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82)
마존현세강림기-1884화(1881/2125)
마존현세강림기 76권 (18화)
4장 전율하다 (3)
“그러니까……
천태훈이 산더미처럼 쌓인 비급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이건 현대식도 아니고, 구식도 아니고……
비급을 워드와 이미지를 통해 모 니터로 볼 수 있게 만든 것은 현대
문물의 이기를 이용한 발전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일일이 한 부, 한 부 뽑아 나눠 줘야 한다면, 이건 발전 도 뭐도 아니었다.
“아니, 이 새끼들아! 그냥 모니터 나 폰 화면으로 보면 되지, 이걸 왜 뽑아달라고 지랄들이야!”
적당한 제본소를 찾아내지 못해 총회에 존재하는 프린터를 모조리 동원해 뽑고 복사하고, 뽑고 복사하 기를 반복한 천태훈이 이를 빠득빠 득 갈았다.
하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는 총회
의 회원들은 그저 심드렁하기만 했 다.
“아니, 그게 그렇게 보면 느낌이 안 난다니까요.”
“평생 책으로 보면서 했는데, 갑 자기 폰으로 보라고 하면 그게 됩니 까?”
“맛이 안 산다니까.”
천태훈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 다.
‘이게 이해 못할 건 또 아니라서 더 짜증 나네.’
동일한 텍스트라도 매체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이다. 심지어 소설을 보더라도 종이 책으로 보느냐, 아니면 이북으로 보 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 마련 인데, 그보다 몇 배는 더 집중하고 민감하게 봐야 할 비급의 매체가 달 라지는 건 확실히 문제가 있는 일이 었다.
느긋하게 시간을 들일 수 있다면 알아서 적응하라고 하겠지만, 지금 은 그런 여유가 없다.
결국 그가 고생할 수밖에.
“알았으니까 다 받아 가, 이 새끼 들아.”
“예!”
그 말에 운집한 회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앞에 쌓인 비급을 챙기기 시 작했다.
“에이, 뭔 상태가……
“이사님이 생고생해서 만드신 비 급인데, 이걸 뭐 이런 연습장처럼 만들어놨어? 얼씨구? 펀치로 뚫어 놨네? 이게 뭐 학교에서 책 제본하 는 것도 아니고.”
“냅 둬라. 원래 저 양반이 사부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양반이잖냐. 이 사님이 보살이시지, 보살.”
으드드득.
천태훈이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다 죽인다, 이 새끼들.’
이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나.
몇 천 권을 제본하는 것만 해도 뼈가 부러질 만큼 힘든 일인데, 이 건 그냥 책이 아니라 비급이다. 책 은 오탈자나 파본이 날 경우엔 그냥 새걸로 바꿔주거나 대충 스티커나 붙여주면 그만이지만, 비급은 글자 하나에 해석이 하늘로 가버리는 물 건이 아니던가.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 해서 저 많은 책들을 한 권, 한 권 일일이 검수하느라 눈이 빠질 뻔한 천태훈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
웅이 겨우 이거라니.
“내놔, 이 새끼들아! 보지 마! 보 지 마!”
“아, 진짜 쪼잔하게.”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 니다. 어휴.”
“야야, 빨리 들고 빠져라. 또 빡 치셨다.”
그냥 진짜 다 불 질러 버릴까?
천태훈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와중 에도 비급은 빠른 속도로 줄어갔다. 이내 모여든 이들이 모두 비급을 가 져다 가볍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보지 마, 새끼들아!”
“아니, 진짜 쪼잔하시게……
“그게 아니라, 그렇게 대충 훑어 보지 말라고!”
천태훈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방 이사님이 안정성에 우선을 두 고 만든 비급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급은 비급이다. 그렇게 장난처럼 홅어볼 물건은 아니야.”
그 말에 회원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상승의 무학이란 아무리 안정적이 라고 해도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 는 무학이다.
“제대로 자리 잡고 제대로 살펴봐 라.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사부님 속 뒤집어지실 테니 까.”
“예, 명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장난치던 목소리와는 다르게 돌아 오는 대답은 다들 우렁차고 진지했 다. 그들 역시 이게 얼마나 귀한 것 인지를 알고, 방진훈이 이 무학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 작할 수 있었다.
“혹시 주석본은 없습니까?”
“ 있다.”
천태훈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주석본은 지금 당장 공표 하지 않는다. 일단은 너희가 먼저 노력해서 비급을 이해해라. 그러고 도 정 안 되는 부분은 주석을 보는 게 나아.”
천태훈이 살짝 부연했다.
“그게 방 이사님께서 생각하시는 방식이다. 만든 사람이 본인이라고 해서 자신의 답이 정답이라 생각지 는 않으신다고 하셨다. 빤한 길보다 는 각자가 생각하는 옳은 길을 찾는 게 우선이다.”
“혹시 주석본까지 만드실 여력이
안 되셔서 적당히 가져다 붙이시는 건 아니죠?”
“……진짭니까?”
“아, 아냐, 이 새끼들아!”
물론 주석본까지 만들 여력이 없 는 건 맞구요.
하지만 일단은 주석 없이 본인들 이 비급을 파악하게 하라는 방진훈 의 지시가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사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왜? 감사 인사라도 하게?”
“……아무래도 그게 도리 같아서.”
“헛짓거리하지 마라, 새끼들아.”
천태훈이 살짝 눈을 찌푸리며 말 했다.
“그런 공치사를 좋아하는 분이 아 니시다. 감사를 표하고 싶으면 하루 라도 빨리 익혀서 이 무학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드려. 그걸 가장 좋아하실 거다.”
“알겠습니다!”
회원들이 단호한 눈으로 손에 들 린 비급을 바라보았다.
여기에 모인 이들 중 이 무학을 제대로 익히고 그 위력을 모두 발휘 할 수 있는 사람은 채 2할도 되지 않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상승 무
학에 입문 자체가 불가능한 이들도 반이 넘는다.
하지만 이 무학은 다름 아닌 방 진훈이 만든 무공.
일반적으로 수준이 되지 않는 이 들이 상승 무학에 입문했을 때, 치 러야 할 대가나 부작용이 거의 존재 하지 않는, 말 그대로 범용적인 무 학이 다.
일반적인 문파들은 상승 무학을 이해 없이 익혔을 때의 부작용을 감 안하여 자격을 엄격하게 따지는 법 이지만, 방진훈이 만든 무학은 그런 위험이 없으니 대부분의 회원들이
부담 없이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극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도 회원들 전반적인 무위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총회의 운영 방향과는 완전 히 반대로 가는 거긴 한데……
총회는 결국 선택과 집중.
따라올 수 있는 이들은 빠르게 선별하여 그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하 는 방식이다. 하지만 방진훈의 방식 은 따라오지 못하는 이도 단 하나 버리지 않고 모조리 끌고 가는 방식 에 가까웠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이렇게 극단적인 방식의 차이가 존재한다면 나름 갈등이 벌어질 만 도 한데, 소수 정예를 선호하는 강 진호와 전반적인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진훈은 딱히 트러블 없 이 공존하는 중이었다.
아니, 되레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 며 돕기까지 한다.
“지금 너희가 받은 무학은 처음 이사님이 만든 버전에서 회주님이 감수를 하셔서 적당히 실전성을 높 은 최종본이다.”
“오……
“그러니 막 익혀도 될 거라고 생
각하지 말고, 한 번 삐끗하면 바로 엿 된다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익히 도록 해! 알았어?”
“예!”
강진호의 이름까지 나오자 비급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이 더욱 진지해 진다.
그 모습을 보며 천태훈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 이상 은 잔소리가 될 뿐이다.
총회에 몸담고 있는 이들 중 지 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그럴 정도로 무심한 이라면 이미 오래전에 도태되거나 퇴줄되었 을 것이다.
재능이 없고, 능력이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다그칠 향상심을 가지지 못한 이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총회의 회원들 역시 이제 곧 그 들이 경험하지 못한 거대한 무언가 가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리고…….
이 비급은 그 전쟁에서 이들을
지키는 것과 동시에, 총회의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될 것이다.
“자, 이제 흩어져! 시간 아깝다!”
“예!”
“감사합니다.”
회원들이 재빠르게 뿔뿔이 흩어졌 다.
상승의 무학을 익히는 와중에는 조그마한 외부적 자극으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아마 지금 이 시간부 로 저들은 총회 주변의 각지로 흩어 져 전력을 다해 무학을 익히게 될 것이다.
“이걸로 된 거겠죠?”
“흐 ”
TH •
함께 비급을 만든 사제들의 질문 에 천태훈이 턱을 긁었다.
“시간만 좀 더 넉넉하다면 이것저 것 더 해볼 수 있겠지만……
이전에 시도한 동영상 강의 같은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같은 주 석을 해준다고 해도 텍스트는 그 속 도와 정확성에 이점이 있는 반면, 동영상은 전달성이라는 측면에 있어 서는 텍스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느긋하게 그런 것
을 제작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더구나…….
‘지금 당장은 사부님이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대충 정리해 둬. 나는 사부님 뵙 고 올 테니까.”
“예.”
사방으로 흩어지는 회원들을 바라 보던 천태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 나눠 줬습니다.”
“어, 그래.”
“일단은 각자 익히기 시작할 겁니
다. 아마 며칠 뒤부터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나올 것 같습니 다.”
“그렇겠지?”
“예. 그때부터 움직이시면 될 것 같은……데.”
천태훈이 눈을 찌푸렸다.
“아니, 그거, 빛은 좀 어떻게 안 되는 겁니……
홱!
천태훈이 고개를 옆으로 격하게 꺾었다. 그의 얼굴이 있던 곳을 재 떨이가 강렬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그만해, 이 새끼야! 나라고 좋아
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방진훈이 손에 들고 있던 비급을 내려놓고는 머리를 움켜잡았다.
“여기저기서 잔소리 듣는 것도 어 디 하루 이틀이지. 끄웅, 동물원 원 숭이도 아니고……
“그거, 해결은 된답니까?”
“회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일단은 내가 만든 무학을 다 익혀보 라는데……
그러고 보니 예전보다 빛이 좀 약해진 것 같기는 하다.
“회주님이 말씀하셨으면 틀림없겠 죠. 그럼 그냥 빨리 익히시면 되잖 아요.”
“……야, 그게 안 쉽다.”
“예?”
천태훈이 이게 뭔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안 쉽다니요?”
“이게…… 만들 때는 몰랐는데, 막상 익히려니까 여기저기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잘 안 익혀지네.”
“……그게 뭔 자기가 만든 칼에 찔려 죽는 소립니까? 그 무공. 사부 님이 만드신 거잖아요.”
“만든 놈은 다 잘 익히냐?”
“당연한 거 아닙니까?”
방진훈의 눈썹이 꿈틀했다.
“잘 들어봐.”
“예.”
“내가 자동차를 만든단 말이야. 내가 자동차 공학에 조예가 있어서 끝내주는 자동차를 설계하고, 그걸 직접 만들기까지 했어.”
“예.”
“그럼 내가 슈마허보다 그걸 잘 몰겠냐?”
그거…… 어
“와…… 이거, 반박이 안 되네.”
“그렇다니까. 무학을 만드는 건 기술자의 역할이고, 익히고 써먹는 건 드라이버의 역할이라고. 내가 무 학을 만들었다고 그걸 가장 잘 익히 고 써먹는 건 아니라는 거지.”
“……이해가 안 가면서 이해가 가 네요.”
“쯧.”
방진훈이 비급을 손으로 탁탁, 내 려 쳤다.
“걱정할 것 없어. 여기서 좀 더 나아갈 방향이 자꾸 보여서 덜컥대 는 것뿐이니까. 아마 며칠 내로 완
전하게 익힐 수 있을 거야.”
“예, 사부님.”
확실히.
뿜어져 나오는 빛이 약해진 만큼 방진훈의 기운은 되레 강해지고 있 었다. 며칠이 지나면 여기서 얼마나 더 강해질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 였다.
“너도 빨리 익혀둬. 생각 이상으 로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예?”
방진훈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적은 항상 예상보다 빨리 움직이 지. 내 생각인데, 그 흑왕이라는 놈
이 생각이 있으면 우리한테 시간을 더 주려고 하지는 않을 거야.”
“그 말씀은……
“그래.”
방진훈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 다.
“곧 전쟁이 시작될 거다. 이제까 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전쟁이.”
그 무거운 목소리에 감히 반박할 수 없던 천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부님.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몸을 돌린 천태훈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왜? 뭐 물어볼 거라도 있어?”
“아니요. 아니…… 아무것도 아닙 니다.”
“새끼, 싱겁기는.”
그리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밖으 로 빠져나온 천태훈이 가만히 고개 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뇌리에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의문이 여전히 어려 있었다.
그럼.
그들이 정말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나면…….
‘그때부터는 우리는 뭘 해야 하는
겁니까, 사부님.’
그건 방진훈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그렇기에 물을 수 없었다.
웃긴 일이지.
적이 없어진다는 건 더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건 거꾸로 말해 총회가 더 이상 존속할 의미가 없어 진다는 말과도 같았다.
“적이 없는 무인이라……
나직하게 한숨을 내쉰 천태훈이 고개를 내젓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 니다.
적어도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