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93)
마존현세강림기-1895화(1892/2125)
마존현세강림기 77권 (5화)
1장 혼란하다 (5)
쪼르르륵.
붉은 와인이 잔을 채운다.
가득 차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잔을 들어 올린 청마가 가볍게 잔을 혼들었다.
붉은 액체가 유리잔을 타고 부드 럽게 휘돈다.
한 모금 와인을 머금은 청마가 두 눈에 이채를 띠고 잔을 내려놓았 다.
“흥미로운 맛이군.”
“……딱히 좋은 빈티지는 아닙니 다만.”
“상관없어. 나는 와인의 맛 같은 건 잘 모르거든.”
청마가 빙긋 미소 지었다.
“그냥 좋은 와인을 구해오면 의례 적으로 괜찮다고 할 뿐이지, 사실 마트에서 싸는 싸구려 와인이나, 한 병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와인이 나 차이는 잘 모르고 그냥 대충 마
실 뿐이야.”
리우양이 살짝 황당하다는 눈으로 청마를 바라보았다.
그가 청마를 모신 지 꽤 오래되 었지만, 이건 그도 처음 듣는 사실 이다.
“제게는 그 말이 곧 와인을 즐기 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그럼 왜 굳이 와인을 드십니까?”
“적당하니까.”
“••••••예‘?”
청마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술이라는 건 사람을 흥취에 젖게
하지.”
일견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고금 이래 다시없을 수준에 오른 무인이 고작 알코올 따위로 취할 일은 없을 테니 까.
하지만 리우양은 청마가 하는 말 을 이해했다.
그가 말한 홍취란 취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추억에서 오는 것이다.
“이게 아닌 다른 술을 먹으면 옛 기억이 나서 말이야. 맥주는 영 아 쉽고.”
가볍게 고개를 저은 청마가 고개
를 돌려 TV를 바라보았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의 거대한 비전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 는 높은 건물의 모습이 연신 재생되 고 있었다.
“흐음.”
청마가 유쾌하다는 듯 키득댔다.
“골치 아프다니까. 제멋대로 저지 르라 말한다고 정말 제멋대로 저질 러 버릴 줄이야.”
평소에는 죽어도 말을 들어먹지 않던 놈들이 이럴 때는 충신 난 것 처럼 그의 말을 철석같이 따른다. 이러니 쓴웃음을 짓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제시킵니까?”
“말은 무거워야 하는 법이지. 물 론 내가 필요할 때는 말이야.”
청마가 화면을 보며 빙긋 미소 지었다.
“즐겁지 않느냐?”
“저기서 타오르는 건 단순히 저 건물만이 아니겠지. 눈에 보이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이 불타고 있는 광 경이다.”
이제껏 힘을 가진 이들이 만들어 놓은 법칙을 포함하여 말이다.
“재미있어.”
당황할 이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마 지금쯤 중국 정부는 물론이고, 홍왕계나 지 켜보고 있는 외국들까지도 모두 혼 이 나갔겠지.
“저기에 누가 갔지?”
“신창입니다.”
“신창이라……. 안 그럴 것 같으 면서 과격하단 말이야.”
첫 포문은 다른 이가 열 거라 생 각했는데…….
선수를 빼앗긴 이들은 더 큰 공 적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좀 과열되겠군.”
“그럴 이들은 아니라고 생각하지 만, 침착함을 잃는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서는 적당히 자제시킬 필요가 있다 고 생각 됩니다.”
“괜찮아.”
청마가 피식 웃었다.
“피해를 입지 않는 건 방법도, 도 리도 아니야. 상대를 찔러 죽일 각 오를 한 이는 자신 역시 목숨을 걸 어야 하는 법이지.”
“예!”
리우양이 즉시 입을 다물었다.
간단한 제안 정도는 그에게 허락 되어 있다. 아니, 그 이상의 것도 그에게는 허락되어 있다. 사실 청마 는 자신의 명령을 크게 어기지만 않 으면 수하들의 권한이나 행동을 제 한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선은 청마가 아닌 리우양이 만든 것.
알고 있음에도 행하는 일에 관해 서는 입을 떼서는 안 된다. 그의 두 뇌와 청마의 두뇌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니까. 그저 인간이기 에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망 각과 실수를 줄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청마가 어깨를 으쓱했다.
“모든 것을 지키려 하다 보면 결 국 모든 것을 잃는 법이지. 내가 그 에게 배운 것은 피를 흘릴 용기가 없는 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야.”
“마존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청마가 피식 웃었다.
과거의 그는 지금보다 배는 조심 스러운 사람이었다. 상대를 몰아넣 기 위해 적절한 피해를 감수할 줄은
알았지만, 그것에도 명백히 한계선 을 그어놓았다.
피는 흘리되, 모험은 하지 않는 다. 그게 과거 청마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도 강진호를 보며 알게 되었다. 강진호는 그가 보기에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을 몇 번이나 저질러 댔고, 그 대가로 그가 예상한 것과 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성과를 이룩해 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하늘이 내린 영웅이라는 말이 있 지.”
“••••••예?”
“그런 게 있잖은가. 죽어라고 공 부해 병법을 익히고, 악을 써 대며 모든 것을 계산하는 이들은 적당한 명장으로 이름을 남기는 법이지. 하 지만 때로는 병법이고 나발이고 뭣 도 모르는 이들이 엘리트들과는 비 교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일을 해내거든.”
“항우는 병법을 알아서 초패왕이 되었을까?”
“아니지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항우는
개인의 용력보다는 병법과 군의 운 용에 관심이 더 많던 이다. 하지만 역사에 남은 그의 힘이 배움으로부 터 비롯되었을 리는 없다.
“그 건너편에 있던 이도 마찬가지 지. 굳이 중국에서만 논할 것도 없 어. 칭기즈칸이나 수부타이. 혹은 알 렉산더 대왕이나 나폴레옹 같은 이 들도 마찬가지지. 같은 것을 배웠음 에도 그들은 다른 것을 내놓는다. 왜 그런 것 같나?”
“……모르겠습니다.”
청마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머 리를 꾹꾹 눌렀다.
“그런 이들은 여기에 나사가 하나 씩 풀려 있어.”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을 두려워 하지. 그리고 더는 목숨이 위협받지 않을 상황이 되면 잃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말이야. 처음에는 목숨을 지 키고, 그다음엔 세력을 지키고, 마지 막으로는 이름을 지키려 하지.”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습 니다.”
“하지만 이런 이들은 처음부터 그 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 목숨을 아 낄 줄 모르고, 패배로 모든 것을 잃
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후대에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전해질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지.”
청마가 어깨를 으쓱했다.
“욕망의 화신이고, 또한 쾌락중독 자. 이성적인 듯하면서 가장 이성적 이어야 할 때, 순간적인 감으로 아 무렇지도 않게 미친 짓을 저지르는 이들. 하늘이 내린 영웅이라는 건 그런 존재야.”
“……혹왕께서도 그런 분이십니 다.”
“틀렸어.”
청마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러고는 슬쩍 리우양을 돌아보았 다.
“오해는 하지 마. 내가 이제껏 있 던 그런 이들에 비해서 모자라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서 내 가 딱히 그들보다 대단하다는 말도 아니야.”
“••••••하면?”
“동시대에 영웅의 자질을 가진 이 가 몇 정도나 나타날 것 같나?”
“……하나 정도 아니겠습니까? 저 는 그게 흑왕이시라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은 달라.”
청마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어
렸다.
“못해도 열, 많으면 백 명도 될 수 있겠지.”
“••••••예?”
전혀 뜻밖의 말에 리우양이 눈을 크게 떴다.
흑왕쯤 되는 이들이 한 세대에 백 명이나 나타난다고? 아무리 본인 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하지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소리였다.
“뭘 그렇게 놀라지?”
“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말 이지 않습니까.”
감히 흑왕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리우양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 말씀대로라면 흑왕과 비견될 이가 이 세상에 열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다만, 아무리 좋게 쳐준 다고 해도 다섯을 넘지는 않아 보입 니다만……
“다섯이 아니야.”
“예?”
“하나. 많아봐야 둘이지.”
리우양이 입을 다물자 청마가 나 직하게 웃었다.
“내 말을 이해 못하는군. 내가 말 하지 않았는가, 영웅의 자질을 타고
난 이가 그만큼 된다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머리에 나사가 풀려 있다고 했지.”
“예.”
“그럼••••••
청마가 낮게 웃는다.
“그중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가 몇이나 될 것 같은가?”
리우양은 그제야 이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말은 쉽게 죽고, 쉽게 잃는다 는 말이다.
영웅의 자질이라는 게 죽음을 비 껴 나가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잃 을 것을 지켜주는 것도 아니니까.
다시 말해…….
“……흑왕께서 생각하는 하늘이 내린 영웅이라는 것은 제정신이 아 닌 이들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 들이라는 겁니까?”
“그렇지.”
청마가 이제 말이 통한다는 듯 씩 웃었다.
“꼭 끝까지 살아남을 필요는 없겠
지만, 적어도 누가 보더라도 확연한 무언가를 남길 때까지는 살아남아야 하는 거지. 그러니 지금 우리의 시 대에는 그런 이가 없어. 아직 누구 도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거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도 역사 에 이름을 남길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회자되는 이들과 같은 반열에 올라설 만한 이는 분명 존재하지 않았다.
“하늘은 자질은 주되, 운명은 주 지 않아. 그리고 그 운명을 이루는 이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길에 서 내려서지 않는 이지.”
청마가 미소를 지었다.
리우양에게는 오늘따라 그 미소가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내가 잃는 걸 두려워할 수는 없지. 내 목이 조여오는 걸 겁 낼 수도 없고. 나는 범인으로 살아 가느니, 영웅이 되려다 죽겠다.”
살짝 흥분했다는 듯 청마의 손이 가볍게 내저어졌다.
“뭐, 적당한 단어가 없어 영웅이 라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그렇게까 지 거창한 건 아니지.”
“충분히 그리 불릴 자격이 있으십 니다.”
“아직 아니라고 했잖아.”
청마가 낮게 웃었다.
“하지만 곧 그렇게 될 거야.”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커 다란 TV를 향해 다가간다. TV 앞 에 선 그가 화면으로 보이는 타오르 는 빌딩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니, 그 이상이 되어야지. 지금 껏 누구도 이루지 못한 걸 이뤄야 할 테니까.”
그가 내뿜은 기운이 천천히 가라 앉는다.
금세 마음을 정리한 청마가 빙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용을 그리려다 보면 뱀 정도는 그리지 않겠어?”
“말을 많이 했더니 배가 고프군. 저녁이나 먹지.”
“……한 가지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뭐가 어렵겠나.”
“……조금 전, 흑왕께서는 이 시 대에 자신과 비교될 사람이 하나는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경우가……
“내가 알기로는••…
“둘 모두가 살아남은 경우는 없었 어.”
리우양이 입을 닫았다.
그가 알기로도 그렇다.
“그러니 권하고 있지 않나. 맞서 지 말라고,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 키라고. 그가 잃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는 순간, 더는 내 상대가 되지 못 할 테니까.”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런 소꿉 장난 같은 말을 지껄여 대는 이상 우리는 영원히 친구로 남을 수 있을 거야.”
청마의 두 눈에 기이한 열기가 어렸다.
“차마 아무것도 지킬 엄두가 나지 않는 겁화를 보여줄 테니까.”
창밖을 바라보는 청마의 모습에 리우양이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흑왕이시여.’
그 말은…….
그가 다시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면, 그와 흑왕이 동등해진 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리우양은 차마 그 말을 입 밖으 로 낼 수 없었다.
차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