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64)
마존현세강림기-1866화(1863/2125)
마존현세강림기 75권 (25화)
5장 복귀하다 (5)
기이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건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었다.
원탁.
이 평등을 상징하는 커다란 원형 의 테이블을 오랜 시간 동안 이 회 의실을 지켜왔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그 정신마저 이전과는 달라져갔지 만, 이 원탁만은 한결같이 이 자리 를 지켜왔다.
그렇기에 이상한 일이다.
이 원탁이 생겨난 이래 이 회의 실을 지금과 같은 무거움이 지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꿀꺽.
누군가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원탁에 둘러앉은 나이트들은 말 그대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이게 대체……
그들의 시선이 힐끔힐끔 상석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닿은 상석에 앉은 이는 다른 나이트들과는 달리 한없 이 여유로운 얼굴로 홍차를 홀짝이 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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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의 향을 음미하던 위긴스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태생이란 어쩔 수 없는 법이군. 그 긴 시간을 지나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홍차를 마시는 거라니.”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린 위긴스
가 찻잔을 내려놓고는 천천히 고개 를 들었다.
“다들 모여주셔서 감사하오.”
그 말을 들은 나이트들이 움찔하 며 일제히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위긴스는 딱히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지배자로서의 위압감으로 그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들이 부담을 느낄 만한 말 한마디 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곳에 있 는 모든 나이트들은 지금 위긴스의 존재 자체에 짓눌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저 과거 강진호를 근거리에서 대면한 적 있던 나이트들만이 지금 의 상황이 그때와 비슷하다는 느낌 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원탁을 정리하고 재정비해야 할 상황에 긴 시간 자리를 비우게 된 점에 대해 먼저 사과하겠소.”
“아, 아닙니다, 마스터.”
“이유가 있으셨겠죠.”
재빠른 대답이 돌아왔다.
마치 위긴스의 사과를 자신들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듯 말이다. 그 반 응을 본 위긴스가 빙그레 미소를 지
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오.”
위긴스가 가스라니 자라난 턱수염 을 가볍게 쓸어내리고는 말을 이어 갔다.
“긴 시간 동안 마스터의 자리가 공백으로 있던 만큼 처리하지 못한 일이 산적해 있을 거라 생각하오. 나 역시 최선을 다하겠지만, 원만한 처리를 위해서는 각 나이트들의 도 움이 꼭 필요하오. 모두의 협조 부 탁드리겠소.”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스터.”
대답을 하는 나이트들도, 그리고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나 이트들도 지금 이 순간 어찌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말투는 온건하다.
그래, 분명 말투는 무척이나 온건 했다. 오히려 전임 마스터에 비해 자신을 더 낮추는 경향도 분명 느껴 진다.
헌데 대화가 정상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분명 위긴스는 자신을 낮추고 있 지만, 이 대화는 원탁의 마스터와 나이트들 간에 오가는 대화라기보다
는 절대권력을 가진 황제와 신하들 이 나누는 대화 같았다.
이미 균형의 축은 무너졌다.
위긴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 도 원탁의 축은 무너졌고, 이 원탁 은 더 이상 평등의 상징이 되지 못 할 것이다.
이곳의 나이트들은 이 순간 그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나이트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감히 입을 열어 그 사실을 성토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저항? 아니면 반항?
‘저 사람에게?’
슬쩍 위긴스를 바라본 이들이 저 도 모르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창을 들고 사자와 싸우는 것은 용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맨 손으 로 사자와 싸우는 것은 용기가 아니 라 만용이다. 아니, 만용이라는 말조 차 아깝다. 그건 그저 미친 짓에 불 과하다.
설사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다.
맨손의 인간이 열, 스물, 혹은 서 른쯤 모여 있다고 해도 감히 사자와 싸울 수 있겠는가.
사자도 그럴진대 사자를 뛰어넘는 괴물과 누가 싸우고 싶겠는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자가 굶주리지 않았기를, 설사 굶주렸다 하더라도 그 발톱과 이빨이 그들을 향하지 않기를 비는 것뿐이었다.
“여기 모이신 분들도 잘 알고 계 시는 것처럼……
위긴스가 살짝 말끝을 흐렸다. 미 묘한 침묵이 오가고, 분위기가 점점 더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전임 마스터의 폭정 덕분에 원탁 은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 소.”
누구도 위긴스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다.
지금 위긴스가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멍청이는 이곳에 없다. 이건 온건한 말로 하는 협박 이자, 부드러운 공격이었다.
“하여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은 전임의 실수를 만회하는 것이 고, 원탁과 총회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라 생각하오. 다들 어떻게 생각 하시오?”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총회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여
기에 있겠냐마는 문제는 그 방법이 었다.
그들이 생각한 방법이란 다름 아 닌 위긴스를 마스터의 자리에 앉히 는 것이었다. 그건 총회에 보내는 그들의 화해의 표시가 되기에 충분 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위긴스게 되레 그들 에게 물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 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
“……마스터.”
누군가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저희 역시 고민하지 않은 문제는 아닙니다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
희보다는 마스터께서 분명 더 잘 아 실 것이라고……
“ 흐음?”
위긴스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럼 그 일에 관해서는 내가 전 권을 가지고 진행해도 괜찮다는 말 씀이 시오?”
모두가 움찔하며 위긴스를 바라보 았다.
같은 말이지만, 저 말의 숨어 있 는 뉘앙스는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 기에 충분했다.
“마스터…… 어찌할 생각이신지?”
“빤한 것 아니겠소?”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원탁이 저지른 죄는 크지만, 그 건 실수라고 할 수 있지. 사실 이곳 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그 일에는 딱히 책임이 없는 분들이 아니오? 모든 것은 전임 마스터의 독단으로 벌어진 일이니.”
“그, 그렇습니다.”
“저희가 알았다면 어떻게든 저지 했을 겁니다. 이곳의 누구도 그런 일을 원치 않았습니다.”
위긴스의 입이 비릿한 미소를 그 렸다.
“하지만 말이오.”
“원탁은 애초에 그런 곳이 아니 오? 마스터가 행한 일 역시 원탁이 라는 이름하에 행해진 것. 그렇다면 여러분께 책임이 없다는 말 역시 면 피에 불과하겠지.”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면 나이트 라는 이름을 내걸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오. 이해하셨소?”
위긴스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내려 깔린다.
“원탁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
용했다면, 전임이 아무리 독단을 휘 두르려 해도 막아낼 수 있었을 터. 그 말인즉슨,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권력을 쥔 자의 전횡을 막아낼 수 없다는 말이오. 그럼 가장 우선적으 로 해야 할 일은……
위긴스가 미소 지었다.
“권한의 재조정과 시스템의 재정 비겠지.”
차가운 기세가 나이트들을 찔러 댄다.
마나의 흔적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위긴스의 분위기가 일변할 때마다 그들의 심장은 제 멋
대로 뛰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차원이 다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확실한 건 하나.
지금의 위긴스는 그들이 무슨 수 를 써도 막을 수 없는 절대의 경지 에 올라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마스터의 권 한과 나이트들의 권한을 적절히 재 조정하려 하오. 우선은 마스터의 권 한부터 조정하겠소.”
“어찌•…”
“마스터가 독점적으로 휘두르던 친위대에 대한 명령권을 원탁으로
돌리겠소.”
“예‘?”
위긴스의 입에서 나온 뚯밖의 말 에 나이트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친위대를 말입니까?”
마스터의 친위대는 마스터의 사병 이나 다름없는 이들이다.
원탁은 각국의 힘이 모여서 만들 어진 연합체. 하지만 즉각적인 일의 수행을 위해서는 움직이는 데 각국 의 허가가 필요한 병력뿐 아니라, 원탁이 직접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도 필요했다.
그들이 바로 원탁의 힘이며, 오직
마스터만이 움직일 수 있는 힘이었 다.
나이트들은 위긴스가 당연히 그들 의 힘을 강화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에게 명을 내릴 권한을 내려놓겠다고 하지 않는가.
‘대체 무슨 생각이지?’
생각할 시간을 그리 주지 않은 채 위긴스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여러분의 권한 역시 조 율이 필요할 것 같소. 각국이 가진 힘 중 절반 정도는 그 권한을 원탁 으로 위임하여 주셔야겠습니다.”
“자, 잠시!”
나이트들이 눈을 크게 떴다.
“마, 마스터! 그건 너무 무리한 일입니다. 저희는 그저 조국에서 권 한을 위임받은 이에 불과합니다.”
“알고 있소.”
“한데 어찌 그런……
“그래서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게 아니오.”
위긴스가 차가운 눈으로 입을 열 었다.
“한 발 뒤로 물러선 채 각국을 수 호한다. 원탁에서 벌인 일의 책임을 각국이 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전임
의 전횡을 막아내지 못한 거요. 그 게 각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 여 러분께서 자리를 지킨 채 그 모든 일을 좌시했겠소?”
“여러분께만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오. 나 역시 모든 권한을 내려 놓겠소.”
“하, 하지만……
나이트 보로닌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원탁으로 병권이 넘어간다는 것 은 마스터의 힘이 강해진다는 의미 입니다. 그런데 내려놓으신다는 말
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보로닌이 얼 마나 큰 심력을 써야 했을까? 그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만 보더라도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맞는 말이오.”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탁의 가장 큰 문제는 의사 결 정의 과정이 너무도 비효율적이라는 것이고, 한 번 정해진 일에 대해서 는 거꾸로 마스터가 과한 권한을 휘 두른다는 점이겠지.”
“그렇기에 나는 체제를 조금 바꾸
려고 하오.”
“……어떻게 말입니까?”
위긴스가 미소 지었다.
“나이트 전부가 한 표, 마스터가 한 표, 그리고 중립에 있는 이에게 한 표를 주어 다수 체제인 의결권을 셋으로 좁히는 거요.”
“마스터가 가진 병권, 그리고 각 국의 병권 중 절반이 원탁으로 귀속 되고, 그 병권을 움직일 권한을 마 스터가 아닌 원탁이 가진다면 그보 다 더 민주적일 수는 없지. 그렇지 않소?”
나이트 보로닌이 고개를 끄덕였 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그들은 권한 을 잃어야만 한다. 저 위긴스가 그 들이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게 내버 려 두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 정도라면 최악은 아니 다. 적어도 그들에게 의결권이 넘어 오고 위긴스 역시 잃는 건 있으니 까. 처음의 그 압도적인 위용을 감 안한다면, 위긴스가 많은 것을 양보 했다고 볼 수 있다.
단 하나만 확정된다면 말이다.
“그럼 그 중립에 있는 이는 누구
입니까?”
“생각을 해보았지.”
위긴스가 턱을 괴고는 모두를 바 라보았다.
“중립이라는 것은 그저 관계가 없 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소. 원탁이 돌아가는 상황을 알지 못한다면 되 레 독이 될 수 있지 않겠소?”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 나이트 중 하나를 나이트와 마스터의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로 임명할 생각이오.”
“ 설마••••••
위긴스가 빙긋 웃었다.
“걱정할 것 없소. 나도 생각이 있 는 사람인데, 영국인은 제외할 것이 오.”
“여러분과 나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이로 뽑았소. 원탁이라는 시스 템에 물들지 않고, 내게도 딱히 호 의적이지 않은 자가 되어야겠지.”
위긴스의 고개가 한쪽으로 향했 다.
“내가 정한 이는 바로 나이트 타 바레스요.”
모두의 시선이 나이트 타바레스에 게로 홱 돌아갔다. 하지만 나이트
타바레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에 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오로지 위 긴스만을 적대적인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쁘지 않군.’
‘반골이라는 게 걸리기는 하지만, 그는 우리보다 마스터를 더 적대한 다.’
‘이 정도면 얻을 건 얻었다.’
하필이면 나이트 타바레스라는 게 걸리기는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원탁에 합류한 어린 나이트라는 점 을 감안한다면 가장 중립적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아니, 오히려 그들에게 쏠린 선택 이다.
“찬성하겠습니다.”
“합리적인 선택이십니다.”
“저 역시 찬성합니다.”
나이트들이 일제히 찬성의 의사를 밝히자, 위긴스가 옅은 미소를 지었 다.
“그럼 각국에서 각출할 병력의 선 정은 나이트 타바레스에게 맡기도록 하겠소.”
“그리하시지요.”
생각보다 쉬운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모두가 나름 안도의 한숨을 내쉬 는 그 순간, 나이트 타바레스와 위 긴스의 눈빛이 짧게 교환되었다.
‘그새 더 썩었군.’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낸 위긴스 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사홀.
원탁을 그의 마음대로 주무르게 되게까지 채 사홀도 걸리지 않을 것 이다.
‘로드께서 어떤 얼굴로 나를 보실 지 벌써부터 궁금하군.’
모두가 만족한 회의가 끝나는 순 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