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71)
마존현세강림기-1873화(1870/2125)
마존현세강림기 76권 (7화)
2장 창안하다 (2)
촤라라락! 촤라라라락!
낡은 비급이 격하게 넘어간다.
“사, 사부님, 그거 고서입니다! 국 보급이라고요!”
족히 수백 년은 된 비급이 연습 장처럼 넘어가니 낡은 종이가 버틸 리가 없었다. 오래된 종이가 찢어지
고 바스라지는 것을 본 천태훈이 기 겁을 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방진훈은 비급이 찢어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국보는 얼어 뒈질. 오래되면 다 국보냐?”
방진훈이 바스라진 비급을 천태훈 에게 던졌다.
“이거, 워드 작업해 놔!”
“워, 워드요?”
“보기도 불편하게 이게 뭐냐? 컴 퓨터로 볼 수 있게 싹 다 작업해 둬.”
“그…… 이게 워낙 고서라 지금
안 쓰는 한자들도 많이 있잖습니 까.”
“그래서?”
“워드 작업이 안 되는데?”
방진훈이 빙그레 웃으며 천태훈을 바라보았다.
“태훈아.”
“ 예‘?”
“그럼 태블릿 하나 사서 그려라.”
“애새끼가 시키면 생각을 해야지, 뭘 시킨 대로만 하려고 해?”
아니…….
그걸 몰라서 그랬겠습니까?
“그거 하나하나 다 수기로 쓰려면 한 달 내내 해도 시간이 부족할 텐 데요.”
“진짜 이 새끼는 병신인가? 태블 릿 여러 대 사서 애들 동원하면 되 잖아. 넌 뭐 세상 혼자 사냐?”
“여하튼 이 새끼들, 꽉 막혀서는.” 고개를 내저은 방진훈이 눈을 빛 내며 다시 비급을 들여다보았다. 평 소 같으면 잔소리를 두어 마디는 더 했겠지만, 지금 방진훈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촤라라라락! 촤라라라라락!
비급이 다시 신명나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야.’
나쁜 내용은 아니지만, 그가 원하 는 것은 없다.
“저기……
“ 왜?”
“말씀드려도 됩니까? 좀 방해하는 것 같아서.”
“괜찮으니까 말해봐.”
방진훈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 답하자, 천태훈이 우물쭈물 입을 열 었다.
“그렇게 속독으로 읽으셔도 됩니
까? 비급이라는 건 글귀가 전부가 아니라 그 안에 든 진의(眞意)를 얼 마나 이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사부 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셨는데……
“ 인마.”
방진훈이 눈을 찌푸렸다.
“내가 여기 내용을 모르겠냐?”
“••••••예?”
“이미 벌써 다 본 것들이다. 몇 번씩 본 거라고. 내용 따위는 안 봐 도 안다.”
“그런데 그걸 왜 확인하고 계십니 까?”
“사람이라는 건 실수를 하는 법이
니까.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게 정말 아는 게 아닐 수도 있잖아. 그러니 천려일실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확인 하고 또 확인해야지.”
천태훈이 감탄한 눈으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참 생긴 것답지 않다니까.’
솔직히 방진훈의 겉모습을 봐서는 도무지 꼼꼼함이란 게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방진훈 은 생긴 것답지 않게 무척이나 섬세 한 사람이었다.
“그럼 뼈대는 잡으셨습니까?”
“이게 뼈대는 뼈댄데……
“ 예.”
“생선 뼈 같단 말이야.”
“그게 참 굳건하게 척추처럼 쫙 뻗어야 하는데, 뭐가 가늘고 하늘하 늘한 것이…… 뼈째 씹어도 될 것 같은게……
“그럼 망한 거잖아요.”
“이 새끼야, 그걸 보강하겠다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거잖아! 두고 봐! 내가 이거 공룡 뼈로 만들어 버 릴 테니까!”
사부님.
공룡은 멸종했습니다.
기껏 새로 살아남아 치킨이나 되 는 처지인데, 하필이면 공룡 뼈 를…….
하지만 비유야 어찌 되었든 비급 을 보는 방진훈의 모습에서는 이제 껏 없던 열정이 느껴졌다.
‘사람이라는 게 방향성이라는 게 이리 중요한 거구나.’
스스로를 위해서 비급을 볼 때는 기숙학원에 끌려가는 재수생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더니, 지금은 거의 게임 공략본을 보는 하드 게이머 같 은 얼굴이다.
“가만히 보고 있지 말고, 저기에
있는 것들 좀 가져와!”
“예, 사부님!”
천태훈이 부리나케 달려가자, 방 진훈이 비급을 넘기던 손을 멈추고 는 한 구절을 옆에 있는 다른 종이 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여기 챙기고……
세상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창안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야. 종사라 불린 이들이라고 날 때부터 무공을 만든 게 아니다. 그 들도 결국에는 누군가의 제자였다. 자신이 가진 것을 완전하게 익혀내
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길 을 여는 게 창안이다.”
‘맞는 말이지.’
때때로 강진호는 핵심을 관통하는 말을 한다.
들을 때는 그런 소리를 왜 하나 싶다가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반드 시 필요한 이야기를 말이다.
지금 방진훈에게 강진호가 한 말 은 이정표이자 금과옥조였다.
그는 나름 강한 무인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보다 강한 무인은 얼마든지 있었
을 것이다. 그들이 남긴 것이 이 비 급들이 었다.
어찌 보면 조악할 수도 있고, 어 찌 보면 시대의 흐름에 뒤처져 낡아 버린 무학일지도 모르지만, 이 무학 들 안에는 그들의 경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방진훈은 바토르처럼 뛰어난 힘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장민처럼 오랜 세월 자신을 갈고닦지도 못했다. 그 렇다고 위긴스처럼 재기가 넘쳐 남 과 다른 길을 개척하는 위인이 되지 도 못한다.
그렇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어받는 것.
人、스 、人、人•스
— —1 9
“
~
~ —1 •
펜이 종이 위를 빠르게 누빈다.
‘뭔가를 새로 찾는다는 것도 웃긴 거지.’
그가 지금까지 배워온 것이 있고, 익혀온 것이 있다. 어설프게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려 들지 않 고, 착실하게 발밑을 보면 그가 나 아갈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나 마찬가지다.
지금 그가 해야 하는 것은 지도 를 그리는 것.
이어져 온 것을 바탕으로 지도를
그리고, 고민하고 궁구하여 길을 닦 아낸다.
스슥.
스스스슥
비급을 한 아름 들고 온 천태훈 이 방진훈의 옆에 비급을 내려놓으 려다가 움찔하고는 뒤로 살짝 물러 섰다.
빠르게 펜을 놀리는 방진훈의 얼 굴이 느슨하게 풀려 있다. 무공에 완전히 몰입했을 때나 볼 수 있는, 무아(無我)에 든 표정이다.
이럴 때는 절대 방해를 해서는 안 되는 법.
방진훈의 옆에 비급을 소리 나지 않게 내려둔 천태훈이 조용히 뒷걸 음질을 쳤다.
‘사부님.’
이게 정말 되는 일인지는 모르겠 지만, 저리 열중하고 있는 방진훈을 보고 있으니 어떻게든 응원하고 싶 다.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천태훈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 덕인다.
시간이 지난다.
하루 또 하루. 이틀, 사흘, 나홀.
칩거를 시작한 지 열홀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방진훈은 앉은 자 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채 같은 작업을 반복 중이었다.
“얼마나 더 걸릴까요?”
“ 흐음.”
회의실을 바라보는 장민이 턱을 쓸어내렸다.
“돈오를 얻은 이는 하루 만에도 신공을 창안했다고 하지.”
“그리고 어떤 이는 하나의 무학을 만들어내기 위해 삼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침식을 잊었다고도 하
고.”
“……케바케라는 거네요.”
“그렇지.”
장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이게 그렇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비 슷한 면이 있군. 스스로의 벽을 넘 는 거나, 기존과는 다른 더 나아간 무학을 창안하는 거나 본질은 거의 비슷할 수도 있겠어.”
누구도 도울 수 없고, 오직 스스 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점.
이제까지 자신이 가진 것을 부정 하고 재정립해야 한다는 점.
확실히 여러 가지 면에서 일맥상 통하는 면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말씀대로라면 이게 얼 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다는 거잖 습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장민이 선언하듯 말했다.
“방 이사는 현실적인 사람이니까. 뜻이 높은 자는 고고하게 자신이 감 히 발을 들일 수 없는 영역을 노리 기 마련이고, 현실을 보는 자는 그 저 한 걸음에도 만족하는 법이니 까.”
“아!”
“다만•…”
장민이 낮은 침음을 흘렸다.
“방 이사가 자신을 위한 무학을 만들 리는 없지.”
“••••••예?”
“총회의 다른 이들이 익힐 수 있 는 무학을 만든다면, 자신의 만족과 는 별 관계가 없는 일이 될 거야. 그건 만족이 아니라 실리의 문제가 될 테니까.”
이현수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장민은 굳이 이현수에게 설명해 주려 하지 않았다. 이건 말
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니까.
‘그런 놈이지.’
이곳에서 방진훈의 마음을 이해하 는 사람은 오직 장민뿐일 것이다. 그 역시 무학을 창안해야 한다면 자 신이 쓸 무학이 아니라 교도들이 언 젠가 익힐 수 있는 무학을 만들려 했을 테니까.
사람을 등에 지고 이끌어 나가는 이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기이한 일이군.”
“예?”
“나는 교의 무학을 수백 년간 익 혔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
지만, 마교의 역사를 통틀어 극마에 이른 이는 채 다섯을 넘지 않는다. 나는 그중 하나로 당당히 꼽힐 수 있는 사람이지.”
“회주님을 포함해서 말입니까?” 장민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이현 수를 노려보았다.
“감히 마존을 나 따위와 비교하지 마라! 그분은 극마 따위가 아니라 신마의 경지에 오르신 분이다!”
“……비교한 거 아닙니다.”
이현수가 질린 얼굴로 시선을 돌 렸다.
아니…….
벽도 넘었겠다, 좀 띄워주려고 했 더니 뭔 반응이 이렇게 돌아오는가.
아무래도 벽을 넘은 정도로는 장 민의 광신이 치료되지 않은 모양이 다.
“ 여하튼.”
장민이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 다.
“그럼에도 나는 마공을 창안한다 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분명 나보다 약한 이들도 마공을 창안했 을 텐데, 나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내가 익힌 것과 다른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장민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마도 무학을 창안하는 재능과 무학을 익히는 재능은 별개의 것이 겠지.”
이현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 다.
그 생각은 이현수도 하고 있던 참이다.
“그럼 되는 겁니까?”
“글쎄.”
장민이 가만히 창을 바라보다 입 을 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
“뭐가 말입니까?”
“지금껏 마존께서는 스스로는 불 가능을 짊어지려고 하셨지만, 자신 을 따르는 이들에게 가능성이 없는 일을 시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
이현수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 덕였다.
확실히 그건 맞다.
강진호의 따르는 이들에 대한 요 구는 일견 가혹할 정도지만, 지금까 지 그걸 이뤄내지 못한 이는 거의 없었다. 어려워 보이지만 불가능하 지는 않은. 그게 강진호가 그들에게 바라는 정도였다.
“마존께서 되신다고 했으면 반드 시 된다.”
“ 다만♦•••••
“예‘?”
“그걸 방 이사도 알고 있어야 할 텐데.”
조금은 안타까운 눈으로 회의실을 바라보던 장민이 몸을 돌렸다.
“ 가자.”
“예, 장로님.”
“시간이 얼마가 더 걸릴지 모르는 일이다. 저기에 집착하고 있어서는 될 일도 안 된다. 네가 하려던 일들
은 확실히 처리되고 있느냐?”
“천태훈이 빠져서 조금은 지체되 는 중입니다.”
“움직여라. 마존께서는 우리가 하 지 못하는 일을 모두 자신의 짐으로 여기실 것이다. 그분의 어깨에 올려 진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 면, 이럴 틈이 없다.”
“예, 장로님.”
먼저 걸어가는 장민의 등을 보며 이현수가 주먹을 살짝 움켜쥐었다.
‘확실히 전과는 달라.’
벽을 넘었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총회의 이사들에게 이전에는 없던
확고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백연홍에게 당해 절망과 초조함을 어찌할 수 없던 그때와는 확연히 다 른 모습들이다.
그러니…….
이현수가 고개를 돌려 방진훈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방 이사님도 해낼 거라 믿습니 다.’
근거 없는 믿음.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확고 한 믿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