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76)
마존현세강림기-1878화(1875/2125)
마존현세강림기 76권 (12화)
3장 치하하다 (2)
물에 빠진 사람의 심정이야 다들 비슷할 것이다.
그게 맑고 깨끗한 물이 아니라 사람을 잡아당기는 진창이라면 더더 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 물에 완전 잠긴 사람 과 그래도 입이라도 밖으로 나와 있
는 사람이 가진 여유가 같을 수는 없다.
총회의 이사들이 모두 자신의 한 계를 극복하면서 총회에 미묘한 여 유가 돌아왔다. 말 그대로 물에 빠 진 채 입만 밖으로 내밀 수 있는 정도의 여유였지만, 상상할 수 없는 압박에 시달리던 이들에게는 그것조 차 감지덕지였다.
‘좀 살 것 같네.’
이현수가 의자에 앉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가 하는 일이 딱히 달라 진 건 아니다. 어제도 그는 정신없
이 바빴고, 오늘도 정신없이 바쁘다.
하지만 그 바쁜 와중에 잠깐 쉬 는 와중이라도, 뒷일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게 더없 이 행복한 이현수였다.
다만…….
“그래서 그 새끼들은 어쩌고 있는 데?”
“정보는 어찌 되었나?”
“이렇게 조용할 놈들이 아닌데!”
이현수가 자신의 집무실을 점거한 채 삿대질을 해 대고 있는 이사들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냥 벽에 처박혀 죽어버리지.’
왜 부득불 살아서 그를 괴롭힌다 는 말인가, 왜!
“…바쁘지 않으십니까?”
“물론 바쁘지. 지금 얻은 것을 내 것으로 소화하는 데만 한참의 시간 이 걸린다.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려면 밥 먹는 시간도 줄여가 며 수련에 매진해야지!”
“그런데 왜 여기서……
“쯧.”
바토르가 혀를 찼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다. 그 건 거꾸로 말하면, 내가 아무리 잘
나봐야 상대를 모르면 승률이 반도 안 된다는 뜻이지. 총회의 운명이 걸려 있는 승부를 준비하는데, 정보 는 당연히 필요한 것 아닌가!”
“맞는 말이지요.”
위긴스가 오랜만에 바토르를 거들 고 나섰다.
“적이 언제 움직일 것인지도 체크 해야겠지만, 정말 알아야 하는 것은 대체 저들이 무엇을 노리는가지. 그 걸 모르고 싸움에 나선다면 승산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장민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적이 아니니만큼 신중에 신 중을 기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뭔가 알아낸 건 있느냐?”
이현수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저기…… 이사님들.”
“말해라.”
“그 홍왕계 놈들이 수십 년간 터 럭도 알아내지 못했고, 그 망할 창 왕 놈의 뒤통수도 시원하게 후려 갈 겨 버리는 놈들에 대한 정보를 제가 무슨 수로 얻습니까?”
이사들의 얼굴에 비난의 기색이 어렸다.
“무능한 놈.”
“쓸모없는 놈.”
“한심한 놈.”
아, 왜 살았냐고! 왜!
이현수가 혼이 빠진 얼굴로 말했 다.
“쓸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동원해 서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고 있고, 동시에 적의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서 다양한 루트로 움직이고 있습니 다.”
“ 흐음?”
“우선은 홍왕계의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적을 파악 중입니다. 차이커 창 놈■이 싸가지가 없기는 하지만, 능력이 없는 놈은 아니니, 곧 뭐라 도 주워 올 겁니다.”
“창왕계를 홉수하느라 정신이 없 잖느냐?”
“저도 팔다리 달린 사람인데, 그 걸 평생하고 있지는 않을 것 아닙니 까. 그리고……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더 중요한 게 뭔지 모를 정 도로 멍청이는 아닙니다.”
그 말에 이사들이 고개를 끄덕였 다.
창왕계의 잔당들을 처리하는 일은 언제든 할 수 있다. 물론 제때 처리 하지 않으면 상처가 곪아 나중에는 살을 크게 도려내야 하는 일이 벌어 질지도 모르지만, 흑왕계를 내버려 둔다면 살을 파내는 정도가 아니라 목이 잘리고도 남는다.
“놈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으니 움직이겠죠.”
“ 흐음.”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 때문인지, 개인적인 감정 때문인지, 차이커창에 대한 이현수 의 평가는 박하기 그지없지만, 그
평가와는 별개로 차이커창은 충분히 뛰어난 이였다.
그런 이가 흑왕계의 위험성을 좌 시할 리는 없을 것이다.
“이 실장.”
“예.”
“중국 군부 쪽은 어떻게 됐나? 흑왕계가 장악한다면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그게 좀 이상합니다.”
“음?”
위긴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니?”
“안 그래도 창왕계처럼 흑왕계도
당연히 군부나 정부 쪽에 줄을 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좀 깊이 파봤 는데……
“파봤는데?”
“이상할 정도로 깨끗합니다. 애초 에 정부 쪽에서는 흑왕계에 대해 전 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접촉 자체가 없던 것 같습니다.”
위긴스가 눈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접촉이 없었다는 게 가능한 소린가.”
“그렇죠. 그래서 이상하다는 말씀 을 드린 겁니다.”
총회 역시 처음부터 정부와 얽힐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무인 집단의 힘이 강해지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정부 측은 공권력에 포함되지 않는 힘이 커지는 것을 좌 시할 수 없게 되고, 문파 역시 활동 영역을 넓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정부와 영역이 겹치게 된다.
그러니 공생이든 지배든 어떤 식 으로든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흑왕계의 특성이겠죠. 소 수 집단인 만큼 정부와 관계를 맺지 않아도 자립에는 별문제가 없으니까 요.”
“거꾸로 소수이기에 정부도 압박
할 수 없고?”
“그렇죠.”
“……실체가 없는 집단이라는 건 가.”
확실히 흑왕계는 지금껏 위긴스가 알던 그 어떤 곳과도 다른 괴이한 집단이었다.
홍왕계, 창왕계, 심지어 총회마저 도 그가 알고 있는 문파의 양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흑왕계는 이 질적이리만큼 그 양상이 달랐다.
“그럼 정말 정부 쪽과는 접점이 없다는 건가?”
“아직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 역
시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다만……
이현수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 다.
“핵심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의 수 가 적다는 사실과 지금껏 흑왕계가 몇 번의 정권이 교체되는 와중에도 단 한 번도 정부 쪽에 압력을 행사 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접점이 있다고 해도 최상층의 몇몇 고위직을 포섭한 정도일 거라 예측 중입니다.”
“흐으음.”
“무엇보다……
“또 뭐가 있나?”
“그 흑왕이 정부 쪽에 손을 뻗어 두었다면, 저 창왕 놈이 가만히 지 켜보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놈 은 자신이 손댄 것에 다른 이의 흔 적이 남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미 친놈이 었으니 까요.”
“……설득되는군.”
일리가 있다는 듯 위긴스가 고개 를 끄덕였다.
“여하튼 차이커창 놈■이 정부 쪽도 열심히 뒤지고 있으니, 문제가 있다 면 바로 알려올 겁니다.”
“홍왕계와의 공조는 문제없나?”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어제까지
싸우던 원수와도 손을 잡고 맞서야 하는 법이죠. 별수 있습니까?”
“홈.”
위긴스가 턱을 긁었다.
‘흑왕계라……
실체없는 두려움이라는 말이 딱 적절하다.
백연홍의 존재로 인해 어느 정도 짐작이야 가능하게 됐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있어서 흑왕계는 미지수의 존재였다. 어둠으로 가득 찬 곳에서 겨우 그 윤곽정도나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윤곽 안에 어떤 괴물들이 들
어차 있을지를 생각하면 손발이 차 가워지는 기분이다.
“다른 쪽은?”
“미국 정보부 쪽도 움직이고 있습 니다.”
“••••••그래?”
“예. 뭐, 사실 안 움직이는 게 이 상하죠. 그놈들이야 남의 나라 대통 령 팬티 색깔까지 궁금해하는 것들 아닙니까.”
“……그렇지.”
“모양새 자체는 제가 요청을 하고 그쪽에서 승인한 형식을 띄기는 했 는데…… 돌아가는 꼴을 보니, 제가
말을 하기 이전부터 벌써 움직이고 있던 모양입니다.”
하기야.
그 미국이 정보라는 측면에서 다 른 이들보다 뒤지는 상황을 참아낼 수 있을 리 없다.
다른 나라들이 필요한 정보를 수 집해서 이용하려 든다면, 미국은 일 단 정보라는 걸 있는 대로 다 끌어 모아 놓고 거기에서 필요한 정보를 골라내는 나라니까.
“위성부터 요원까지 가용한 건 다 동원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아 직까지는 딱히 잡아낸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
“그 외에 러시아 쪽과 국정원 쪽 도 뭔가를 찾아보려 하는 모양입니 다만…… 그건 무시해도 되겠죠.”
“……그래도 자국인데, 평가가 박 하군.”
“자국이니 언급이라도 해주는 겁 니다. 막말로 미국 정보부가 나섰는 데 국정원이 뭔 의미가 있습니까.”
그도 그렇지.
“일단은 그 정도입니다.”
“으음, 고생하고 있군.”
그들이 수련하는 동안 이현수도
놀고 있지만은 않던 모양이다. 말이 야 쉽게 하지만, 홍왕계와 미국이라 는 두 세력을 동시에 상대하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아마 그들이 생각 하는 것 이상의 악전고투를 치렀을 것이다.
“일단 나도 원탁 쪽을 조금 더 움 직여 보도록 하지. 하지만 도움이 될까는 모르겠네. 유럽이라면 완벽 하게 조사가 가능하겠지만, 아무래 도 동양에서 할 수 있는 것에는 한 계가 있으니까.”
“그렇죠.”
그때까지 듣고만 있던 장민이 가
만히 입을 열었다.
“중국에 남아 있는 교도들을 움직 여 밑바닥부터 훑고 있다.”
장민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정보라는 건, 아래쪽에 서 흐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삼합회 쪽부터 전문적인 마약상은 물론이 고, 동남아 쪽까지 확인 중이다.”
이현수가 고개를 홱 돌렸다.
“동남아요?”
“혹왕의 본거지가 반드시 중국에 있다고 정해진 건 아니니까.”
“아……
한 방 먹었다는 둣 이현수가 입
을 벌렸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흑왕의 존재, 그리고 백연홍의 존 재 때문에 저들이 반드시 중국인이 고, 중국에 그 본거지를 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장민의 말대로 그들이 모 두 중국인이라는 보장은 없고, 설사 중국인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중국에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홍왕계와 창왕계의 영향력 이 강한 중국보다는 인접한 타국이 본거지로 더 적합할 수도 있다.
“……홍왕계 쪽에도 알려줘야겠네
요. 미얀마나 라오스 쪽일 수도 있 겠습니다.”
“러시아도 빼놓을 수 없지. 그 넓 은 땅을 모조리 통제하는 건 불가능 한 일이니까.”
“몽골…… 어, 죄송합니다. 몽골은 뺄게요.”
바토르의 험악한 눈빛을 받은 이 현수가 재빨리 말을 바꿨다.
“여하튼 생각지 못한 사항이네요. 체크해 보겠습니다.”
“좋아.”
위긴스가 턱을 쓸어내렸다.
이것저것 이야기했지만, 결론적으
로는 아직 제대로 된 실체를 잡아내 지 못했고,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언제 움직일지도 여전히 미지수다.
‘조금 더 경계를 강화해야겠어.’ 그게 아니라면…….
“음, 그런데……
“ 예?”
“로드께서는 어디 계시는가? 아침 부터 안 보이시는 것 같던데.”
“글쎄요. 저도 잘……
그때, 장민이 입을 열었다.
“빤한 일.”
“예?”
장민이 씹어뱉듯 말했다.
“마존께서 언제 너희에게 자신이 짊어진 짐을 나누려 하신 적이 있었 더냐?”
“너희가 예전보다 많은 짐을 짊어 졌으니, 본인께서 더 많은 짐을 지 려 하시겠지.”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참 피곤한 성격이야.’
조금쯤은 내려놓고 살아도 될 텐 데.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은 저희가 얻은 것부터 완벽히 정리하는 것부 터 시작해야겠군요.”
“당연한 소리다.”
“이 실장은 그동안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위긴스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 다.
‘흑왕계라……
시간이 흐른다면 결국은 그 실체 가 드러날 것이다. 세상의 이치란 그런 법이니까.
하지만…….
‘과연 그때까지 그들이 얌전히 숨 을 죽이고 있을까?’
위긴스가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
다.
‘그렇지는 않겠지.’
관건은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이 쪽의 준비가 끝나느냐다.
“서두릅시다. 시간은 영원하지 않 으니까.”
짧게 호흡을 뱉어낸 위긴스가 방 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