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78)
마존현세강림기-1880화(1877/2125)
마존현세강림기 76권 (14화)
3장 치하하다 (4)
생경한 느낌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손끝에 뭔가 알 수 없는 물체가 닿아 있는 듯한 기 분이랄까?
눈을 아무리 크게 떠봐도 아무것 도 닿아 있지는 않지만, 손끝에서는 분명 알 수 없는 무언가의 감촉이
느껴진다.
물론 이건 그저 비유.
닿아 있는 곳은 손끝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무척이나 생경하지만, 이 느낌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다.
그래, 이건 말하자면 실마리.
이제는 더 없을 것이라 생각한, 높디높은 곳으로 그를 인도하는 실 마리다.
‘이제 와……
강진호가 낮게 웃었다.
이제 그에게 벽을 넘는다든가, 자 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든가 하는
일은 꽤 요원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지속 적인 숙달로 거북이처럼 나아가야 한다고 믿었건만…….
정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 반전되며 고요하기 짝이 없던 그의 세상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이유?
아마도…….
“저들 때문이겠지.”
강진호는 새삼 자신이 벽을 넘은 초인들을 겪어본 적이 그리 많지 않 다는 걸 실감했다.
적으로서 상대한 적이야 몇 번
있지만, 그 역시 극소수.
그리고 적으로 맞이한 적은 있지 만 누군가가 벽을 뛰어넘는 과정을 지켜보고,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한 변화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었다.
한 번만으로도 인상적인 일이 연 이어 일어났다. 그것도 강진호가 아 는 방식만이 아니라 여러 방식으로.
그걸 보고 뭔가 느끼는 게 없다 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머리로 이해하지 못해도 육체가 이해한다. 육체가 감을 잡지 못해도 그의 무학이 스스로 무엇을 해야 아
는지 알고 움직이고 있었다.
몸 안에 차 있는 액체들이 일정 하게 일렁이는 듯 기묘한 감각.
그 감각을 느끼며 강진호가 자신 의 내부를 가만히 관조한다.
‘묘하지.’
무인으로서 처음으로 다스려야 하 는 것은 자신의 육체를 통제하는 것 이다.
무학이란 결국 자신과 타인이 어 우러져야 의미가 생기는 법. 그중 먼저 다스려야 할 것은 바로 자신이 다.
그렇기에 상승에 오르려는 무인은
자신의 육체를 통제하는 것부터 시 작한다. 강진호 정도 되는 이는 마 음만 먹는다면 육체를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간 단한 변형마저 가능케 할 수 있다.
본래대로라면 의지로 다스릴 수 없는 불수의근조차 통제하에 넣을 수 있으니, 그의 육체가 그의 의지 를 배반할 일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육체는 분명 그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이것도 생경하군.’
그건 분명 완전에서 멀어지고 있 다는 뜻.
평소라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소 리가 되겠지만, 지금의 강진호에게 는 아니다.
건물을 유지한 채 증축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 더 높고 더 튼튼한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건물 자체를 무너뜨리고 다시 지어야 하는 법이 다.
그게 지금 강진호의 육체에서 벌 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흐음.”
강진호가 낮은 침음을 홀렸다.
평소였다면 기뻐할 일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더 강해질 수 있는 실마 리를 잡았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니 까.
하지만 지금은 그 사실에서 단순 한 기쁨만을 느낄 수는 없었다.
무너뜨린다는 것.
그건 다시 말하자면 지금의 무위 가 어느 정도 하락하는 것을 감수해 야 한다는 의미다.
어떻게든 버텨낸다면 더 강해지는 게 확정되어 있다면 고민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을 겪 는다고 해도 강진호가 반드시 또 한
번 벽을 넘을 수 있는지는 미지수였 다.
어쩌면 지금보다 하락한 채 영원 히 이 상태가 지속되어 버릴 수도 있다.
우득.
강진호가 살짝 주먹을 쥐었다 편 다.
사실 지금 이 순간도 충동이 느 껴진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의 몸에 서 벌어지는 변화를 멈추고, 지금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딱히 나쁜 일은 아니다.
용기 있는 자들은 변화보다 안정
을 택하는 이들을 비난하지만, 그건 선택의 영역이지 선과 악이 정해져 있는 일이 아니니까. 어쩌면 근거 없는 도전은 무책임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어렵군.’
청마가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 상 황에서 무위의 하락을 감수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보상이 확실하 지 않은 모험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쪽을 선택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지금의 무위를 유지한다면 계산이
쉬워질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근본 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 다.
‘이길 수 있나?’
흑왕계를?
저 청마를?
지금의 그가?
“후……
강진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나 온다.
그가 청마를 이길 수 있는가는 미지수다. 승부라는 것은 단순히 누 가 더 강한가로 갈리는 게 아니니 까. 하지만 그들이 흑왕계를 상대할
수 있느냐의 답은 너무도 쉽게 나온 다.
‘무리야.’
모두가 노력해 주었지만, 그걸로 도 아직은 부족하다. 일 할도 되지 않는 확률을 어찌어찌 부여잡고 승 리를 이끌어낸다고 해도 그때쯤에는 두 발로 서 있는 사람을 눈으로 셀 수 있는 수준이 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 전력을 더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현수가 노력해 주고 있지만, 그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지금 총회에서 강화할
수 있는 전력은 오직 하나.
‘나뿐이군.’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예전에는 그가 그의 삶을 주도적 으로 선택해 나아간다고 믿던 시절 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결국 선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반쯤 결정되 어 있고, 고민이란 그 선택에 후회 를 남기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안정적으로 말라 죽을 것인가, 도박을 해 비참하게 죽을 각오를 하 고 일발역전을 노려볼 것인가.’
선택이야 빤하지 않은가.
강진호가 몸을 보호하고 있던 기 운을 회수한다. 그리고 육체를 부여 잡고 있던 통제도 풀어놓았다.
그와 동시에 지금껏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던 기운들이 서서히 더 크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멀미가 날 것 같은 이질감.
하지만 그 이질감 속에서도 강진 호의 눈은 더없이 차갑게, 더 차갑 게 가라앉았다.
‘배운 게 있지.’
그는 항상 나아가려 했다. 살아남 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고, 지키기 위해서는 이를 악물어야 했다.
결코 버릴 수 없는 것들은 어떻 게든 부여잡고, 나머지는 모조리 버 려가며 여기까지 왔다.
하나 이사들을 보고 나서야 깨달 았다.
나아간다는 건 결국 걸어왔다는 것. 그를 정말 지탱해 주고 있는 것 은 흔들리지 않는 의지도, 강철 같 은 마음도, 심지어 높디높은 무위도 아니라 그가 지나온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돌아보자.’
그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쩌면…….
그걸 알게 되는 순간이 강진호가 진짜 스스로를 뛰어넘는 순간이 될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유는 알겠는데
“그래서 콜라를 다섯 병째 먹고 있다고?”
최연하가 ‘이 새끼가 진짜 맛탱이
가 완전히 가버렸나?’라는 눈으로 자신을 본다는 걸 알아챈 강진호가 낮게 헛기침을 했다.
“아니, 음……
강진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옛 생각을 하다 보니까 자꾸 땡 겨서.”
“……그게 어떤 원리로 그렇게 되 는 건데요?”
“옛날 생각을 하면…… 아, 내가 그때는 정말 콜라 한 병이 간절했구 나라든가, 누군가와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구나라든가……
“그런 생각밖에 안 떠올라서.” 강진호가 어색한 얼굴로 중얼거렸 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간절하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돌이켜 보니 조금 기분이 이상해서.”
최연하가 눈가를 홈쳤다.
‘이게 뭐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래.
예를 들자면 학창 시절을 보내며 친구 하나 없이 지내온 이가 스스로 는 그게 이상하다는 걸 잘 모르다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야 자신의 학
창 시절이 불우했다는 걸 깨닫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강진호도 이제는 친구도 생기고, 애인도 생기고, 집에 가면 가족이 있고, 자신과 함께 하는 동료들도 생기다 보니 과거 그의 삶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실감하고 있는 것이 다.
아마 그 반작용이 지금 이렇게 나오고 있는 거겠지.
“……그래서 결론이 나를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 콜라를 물처럼 마시 는 거다?”
“……반드시 그 의도는 아니었습
니다.”
“맞네.”
강진호가 어색한 얼굴로 연신 헛 기침을 해 댔다.
최연하가 그런 강진호를 보며 피 식 웃었다.
“어구, 그랬어요?”
“쓸쓸하고 외로웠구나. 그래그래, 이리 와봐. 누나가 위로해 줄게.”
“사, 사람들이 다 보잖아요!”
“괜찮아. 뭐, 어때. 이제는 우리끼 리 찍혀도 뉴스에도 안 나던데.”
“아니! 본다고!”
“보라지, 뭐!”
“왜, 왜 이러세요!”
강진호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 나는 모습을 본 최연하가 다시 한번 눈가를 훔쳤다.
‘저 인간이 다른 사람들이 벌벌 떠는 폭력 조직 보스라니.’
물론 무인과 폭력배는 조금 개념 이 다르지만, 최연하의 눈에는 딱히 다를 것도 없었다. 합법적이지 않은 곳에서 주먹질을 해서 먹고사는 사 람을 조직폭력배라 부르는 법 아닌 가.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 최고의 조직폭력배 보스는 초식남도 아니라 거의 건초남이었다.
“진호 씨.”
“네?”
“……아니에요.”
말해 무엇 하리.
원래 그런 사람인데.
‘뭐, 그게 좋은 거니까.’
피식하고 웃은 최연하가 턱을 괴 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럼 뭐 그런 건 안 해요?”
“어떤?”
“지옥 훈련이라든가. 만화 같은
데 보면 막 몸에 불도 지르고, 끓는 기름에 뛰어들고 막 그러던데.”
“……대체 무슨 만화를 보시는 건 데요?”
아무리 강진호가 만화에 조예가 없다고는 하지만, 저 만화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다.
“두루두루?”
낮게 한숨을 쉰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이건 설명하기가 좀 어렵다.
“이게 조금 위로 올라가면 몸을 써서 하는 수련은 거의 의미가 없다 보니.”
“그럼요?”
“심상이라고 해야 하나, 명상과 관조가 주가 되죠.”
“아, 이해했어요.”
“……이해했다고요?”
그걸 댁이 어떻게 이해하지?
되레 강진호가 놀라 바라보자, 최 연하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너, 지금 나 무시했지?”
“……절대 아닙니다.”
“맞는 거 같은데?”
“진짜 아닙니다.”
“흐응.”
도끼눈을 뜨고 강진호를 노려보던
최연하가 이번은 넘어가 주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기도 그렇죠. 숙달이 되다 못 해 연기가 생활이 된 대배우들은 굳 이 동작이나 대사를 일일이 연습하 지 않거든요.”
“아••••••
“그보다는 캐릭터와 자신을 일체 화시키거나 그 캐릭터를 좀 더 이해 하려고 하는 법이죠. 아니면 정교하 게 계산을 하는 쪽이거나.”
“알 것 같네요.”
결국은 어떤 분야든 일정 수준을 넘어가게 되면 그때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노력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최연하가 강진호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할 수 있는 거예요?”
“ 해야죠.”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 라보았다.
“어려워도 해내야 하는 일이라는 게 있으니까.”
최연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 다.
“어쨌든 힘내요. 응원할 테니까.”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어차 피 없으니까.
조금 씁쓸한 마음으로 애써 웃으 려던 그녀에게 평소와는 조금 다른 강진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마•••••♦
“•…”네?”
강진호가 깊이 가라앉은 눈으로 최연하를 바라본다.
“이번이 마지막일 거예요.”
두 사람 사이에 작은 정적이 내 려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