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07)
마존현세강림기-1909화(1906/2125)
마존현세강림기 77권 (19화)
4장 지원하다 (4)
“상황은?”
“더는 들리지 않습니다!”
차이커창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 었다.
홍왕에게 간청하여 그의 옷에 심 어 둔 도청기가 박살 난 모양이다.
‘안 돼!’
의복이 상한다는 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격전의 와중에는 종종 벌어지는 일이니까. 하지만 도청이 끊기기 전까지 그가 들은 대화는 지 금의 상황을 단순하지 않게 만들었 다.
“지원! 지원은 어떻게 됐느냐!”
“이, 일단은 항저우 지부에 모아 둔 이들을 보내고는 있습니다만……
“이 개자식들아! 끌어모을 수 있 는 놈들은 모조리 끌어모아 지원해! 지금 당장!”
“예!”
거의 울부짖는 차이커창을 본 이 들이 사색이 되어 여기저기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차 이커창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 의 입가를 움켜쥐었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스스로의 안일함을 저주하고 싶 다.
할 수만 있다면 날카로운 칼로 자신의 얼굴을 난도질해 버리고 싶 은 기분이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상대에게 한 방 먹여주겠다? 상대의 변칙마저 계산해 내겠다?
빌어먹을.
그건 자신이 상대보다 머리로는 우위에 있다는 오만이 가득 차 있는 이나 할 법한 생각이다.
파격이 왜 파격인가.
정석과 다르기 때문에 파격이다.
완벽하게 통한다면 정석을 능가하 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그만큼 많 은 위험을 동반하기에 파격이라 불 리는 것이다. 결코 잃어서는 안 될 것을 파격에 맡긴 순간부터 차이커 창은 책사라 불릴 자격을 잃은 것이 나 다름없다.
이미 창왕을 상대하며 뼈저리게
느꼈건만, 어째서 같은 실수를 반복 한단 말인가.
‘아니!’
차이커창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자책은 나중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 모든 일의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 다. 지금은 어설픈 자책으로 시간을 끌 때가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홍왕을 구원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지금 이 순간만큼 스스로의 무력 이 강하지 않다는 것이 절망스러운 적이 없었다.
홍왕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저 십 이비도의 둘을 막아내야 한다. 하지 만 지금 항저우 주변에는 십이비도 와 어울릴 만한 이가 존재하지 않는 다.
혹시나 전력을 집중한다는 사실을 들켜 저들이 경계하게 될까 봐 홍왕 을 제외한 주력들은 항저우 주변에 배치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지금 역으로 그와 홍 왕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전력을 모조리 소집 하고는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 조무 래기에 불과한 이들을 아무리 끌어
모은다고 해도 저 십이비도를 막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나도 아니라 둘이나……
차이커창의 손이 학질에라도 걸린 듯 덜덜 떨렸다.
저들 역시 함정을 팔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어야 하는데.
개를 때리면 주인이 나온다는 말 처럼, 외곽을 두드리는 것으로 핵심 을 끌어내려 들 수 있다는 것도 미 리 생각했어야 하는데!
“GPS 는!”
“들어옵니다! 드문드문 들어오고 있습니다!”
“화면에 지도 올려! 지금 당장, 이 새끼들아!”
“예!”
차이커창이 흔들리는 눈으로 화면 을 웅시했다. 등고선이 표현된 화면 위로 붉은 점이 나타났다가 사라지 고, 한참 있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인간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속도.
하지만 그렇기에 홍왕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동 방향! 속도 계산해서 지원 병력들 모조리 다 보내!”
“예!”
차이커창이 이동하는 빨간 점을 보며 손톱을 물어뜯는다. 금세 살까 지 찢어낸 덕인지 그의 입술과 손가 락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
‘아직이야, 아직.’
홍왕이 이동하고 있는 방향을 보 면 아직 절망할 단계는 아니다. 지 금 홍왕은 대기하고 있는 예비대가 있는 쪽으로 일직선으로 이동 중이 다.
어느 쪽으로 달아나야 살아날 확 률이 높아지는지를 완벽하게 생각하 고 있다는 의미다.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과거의 홍왕이라면 상대가 더 강 하든 말든 절대 발을 빼는 행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을 꿰뚫는 그의 자존심을 감안한다면, 적을 피 해 달아나는 행위는 패해 죽는 행위 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굴욕이니까.
그럼에도 지금 홍왕은 그 굴욕을 감수하고 있다.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왜 자신이 죽어서는 안 되는지 이해하 고 있다는 의미다.
적은 다름 아닌 혹왕.
어떠한 이유도 없이 상대도 되지
않는 홍왕계의 무사들을 공격하여 몰살시키는 이다. 그런 이가 홍왕을 쓰러뜨리고 무인계를 장악한다면,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 누가 짐작이 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홍왕이 어떻게든 살아남으 려 하는 것이다. 자신의 자존심을 버려서라도 홍왕계를, 그를 따르는 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그런 홍왕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차이커창은 울컥 쏟아지는 눈 물을 참아내기 위해 입술을 질끈 깨 물어야 했다.
그의 실수로 홍왕이 저런 굴욕을
당하고 있다.
흥왕을 하늘처럼 모시는 그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은 없 다.
하지만 지금 그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홍왕이 처한 상황도, 그가 아 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아니 었다. 있는 전력을 모두 끌어모아 구원하려 해도 저 홍왕을 추격하는 십이비도를 막을 도리가 없다는 점 이다.
지금 지원하는 이들은 그저 발목 을 잡고 늘어지는 정도도 되지 않는 다.
바랄 수 있는 것은 저들이 십이 비도를 잡고 늘어지는 동안 홍왕이 저들에게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무리야.’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가능성은 얼마 되지 않는다.
홍왕은 무거움을 중심으로 하는 무인. 그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무인 들과 비교한다면 비할 바 없이 빠른 사람이지만, 비슷한 수준의 무인들 과 비교하자면 그 신법이 대단한 수 준은 아니다.
지금 뒤를 쫓는 십이비도를 떨쳐 낼 확률보다 그러지 못할 확률이 더
높았다.
그럼…….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콰드득!
차이커창이 물어뜯은 손톱이 거의 뽑혀 나올 지경이 되는 순간.
RRRRR.
그의 휴대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 다.
신경질적으로 휴대 전화를 뽑아 던지려던 차이커창의 손이 멈칫했 다. 액정에 뜬 이름을 본 그의 얼굴 이 묘한 빛으로 물들었다.
“후욱! 후욱! 후욱!”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 나올 것만 같다. 이토록 격렬하게 달려본 적이 또 언 제인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다.
문제는 정말 그런 적이 너무 오 래되어서 생각이 나지 않는 건지, 그게 아니면 지금 그의 뇌가 제 역 할을 하지 못하는 건지 구분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어디까지 달려야 하는 걸까.
무릎은 이미 제 기능을 못한 지
한참 되었다. 아무리 신법이라는 게 반드시 다리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 라지만, 무릎이 멀쩡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의 차이야 극명하지 않겠는 가.
“후욱!”
무인이 숨이 턱에 찼다는 건 아 무래도 좋은 징조는 아니다.
하기야.
전신이 거의 박살 난 상황인데, 숨 따위 아무렴 어떻겠는가.
‘어디로 가야 하지?’
알 수 없다.
이건 끝나지 않는 술래잡기와 같
다. 룰은 존재하지 않는다. 달아나고 또 달아나고, 아무리 달아나도 마지 막에 한 번만 잡히면 그의 패배로 귀결되는, 불공정한 술래잡기다.
하지만 홍왕은 그 사실을 탓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달리고 또 달렸 다.
휘청!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며 몸이 바 닥으로 처박힌다. 하지만 홍왕은 바 닥에 닿기가 무섭게 몸을 일으켜 다 시 달리고 또 달렸다.
‘피를 너무 홀렸어……
기로 막아둔 상처에서 다시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몸 안의 기 운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자꾸만 끊기고 있었다.
제대로 육체를 정비하지 못한다면 저들의 손에 잡히기도 전에 생명이 다해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홍왕은 그 저 달릴 수밖에 없었다.
‘구차하군.’
얼마 전이었다면 그는 등을 보이 고 달아나는 이를 서슴없이 비웃었 을 것이다. 비웃지 않을 이유가 없 으니까.
자신의 재능이 다한다면 거기서
끝
노력이 부족했다면 그것 역시 마 지막.
단한 번도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의 주먹이 닿지 않는 이를 만나는 순간이 온다면 호쾌하 게 웃으며 죽어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 홍왕은 살아남기 위 해 마지막 모든 힘을 다하고 있었 다. 살아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음 에도, 이대로 달아나다 붙잡혀 죽는 다면 그 자리에서 죽는 것보다 배는 더 비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 다.
“후욱! 후욱! 후욱!”
“홍왕이시여!”
“가십시오!”
건너편에서 달려오던 홍왕계의 무 인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지체 없이 그를 스쳐 뒤로 나아간다.
알고 있다.
저들은 죽는다.
저들로는 무슨 수를 써도 십이비 도를 막아낼 수 없다. 기껏해야 1 초. 그래, 길어봐야 1초의 시간을 벌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던질 것 이다.
‘무얼 위해서.’
그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가?
인간의 목숨이란 하나뿐이다. 저 괴물 같은 귀환자들이 아닌 이상은 한 번의 삶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 난다.
그런데 대체 무얼 위해 목숨을 건단 말인가. 그를 살려 이득을 얻 는 이는 이곳에 없는 이들인데.
무거움.
생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무거움을 느끼며 홍왕이 이를 악 물 며 달리고 또 달린다.
“으아아아아아악!”
비명이라도 지르고 죽는 이들은 그나마 나은 편. 그를 지나 저들을 막아선 이들은 대부분 비명조차 지 르지 못하고 죽어갔다.
몇이나 죽었을까?
수십? 수백?
그 숫자가 홍왕의 어깨를 내리누 른다.
‘나는 살아야 한다.’
저들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홍왕이 바닥을 강하게 박차는 바 로 그 순간이었다.
휘리리리릭!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홍 왕의 다리를 무언가 강하게 강타했 다.
콰드드득!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뜯겨 나가 는 소리.
쿠우웅!
홍왕이 달려가던 속도 그대로 바 닥을 굴렀다. 그를 상징하는 황금의 곤룡포가 흙으로 뒤범벅이 되어 처 참하게 찢겨졌다.
“쿨럭! 쿨럭!”
몇 번이고 피를 토해낸 홍왕이 바닥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억지로…… 말 그대로 부 들부들 떨면서도 기어코 몸을 일으 켜 세웠다.
‘ 나는••••••
퉁퉁 부운 눈. 그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가 반쯤 풀려 있었다.
‘나는 살아야…… 살아야 한다……. 나는……
저벅.
어느새 그를 따라잡은 낭곤이 바 닥에 떨어진 곤을 회수하고는 혀를 찼다.
“쯧쯧, 이렇게 달아나지만 않았다 면 좀 더 좋은 죽음을 선사해 줄
수 있었는데.”
“쓸데없는 소리로 상대를 모욕하 지 마라. 닥치고 죽이기나 해.”
“……저놈이 마음에 든 모양이군, 파권.”
낭곤이 피식 웃고는 홍왕을 향해 다가갔다.
“분부대로 합지요. 여기까지다, 홍 왕.”
홍왕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낭곤을 보며 더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주먹 을 말아 쥐었다.
“••••••나는 살아••••••
“끝이다!”
낭곤의 곤이 맹렬한 기운을 품고 홍왕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손을 들 어 막으려 하지만, 홍왕의 팔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낭곤의 곤이 홍왕의 머리를 사정 없이 깨부수어 놓으려는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J
“뭣!”
낭곤이 곤을 회수하고 몸을 뒤틀 어 뒤로 날았다.
조금 전까지 그가 있던 자리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말 그대로 박살이 났다.
어마어마한 권력.
마치 홍왕이 날린 권력과도 같았 다.
낭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려 권력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너무도 어두운 숲 사이로 한 사 내가 천천히 걸어 나온다.
치 익.
그 어둠 사이로 빨간 점 하나가 빛나는 것을 본 낭곤이 미간을 좁혔 다.
‘담배?’
짙은 담배향이 코끝으로 풍겨온다 는 것을 느낀 그때.
“늦지는 않은 모양이군.”
한 사내가 어둠 속에서 하얀 이 를 드러냈다.
마치 악마와도 같은 미소를 지으 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