고 앞으로는 신심을 다해 마존을 모실 것입니다! 교 역시 일신하여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영혼을 바치 겠습니다!”
“……살살 좀 하자.”
“예, 마존이시여!”
고개를 내저어 버린 강진호가 손 을 뻗어 장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 려 주었다.
“……고생했다.”
“정말 고생했어.”
빙긋 웃으며 몸을 일으킨 장민이 고개를 돌려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뭐 하는 거냐, 이 한심한 놈아. 팔다리도 제대로 놀리지 못하는 놈
이 팔자 좋게 여기 처 앉아 있어? 그 시간에 수련을 해 감각을 찾지는 못할망정?”
“너 같은 놈들이 마존을 모시고 있으니 내가 불안해서 죽지도 못하 는 것 아니더냐!”
“……영감.”
“뭐?”
“……제발 좀 죽어, 이 요괴 같은 인간아.”
총회의 든든한 잔소리꾼이 당당히 복귀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