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05)
마존현세강림기-1907화(1904/2125)
마존현세강림기 77권 (17화)
4장 지원하다 (2)
목에서 흘러나오는 숨소리가 거칠 다.
‘안일했군.’
적들은 비할 바 없는 강자.
한때 세상을 호령하고 지배하던 존재들이다. 그런 이들인 만큼 그 자존심은 하늘을 찌를 것이고, 스스
로에 무학에 완벽한 확신이 있을 것 이다.
홍왕이 그렇듯 말이다.
그렇기에 그도 차이커창도 저들이 합작을 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각자의 거리를 유 지한 채 홀로 움직이리라 믿었다.
하지만…….
‘어리석었군.’
신창에게 무인의 혼을 잃었다고 일갈하지 않았던가.
저들이 고고한 무인으로 남았다면 이런 일은 벌어질 리 없다. 하지만 저들이 무인의 혼을 잃었다는 것을
확인했으면서도 이런 상황을 고려하 지 않은 건 홍왕의 실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승부를 포기하고 물러서는 게 옳았다.
치기 어린 호승심을 버리지 못하 고 머리가 굳어버린 것이 이런 사태 를 초래한 것이다.
홍왕이 슬쩍 고개를 내려 상처를 바라보았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그 위중함이야 몸으로 느낄 수 있지만, 지금은 뭐든 확실한 쪽이 좋다.
상처를 빤히 바라보던 홍왕이 고 개를 들어 그의 좌우를 포위한 이들
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름 정도는 말할 용기가 있겠 지.”
“홍왕이라……
좌측에 선 이가 홍왕의 말을 듣 고는 미소를 짓는다.
“확실히 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는 이로군. 이런 상황에서 그런 태연함 이라니.”
우측에 선이의 목소리는 조금 날카로웠다.
“허세는 누구나 부릴 수 있지.”
“이런 상황에서 허세를 부리는 것 도 굉장한 일 아닌가.”
“흐음.”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을 찌푸 렸다. 하지만 그 말이 틀리지는 않 았다는 듯 딱히 부정의 말을 더하지 는 않았다.
꽤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풍기던 좌측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낭곤(浪根)이라고 한다. 그 리 대단한 명성을 얻은 이는 아니라 서 모를 수도……
“백승무적곤(百勝無敵 程)?”
“……이거 영광이로군. 천하의 홍 왕이 내 별호를 알고 있다니.”
“모를 수가 없지.”
백승무적곤.
유치하고 과한 별호지만, 이 사내 를 표현하는 데 이보다 적절한 말은 없다.
‘낭곤이라……
홍왕의 얼굴이 굳어진다.
천하를 지배한 초인은 보통 거대 문파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아니, 최 소한 웬만큼은 기틀을 가지고 있는 문파나 비인부전을 기본으로 하는 일인전승문들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 강자를 배출하는 법.
하나 세상 모든 이들이 그런 훌륭
한 문파에 입문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과거 강호인들 중 대부분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문파의 문도들이고, 그런 문파조차 들지 못한 이들은 삼 류에 불과한 스승을 모시고 칼 한 자루 찬 채 천하를 횡행하기 마련.
그런 이들은 낭인(浪人)이라는 멸 칭으로 불렀다.
낭인들은 제대로 된 돈벌이도 없 이 강도짓을 해서 돈을 벌거나, 아 니면 전쟁이 나는 곳에서 돈을 받고 머릿수를 채우는 역할을 한다.
소모품.
그게 강호에서 삼류 무인에 불과
한 낭인들이 받는 취급이었다.
하지만 낭곤만은 다르다.
그는 낭인 출신으로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오른, 강호 역사상 유일한 존재였다. 한 자루 곤을 허리에 차 고 강호에 출두한 그의 시작은 평범 한 낭인에 불과했지만, 싸우고 싸우 고 또 싸우면서 점점 더 자신의 무 학을 완성해 갔다.
이윽고 천하에 그의 이름을 모르 는 이가 없을 때가 될 무렵, 그는 천하를 돌며 비무행을 벌였다. 낭인 출신인 그를 여전히 무시하고 인정 하지 않는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말이다.
천하에 이름 높은 고수들을 찾아 이어진 백 번의 비무.
그 기나긴 비무행은 그의 전승으 로 끝났고, 그의 이름 앞에는 낭곤 이라는 별호 대신 백승무적곤이라는 광오한 별호가 붙게 되었다.
“……나름 좋아하던 이야기거든.” 홍왕이 허탈하게 웃으며 낭곤을 바라보았다.
낭곤의 삶은 무인의 가슴을 자극 하는 무언가가 있다. 배경과 세력, 그리고 전대에서 주어진 강력한 무 학.
그런 이점을 하나도 얻지 못한 이가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천하 제일의 자리에 오르는 이야기에 가 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무인이 누가 있겠는가.
우습게도 어린 홍왕의 가슴을 달 구던 그 이야기의 주인이 지금 홍왕 을 죽이기 위해 앞에 서 있다.
“낭곤을 안다면 내 이름도 당연히 알겠군. 나는 파권이다.”
홍왕이 스스로를 파권이라 칭한 이를 보며 헛웃음을 홀렸다.
“황보승 (皇甫勝)?”
“ 아는군.”
“……모를 수가 없다니까.”
홍왕의 얼굴에 허탈함이 어렸다.
“나도 스스로를 권사라 생각하는 자. 고금제일권의 이름을 모를 도리 가 있는가.”
황보승.
파권 혹은 권왕(奉王).
시작은 파권이었으되, 끝은 권왕 이었던 자.
과거, 강호의 명문이었던 황보세 가의 이단아.
가문의 절기였던 천왕권(天王쏘) 을 새로이 해석하다 이단으로 몰려
가문에서 축출된 이.
하지만 뜻을 꺾지 않고 스스로 이룩한 권으로 자신의 가문을 모조 리 꺾어내고, 더 나아가 천하의 강 자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며 권의 정 점으로 인정받은 자.
“……운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 군.”
홍왕의 얼굴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온다.
지금의 무인들이 홍왕을 동경하 듯, 그 역시 어린 시절부터 과거의 절대자들을 동경해 왔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존경하던
이들이 바로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스스로의 힘만으로 올 라선 낭곤과 권으로는 누구도 비할 바가 없다고 불린 파권이었다.
“재미있는 권을 쓰더군.”
파권의 말에 홍왕이 고개를 끄덕 였다.
“……천왕권을 연구했지. 나에게 는 동경이었으니까.”
“멍청한 놈이군. 이미 틀린 게 증 명된 길을 굳이 다시 걷다니.”
홍왕이 파권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대 역시 틀리다는 말을 듣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 길을 포기했는가?” 파권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아까 그 말은 취소하지. 허세는 껍데기밖에 없는 놈들이 지껄일 때 나 쓰는 말이지. 강하든 약하든 중 심이 있는 놈이 하는 말은 허세가 될 수 없어.”
홍왕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상한 기분이다.
저들은 분명 적으로서 그의 앞에 섰다. 그의 목을 잘라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이제껏 수많은 격전을 치렀고, 수많은 위험속에 노출되었
지만, 지금보다 극단적인 위협을 겪 어본 적은 없었다.
심지어 저 마왕과의 승부조차 이 처럼 절망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파권의 저 말을 듣는 순 간, 묘한 감흥이 피어난다.
우상이나 다름없던 자의 입에서 자신을 인정하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 이 그에게 이 상황을 잊게 만들었다.
파권이 고개를 돌려 신창을 바라 보았다.
“반면에……
그의 눈이 신음하고 있는 신창에 게로 가닿았다.
“잘난 듯이 지껄여 대더니, 꼴좋 군.”
그 차가운 목소리에 낭곤이 겸연 쩍은 표정을 지었다.
“거, 말이 좀 과하군. 안 그래도 속이 쓰릴 텐데.”
“과해도 참아야지. 우리가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머리가 부서지고 도 남았을 텐데.”
낭곤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꺼져, 멍청한 놈. 너와 같은 십 이비도로 불린다는 사실이 창피하니 까. 흑왕께서 십이비도끼리 서로 싸
우는 것을 금하시지 않았더라면 네 머리는 내가 부숴주었올 거다.”
신창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비할 바 없는 굴욕.
하지만 반박조차 할 수 없는 말 이었다.
신창에게 관심을 꺼버린 파권의 시선이 홍왕에게 가닿았다. 창백한 그의 안색과 배에 뚫린 커다란 구멍 을 본 파권의 눈이 미묘하게 찌푸려 졌다.
“둘 다 나설 것도 없겠군.”
“……조금 아쉬운 일이야. 이만한 강자라면 정상적인 상황에서 붙어보
고 싶었는데.”
낭곤이 허리춤에 찬 짧은 단봉 둘을 양손에 하나씩 잡아 뽑았다.
“하지만…… 이쪽도 명을 듣는 입 장이라서 말이야.”
홍왕이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는 낭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대 정도 되는 이도 흑왕의 개 가 되었는가?”
“……나 정도 되는 이라니.”
낭곤이 고소를 머금었다.
“거꾸로지. 나 정도 되는 이니까 감히 그분을 모실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진정한 강자로 인정받은 이에
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지.”
“……곤 하나로 천하를 오시한 그 대조차?”
“그렇기 때문이지.”
낭곤이 고개를 내저었다.
“너는 아마 이해할 수 없을 것이 다. 나는……
파권이 낭곤의 말을 끊어버렸다.
“대화는 지옥에서 해라.”
“……그러지.”
파권이 가볍게 자세를 낮췄다.
그의 체구는 큰 편이 아니다. 오 히려 좀 작은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가 파권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 절의 육체와 지금의 육체는 분명 다 를 것이다. 하지만 지금 파권이 취 한 자세를 본 홍왕은 과거 파권의 육체 역시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라 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강력한 육체를 바탕으로 호방하게 권을 뿜어내는 홍왕과는 달리, 파권 은 자세를 낮추며 몸을 가볍게 만들 고 있었다.
‘실전형인가?’
자세만 보자면 권사라기보다는 암 살자처럼 느껴진다.
생각하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 자세에서 느껴지는 섬뜩함만은 그가 들은 파권의 이름에 조금도 부 족하지 않다.
“아쉽지만……
낭곤 역시 단창을 든 채 자세를 잡았다.
처음 볼 때부터 호인처럼 미소 짓던 낭곤이지만, 기수식을 취하는 순간 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 다.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말한다.
홍왕은 부상을 입었지만, 이들은 애초에 적당히 그를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사자가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듯, 있는 힘을 다해 그 의 숨통을 끊어놓으려 할 것이다.
‘……좋지 않군.’
하나도 상대하기 쉽지 않은 강자 들이 둘. 그리고 부상으로 신음하는 육체.
더 어려운 상황을 그려내기도 어 려울 정도다.
하지만…….
우드드득.
홍왕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저항하시겠다? 너 혼자서 우리 둘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어렵겠지.”
“……한데?”
홍왕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렁우렁한 그의 목소리가 밤 하늘 에 퍼져 나간다.
“어렵다 해서 노력하지 않을 이유 는 없다. 넘지 못한다 해서 주저앉 을 이유도 없다. 나를 지탱하는 것 은 강함이 아니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나를 지탱한다!”
파권의 입꼬리가 거칠게 말려 올 라갔다.
“……낯짝도 두껍군.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대다니……
하지만 말과 달리 그의 눈은 홍 왕에 대한 적의를 품지 않았다.
“발버둥쳐 봐라, 후배. 네 죽음은 내가 똑똑히 기억해 주지.”
“고금제일권의 명성은 오늘까지 다, 파권!”
“좋지!”
파권과 낭곤이 동시에 검은 유성 이 되어 홍왕을 향해 날아든다.
우득!
그와 동시에 부러져라 쥐어진 홍 왕의 주먹이 눈부신 황금의 서광을 뿜어냈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의 양주먹이 허공에서 한 번 교차했다가 튕겨지듯 좌우로 쫙 펼 쳐진다. 그와 동시에 가공할 내력을 담은 권강이 달려드는 파권과 낭곤 을 향해 터지듯 뿜어져 나간다.
“모자라!”
산을 부수고도 남을 권강이건만, 두 사람은 너무도 간단하게 날아드 는 권강을 후려쳐 날려 버리고는 홍 왕의 지척까지 날아들었다.
“죽어라아아아앗!”
녹빛의 기운을 머금은 곤과 적색 의 강기를 머금은 주먹이 홍왕의 육 체를 향해 틀어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