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04)
마존현세강림기-1906화(1903/2125)
마존현세강림기 77권 (16화)
4장 지원하다 (1)
쏴아아아아아.
새하얀 세면대로 붉은 기가 번져 나간다.
수도꼭지에서 쏟아진 물이 검붉은 손으로 쉬지 않고 쏟아진다. 바짝 말라붙은 피가 점점 씻겨 나가며 새 하얗던 세면대를 붉은 얼룩으로 물
들인다.
쏴아아아아.
한참을 씻고 또 씻은 끝에 손이 원래의 색을 되찾는다. 피가 말라붙 고, 그 위에 다시 피가 끼얹어져 마 르기를 반복한 끝에 마치 장갑처럼 손 위로 덧씌워져 있던 피가 마침내 모두 씻겨 나간 것이다.
“홈.”
공령이 손을 들어 가볍게 물기를 털어냈다.
다른 십이비도들이 이 모습을 보 면 헛웃음을 홀렸을지도 모른다.
몸에 묻은 오물 따위는 내력을
뿜어내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손을 씻어 내는 것은 악취미라고 불려도 할 말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령은 내력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물을 이용하는 쪽을 선호 했다.
내력은 내력일 뿐.
몸에 묻은 오물을 제거한다고 해 서 물로 씻어내는 것 같은 청량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아니, 청량감은 둘째 문제다.
이건 공령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니까.
물을 잠근 공령이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들어왔다.
손은 피에 잔뜩 젖었지만, 손이 아닌 곳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지 만, 정말 기괴한 것은 그 모습이 아 니라 거울에 비춰지는 사람, 그 자 체였다.
‘사람이라……
공령이 피식 웃었다.
그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더 강한 무인이 되어간다. 끝없이 한계를 넘고, 이윽고 누구도 범접하
지 못할 수준에 올라 역사에 그 이 름을 남기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무인으로서 더욱더 강해지고, 더욱 더 높은 곳을 오르고 있는 중이다.
하나 그가 더 강해지면 강해질수 록 그의 안에서 ‘인간’은 사라져 간 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백 번은 죽을 상처를 입어도 멀쩡히 살아남고, 맨 몸으로 빌딩을 뛰어오르고, 맨손으 로 건물을 부순다.
그런 그를 정말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공령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점 점 더 강해질수록 그가 인간에서 더 욱더 멀어져 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물로 손을 씻어내는 행위는 그에게 있어서 스스로가 인간임을 잊지 않기 위한 의식과도 같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물 한 방울 몸 에 대지 않고도 완벽한 청결을 유지 할 수 있다. 입에 물 한 방울 대지 않고도 몇 달은 버틸 수 있고, 한 달 정도는 잠을 자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
육체는 강철보다 더 단단하고, 근 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생물의
영역을 넘어섰다.
외양은 인간이지만, 그의 내부는 이미 인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지켜 나가야 한다.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리는 순간, 그는 정말 괴물이 되 어버릴 테니까.
어설픈 괴물이 아니라 진짜 괴물. 그래, 말하자면…….
공령이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빤히 거울을 바라보던 그가 몸을 돌려 핸드 타월에 손을 닦았다. 그 러고는 그리 빠르지 않은 걸음걸이
로 걸어 나와 건물을 빠져나왔다.
건물 밖에 펼쳐진 광경을 본 공 령이 피식 웃고 말았다.
“이래서야……
인간이니 괴물이니 지껄여 대던 것이 무색해지지 않는가.
회백색으로 변해 버린 세상에 붉 은색을 덧칠한 것 같다. 그를 잡아 죽이기 위해서 달려들던 홍왕계의 무사들은 모조리 절명하여 콘크리트 로 이루어진 대지를 뼈와 살로 채우 고 있었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광경.
현대인들이야 비슷한 광경을 화면 을 통해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 그게 실제 전쟁의 참상이든, 그게 아니면 영화의 한 장면이든.
하지만 그 광경을 실제로 눈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압도적인 절망감이 발끝에서부터 기어 올라와 상상할 수 없는 무게로 사람을 짓누른다. 제아무리 멘탈이 단단한 이라고 해도 이 광경 앞에서 는 무너지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 다.
하지만 공령은 이 참상을 눈으로 보면서도 딱히 아무런 감흥을 느끼
지 못했다.
그가 만들어낸 참상이라?
아닐 것이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뒤틀릴 만큼 뒤틀렸다. 벌레의 죽음과 인간의 죽 음 사이에 딱히 대단한 차이점을 발 견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이 광경이 그에게 주는 감흥은 딱 하나뿐이었다.
“뒤틀리겠지.”
상하이 지부에서 벌어진 일이야 적당히 뭉개 버렸지만, 과연 이만한 일도 뭉갤 수 있을까?
시신이야 치우면 그만이다. 눈을
가리고 입을 틀어막는 것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무너진 건물 을 다시 세울 방법 따위는 없다.
상흔.
그래, 이 광경은 저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을 것이다.
입가를 뒤튼 공령이 천천히 고개 를 들어 올렸다.
낮은 신음 소리.
힘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신음 소리가 끊어질 듯 홀러나온다. 공령의 시선이 허공에 매달려 있는 웨이흥에게로 향했다.
또옥.
또옥.
처마 끝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 는 것처럼 허공에 매달린 웨이홍의 머리를 타고 피가 한 방울씩 홀러내 린다.
피가 흐른다는 건 그리 섬뜩한 일이 아니다. 진정으로 섬뜩한 것은 전신이 난자된 웨이홍의 육체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겨우 몇 방울에 불 과하다는 점이겠지.
바닥은 이미 그가 홀린 피로 훙 건하게 젖어 있다. 평범한 이라면 죽음이라는 안식을 얻을 수 있었겠
지만, 단련된 그의 육체는 그에게 죽음을 허락지 않는다. 그저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끔찍한 고통만을 안 겨줄 뿐이었다.
“끄으•…”
아래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느꼈 는지, 웨이홍이 천천히 눈을 떴다. 흐리멍덩하게 흐려진 그의 동공이 공령을 포착한다.
“너, 너어……
입을 살짝 여는 순간, 입술이 갈 라지며 피가 다시 방울져 흘러내린 다.
“너는…… 너는 죽는……
공령이 그 말을 들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너는 살 것이다.”
“너는 그저 네가 본 것을 그대로 전하기만 하면 된다. 과장을 하든, 아니면 적당히 얼버무리든, 어떻게 드 ”
공령이 몸을 돌렸다.
그가 웨이홍을 두고 멀어지려 하 자, 다 죽어가던 웨이홍이 퍼뜩 경 련을 일으킨다.
“죽……는다! 너는……. 너는 반 드시 죽는다! 이 개 새끼야아아아아
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웨이 홍의 목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 왔다.
“호…… 홍왕! 홍왕계서 너를 반 드시 찢어 죽일 것이다! 너를! 너를 찢어 죽여 이곳에서 죽은 이들의 원 혼을 달랠 것이다!”
공령이 슬쩍 고개를 돌려 다시 웨이홍을 바라보았다.
“홍왕?”
“그래, 홍왕! 홍왕께서 너를…… 너희 모두를 단죄하실 것이다.”
웨이홍이 낮게 웃었다.
“홍왕이라고?”
웨이홍의 입이 절로 닫혔다.
딱히 위협을 느낀 건 아니다.
그저…….
저 담담한 물음이, 저 웃음기 어 린 표정이…….
너무나도 섬뜩하고 불길할 뿐이 다.
“하나 묻지.”
“네가 이곳으로 올 때, 무엇을 생 각하고 왔나.”
공령이 고개를 돌려 그가 만든 참상을 바라보았다.
“적어도 이런 결과는 아니었겠지?” 웨이홍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 짧은 말이 너무도 많은 것을 품고 있다.
“그럼••••••
공령의 이가 드러난다. 더없이 섬 뜩하게.
“항저우로 간 홍왕이 맞이할 결과 는 네 예상과 얼마나 다를까?”
웨이홍이 눈을 부릅떴다.
“하, 항저우라니?”
“하핫!”
“네, 네가 어떻게……. 네가! 네가 그걸 어떻게! 이…… 이……. 아아 아아아아아악 !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악!”
비명을 내지르던 웨이홍이 두 눈 을 까뒤집고 의식을 잃는다. 나약해 진 육체가 충격을 버티지 못한 것이 다.
“하하핫.”
낮게 웃은 공령이 고개를 내젓고 는 몸을 돌렸다.
“즐거운 밤이로군.”
그리고 이제 조금 더 즐거운 밤 이 될 것이다.
하늘이 희게 물든다.
역으로 솟구쳐 오른 거대한 빛의 창은 검은 하늘조차도 일순 희게 물 들였다.
환상.
그 말이 아니고서야 표현할 방법 을 찾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 쳐진다.
하지만 환상이라는 말이 가진 의 미에는 짧은 허무함도 포함되는 법.
보는 이를 절로 전율하게 만드는
광경은 환상처럼 사라지고, 이내 고 요해진 세상에 다시 어둠이 내려앉 는다.
“으음.”
홍왕이 낮은 침음성을 내며 내뻗 은 주먹을 회수했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한 다.
왼쪽 아랫배가 꿰뚫려 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의 바짓단은 이 미 그가 흘린 피로 시뻘겋게 물들었 고, 흘러내린 피가 바닥을 적시며 점점 번져 나간다.
다 자란 성인의 주먹도 어렵지
않게 들락거릴 수 있을 정도로 큰 구멍이 뚫려 버렸으니 이 정도는 당 연한 일.
홍왕이 손을 내려 상처를 지혈했 다.
수많은 격전을 치르면서 수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의 몸이 이토록 간단히 꿰뚫린 적은 이번이 처음이 다.
강자.
신창은 분명 강자였다.
‘얼마 전의 나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기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왕을 만나기 전의 그였다면 십중
팔구는 패했을 게 분명하다.
하나 지금의 그는 과거의 그를 뛰어넘은 존재.
“쿨럭! 쿨럭!”
피에 젖은 기침 소리에 고개를 든 그의 시선이 상처를 떠나 앞 쪽 으로 향한다.
그의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전신 을 붉은 피로 물들인 혈인이 반으로 부러진 창으로 힘겹게 몸을 지탱하 고 있었다.
“쿨럭!”
한 번 기침을 할 때마다 커다란 핏덩이가 울컥울컥 토해져 나온다.
외부로 보이는 상처도 위중하지만, 내부의 상처는 더욱 위중하다는 의 미.
이 일격으로 승부는 갈렸다.
“이•••••• 이••••••노옴•••••• 눈은 여전히 살아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투지란 그 의지에 화답하는 육체 와 함께 할 때나 의미가 있는 법. 지금의 신창은 더는 홍왕에게 위협 이 될 수 없었다.
“벽을 만난 건 마찬가지다.”
홍왕이 낮게 숨을 토해냈다.
“그 벽에 짓눌린 것도 마찬가지
지. 네가 흑왕에게 느낀 절망감을 나 역시 이해한다. 영원히…… 영원 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압도적인 거리. 심지어 그 거리가 이 순간에 도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모 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어지지.”
“하지만 그걸 놓는 순간, 무인은 끝나는 것이다. 선인이여, 네가 살아 온 과거는 위대했을지 모르지만, 지 금의 너는 과거만 못한 존재다. 다 시 산다는 것이, 또 한 번의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 반드시 인간의 격을 높여주지는 않는다는 의미겠지.”
“쿨럭!”
또 한 번 피를 토해낸 신창이 붉 게 물든 이를 드러냈다. 그의 이가 갈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온다.
“너…… 너는 운이 좋았을…… 뿐 이야.”
“무의미하다.”
홍왕이 고개를 내저었다.
“네가 나보다 높은 내력을 지녀 도, 더 완숙하다 해도, 그 경지가 더 높다고 해도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무학이란 결국 심기체. 너는 기와 체는 갖추었을지 모른다. 오히 려 과거의 너보다 더 완벽하게 갖췄
겠지. 하지만 너에게는 심(心)이 빠 져 있다.”
“천 번이 아니라 만 번을 다시 붙 어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아니, 과거의 너조차 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
신창이 분노에 몸을 떠는 그 순 간, 홍왕이 주먹을 가볍게 말아 쥐 었다.
“네 삶은 과하게 길었지. 이제 그 만 가거라.”
그가 주먹을 옆구리로 당겼다. 이
제 가볍게 내뻗기만 해도 고금제일 창이라 불린 신창의 목숨이 끊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홍왕의 주먹을 멈춰 세운 것은 신창이 아니라 좌우에서 들려 오는, 조금은 들뜬 목소리였다.
“오래 살긴 했지.”
“죽고 난 뒤에 나서자니까.”
“그랬다가는 흑왕께서 우리 껍데 기를 벗겨 버리려 하실걸?”
홍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뭐냐?’
이렇게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자
신이 알아채지 못했다고? 아무리 전 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고 해도?
굳은 얼굴로 좌우를 돌아본 그의 시선에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 강자••••••
적어도 신창과 버금가는 강자다. 홍왕의 시선이 자신의 아랫배로 향한다.
치명적이라면 치명적인 부상.
멀쩡한 몸으로도 두 사람의 신창 을 감당할 수 없는데, 부상을 입은 몸이라면?
“……처음부터 함정이었나?”
그의 좌우에 거리를 두고 멈춰 선 이들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네 말대로 우리는 극기를 잃었을 지도 모르지.”
“단순한 사냥개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렇기에 위험한 거다, 멍청한 놈아. 늑대 무리는 한 마리 의 범을 보고도 도망가지만, 사냥개 는 무리지어 범을 잡는 법이거든.”
두 사람이 동시에 이를 드러냈다.
“그러니 너는 오늘 여기서 죽는 다.”
홍왕이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