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99)
마존현세강림기-1901화(1898/2125)
마존현세강림기 77권 (11화)
3장 내리밟다 (1)
같은 시각.
“피, 피해……
콰아아아아악!
붉은 서광과도 같은 권력이 달아 나는 이들을 뒤덮는다.
그건 마치 피로 이루어진 거대한 해일이 사람을 휩쓰는 것 같은 충격
적인 광경이었다.
콰드드득! 콰득!
진짜 해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연적인 해일은 그저 휩쓴 사람을 움켜잡아 밀고 갈 뿐이지만, 이 핏 빛의 해일은 인간의 육체를 으스러 뜨린다는 것이었다.
“아미타불.”
붉은 홍포를 뒤집어쓴 승려가 그 광경을 보며 합장했다.
“생사는 여일한 것이니, 굳이 그 리 악다구니를 쓸 필요가 없네. 죽 음은 삶의 고해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아니겠는가.”
승려가 가만히 불호를 외우자, 그 자리에 주저앉은 이들이 덜덜 떨며 승려를 바라본다.
“이…… 이 미친 중놈이…… 그럼 너나 뒈져!”
“안타까운 일이지만……
승려가 빙그레 웃었다.
“소승은 이미 죽음을 경험해 보았 소이다. 그건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 지만, 소승을 사로잡고 있는 고해를 없애주지는 못했소이다. 그렇기에 소승은 그대들이 부럽구려. 이 지긋 지긋한 삶을 벗어나 피안에 들 수 있으니.”
그 말을 들은 이들의 얼굴이 참 혹하게 일그러졌다.
이게 무슨 개 같은 소리인가.
다만, 그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 드는 것은 저 개소리를 늘어놓는 이 의 입을 찢어놓을 힘이 없다는 것이 다.
‘어떻게 저런……
마치 홍왕의 권력을 보는 것만 같다.
그 느낌은 확연히 다르지만, 사람 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인 위력 앞에 더없는 무력감을 느껴야 한다는 점만은 완전히 같았다.
“아미타불.”
합장을 한 승려가 저벅저벅 걸어 그들을 향해 다가온다.
“오, 오지……
“삶이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외 다. 인간의 삶이란 자신을 통찰하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존 재하는 것이지.”
승려가 빙긋 웃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죄가 큰 이 가 누구인지 알고 있소?”
자신의 앞에 선 승려를 본 홍왕 계 무사의 턱이 덜덜 떨린다.
뭔가를 지껄여 대고는 있지만, 그
말이 지금 그의 귀에 들릴 리가 없 었다.
“고뇌하지 않는 자요.”
그 목소리는 결코 차갑지 않았다.
차갑기는커녕 되레 따뜻함이 가득 했다. 마치 가여운 이를 굽어보는 듯한 따뜻함이.
그 사실이 승려를 바라보는 이들 의 마음을 더욱 섬뜩하게 만들었다.
“이 미친……
승려가 고개를 내저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를 벗어난 이를 보면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이 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 진정 올바른 길이겠지. 배척하 지 마시오. 모든 것은 그대들의 안 에 있는 법. 다만……
승려가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혈기가 무인들의 몸을 파 고들었다.
털썩.
털썩.
비명조차 없었다.
혈기에 잠식당한 이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너무도 고요한 죽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쓰러진 이들
의 얼굴에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닌, 평온함이 머물러 있다는 점이지만, 과연 그걸 다행이라 불러야 할지는 의문이었다.
“아미타불,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명복을 빌어준 승려가 고개를 돌 린다. 그의 뒤로 수많은 이들이 마 치 곤히 잠든 것처럼 쓰러져 있었 다.
큰 상처는 찾아볼 수 없지만, 그 들 중 숨이 붙어 있는 이는 단 하 나도 없었다.
“이 죄를 어찌 감당해야 할지.” 승려가 고개를 내저었다.
스스로 저지른 일이 분명함에도 마치 다른 이가 저지른 것처럼 말을 한다.
그렇기에 괴승(怪僧)이라 불리는 것이리라.
괴승이 가라앉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는 가만히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눈에 띄지 않는 지역에 자리 한 지부지만, 아마 지금쯤 다른 십 이비도들은 더없이 화려하게 저질러 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겨우 그 정도에서 끝날 일도 아 니지.’
피가 흐를 것이다.
수많은 피가.
대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할지 그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미타불.”
불자로서 그 흐르는 피를 바라보 아야 한다는 건 서글픈 일이었다. 하지만 괴승은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피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희생이 없으면 탄생도 없는 법.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겠는가.”
나직한 불호를 외운 괴승이 가만 히 발을 옮겼다.
휘이이이이잉!
새파랗게 벼려진 도가 태풍 같은 소리를 내며 휘둘러진다.
콰드득!
그 도에 실린 힘이 얼마나 강했 는지, 허리가 두 동강난 몸뚱아리가 그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맹렬하게 회전하며 탄환처럼 튕겨 나갔다.
콰앙!
콰앙!
바닥에 처박힌 몸뚱아리가 커다란
폭음을 만들어낸다. 전신의 뼈가 으 스러진 몸뚱아리는 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바닥에 틀어박힌 여파 때 문은 아니다. 애초에 도에 잘렸을 때부터 몸이라고 불러야 할 곳의 모 든 뼈가 으스러졌으니까.
“ 흐음.”
도귀가 자신의 손에 들린 도를 가볍게 까딱거린다. 마음에 들지 않 는다는 듯이.
“도라는 건……
그가 자신의 앞을 막아선 이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간간이 날을 세워주지 않으면 무 뎌지는 법이지. 이상한 건…… 이미 완벽하게 날을 갈아놓은 도도 사용 하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 더는 날카 롭지 않게 된다는 점이야.”
덜덜 떨며 도귀를 바라보던 이들 의 눈에 의문이 어렸다.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짚단처럼 썰어 대던 이가 갑자기 왜 이런 말 을 한다는 말인가.
“사람도 도와 다를 바 없지.”
“아무리 수련을 하고, 아무리 완
벽하게 준비를 해도 실전을 겪지 않 으면 무뎌지지.”
그의 도가 가볍게 흔들렸다.
“평화가 길었군. 나 역시 무뎌졌 어. 그러니 날을 갈아야겠지.”
도귀의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어 린다.
쇠로 만들어진 도는 숫돌로 갈면 그만이지만, 사람이란 이름의 칼은 숫돌로 갈 수 없다. 오직 타인이 흘 린 피로만 그 날을 세울 수 있다.
“지금부터 세보지. 대체 몇을 죽 여야 내 도가 다시 예전처럼 날카로 워질지 말이야.”
도귀가 두 눈으로 혈광을 내뿜으 며 홍왕계의 무인들을 향해 달려들 었다.
“막아아아앗!”
“지, 지원! 지원은 아직 멀었어?”
“빌어먹을! 온다!”
사람이란 각이 다른 법.
감당할 수 없는, 괴물 같은 존재 가 자신을 덮쳐 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반응은 가지각색으로 나뉜다.
누군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 아나려 한다.
누군가는 그럼에도 대항하려 한 다.
누군가는 얼어붙고, 누군가는 눈 을 감았다.
하지만 도귀의 도는 모두에게 그 저 공평했다.
콰가가가가각!
마치 쇠를 긁어 대는 것 같은 소 음과 함께 도귀의 도가 전면에 선 모든 이들을 양단한다. 날카로운 검 기가 높게 굽이치는 파도의 중간을 끊어 베듯, 도귀의 도는 인간이라는 이름을 한 짚단들을 단숨에 잘라냈 다.
콰아아아아!
그 여력을 감당하지 못한 몸뚱아
리들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튕겨 나 간다.
“ 열둘.”
그 가공할 도격과는 달리 도귀의 목소리는 그저 담담했다.
도격이 만들어낸 참사와 담담한 도귀의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며 구토가 쏠릴 것 같은 위화감을 만들 어냈다.
팟!
도귀의 발이 바닥을 박차고, 그의 도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이들 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콰앙!
그건 ‘벤다’기보다는 ‘부순다’에 가 가웠다.
더없이 날카로운 도기가 가공할 파괴력을 싣고 닿는 모든 것을 말 그대로 으깨놓았다.
“ 열일곱!”
그의 시선이 재빠르게 달아나는 이들을 쫓는다. 도귀의 발이 더없이 간결하게 바닥을 딛고, 그의 도가 일말의 군더더기 없이 휘둘러졌다.
혹자들은 착각하고는 한다.
벽을 넘은 이들의 무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저 착각에 불과하
다.
벽을 넘는다는 건 한계를 뛰어넘 는다는 것. 그저 인간의 한계를 뛰 어넘어 더 빠르고, 더 강해진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단순한 변화가 만들어 내는 결과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앙!
도를 휘두르는 순간 폭음이 터진 다. 음속을 초월한 도가 소닉붐을 일으키며 주변의 모든 것을 휘감아 터뜨린다.
별다를 것이 없다.
그저 빠르고, 그저 강할 뿐이다.
하지만 그 특별할 것 없는 도격 은 온갖 기교를 부린 도보다 몇 십 배는 더 공포스러웠다.
“서른여덟.”
그 많은 이들을 베어냈음에도 그 의 도에는 피 한 점 묻지 않았다.
도귀의 눈이 찌푸려졌다.
“이래서야 한참은 베어야겠군.”
칼을 갈 때도 어떤 숫돌을 쓰느 냐에 따라 숫돌질의 횟수가 달라지 는 법. 이런 무른 숫돌로는 그라는 도를 갈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왔다!”
“지원이다!”
저 너머에서 일련의 무리들이 달 려오는 것이 보인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세가 꽤 흉흉 하다는 것을 알아챈 도귀가 입꼬리 를 말아 올렸다.
“어떨까, 너희는 조금 단단할까?” 도귀가 기세를 내뿜으며 앞으로 날아들었다.
턱.
신창의 발이 바닥을 꾹 누른다.
‘기분이 이상하군.’
이게 긴장이라는 감각이었나.
그동안 긴장할 일이 없었다는 오 만한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 는 감히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이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위대한 무인을 알고 있으니까.
흑왕.
그의 앞에 설 때마다 신창은 자 신의 무력감을 절감하게 된다.
그렇기에 긴장할 수 없다.
인간이 사자를 앞에 두고 느끼는 것은 긴장감이 아니라 공포감이니 까.
하지만…….
“나는 운이 좋은 모양이군.”
이리 그를 긴장하게 만들 수 있 는 이를 대면하고, 그와 겨룰 기회 까지 얻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흥왕?”
신창의 시선이 건너편에 선 홍왕 에게 가닿는다.
지금 이곳은 인적이 없는 야산.
원래의 목적대로라면 더 많은 이 들이 볼 수 있게 그곳에서 승부를 겨뤘어야 한다. 하지만 신창은 굳이 홍왕을 따라 자리를 옮겼다.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설사 이 일로 인해 후회하는 순 간이 온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승부에 단 한 점의 불순물도 끼어드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홍왕이 가만히 신창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하나 묻지.”
“얼마든지.”
“너는 누구냐?”
신창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과거에 나는 신창관일(神槍貫日) 이라 불렸지.”
“……신창관일.”
홍왕의 눈이 가라앉는다.
“창으로는 대적할 자가 없었다는 점창제일고수. 신창관일 초무군(楚 武君)?”
“나를 아는군?”
“……모르는 게 더 이상하겠지.”
홍왕의 입가가 뒤틀렸다.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기는 하지 만…….
결코 겨룰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과거의 절대자들이 눈앞에 살아 숨 쉬는 광경을 그가 어찌 참아낼 수 있겠는가.
신창관일 초무군.
점창을 천하제일문파의 자리에 올 린 창의 절대고수. 그 이전에도, 이 후에도 창으로는 그만한 무위에 오 른 이가 나오지 않았다고 불리는 강 호의 전설이다.
“고금제일창.”
“과분하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 니지.”
“좋군.”
홍왕의 몸에서 가공할 투기가 뿜 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대를 상대해 보면 알 수 있겠 지. 강호가 과연 그저 퇴보하기만 했는지, 아니면 그 퇴보 속에서도
하나의 길을 찾아내었는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은 가공할 기세를 받으며 신창의 얼굴이 환희로 가득 찼다.
“얼마든지 확인해 봐라!”
“오오오!”
두 사람의 몸이 빛살로 화해 서 로를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