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73)
마존현세강림기-1875화(1872/2125)
마존현세강림기 76권 (9화)
2장 창안하다 (4)
“분위기가……
이현수가 슬쩍 주변을 돌아보았 다.
“묘하네요.”
“그러게.”
지금 강진호와 이현수는 본관 앞 쪽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다. 한 손
에 커피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던 이 현수가 흥미롭다는 듯이 볼을 긁어 댔다.
“뭐랄까, 어수선하다고 해야 하나, 묘하게 고양감이 차 있다고 해야 하 나……
“둘 다겠지.”
강진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방 이사가 새로운 무학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이미 쫙 퍼졌을 테니 까.”
“……입 싼 놈이 하나 있긴 하 죠.”
천태훈, 그놈이 입을 꾹 닫고 있 었을 리는 없을 테니,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일까.
지나는 이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그건 이현수의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아직 뭐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냥 방진훈이 새 무학을 만드는 데 착수했다는 것만으로도 저리 얼 굴에 보일 만큼 기대감을 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효과를 이미 봤으니까.”
“그렇긴 하지만……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이건 너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겠지.”
“••••••예?”
“너는 너무 약해서 이해할 수 없 고, 나는 너무 강해서 이해할 수 없 지.”
“결과는 같은데 과정이 조금 빡치 는데요? 지금 자랑하시는 겁니까?”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하튼 이 인간 앞에서는 뭔 말 을 못한다.
“네게는 기본적으로 강해지겠다는
의지가 없잖아.”
“그렇긴 합니다.”
위로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 이 무력뿐이라면, 어쩌면 이현수도 지금 저들과 같은 처지일지도 몰랐 다. 하지만 이현수는 무력이 아닌 다른 방법을 택했고, 지금도 무력에 는 딱히 미련이 없다.
하지만…….
‘내가 무력을 택했다면 조금 달랐 겠지.’
생각해 보면 그렇다.
마공을 익히는 것도 아니고, 바토 르나 위긴스에게 수련을 받는 것도
아닌, 평범한 총회의 무인들에게는 방진훈이 전하는 무학이 강해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한국의 기존 무학들이 그렇게 조 잡합니까?”
“음?”
“그렇잖습니까. 방 이사님이 한국 역사상 최고수는 아닐 텐데.”
“그렇지.”
강진호가 한반도에 존재하던 고수 들을 모두 아는 건 아니지만, 아무 리 그래도 방진훈이 이전에 벽을 넘 은 이들이 존재하지 않을 리는 없 다.
“그런데 방 이사님 이전에는 아무 도 저놈들이 익힐 만한 상승 무학을 만들지 않았다는 거잖습니까.”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평범한 상식이라는 측면에서는 강 진호는 이현수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 반작용인지 무학 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이현수의 이 해도가 너무도 떨어졌다.
‘신기한 수준이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급의 식견을 자랑하는 놈이 자신이 몸담 고 있는 무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무 학에 대해서는 젬병이라니.
어쩌면 본인은 무학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없다는 마음이 그의 관심을 밀어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상승 무학은 널려 있어.”
“예‘?”
“생각보다 무척 많은 수준이지. 네 생각 이상으로 말이야.”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 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야.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상승 무학이 전부가 아니다. 일인전승으로 이어지는 무 학들과 관심에서 잊혀져 사라진 무 학까지…… 상승 무학은 넘쳐나
지.”
“그런데 왜 익히지 않는 겁니까?”
“일인전승이 왜 일인전승인 줄 알 아?”
“그야…… 유출을 막고 은밀하게 잇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럴 리가 있나.”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학문을 하는 자는 스스로의 학식 을 높이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학문 을 전승하고 제자들을 키워내는 데 힘을 쏟지. 그걸 성공한 이들을 위 인이라 부르는 것 아닌가.”
“그렇죠.”
“무인이라고 다를 것 없지. 보통 은 다들 제자들의 수를 늘리고 싶어 하기 마련이야. 그럼에도 한 사람의 제자만 받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지. 그 이상의 제자를 받을 수 없기 때 문이야.”
“아••••••
이현수가 대충 이해했다는 듯 고 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자주 하는 착각 중 하 나가 높은 경지의 무학은 어렵고, 낮은 경지의 무학은 쉽다는 거지. 그건 반만 맞는 이야기야. 위로 올 라갈수록 무학이 어려워지는 건 분
명한 사실이지만, 경지가 낮다고 해 서 쉬운 건 아니라는 거지.”
“똑같은 위력을 내는 무학이라고 해도 서로 난이도가 다를 수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강진호가 지나다니는 회원들을 바 라보았다.
“한국의 무학이 가진 가장 큰 문 제는 전승되는 무학 대부분이 소수 에게 전해지기 적합하게 발전해 왔 다는 거야. 어렵고, 각기 고유한 특 성을 가지고, 난해하지.”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한국, 아니, 조선은 무인에 대한 탄압이 극심한 나라였으니까. 이전 까지는 나름 명맥을 이어오던 무파 들이 조선 시대에 들어서며 모두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고 했다.
그 깊은 산중에서 제자를 구해 먹이고 키우며 무학을 가르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소수에서 더 소수로 쪼개 지고 다시 쪼개질 수밖에.
“같은 공부를 해도 십 년간 떨어 져 공부하면 학파가 갈리기 마련인 데, 몇 백 년을 각자 발전했다면 나
중에는 비슷한 부분을 찾기가 더 어 려웠겠네요.”
“그렇지.”
그렇기에 총회의 무인들이 익힐 만한 상승공이 없는 것이다. 남아 있지 않은 게 아니라 없다. 다들 어 떻게든 몇몇 이에게는 완벽하게 전 수를 하기 위해 기이한 방향으로 발 전해 버렸으니까.
편협하다면 편협하고, 기괴하다면 기괴하게.
“그걸 정리한 게 방 이사지.”
“그럼 저번 기본공이……
“그래. 거기서 체계를 다시 잡은
거야.”
이현수는 그제야 방진훈이 한 게 뭔지를 이해했다. 직접 그 무학을 익혀보지 않은데다가 무학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이현수는 실감할 수 없던 일.
“이사님이 생각보다 엄청 대단한 일을 한 거네요. 상승 무학은 아니 더라도 어쨌든 중구난방이었던 무학 들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한 거잖습니 까.”
“그래. 그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강진호가 혼자 한다면 가능했을
까?
글쎄, 잘 모르겠다.
물론 강진호가 그때 방진훈이 무 학을 만드는 걸 옆에서 돕기는 했지 만, ‘돕는다’와 ‘주도한다’는 전혀 다 른 개념이다.
바둑이 8급만 되어도 프로가 두 는 바둑을 보면서 훈수를 둘 수 있 는 법이니까.
하지만 방진훈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게 지금 강진호가 방진훈 에게 기대를 품는 이유였다.
“하지만 기본공과 상승 무학의 차 이는 극심할 텐데요.”
“그렇지. 그래서 성공한다고 장담 할 수는 없는 거야.”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방진훈이 있는 회의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예?”
“방 이사도 그때의 방 이사가 아 니지. 그 뒤로 더 많은 걸 보고 더 많은 걸 겪었으니까, 실력으로만 따 져도 그때의 방진훈과 지금의 방진 훈은 비교할 수도 없어.”
“으음, 확실히.”
“그러니 이제 그냥 기다리면 될 거다.”
이현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회원 들을 바라보았다.
‘그 정도의 의미였구나.’
저 눈에 담긴 기대감이 뭔지 알 것 같다. 중구난방으로 널려 있는 무학 중 단 한 번만 선택을 잘못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배운다 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 다.
그렇기에 다들 방진훈이 새로 만 들어줄 무학을 기대하는 것이다. 방 진훈이 어떤 무학을 만들지 다들 빤 히 아니까.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닐 텐데.’
그는 닿을 수 없는 영역.
그 영역에 지금 방진훈이 홀로 서 있었다.
피부는 거칠기 짝이 없다.
수분도 제대로 섭취하지 않은 몸 은 날이 갈수록 거칠어져 갔다.
하지만…….
방진훈의 눈빛만은 오히려 처음 이 회의실에 들어왔을 때보다 더욱 단단해졌다.
“어떠십니까?”
천태훈이 조심스레 물었다.
본래 심득을 얻으려 하는 무인에 게는 함부로 말을 걸어서는 안 된 다. 그건 벽에 이르기 이전부터 무 인들에게는 불문율과 같은 일이었 다.
방진훈이 도전하고 있는 것이 일 반적인 심득이나 깨달음, 혹은 벽과 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조 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거의…… 거의 다 된 것 같은 데.”
방진훈이 손에 든 비급을 바라보
았다.
아니. 이건 비급이라고 할 수 없 다.
아무리 완벽한 용을 그려내도 마 지막으로 그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 으면 용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이 무학의 운용이 적혀 있는 종이에 마 지막 그의 심득을 추가하지 못한다 면 한낱 종이 쪼가리가 될 뿐이다.
방진훈의 눈이 허공을 쫓았다.
‘ 뭘까.’
상승이라는 것은 단순히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낮은 수준의 무학이 그저 몸을
단련하고 수련을 반복하는 것만으로 강해지는 것을 보장한다면, 상승의 무학은 그걸 넘어 이정표를 제시해 야 한다.
몸의 단련이 아니라 의지를 단련 하고, 정신을 단련할 수 있게 만들 어야 진짜 상승의 무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지?’
그는 지금 들판 위에 서 있다.
마치 몽골의 초원처럼 산 하나 보이지 않는, 끝없는 들판.
그 들판은 너무도 자유로워 어디
로든 발을 옮길 수 있고, 어디로도 갈 수 있다.
해가 뜨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해가 지는 곳으로 갈 수도 있 다.
한기를 쫓아 북으로 갈 수도 있 고, 따뜻함을 쫓아 남하할 수도 있 다.
아니.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다.
인간이 걸음을 뗄 수 있는 방향 은 그야말로 무한하다.
그 무한한 가능성 중에서 그가 생각하는 방향에 방점을 찍어야 한 다. 하지만 아무리 고심하고 또 고
심해도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이 옳은 지 알 수가 없었다.
화두(話頭).
그래, 이건 화두다.
화두란 없는 것을 찾아내는 것. 실마리란 애초에 그런 것이 아니던 가.
점을 찍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점 하나에 적게는 수 천에 달하는 총회 회원들의 운명과 더 나아가 총회의 미래까지 달려 있 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차마 손이 나가지 않았다.
‘옳은 걸까?’
방진훈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자신 의 손에 들린 책자를 바라보았다.
이게 맞는 걸까?
점만 찍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근본부터 잘못된 게 아닐까? 어쩌면 지금 그가 만들고 있는 무학 이 총회를 붕괴시킬 씨앗이 되는 게 아닐까?
애초에 그의 수준으로 다른 이들 을 상승으로 이끌 무학을 창안한다 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백 지로 돌리고 선인들의 방식을 따르 는 게 맞지 않을까?
그가 뭐라고.
그가 뭐가 대단하다고.
“사부님!”
“ 엇?”
방진훈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 다.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사부 님.”
천태훈의 말에 방진훈이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거울에 그의 얼굴 이 비쳤다. 푸석푸석한 피부야 그렇 다 치고, 두 눈에 핏발이 잔뜩 올라 끔찍한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이게 심마인가?”
순간적으로 자신을 잃었다.
어디로도 갈 수 있다는 말은 어 디로도 갈 수 없다는 말. 그는 지금 길을 잃은 것이다.
“사부님.”
방진훈이 고개를 돌려 천태훈을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뭔 소리냐?”
“아무도 사부님을 원망하지 않습 니다. 사부님이 우릴 지옥으로 보낸 다면 다들 어쩔 수 없다고 지옥으로 걸어 들어갈 겁니다.”
“총회를 이끄는 건 회주님이지만, 저희가 믿는 건 사부님입니다. 그걸 잊지 마십시오.”
방진훈이 피식 웃고 말았다.
“……아부는, 새끼.”
“진심입니다.”
“알아.”
방진훈이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뭐가 그렇게 겁난다고.’
완벽할 필요는 없다.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것으로 부족하다면 더 채워 넣으 면 될 일.
그러니…….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어.’
방진훈이 비급을 펼쳐 들고는 펜 을 가져다 댔다. 그의 눈에 이제껏 찾아볼 수 없던 선명한 총기가 담기 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