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88)
마존현세강림기-1890화(1887/2125)
마존현세강림기 76권 (24화)
5장 얻어맞다 (4)
까딱까딱.
공령이 손가락을 가볍게 접었다 펴기를 반복한다.
‘아직 감각이 미묘하군.’
무위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무인의 무학이란 실전에서 제 위력을 발휘해야 그 의미가 있는
법.
무학을 갈고닦는 데 소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실전에서 사람 을 상대로 무학을 펼쳐 본 지는 벌 써 몇 년이 지났다.
아니. ‘제대로’라는 말까지 붙는다 면 몇 년이 아니라 몇 십 년이라는 말을 붙여도 이상할 게 없다.
“ 흐음.”
이런 감각은 수련을 통해서 극복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직 실전.
삶과 죽음이 오가는 실전을 겪어 야 회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
다.
‘곧 회복이야 퇼 테지만……
공령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조각조각 난 시체들과 그 시체들에서 흘러나온 피가 모여 흐르는 광경이 들어온다.
그 시체 더미와 피의 강에서 뿜 어져 나오는 피비린내가 금방이라도 코를 마비시킬 것 같다. 제아무리 철석간담을 지닌 이라고 해도 이 광 경을 눈앞에서 직면한다면, 속에 든 것을 게워내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령은 그 광경에서 딱히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끔찍 한 광경일지 모르지만, 그가 살던 시대에 이런 광경은 딱히 특별한 것 도 아니었다.
특히나 그가 가는 곳은 말이다.
“……대체 얼마나 죽여 대야 감각 이 완전히 돌아올지 짐작도 가지 않 는군.”
공령의 눈이 절로 찌푸려졌다.
적당히 상대를 해주다 보면 감각 이 웬만큼 회복될 것이라 생각했건 만, 전투가 끝나고 보니 별다른 성
과가 없는 느낌이었다.
확실한 것.
세상은 발전했지만, 무인들의 세 상은 퇴보했다.
그가 최전성기를 달리던 과거의 중원이었다면, 이름 없는 삼류 문파 를 상대한다 해도 이보다는 저항이 심했을 것이다.
이들이 이름 없는 삼류 문파의 제자들이 아니라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홍왕계의 무사들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가 생각하는 이상으 로 현대의 무인들은 나약할지도 모 른다.
‘아이러니 하군.’
무인들의 삶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나아졌다. 과거의 무인들도 그 힘을 바탕으로 평범한 양민들보 다는 나은 삶을 살았지만, 과거의 세상은 그 조금 더 나은 부유함을 누릴 방법이 딱히 없던 세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무인들은 뒷세계를 장악하고, 그 장악력을 바탕으로 막 대한 돈을 벌어들인다. 다시 말하자 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나 약한 이들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 이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이 야기다.
‘썩어가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딱히 근성론에 사로잡힌 건 아니 다.
그는 과거나 지금이나 노력과 근 성으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을 그리 믿지 않는 이였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시간이 더 흘러간 다면 현대의 무인들은 더 약해져 갈 것이고, 무인들의 세상은 결국 사라 지고 말 것이라는 사실만은 동의하 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나쯤은……
공령이 시산혈해를 바라보며 중얼 거렸다.
“보내줄 걸 그랬나?”
피식 웃어버린 공령이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다. 그러자 건물 전체를 돔처럼 둘러싸고 있던 그의 와이어 들이 비단이 서로 마찰하는 듯한 소 리를 내며 그의 소매로 빨려 들어갔 다.
‘좋은 세상이지.’
과거에는 이보다 훨씬 더 무겁고 약한 은사를 만들어내기 위해 온갖 비전을 다 동원해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은사의 가격은 동등한 무 게의 황금보다 몇 십 배는 더 비쌌 다.
하지만 지금은?
‘공산품이 당시의 비전을 능가하 는 세상이지.’
산업용으로 따로 제작된 고가의 와이어는 당시 그가 사용하던 은사 보다 열 배는 가늘고, 당시보다 수 십 배의 무게를 이겨낸다.
질이 더 좋아진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는 그런 물건을 그저 주 문하는 것만으로 별 어려움 없이 손 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 과거 그대로의 방식으로 만 들어진 무기가 손에 익다며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
지만, 공령의 입장에서 그런 이들은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멍 청이들일 뿐이었다.
사라락.
공령이 와이어를 살짝 뽑아냈다가 다시 밀어 넣는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 고 고수는 무기를 가리지 않는다?
그건 고수가 되어본 적 없는 이 들의 환상일 뿐이다.
명필일수록 붓은 최고급을 고집하 는 법이고, 고수일수록 명검을 얻기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법이다. 명검으로 이름을 날린 검들이 누구
의 손에 쥐어져 있었는지를 생각한 다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촤락.
만족스러운 얼굴로 와이어를 한 번 뻗어낸 공령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그때.
우우우웅.
그의 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휴 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우웅.
가만히 울리는 휴대폰의 감각을 느끼던 공령이 피식 웃고 말았다.
‘좋은 세상이라니까.’
과거에는 전장에 나가 있는 이와 연락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강구 해야 했다. 아무리 빨리 경공을 펼 치고, 말을 갈아타며 달려도 속도에 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제때 정보가 전달되지 않아 패배 하는 일은 딱히 실수라고 취급되지 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앉은 자리에서 버 튼 몇 번 누르는 것만으로도 수천 킬로 떨어진 곳까지 연락을 할 수 있다.
‘과거에도 이런 게 있었다면 역사 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하군.’
하나는 인정해야 한다.
그들이 지배하던 세상은 이미 끝 이 났다. 아마 이 흐름을 돌이킬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공령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 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딱히 서두르 지 않는 동작으로 휴대폰을 귀에 가 져다 댔다.
“무슨 일이지?”
[정리가 끝났으면 그만 물러나셔 야 합니다.]“알고 있다.”
애초에 그러기로 했으니까.
“일일이 연락하지 않아도 돼. 나
는 다른 멍청이들과는 다르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저 확인 차 연 락을 드린 것입니다.]“흑왕의 명인가?”
[제 독단입니다.]공령이 낮게 웃었다.
“알았다. 바로 물러나지.”
[다만, 흑왕께서 피해가 큰 것에 조금 언짢은 기색을 보이셨습니다.]“홈……
공령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혹왕께 보고드리도록. 어설프게 자비를 베풀었다가 희망을 품는 이
들이 늘어나면 피해는 더 커질 거라 고. 손을 대지 않는다면 모를까, 손 을 대야 한다면 확실해야 한다고 말 이야.”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그럼.]전화가 끊기는 소리를 들은 공령 이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찔러 넣 었다.
“홈.”
과하다라…….
“혹왕께서도 평화에 젖으셨나?”
과거에 이런 광경이야 심심찮게 보던 것이었을 텐데 말이다. 저 혹 왕이 전장을 누비던 시절에는 이 정
도 광경이야 딱히 끔찍하다는 말을 할 만한 수준도 아니었을 터.
“세상을 피로 물들였던 분이 꽤 감상적이 되셨군.”
공령이 나직하게 웃었다.
하지만 뭐…….
딱히 탓할 일은 아니다.
세상이 달라지면 사람도 변해야 하는 법.
예전과 달라진 건 흑왕뿐만이 아 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십이비도 들도 과거의 그들과는 분명 많은 부 분이 변했다.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변하는 와중에서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고 있는가다.
그것만 지키고 있다면 다른 부분 은 얼마나 변하든 아무 상관이 없 다.
발걸음을 옮기려던 공령의 귓가에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음‘?”
공령이 고개를 돌렸다.
‘실수라……
실전 감각이 떨어진다는 건 이런 문제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예전 이었다면 그의 감각이 생존자를 놓
쳤을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공령이 소리가 난 쪽으로 발을 옮겼다.
저벅, 저벅, 저벅.
동강동강 나 쌓여 있는 시신들 사이로 개미 소리 같은 신음이 새어 나온다.
그가 가볍게 손을 내젓자 시체들 이 좌우로 갈라지며 잘려 나간 다리 를 움켜잡고 있는 이가 눈에 들어왔 다.
“운이 좋군. 아니, 운이 나쁜 건 가?”
공령이 생존자를 가만히 바라보았
다.
예전 같았으면 소리가 들리는 순 간 숨통을 끊어놓았겠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다른 이들뿐 아니라 그 역시 변했다 는 거겠지.
“나를 봐라.”
몽롱한 의식을 채 부여잡지 못하 고 있던 이가 그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들어 공령을 바라 보았다.
“ 흐음.”
눈빛.
다리를 부여잡고 있는 이의 눈빛
이 원독에 차 공령을 노려보았다.
“좋아.”
예전에는 저런 눈을 한 이가 많 았지.
무력이 주는 향락에 젖어 무인이 무엇인지를 잃어버린 이는 저런 눈 빛을 하지 못한다. 그를 보는 순간, 공포에 젖어 달아날 길부터 찾았겠 지. 그게 아니면 눈물을 짜내며 용 서를 빌거나.
하지만 이자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는 절대적 인 격차를 실감했음에도 대항의 의
지를 잃지 않은 것이다.
‘나도 늙었지.’
과거였다면 저 눈을 뽑아냈을 것 이다.
그 역시 그리 좋은 사람으로 불 리지는 못하던 이. 정과 사를 굳이 나눠야 한다면, 사 쪽으로 급격하게 쏠리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이니 까.
하지만 지금은 저 눈빛이 그리 싫지 않다.
과거에는 너무도 당연하던 것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게 된 세상이라 그런 모양이다.
“그 눈빛을 유지해라, 꼬마야.” 공령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 보았다.
“곧 너 같은 이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때는 그 눈빛이 다시 의미를 가질 수 있겠 지. 그런 세상에서는 다리 하나 잃 은 정도는 딱히 문제도 아닐 거다.”
공령이 가볍게 웃어준 뒤 몸을 돌렸다.
“이.. 이..자라 새…끼….
“쿡쿡.”
낮게 웃은 공령이 손을 휘휘 내 저었다.
“그때가 오면 네가 내게 감사하게 될지도 모르지.”
말을 마친 공령이 미련 없이 걸 어간다.
“꾜으••••••
홀로 남은 이가 점점 멀어지는 공령의 뒷모습을 원독에 찬 눈으로 노려보다가 다리를 움켜잡았다.
의식이 돌아오며 점점 더 고통이 극심해진다. 잘려 나간 다리에서 느 껴지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눈에 들 어오는 광경들이 너무도 참혹하다.
“이……
모두 죽었다.
이곳을 지키던 이들은 개미 새끼 한 마리 살아남지 못했다. 살아남은 것은 오직 그 하나뿐이다.
“이
조금 전까지 대화를 하고, 같이 밥을 먹던 이들이 처참한 시체가 된 광경을 눈으로 본다는 건 지옥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 는가.
저 강력하기 짝이 없던 창왕계와 의 지독한 전쟁을 지속해 오면서도 이런 말도 안 되는 피해를 입은 적
은 없었다. 그들은 더없이 강하고 위협적이지만, 적어도 맞서 싸워볼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저런 놈들을 대체 어떻게 상대하 라는 거지?’
마음 어딘가가 꺾이는 기분이다.
마음속에 분노가 들어차 머리가 하얗게 탈색될 지경이지만, 그 분노 는 차마 공령을 향해 뻗어지지 못했 다.
“우으윽.”
바닥을 움켜잡은 이가 신음을 토 하며 몸을 떨었다.
패배.
더할 수 없이 완벽한 패배의 무 게 앞에 그의 머리가 점점 더 아래 로 떨어진다.
쿵!
피로 젖은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그의 둥 위로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날.
홍왕계 스물한 개의 지부가 동시 에 궤멸했고, 그 모든 지부를 통틀 어 생존자는 채 열을 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