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74)
마존현세강림기-1876화(1873/2125)
마존현세강림기 76권 (10화)
2장 창안하다 (5)
‘화두라……
만들어낸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애초에 실마리라는 것은 이미 존 재하는 것. 그건 만드는 게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찾아야 할 곳은 다 름 아닌 그의 안이었다.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남에게 가라 할 수는 없지.’
그건 이정표가 아니다.
이정표란 선인이 남기는 것. 제 발로 거친 대지를 열어젖힌 이만이 찍을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러니…….
방진훈이 봐야 할 것은 그가 나 가고자 하는 곳이 아니라 그가 걸어 온 곳이어야 한다.
그의 머릿속에서 지난 그의 삶들 이 스쳐 지나간다.
처음 무학을 배우던 일.
총회에 입문했던 일.
총회 내에서 겪은 크고 작은 사 건들, 그가 만난 사람들.
이중걸과의 대립과 강진호와의 조 우
그리고 그 뒤로 겪은, 한 번도 상 상해 본 적 없던 일들까지.
그 모든 것을 되돌아본 방진훈의 감상은 아주 간단했다.
‘뭐, 별거 없네.’
그리 대단하지 않다.
인간의 강건함이란 어떤 일을 겪 어왔는가로 정해지지 않는다. 큰 사 건을 겪는 것만으로 사람이 성장하 고 더 나은 이가 될 수 있다면 전
쟁을 겪은 세대는 하나같이 우러러 볼 만한 이들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그러던가.
중요한 것은 무엇을 겪었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어떤 자세로 맞이하느냐였다.
강건하고 혼들림 없는 자세로 밀 려오는 파도를 이겨낸 이들만이 진 정으로 강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지.’
굳건히 서지 못했다.
정면으로 마주하지도 못했다.
그가 상대한 것은 언제나 그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무게. 진정으로 모든 것을 걸고 살벌하 게 부딪혀 본 적이 있었던가.
그래, 얄팍하다.
하찮고.
한심하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그는 무인 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자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그게 뭐가 잘못됐나?’ 왜 정면으로 맞받아야 하나. 사람이란 그렇지 않은가.
드높은 산이 있으면 그곳을 오르
려 하는 이들도 있지만, 좀 더 편한 길로 돌아가려는 이가 더 많다.
정면에 있는 산을 넘지 않았다고 해서 인간으로서의 격이 떨어지는 건가? 비겁해지는 건가?
웃기지도 않는 소리.
아무것도.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그의 삶이 용기로 점철되지 못했 다고 해서 비겁하다 욕할 이유는 없 다. 그의 삶이 의지로 가득 차지 않 았다고 해서 하찮다 손가락질 받을 이유는 없다.
세상 모두가 영웅이 될 수는 없
는 법.
세상을 빛내는 것은 영웅일지 모 르지만, 그 영웅이 빛날 세상을 만 드는 것은 영웅이 아닌, 영웅이 되 지 못한 수많은 평범한 이들이다.
그러니 부정하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그가 걸어온 길을 확신하고 당당 해진다.
그리고 이정표가 되리라.
조금은 부족하고, 조금은 비겁하 고, 조금은 세속적인 이들을 위해서.
하늘에 뜬 태양은 되지 못해도,
길을 밝혀줄 촛불 정도는 될 수 있 겠지.
그걸로 충분했다.
그걸로.
천천히 눈을 뜬 방진훈의 펜이 다시 글귀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딱히 장엄하지도 않고,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낼 무언가도 없 다.
그거 평범한 이가 평범하게 글을 쓰는 것처럼 그는 천천히 비급의 마 지막을 완성해 갔다.
‘나는 넘지 못해도 좋다.’
하지만 이 무학으로 누군가는 그
를 뛰어넘을 것이다.
천재들을 위해 준비된 무학으로는 넘을 수 없는 이가, 그 누군가가.
방진훈은 그걸로 족했다.
사각사각.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손놀림으 로 써 내려가던 글귀가 마침내 멈췄 다.
허공에서 짧게 멈춘 펜 끝이 가 볍게 떨렸다.
이윽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 펜이 글귀 끝에 마침표를 찍어냈다.
탁.
펜을 비급 옆에 내려놓은 방진훈 이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얼굴로 비급을 바라보았다.
‘ 아쉽군.’
새삼 깨닫는다.
일생의 대작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혼신의 힘을 쏟아낸 무언가도 그 끝을 보는 순간, 미진함과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 역시 이곳이 마지막은 아닐 테니까. 누군가가 진정 일생의 대작 을 완성했다면, 그건 결코 축복일
수 없다. 남은 삶의 의미가 사라질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지금은 이걸로 족하다.
미진한 것은 그의 삶과 함께 완 성될 것이다. 최선이면 그걸로 됐다.
방진훈이 비급을 잡아 천태훈에게 내밀었다.
“입력해라.”
“……다, 다 된 겁니까?”
“ 지금은.”
방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게 최선이다.”
천태훈이 떨리는 손으로 방진훈이 내민 비급을 받아 들었다.
손에 들린 비급을 빠르게 한 번 훑어본 천태훈이 비급을 꾹 눌러 잡 은 채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이, 일단 뭐라도 좀 드시는 게……
“됐다. 지금 급한 게 아니니까. 우선은 할 일부터 마치자.”
“예, 사부님!”
천태훈이 컴퓨터를 향해 부리나케 달려간다. 총회의 있는 이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비급을 뿌리려면 출력 하기 쉽게 작성을 해둬야 한다.
다급하게 작업을 시작하는 천태훈 을 지켜보던 방진훈이 뒤쪽으로 조
금 물러나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 다.
‘ 힘들군.’
몸 안에 남은 수분 한 방울까지 모조리 빠져나간 기분이다. 뇌에 다 는 당분이 남아 있지 않은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탈력감.
수십, 수백 번의 전투를 연이어 치른 것 같은 짙은 피로와 탈력감이 그를 내리누르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방진훈이 놓지 못한 것은 스스로 만든 것에 대한 불안함과 아쉬움이었다.
‘조금 뒤에 만들었다면 더 나았을 까?’
스스로의 부족함을 이리 뼈저리게 실감한 적이 또 없었다. 자신이 걸 어온 길을 더없이 확고하게 믿고 있 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된 이정표를 찍었는지 몇 번이며 돌아보고 확인 하게 된다.
‘아니, 아니지.’
불안한 건 당연한다.
이 비급에는 그의 운명만 걸려 있는 게 아니니까.
아쉬운 것도 당연하다.
스스로를 재정립하며 자신에게 무
엇이 부족한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 으니까.
가르치며 배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온전히 남에게 전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 운 일이 아니다. 전하기 위해서는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을 완전히 정 립해야 한다.
이전에도 한 번 겪은 일.
하지만 이번에는 과거의 그때보다 몇 배는 더 힘겹고, 몇 배는 더 부 담스러웠다.
‘ 전해질까?’
거창한 위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길을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걸로 족하다.
그래, 그걸로.
방진훈이 눈을 감았다.
‘부족하다는 게 나쁜 건 아니야.’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는 법이 니까.
딱히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의 방진훈도 이제까지의 방진훈처럼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바람이 불면 옷깃을 여미고, 비가 내리면 처마 아래를 찾고, 더울 때
는 그늘 아래로 숨어들며.
그저 그렇게 말이다.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어이, 이중걸 씨.’
이상하지.
지금 생각나는 것은 다름 아닌 이중걸의 얼굴이었다.
안다.
그는 패한 자다. 지금에 와서는 딱히 대단한 자도 아니다. 지금의 그라면 이중걸 따위는 언제든 손쉽 게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안에서는 저 홍왕보 다, 흑왕보다, 심지어는 강진호보다
도 더 인상적인 이가 이중걸이었다.
헛헛한 웃음이 입술을 뚫고 새어 나온다.
‘당신,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 이었네.’
영웅의 시대.
초인의 시대.
상식을 뛰어넘는 괴물들이 사람의 운명을 가지고 노는 시대에 이르러 서야 실감하게 된다. 그저 온전한 인간으로서 수십 년간 그곳에 군림 한다는 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나는 여전히 댁을 그리 좋아하지
는 않지만……
그래도…….
‘이젠 별로 밉지는 않군.’
방진훈이 눈을 감았다.
그의 의식이 그의 안으로 침전한 다.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깊게 또 깊게.
“사부님, 여기 글자가 잘……
고개를 돌린 천태훈이 입을 다물 었다.
“사, 사부……
방진훈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뿜 어져 나오고 있었다.
눈을 부시게 만드는 강렬한 빛이 아니다. 심지어 빛을 뿜어내는 방진 훈의 모습조차 딱히 장엄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잠든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하나…….
그의 몸에서 풍겨오는 기운과 은 은한 빛은 지금 방진훈에게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중 명하고 있었다.
입술을 꽉 깨문 천태훈이 비급을 움켜잡고 품 안으로 찔러 넣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것만은
보호해야 한다.
“사, 사부……
“왜 7”
“와! 씨바!”
너무 놀라 혀를 깨물 뻔한 천태 훈이 자신도 모르게 모니터를 후려 쳤다.
쾅
액정이 부서진 모니터가 속절없이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아니, 이 미친 새끼야! 멀쩡한 모니터는 왜 후려쳐!”
“그, 그…… 무아지경에 드신 것 아니었습니까?”
“무아는 얼어 뒈질.”
방진훈이 콧김을 뿜었다.
“뭐 대단한 걸 했다고 무아지경이 야? 잠 와서 잠시 존 것뿐인데.”
“그, 그럼 그건 뭡니까?”
“뭐가?”
“빛이 나잖아요! 지금! 사부님한 테서!”
“하……. 이 새끼, 아부가 많이 늘었네. 그만해, 새끼야. 간지럽다.”
“아니! 진짜 난다고요, 진짜!”
“응?”
방진훈이 시선을 내려 자신의 몸 을 바라보았다.
“헐. 이게 뭐야? 미친!”
방진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가 무슨 전구도 아니고, 웬 빛이 뿜어져 나온단 말인가.
‘아니, 기운을 돌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게 그 자체 발광인가 하는 그 건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제정신이세요?”
“……농담 좀 할 수도 있지, 정색 O ”
살짝 상처받은 얼굴을 한 방진훈 이 몸을 점검했다.
“별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그게 문제가 없는 거면 세상 에 문제 있을 일은 없죠. 예. 머리 위로 핵폭탄이 떨어진다고 별문제겠 습니까.”
“끙.”
방진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지만 아무리 몸을 점검해도 딱 히 문제는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피곤함이 점점 가시고 몸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회주님한테 가서 물어 봐야겠다.”
“그 상태로 나가시면 나사에서 연
구한다고 잡아갈걸요? 아니면 이름 모를 비밀 조직한테 납치당하든가.”
“괜찮아, 새끼야. 총회는 미국이랑 동맹이야.”
손을 휘휘 내저은 방진훈이 자리 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문을 향해 걸어갔다.
어안이 벙벙해 그런 방진훈을 말 리지 못하던 천태훈의 귓가에 방진 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훈아.”
“예, 사부님.”
“어때? 쓸 만하냐?”
천태훈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자신
의 품 안에 든 비급을 더듬었다.
“아직 다 본 게 아니라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저는 주저하지 않고 익힐 겁니다. 사부님이 만드신 비급이니 까요.”
“그리고 아마 다른 놈들도 마찬가 지일 겁니다.”
방진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웃기지.
최고라는 말보다 저 말이 더 듣 기 좋으니 말이다.
“그럼 됐다.”
모든 걸 내려놓은 얼굴이 된 방 진훈이 문을 열었다. 어느새 중천에 뜬 해가 따가운 햇살로 그를 맞이했 다.
감회가 새롭다는 듯 문밖의 세상 을 둘러본 방진훈이 한참 뒤에야 천 천히 입을 열었다.
“흔한 날이군.”
그래.
흔하디흔한.
하지만 어쩐지 기분이 좋은.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