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84)
마존현세강림기-1886화(1883/2125)
마존현세강림기 76권 (20화)
4장 전율하다 (5)
휘이이이 잉.
차가운 칼바람이 드높은 건물 위 를 스치고 지나갔다.
과거였다면 높은 산 위에서나 느 껴볼 수 있는, 한기 섞인 칼바람을 도시 한가운데에서 느낀다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저주이리라.
건물 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옥상에 몇몇 남자들이 서 있다.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기세 를 흘려내던 이들이 서로를 바라보 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반갑다고 해야 하나?”
“어쭙잖은 인사는 집어치워라.”
분명 안면이 있는 사이들로 보이 건만, 오가는 말은 그리 곱지 않았 다.
“대충 십 년 만에 보는 것 같은 데, 덕담 한마디 정도는 해도 괜찮 잖아. 그 성격은 조금도 바뀌지 않
았군, 독왕(毒王).”
“덕담? 너와 나 사이에 덕담이라 고?”
독왕이라 불린 이가 이를 드러내 자, 그 적의를 받는 사내가 낮게 웃 었다.
“수십 년 동안 봐온 사이면 나름 친인이라고 할 수도 있지.”
“구역질나니 거기까지만 하지.”
“알았네, 알았어. 그리 화내지 말 라고.”
독왕이라 불린 이가 눈을 찌푸렸 다.
“십 년이란 세월은 평범하게 살아
가는 이들에게나 의미가 있지.”
“그도 맞는 말이고.”
사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독왕에게서 고개를 돌려 다 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소식은 들었나?”
“소식?”
“검존이 당했다는군.”
“백연홍, 그 멍청한 놈이.”
독왕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한 번은 험한 꼴을 볼 줄 알았 지. 약해 빠진 놈이 제 잘난 줄 알 고 날뛸 때부터 말이야.”
하지만 다른 이들은 백연홍이 당
했다는 사실보다는 그를 꺾은 이가 있다는 것에 더 관심을 보였다.
“상대는? 역시나 마존인가?” 모두의 눈에 흥미가 어렸다.
상황을 보아하니 백연홍이 마존에 게 당한 것은 확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패배의 과정이 어떠했는가에 관 심을 가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들이 한 시대를 지배하던 자라 면, 마존은 역사를 지배한 자.
그들의 무가 과연 그에게 닿을 것인가.
마존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 의 힘을 완전히 되찾았는가.
하지만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하는 그들의 귓가에 들려온 것은 조금은 맥이 빠지는 말이었다.
“아니. 마존이 나서기 전에 흑왕 께서 직접 행차하셔서 놈을 잡았다 고 하시더군.”
“홈.”
“한심한 놈이.”
몇몇이 열이 식었다는 듯 손사래 를 쳐 댔다.
“차라리 마존에게 뒈지는 쪽이 나 았겠군. 흑왕의 성정에 그냥 넘어가 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야.”
“팔 하나 정도 자르는 정도로 봐
줬다고 하는 것 같던데.”
“……싸게 먹혔군.”
검수에게 팔이 어떤 의미인지 모 를 이는 이곳에 없지만, 목숨과 팔 중 하나를 내놓아야 한다면 선택은 너무도 빤해지지 않겠는가.
흑왕의 명령을 어긴 대가로 지불 한 게 팔 하나라면 싸게 먹히다 못 해 거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왕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 을 찌푸렸다.
“그분은 너무 온화해지셨어. 예전 의 그분이었다면 산 채로 뼈를 뜯어 내고, 눈을 파낸 뒤에 개 먹이로 던
져 주셨을 텐데.”
“예전에 네가 당한 것처럼?”
독왕의 눈이 일그러졌다.
“계속 주둥아리를 놀려봐라. 그 입이 언제 찢어질지 나도 궁금하군, 신창 (神槍).”
신창이라 불린 사내가 양손을 들 어 올리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
“미안하군. 이 주둥아리가 방정이 라.”
독왕이 살기를 뿜어냈지만, 그도 함부로 신창을 향해 달려들지는 않 았다. 신창이란 사내가 무서운 건 아니지만, 흑왕의 명령을 받아 온
자리에서 경거망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 병신은 안 오는 건 가?”
“흑왕께서 근신을 내렸다고 하시 는군.”
“근신이 라……
독왕이 혀를 찼다.
근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부 상을 회복하고 몸을 수습하라는 배 려에 가깝다는 것을 모를 독왕이 아 니었다.
“최근 들어 혹왕께서 조금 감상적 이 되신 것 같더니, 그리 무르셔……
그 순간, 독왕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목을 은밀하고도 소름 돋는 살 기가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계속 말해봐.”
독왕이 고개를 슬쩍 돌려 옥상 난간에 등을 기대고 있는 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도귀 (刀鬼)
“뭐라고 지껄이든 그건 네 마음이 지만, 그분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 릴 때는 목이 떨어질 각오 정도는 해야겠지.”
독왕이 입을 다물었다.
십이비도 중 만만한 이는 단 하
나도 없지만, 저 도귀는 그중에서도 유달리 부담스러운 자였다.
독왕이 슬쩍 시선을 다른 곳으로 주며 말을 돌렸다.
“신창, 도귀, 파권(破쪼), 괴불(怪 佛), 낭곤(浪根).”
하나하나 면면을 살핀 독왕이 눈 을 찌푸렸다.
“나머지는?”
“모두 모일 수는 없지. 각자 일을 맡고 있는 이들도 있을 테니까. 남 은 이들은 따로 임무를 수행할 거 다.”
“흥.”
독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의 면면만 하더라도 중원은 물론이고, 세상을 뒤집어놓기에 부족함이 없으니까.
“그래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낭곤이 낄 낄대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뭐지? 한 국으로 달려가 마존의 목을 따면 되 는 건가?”
마존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미묘한 기류가 그들의 사이를 타고 흘렀다.
“물론 그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 지만, 혹왕께서는 허락지 않으셨다.”
오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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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야 할 것은 먼저 중원 을 정리하는 것이다. 건방지게 왕이 니 어쩌니 하는 이름으로 거들먹거 리고 있는 홍왕의 목부터 잘라낸 다.”
사내들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렇다는 건……
“시작이라는 거로군.”
“그렇다.”
신창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흑왕께서 때가 왔다고 선언하셨
다. 이제 기나긴 우리의 계획을 실 행으로 옮길 때다.”
기이한 열기가 흐른다.
딱히 신중함 없이 함부로 말을 하던 이도, 조용히 상황을 주시하던 이도.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는 그 두 눈에 어찌할 수 없는 열기를 담 았다.
“길었군.”
“그래, 길었지.”
“마침내.”
그저 오랜 시간이라는 말로 표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이 삶의 대부분을 오로지
기다림으로 보냈다. 오직 이 한 순 간만을 위해서 말이다.
길고 긴 기다림.
생살을 뜯어내 씹는 것보다 더 참기 어려운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 고, 이제 그들의 삶이 새로운 의미 를 찾을 때가 마침내 도래했다.
“방식은?”
“자유다.”
신창이 어깨를 으쓱했다.
“언제나처럼 말이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왕은 그들에게 방식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그가 원하는 결과만 낼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 그건 흑왕의 그들의 대한 신뢰의 상징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
파권이 묵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 었다.
“흑왕께서 바라시는 건 홍왕인가, 아니면 홍왕계의 괴멸인가?”
“정확하게는 홍왕계를 저항 불가 의 상태까지 몰아넣는 것.”
신창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결과를 이룰 수 있다면 방식 은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나는 홍 왕을 직접 노리는 건 추천하지 않는
다. 창왕이 부재한 상황에서 홍왕마 저 쓰러진다면, 아랫놈들이 어떻게 미쳐 날뛸지 모르니까.”
“필요악이라는 건가?”
“그러니 놈들이 아직 목을 붙이고 살아 있는 거지.”
신창의 입가가 기괴하게 뒤틀렸 다.
“똑바로 알아둬라. 괴멸이 아니라 저항 불가다. 딱히 필요 없는 살생 은 자제하도록.”
“ 필요하다면?”
“굳이 물을 것 있나?”
신창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그저 그분의 말을 전할 뿐 이다. 해석은 내가 아니라 너희의 몫이겠지. 알아서 움직이도록.”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파권이 아직 한 가지 남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하면 마존은?”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명은 달라진 게 없다. 흑왕께서 는 마존에게 접근하는 걸 불허하셨 다. 도발을 비롯한 어떠한 행위도 허용되지 않는다. 백연홍, 그 멍청이 놈 꼴이 되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든
가.”
파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홍왕만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는 군.”
“그리고 등 뒤에 적일지도 모르는 이가 존재한다는 건 영 찝찝한 일이 지.”
조금은 불만 어린 소리가 나온다.
그러자 신창이 담담한 목소리로 다시 경고한다.
“생각하지 마라.”
“아니, 생각을 할 이유도 없다.
마존을 어찌 처리할 것인가는 온전 히 흑왕께서 선택하실 일이다. 너희 는 그저 흑왕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따르고, 그분의 개가 되어 움직이면 그만이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그야말로 한 세대를 제패한 이들.
그 자부심이 하늘을 찔러도 이상 할 것이 없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 에게 하기에는 너무도 적절하지 않 은 말 같지만. 그 말을 들은 이들 중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십이비도다. 우리의 역할
은 그분의 비수가 되는 것. 그리고 마침내 그분의 대계를 이루는 것이 다.”
십이비도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 였다.
그들의 눈빛에 떠올라 있는 비장 함이 기온 낮은 건물의 옥상을 더욱 차갑게 식히는 것만 같다.
“그럼 움직여라.”
대화는 그걸로 충분했다.
신창의 마지막 말이 끝나는 순간, 신창을 일별한 이들이 몸을 돌렸다.
“다음에 만날 때는 다른 세상에서 였으면 좋겠군.”
“그럼 네 목은 내가 따주지.”
“하하핫!”
서로를 한 번 노려본 이들이 당 연하다는 듯이 드높은 건물 아래로 몸을 던져 사라졌다.
건물 옥상에 남은 것은 신창과 괴불, 단둘뿐이었다.
“용건이 남았나?”
“하나 여쭙겠소.’’
괴불이 가만히 신창을 바라보았 다. 그 투명한 시선에 신창이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흑왕께서는 어디에 계시오?”
“나도 모른다.”
“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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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시작되는 이 순간에도 흑왕이 합류하지 않는다는 것이 조 금 걸린다는 듯 괴불이 눈을 찌푸렸 다.
“불만이라도?”
“그럴 리가.”
괴불이 양손을 합장하고는 낮게 불호를 외웠다.
“그분에게 대의가 있을진대, 무슨 불만이 있겟소. 다만……
“ 다만?”
“아니외다.”
괴불이 고개를 내젓고는 몸을 돌 렸다.
“보중하시오.”
신창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괴불이 그 자리에서 멀어져 갔다.
‘찝찝한 놈.’
항상 뭔가 여지를 두고 행동하는 이다. 거스를 것이 없기에 직관적이 기 짝이 없는 다른 십이비도들과는 다르게.
그렇기에 신창은 항상 괴불이 거 슬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가 천천히 걸어 옥상의 끝에 섰다. 끝도 없이 늘어선 마천루가 그의 눈에 들어온다.
이건 그에게 너무도 익숙한 광경.
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생경한 광 경이기도 했다.
그들은 귀환자.
이곳의 주민이면서도 다른 세상을 살아온 자. 그렇기에 영원히 이 광 경과는 섞여들 수 없는 이였다.
“흑왕에게 영광을.”
그런 그들을 구원한 이가 바로 흑왕이다.
이제 흑왕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 상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너무나도 쓴 기다림의 끝에 그들은 마침내 잃 어버린 낙원에 도달할 열쇠를 손에 넣었다.
“흑왕에게 영광을!”
낮게 읊조린 신창이 건물 아래를 빤히 바라보다 몸을 날렸다.
이제…….
전쟁을 시작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