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18)
마존현세강림기-1920화(1917/2125)
마존현세강림기 78권 (5화)
1장 분쇄하다 (5)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살아가며 실수를 저지르지 않거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이가 어디 있 겠는가.
그리고 잘못에는 당연히 처벌이 따르기 마련이다.
실수에 대한 합당한 처벌은 사람
을 성장시킨다. 잘못을 저질렀음에 도 제대로 된 처벌이 가해지지 않는 다면, 사람은 같은 잘못을 다시 저 지르고, 결국에는 스스로를 망치게 되는 법이다.
신창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지 않 는다. 그리고 변명하지 않는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저지르지 않 아야 할 실수를 해버렸다면, 그에 대한 벌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 다.
하지만…….
지금 신창의 얼굴은 더없이 희게 질려 있었다.
부상이 깊기 때문에?
아니다.
그가 홍왕에게 입은 부상은 물론 무척 깊다. 하지만 그 부상이 지금 의 그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 다.
지금 그를 숨도 못 쉬게 압박하 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앞에 있는 한 사람의 존재였다.
“흐음.”
잔에 담긴 붉은 와인이 가볍게 혼들린다.
동그란 유리잔을 가볍게 흔든 흑 왕이 느긋하게 한 모금의 와인을 마 시고는 가만히 신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투명한 시선을 마주한 신창의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처럼 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뒷머리가 축축하게 젖어 들고, 식은땀에 젖은 옷이 등에 달 라붙는다.
두렵다.
그래. 그는 이 상황이 너무도 두 려웠다.
혹왕에게 자신의 실수를, 그리고 자신의 실패를 보고해야 하는 상황
도 두렵고, 눈앞의 존재를 이런 상 황에서 대면하는 것도 너무도 두려 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그에게 대체 어떠한 벌이 떨어 질지 예측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 다.
신상필벌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조직을 키워 나가기 위해서는, 그 리고 수하들이 윗사람을 따르게 만 들기 위해서는 합당한 상과 합당한 벌이 필요한 법. 그건 조직을 이끄 는 이들에게는 상식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흑왕은 그러한 상식에서
이반된 존재.
그는 어떤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은 존재다.
때로는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잘 못을 저질러도 그저 웃으며 넘어가 버리고, 때로는 별것 아닌 잘못을 저질러도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모 든 고통을 모조리 겪는 가장 끔찍한 죽음을 선사한다.
그 결정은 온전히 그저 흑왕의 변덕에 달려 있는 것.
다른 이들이라면 오히려 평을 깎 아먹을 만한 일이지만, 혹왕은 그마 저도 자신의 카리스마로 만들어 버
린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절대 적인 존재란 때로는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는 법이니까.
“그래서……
흑왕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파권과 낭곤은 죽었고……
“너는 간신히 도망쳐 왔다, 이 말 인가?”
신창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딱히 감정이 담긴 목소리는 아니 다.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감안한다 면, 되레 지독하게 담담한 목소리라
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두렵다.
저 담담한 목소리 뒤에 어떤 의 도가 숨어 있는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할 말은?”
“ 저는••••••
신창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순 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알고 있다.
그가 어떤 변명을 하든, 그가 어 떤 설득을 하든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혹왕은 굳건한 바위산과 같은 사람이다. 인간의 힘으로 밀고 후려
쳐도 홈집조차 나지 않는다.
“……할 말은 없습니다.”
흑왕이 말없이 가만히 신창을 바 라보았다.
“제게는 불가항력적인 일이었습니 다. 그들을 구하지 못한 죄를 묻는 다면 얼마든지 받겠습니다만, 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제 몸 하나 빼내는 것 에 불과할 것입니다.”
“홈.”
흑왕의 시선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신창은 굳이 변명을 덧붙
이지 않았다.
어차피 더 이상의 말은 의미가 없다. 그는 자신의 세 치 혀로 흑왕 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말 도 안 되는 오만에 젖어 있는 인간 이 아니다.
사람은 신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 는다.
완전함이란 흔들리지 않는 것.
흑왕이 그에게 있어서 신과 같은 존재라면, 감히 그 신성에 의구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법이다.
“ 일어나라.”
“예!”
신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흑 왕을 마주 보았다.
“어땠지?”
“무슨 말씀이신지……
“그는 말이야.”
흑왕의 입가가 살짝 말려 올라간 다.
“즐거워 보이던가, 아니면 심각해 보이던가? 아니, 아니겠지. 평소처 럼 무표정한 얼굴로 그 속내를 짐작 할 수 없었겠지.”
“……저는 그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지 못했
습니다. 만약 그 정도의 거리였다면 제가 아무리 용을 써도 그의 손아귀 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겁니다.”
“틀렸어.”
흑왕이 고개를 저었다.
“거리 같은 건 무의미하지. 네가 살아 돌아온 이유는 그저 그가 너에 게 흥미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 야.”
“원래 그런 사람이지. 눈앞에 있 는 것에는 자비가 없지만, 바로 앞 에 있는 싱싱한 먹이를 두고 먼 곳 에 있는 다친 짐승부터 챙겨두는,
융통성은 없는.”
흑왕이 재미있다는 듯 뇌까린다.
“그렇기에 마존이지. 그래, 그렇기 에 적마야.”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 다.
십이비도는 흑왕이 심혈을 기울여 모은 그의 수족이다. 다시 말해 십 이비도 중 둘이 목숨을 잃은 이 상 황은 흑왕의 손이 둘이나 잘려 나간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흑왕의 기분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예전보다 더 과감해졌군. 과거에
는 얻어맞으면 목을 베고, 달아나는 적을 쫓아 등에 칼을 찔러 넣을지언 정 맞기 전에 먼저 움직인다는 개념 은 없던 사람이었는데.”
그건 완벽한 오만이다.
먼저 움직인다는 것은 위기에 빠 지지 않겠다는 의미다. 최소한 불리 한 상황에는 처하지 않겠다는 의지 가 있을 때, 사람은 선제적인 타격 을 고려한다.
하지만 과거의 강진호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어떤 상황이 오더라
도 불리하다 생각지 않는다.
그 혼자만의 무력으로 세상이 모 두 달려들어도 상대할 수 있다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자신감으로 살아가는 이였으니까.
강진호는 그런 스스로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 이의 나사 빠진 짓거리라 자평했지만, 흑왕이 보기 에 그건 과도하기 짝이 없는 오만함 의 발현이었다.
‘하기야……
잃을 것이 없는 이는 오만할 자 격이 있다. 그 오만함의 리스크를 온전히 자신이 감당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 강진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른 이도 아닌, 과거에 그와 싸 운 홍왕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격세지감이라……
흑왕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 가만 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모든 사람은 결국 변할 수밖에 없다.
그건 그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는 세상의 이치다.
하지만 강진호의 변화를 그 두 눈으로 지켜보고, 그 두 귀로 듣는 것은 흑왕에게 뭐라 말하기 어려운
묘한 감흥을 가져다준다.
그는 강진호의 변하지 않은 부분 에서 과거의 향수를 느꼈고, 변해 버린 강진호의 모습에서 덧없는 세 월을 느꼈다.
“결국은 선택해 버렸군.”
흑왕의 시선이 먼 창밖으로 향한 다. 통유리로 만들어진 전면창 너머 로 울창한 숲들이 보인다.
“결국은 그렇게……
저 숲은 과거나 지금이나 딱히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그 숲을 거 니는 사람은 더 이상 과거의 그 사 람일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이 달라지면 입장이 달라지 고, 입장이 달라지면 걷는 길이 달 라지는 법이다.
“결국은……
흑왕은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너무도 드문 일이지만, 지금의 그 안에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 다.
반드시 적으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결코 적으로는 만나고 싶 지 않았다.
그를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 누군 가 그를 죽여야 한다면 그는 오직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인연 혹은 악연.
우정 혹은 증오.
세상의 이치를 논하고 역사의 흐 름을 논하지만, 사람의 속 하나 알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선택을 했다면 더는 뒤돌아볼 필 요 없겠지.”
흑왕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 신창.”
“예.”
“모든 작전을 일시 중단한다. 여 기로 남은 십이비도들을 모조리 불 러들여라.”
“외곽을 공격하는 이들 모두 말입 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흑왕이시여!”
“서두르라고 해.”
“예!”
의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의도를 굳이 알 필요 도 없었다. 그들은 수족, 그저 명을 행하는 이들이니까.
신창이 겨우 긴장이 가신 얼굴로 깊이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간다. 그러자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리우양이 조심스레 물었다.
“신창에게 벌을 내리지 않으실 겁 니까?”
“굳이?”
흑왕이 피식 웃었다.
“실패는 실패입니다. 그를 벌하지 않으면 다른 십이비도들에게 본보기 가 되지 못합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혹왕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럴 기분이 들지 않는군. 기분이 좋아 용서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그냥…… 그래, 그 냥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하지.”
“예.”
리우양은 더 이상 의문을
가지지
않고 물러섰다.
논리를 논한다면 할
말이
더 있
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게
흑왕이
원하는 결론이라면 더
덧붙일 말은
없다.
“흐음.”
흑왕이 가만히 자신의 관자놀이를 눌러 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군.”
“적어도 내게는 파권과 낭곤을 잃 고 도망쳐 온 추악함보다 그 사람의 소식을 가져와 날 즐겁게 해준 부분
이 더 큰 모양이야. 딱히 한심하게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총회가 움직인 이상, 지금보 다 더 껄끄러운 싸움이 될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흑왕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왠지 홀가분하군……
감은 눈 사이로 과거 강진호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니, 강진호라기보다는 적천마존. 그래, 그 웅대하던 이의 모습이.
그리고 그 뒤로 지금의 강진호의 모습이 떠올라 적천마존의 모습과 겹쳐지기 시작했다.
‘당신도 느끼고 있을까?’
지금 그가 상대해야 하는 이는 강진호인가, 아니면 적천마존인가.
그를 상대하는 이는 흑왕인가, 아 니면 청마인가.
둘은 결국 하나. 하지만 결코 하 나가 아니다.
“두 번의 삶을 산다는 건 말이 야……
“예.”
“한 번의 삶을 두 번에 나눠 사는 게 아니야. 죽음이라는 것은 결국 단절이지. 아무리 기억을 그대로 가 지고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그건 전
과 같을 수 없지.”
“그렇기에 그리운 건지도 모르지. 사람은 나이가 들면 과거를 추억하 지만, 귀환한 이들은 과거의 자신을 추억하지.”
흑왕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놓을 수가 없는가 봐.”
“그는 나를 알고, 나는 그를 안 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도 알 수 없고,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그 시절을 마주 본 이. 그렇기에 그는 나의 거울이고, 나는 그의 거울이겠
지.”
거울이 서로를 마주 보면 그 안 에는 끝없는 세상이 생겨난다.
강진호와 그의 관계는 결국 이럴 수밖에 없다.
“마존이시여.”
흑왕이 콧노래를 부르며 손을 휘 저었다.
“당신과 나의 전장은 불타는 세상 한가운데일 수밖에 없겠지. 그렇지?”
전초전은 끝났다.
이제 그와 강진호가 만들어낼 겁 화가 세상을 뒤덮을 것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겁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