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24)
마존현세강림기-1926화(1923/2125)
마존현세강림기 78권 (11화)
3장 무너지다 (1)
“……놀러 온 게 아니라고.”
이현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물론 이해는 한다.
갑자기 이사진들이 증발하듯 사라 지고, 중국에서는 아는 사람은 빤히 알 만한 일들이 연이어 터지니 걱정 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이렇게 타박해도 될 일인가.
“이사님은 저렇게 사람 힘내라고 북 돋아주는데, 같은 무인인 사람이……
“같은 무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닐까?”
“••••••예?”
“음, 아니다.”
이현수가 미묘한 눈으로 바라보 자, 강진호가 시선을 슬쩍 돌렸다.
“거, 사자도 고양이과고, 고양이도 고양이과 아닙니까?”
“누가 뭐랬나.”
“회주님 눈으로 보기에는 제가 풍
선으로 만든 인간 같겠지만, 이래 봬도 헤비급 복서나 이종격투기 챔 피언 정도는 한 손으로도 때려잡을 수 있습니다.”
“••••••진짜?”
“아니!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이현수가 버럭 고함을 질러 댔지 만, 강진호의 두 눈에 떠오른 의혹 은 가실 줄을 몰랐다. 농담이 아니 라 정말 이현수가 헤비급 복서를 이 길 수 있는지 감이 서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
물론 이현수의 입장에서는 억울하
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가 아무리 반쪽짜리 소리를 듣 는다고 해도 일단은 내력을 익힌 무 인이다. 맨주먹으로 콘크리트 정도 는 아무렇지도 않게 부술 수 있다.
무인들 사이에서나 재능리스, 노 재능 소리를 듣는 거지, 일반인들에 게는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사람이 이현수다.
문제는 그가 항상 얼굴을 맞대고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무 인 기준으로는 환상종에 가까울 만 큼 강한 양반들이라는 점이다.
“거, 사람 그렇게 무시하시는 것
아닙니다! 제가 회주님의 상식이 초 등학생급이라고 무시하지는 않잖습 니까.”
“……초등학생급은 아니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강진호가 낮게 헛기침을 했다.
아니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싶지 만, 몇 가지 걸리는 게 있어서 차마 말을 할 수가 없다.
“여하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 고……
“말 돌리시네.”
강진호가 고개를 살짝 들어 이현
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현수가 시선을 홱 돌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저걸 팰 수도 없고.’
차라리 바토르 같은 놈이면 마음 놓고 까버리겠지만, 강진호의 입장 에서 이현수를 때리는 것은 모기를 다치지 않는 선에서 아프게 때려야 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물론 그보다야 난이도가 조금 낮 겠지만, 어쨌든…….
“이래서 사람은 혼자 살아야 하는 겁니다.”
“그 말 그대로 전해주지.”
“……죽일 셈이십니까?”
이현수가 정말 겁먹은 얼굴로 바 라보자, 강진호가 낮게 웃음을 터뜨 렸다.
“그렇게 겁나는데 어떻게 만나나?”
“……회주님.”
“웅‘?”
이현수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인생이란 걸 말입니다, 선택이지 요, 선택.”
“이게 무서운 건, 한 번 잘못된 선택을 하고 나면 물릴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애정이 무서운 건
사람의 눈에 이상한 걸 씌워서 강제 로 틀린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 죠.”
강진호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냈다.
“발언이 좀 위험한 것 같은데.”
“위험이고 나발이고, 할 말은 해 야지요! 이미 선택을 잘못한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겁니다. 내가 저지 른 실수를 어떻게든 수정할 수만 있 다면 인생에 힘들 게 뭐가 있겠습니 까? 그게 안 되니까 다들 망해 자 빠지는 거지!”
“……묘하게 철학적으로 넘어가지
마.”
여자 친구 등쌀에 힘들다는 이야 기가 여기까지 온다고?
“그러고 보면 회주님은 복받은 사 람이죠.”
“웅?”
“이사님처럼 마음 넓으신 분이 어 딨습니까! 방금 들으셨죠?”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마음이 넓은 건 사실이죠. 네, 마음이 넓은 건.”
다른 문제가 산적해 있어서 그렇 지.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그런데 반은 진심입니다. 사실 회주님 정도의 얼굴이나 배경이면 여자 친구 사귀는 게 그렇게 어렵지 는 않겠지만, 회주님의 삶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없을 겁니다. 특히나 그냥 관계를 유지하는 정도 가 아니라 정말로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말이죠.”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강진호도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웬만한 여자라면 강진호가 칼질하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병원에 실려 가는 꼴을 본 순간, 가운뎃손 가락을 치켜올리고 걷어차 버렸을
테니까.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그 사람의 삶이 자신의 인생을 파괴한다면 관 계는 이어질 수 없는 법이다.
평범한 무인조차도 그런 점 때문 에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사는 경우 가 많은데, 강진호를 감당해야 하는 최연하는 오죽하겠는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대장군감이 지. 회주님보다 나았을걸요?”
“……인간으로서는 못 이기지.”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무인이 아니 라면 반푼이에 불과한 인간이라 생
각하고 있다. 실제로 무학을 익히지 않은 첫 번째 삶은 처참하게 무너지 지 않았던가.
물론 그가 큰 사고를 겪고, 삶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고 는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이 세 상에는 그보다 더한 일을 겪고도 꿋 꿋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든지 있다.
“나는 그냥 멍청이였을 뿐이야.”
“에이, 뭐, 그렇게까지.”
“네 말대로 인생을 한 번 바꿀 기 회를 얻어서 여기까지 온 거지.”
“다른 사람들은 기회가 주어져도
못합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기 회가 없었다면 나는 그런 이들조차 경멸할 정도로 멍청한 놈이었겠지.”
강진호가 새삼스러운 얼굴로 담배 를 꺼내 물었다.
찰칵.
담배 끝에 불이 붙고, 하얀 연기 가 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후우우.”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 가 멍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힘들어.”
“예?”
“내가 아는 대로라면 귀환자라는 존재들은 다들 나와 같은 과정으로 과거의 어딘가에 던져진 이들이야. 그리고 그곳에서 이전과는 다른 삶 을 살아낸 거지. 그건 무척 불공평 한 특혜야.”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열 명이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그 중 아홉은 똑같이 빤하게 인생을 낭 비할 겁니다. 사람이란 애초에 그렇 잖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를 이룩한 이들이 대단한 겁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이 건 논쟁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 아니 다. 중요한 부분은 그 뒤다.
“그래서 모르겠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렇게 힘겨운 과정을 겪고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다면 분명 달 라졌을 텐데, 과거의 그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텐데, 대체 왜 저러는 지 이해할 수가 없어.”
“분명 알 텐데, 정상에 올라봐야 남는 게 없다는 걸.”
이현수가 말없이 강진호를 바라보 았다.
그의 생각으로는 강진호의 말은 살짝 어긋나 있다.
정상에 오른 모든 이들이 허무함 을 느끼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더 큰 목적을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할 것이고, 누군가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건 그저 사람마다 다른 것.
하지만 그 사실을 입 밖에 내 반 박할 수 없는 이유는, 그는 강진호 가 오른 정상의 풍경을 본 적이 없 기 때문이다.
올라보지 않은 이가 그럴싸한 논 리로 정상에 섰던 이의 말을 반박하 는 것 역시 웃기지 않은가.
“회주님.”
“음?”
이현수가 강진호를 빤히 보며 물 었다.
“예전에 친구라고 생각한 분과 적 이 된다는 게 부담스러우신 겁니까?”
“딱히.”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야. 나와 청마의 관 계는…… 친구라는 표현은 조금 애 매하거든.”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이현수가 묘한 표정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무슨 생각?”
“따지고 보면 과거 흑왕이 맡은 역할이 지금 제가 하는 일 같은 거 잖습니까.”
“……스스로를 좀 과대평가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은데.”
“아니! 능력 말고 역할이요! 역할!”
“……일단 뭐 그렇다고 치지.” 이현수가 이를 빠득 갈았다.
예전에는 몇 안 되는 단어도 제 대로 못 내뱉던 사람이 이제는 툭툭 던지는 말로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 다.
누굴 탓하겠는가, 강진호를 이렇 게 만든 사람이 다름 아닌 이현수 자신인 것을.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입 니다. 혹시 제가 다시 태어나서 고 수가 되었는데, 싸워야 하는 적 중 에 회주님이 있다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하고요.”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싸워야 한다면 싸워야지.”
“그건 아는데……
이현수가 빤히 강진호를 바라보다 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냥 그렇습니다. 대체 제가 회 주님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이유 같은 게 뭐가 있나 싶어서요.”
“그렇지.”
강진호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 뿜었다.
“나도 그게 궁금하군.”
“나는 내가 소인배가 되었기 때문 에 과거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거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그래서 모르겠어. 두 번의 삶을 살고도 반드시 관철해야 할 무언가 가 있다는 걸 말이야. 어차피 삶이 라는 건 끝나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건데.”
강진호의 눈이 이현수를 바라보았 다.
‘다르지 않을까?’
그와 이현수가 지금 그와 청마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그때의 강진호도 자신과 주변인들 을 지키기 위해서 이현수를 향해 칼
을 뽑을 수 있을까?
모르지.
그건 당면하지 않으면 알 수 없 는 일이다.
“너는 청마가 아니야.”
“……그야 그렇죠.”
“하지만 어쩌면…… 청마와 내 관 계는 지금 너와 나의 관계보다 더 끈끈할지도 모른다.”
“……아니, 잠시만요. 그 양반은 회주님을 배신하고 칼을 꽂은 사람 이잖아요. 그럼 제가 억울하죠.”
이현수의 말에 강진호가 낮게 웃 었다.
“그때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 돌 이켜 보면 그렇지도 않더군. 나는 청마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놈도 이 시대를 살던 이라면…… 혼자였던 거지. 아 무도 의지할 수 없는 혼자.”
“그러니 배신당했다고 여겼겠지. 나만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테 니까.”
“ 이용했잖습니까.”
“그는 모든 걸 이용해. 그러니 이 용한다고 해서 믿지 않는 건 아니 지. 그러나……
강진호가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딱히 의미가 없는 이야기 다.
그저 그가 궁금한 건 하나뿐이다.
“당시에 그놈이 원하는 대로 내가 마지막까지 움직여 줬다면 어떻게 됐을까?”
“놈이 나를 죽이고 교주가 되었을 까,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중원을 먹어 치웠을까? 그게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서 한적한 삶이라도 즐겼을까?”
“회주님.”
“알 수가 없어. 그래, 알 수가 없 지. 그건 가보지 못한 미래니까.”
강진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 면 지금 저놈■이 하고 있는 것은, 그 때 우리가 밟아보지 못한 미래를 이 시대에 다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 다고.”
“그럼••••••
강진호의 입가에 뒤틀린 미소가 자리했다.
“나는 그놈의 바람을 두 번 막는 사람이 되겠지.”
이현수의 눈이 찌푸려졌다.
‘지독한 관계군.’
그리고 지독한 악연이다.
하지만…….
이현수는 그 지독한 악연 속에서 도 청마를 이야기하는 강진호의 표 정에 미묘한 친근함이 배어 있는 것 을 놓치지 않았다.
“신이란 게 있을까요?”
뜬금없이 나온 물음.
하지만 강진호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 다.
“모르지. 하지만 만약 존재한다
면
“나는 그놈을 용서하기 힘들지도 몰라.”
세상이란 누군가가 짜놓은 거대한 무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위에 오르는 것까지는 타의라도,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본 강진호 의 눈에 삐죽이 솟아오른 건물들이 보였다.
‘모든 건 바뀐다.’
사람의 관계도, 세상도.
그리고 그들은 막을 수 없는 변 화의 흐름 속에 있다.
‘그렇지, 청마?’
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적어도…….
감은 눈 속의 세상은 예전 그대 로였다.
이미 너무 오래 지나 흐려져 버 린 예전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