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29)
마존현세강림기-1931화(1928/2125)
마존현세강림기 78권 (16화)
4장 뒤흔들다 (1)
화아아악.
성냥 끝에 불이 붙는다.
맹렬하게 타들어간 불꽃이 조금 잠잠해진다 싶더니, 얇은 나무 막대 에 옮겨붙어 은은하게 타오르기 시 작한다.
불붙은 성냥을 담배 끝에 가져간
이가 천천히 담배를 빨아들였다. 담 배에 완전히 불이 붙고, 가볍게 성 냥을 흔들어 불을 꺼버린 이가 검게 타버린 성냥을 재떨이에 던져 넣는 다.
스윽.
열린 성냥갑을 가볍게 밀어 닫은 사내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천연 가죽으로 만든 고풍스러운 의자가 가벼운 소음을 내며 그의 육 중한 체중을 받아 지탱한다.
“무인계라……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이가 천천 히 연기를 내뿜는다. 천장에 장착된
공기청정기가 그가 내뿜은 연기를 맹렬하게 빨아들이고 맑게 정화된 공기를 연신 흘려내지만, 사내는 그 광경을 눈으로 보면서도 갑갑함을 어쩌지 못했다.
그는 이곳이 싫다.
지하. 그것도 깊은 지하.
허락받지 못한다면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발을 들일 수 없도록 완벽 하게 밀폐된 공간.
그 어떤 화기로도 뚫을 수 없고, 벙커버스터는 물론, 신의 지팡이 [Rods of God]조차 이곳까지는 닿 지 못한다.
완벽하게 밀폐되어 자체로 산소를 만들어내는 덕에 화학 무기에조차 면역이다. 실내는 수십 단계의 차폐 막과 1개 중대급의 특수부대가 상주 하고, 심지어 당에서 따로 육성한 무인들마저 투입되어 철통 방어를 하고 있다.
설사 타국이 이 나라로 쳐들어와 외부를 완전히 제압한 상황이라 해 도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에서 10년 이상은 자급자족하며 농성할 수 있 는 곳.
하지만 그렇기에 이곳은 황제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황궁이 적으로 둘러싸인 순간, 황 제는 더 이상 황제가 아니게 된다. 황제는 그 위엄만으로 나라 전체를 짓누르고 만인의 공경을 이끌어내야 하는 존재다.
적이 두려워 모습을 숨기는 이가 어찌 황제를 자청할 수 있다는 말인 가.
“후우.”
짧게 담배 연기를 내뿜은 사내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꼴이 우습군.”
“……주석님.”
“알고는 있네.”
주석이라 불린 사내가 가만히 손 을 들어 살짝 흐트러진 앞머리를 밀 어 올렸다. 반듯한 리젠트를 만들어 낸 그의 고개가 살짝 옆으로 꺾였 다.
“아직 중화는 갈 길이 멀지.”
“아직은 축배를 들 때가 아닐세. 지금 내가 대외적으로 하는 말의 반 쯤은 그냥 허세일 뿐이야. 진짜 실 력을 갖추지 못한 허세는 언젠가는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라는 건 나 도 알고 있네. 내가 바라는 것은 그 바닥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홀러
들어오는 맑은 물이 바닥을 채워주 는 게지. 다만……
머리를 쓸어 올린 사내의 손이 자연스레 턱을 쓰다듬는다.
손끝에 까슬하게 자라난 수염의 감각이 느껴진다. 제대로 면도를 할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는 의미.
“오만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설마 저 야만인들 때문에 이곳을 찾게 될 줄이야.”
“송구합니다.”
“탓하려는 건 아닐세.”
눈을 감은 사내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황당할 뿐이지.”
“저들은 말벌과 같습니다.”
“말벌?”
“보호구만 입는다면 말벌 따위는 수백 마리가 넘어간다고 해도 모조 리 잡아 죽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호구가 없는 사람은 말벌 한 마리 조차 제대로 당해내지 못합니다. 어 설프게 건드리려 했다가는 벌 독에 목숨을 잃기도 하잖습니까.”
사내의 앞에 선 이가 입이 마른 다는 듯 혀로 입술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말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해서 사람보다 위대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말벌은 그저 벌레일 뿐이지요. 하지만 사람도 때 로는 그 하찮은 벌레를 피해서 몸을 숨겨야 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 말이 딱히 위로가 된 것 같지 는 않지만, 한결 기분을 나아지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는지, 주석의 굳 은 입꼬리가 조금은 풀렸다.
“이런 곳에 모시게 되어 송구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 요한 것이 주석의 안전이기에 타협 할 수 없었습니다. 조금만 참아주시
면 반드시 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대책이라……
주석이 손을 뻗어 물 컵을 잡는 다. 살짝 주름진 자신의 손등을 본 그의 눈이 조금 일그러졌다.
“마련해야겠지.”
“예.”
컵을 들어 마른 목을 축인 주석 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 을 본 이가 인이어를 가볍게 눌러 실내의 습도를 높이라 지시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 하려던 주석이 이내 귀찮다는 듯 의 자에 축 늘어졌다.
“골치 아픈 일이야.”
주석이 낮게 혀를 찼다.
“이곳에 처박히는 대신 업무라도 손에서 뗄 수 있다면 휴양이라도 온 기분으로 지내보겠건만, 감옥에 갇 힌 채로도 업무는 계속해야 한다 니.”
몇 번 헛기침을 한 주석이 눈두 덩이를 문질렀다.
“ 이보게.”
“예, 주석님.”
“방법을 빨리 찾아내는 게 좋을 거야.”
“최선을 다해……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답하 게.”
순간적으로 주석의 눈을 스치고 간 날카로운 눈빛에 비서장의 몸이 석상처럼 굳어졌다.
“투정을 부리는 게 아냐. 사안의 중요성은 나도 잘 알고 있네. 이곳 에 처박혀 있는 게 싫다고 어리광을 부릴 만큼 나는 한가한 인간이 아니 란 말이야.”
“다, 당연하신 말씀이십니다.”
“자네는 이 자리의 무거움을 몰 라. 나는 숨고 싶어도 숨을 수 없는 사람일세. 내가 공식 석상에 삼 일
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사람들 은 온갖 현안을 언급하기 시작하고, 일주일이 넘어가면 내가 죽었는지를 의심하지.”
“권력을 쥔다는 건 그만한 책임을 함께 짊어진다는 의미지. 목숨이 위 험하니 벙커에 꼭꼭 숨어 있겠다? 그런 건 내게 허락되지 않는 일이 야. 권력자란 등에 칼이 겨줘져 있 어도 앞을 보고는 웃어야 하는 법이 거든.”
“예…… 주석님.”
“길어봐야 사흘, 그 정도가 최대
겠지.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시 간은 말이야. 그 시간 내로 답을 찾 아내지 못한다면, 자네는 여기에 남 게 될지도 몰라.”
이곳에 남는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비서장이 아니었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배어난다. 젖은 셔츠가 등에 달라붙는 감각이 오늘따라 더욱 섬뜩하다.
“반드시 방법을 찾겠습니다.”
“그래야 할 걸세.”
주석이 입가를 가볍게 흠쳤다.
‘무인이라……
지금까지는 적당히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그가 존재할 수 있는 이 유는 당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리 고 당을 장악하는 데 있어서 깨끗한 방법만을 쓸 수 있을 리 없다.
그의 지시에 죽어간 이가 몇이던 가.
때로는 사고로, 때로는 병사로.
더러운 짓이라는 건 알지만, 주석 은 그 일련의 행위들을 조금도 후회 하지 않았다.
‘ 대도무문(大道無門).’
올바른 길을 걸어야 높은 곳에
오르는 게 아니다. 세상은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서 높은 곳에 올라야 하는 곳이다.
그 어떤 이상도, 그 어떤 미래도 지위를 손에 넣지 않고서는 만들어 낼 수 없다. 그가 원하는 이상을 손 에 쥐기 위해서는 진흙을 씹어 먹는 일을 마다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오른 길.
그렇기에 지금까지는 적당히 방조 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먼데 내분 으로 힘을 소모할 수는 없다고 여겼 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일이 잘 해결된다고 해도 결 과는 정해져 있을 것이다. 저쪽에서 아무리 성의를 보인다고 해도 말이 다.
이미 이 일련의 사태 덕분에 당 의 수뇌부들은 저들이 통제할 수 없 는 칼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버렸다.
말 잘 듣는 개의 얼굴을 쓰다듬 다가 우연히 그 날카로운 송곳니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이미 충분히 알고 있고, 얼마든지
이해하고 있던 위험성을 두 눈으로 직면하는 순간.
그 섬뜩함을 느낀 이는 절대 전 과 같은 눈으로 개를 바라보지 못한 다. 그 개가 언젠가는 자신의 목을 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버린 이상 은 말이다.
‘시간의 문제겠지.’
안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때로는 식욕과 성욕마저 초월한다. 그가 참으려 해도 결국 점점 목소리 가 높아져 갈 것이다.
한 번 그어진 금은 다시 붙지 않 는다. 점점 더 벌어질 뿐이다.
의자에 등을 기댄 그가 천장을 바라보았다.
‘황제라……
사람들은 그를 황제라 부른다. 현 대에 부활한 황제.
주석이 낮게 웃었다.
‘그 사람들이 틀렸거나, 아니면 황제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 니든가.’
어느 쪽이든.
그래, 어느 쪽이든.
산 중턱으로 길게 이어진 도로. 그 도로의 끝에 커다란 집이 한 채 자리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돈 많은 재벌의 별장쯤으로 보이는 곳이지만, 자세 히 본다면 이내 심상찮은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첫째.
별장치고는 정문을 지키고 있는 이들의 수가 과히 많다.
아니, 애초에 별장에 문지기를 두 는 경우가 혼한가를 생각해 본다면, 이 광경이 꽤 괴상하다는 것을 알아 채는 건 어렵지 않다.
둘째.
정문에서 건물까지 이어진 정원에 풀벌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벌레란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단 한시도 쉬지 않고 울어 대는 법. 다 시 말하자면 저 정원에 벌레가 단 한 마리도 없거나, 그게 아니면 저 울창한 정원 안에 누군가 숨어 있다 는 의미였다.
마지막으로…….
“이상 없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현관에 선 세 사람 중 하나가 귀에 낀 인이어 를 누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특이 사항 있을 시 즉각 보고하 겠다.”
인이어에서 손을 뗀 이가 주변을 한 번 돌아본다.
알고는 있다.
이게 의미 없는 짓이라는 걸.
지금 이 건물의 주변에 배치된 인원만 오백이 넘는다. 아니, 그것도 전부가 아닐지 모른다.
건물 안의 배치야 극비 중의 극 비라 그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정 보니 제외하더라도 건물 밖에만 오 백이 넘는 인원이 배치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들의 눈에 들키지 않고 그의 주변까지 접근하는 건 새나 벌레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는 습관적으로 주변을 점검했다.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 그 가 몇 년간 수행해 온, 가혹하기까 지 한 훈련은 이미 그의 삶을 파고 들어 행동의 결정권을 앗아간 지 오 래 였다.
더구나…….
그의 시선이 슬쩍 뒤로 향한다. 굳게 닫힌 육중한 철문을 본 그의 눈에 긴장감이 어렸다.
지금 이곳에 거하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를 생각한다면 단 한 치의 소홀함도 있을 수 없다.
삐익!
귀에서 다시 신호음이 울린다.
십 분 간격으로 전해 오는 보고 음.
인이어를 누른 그가 주변을 한 번 곁눈질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상 없다.”
그리고 막 그가 인이어에서 손을 뗀 순간이었다.
“정확한 보고야.”
처음에는 그의 동료가 한 말인 줄 알았다. 바로 옆 귓가에서 말을
할 이는 그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이내 그가 들은 목소리가 낯설다는 것을 깨달은 그의 고개가 옆으로 과격하게 돌아간다.
사내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 다.
조금 전까지 그의 옆에 서 있던 동료는 여전히 그대로 서 있다. 단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꼿꼿이 서 있는 상체 위로 목이 보이지 않는다 는 점뿐이다.
그는 순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도 자연스레 바뀌어 버린,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광경이 그의 뇌를 멈추게 만든다.
“다음 보고를 할 때까지는 틀린 게 아니니까.”
서걱!
두 눈을 부릅뜬 사내의 목이 바 닥으로 굴러 떨어진다.
퉁.
그는 머리가 바닥에 닿는 그 순 간, 의식이 멀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촤라라락!
와이어를 회수한 이가 목을 좌우 로 꺾고는 굳게 닫힌 철문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가가각.
두 문 사이의 미세한 틈으로 밀 려 들어간 와이어가 잠금장치를 끊 어낸다.
끼이이이익!
철문이 요동치며 열리기 시작하 자, 여기저기에서 경호성이 터져 나 왔다. 순간적으로 이 구역 자체가 다른 곳으로 바뀌어 버린 듯 격렬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사내는 그 반응에 관심도 주지 않은 채 무심하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것도 암살이라기에는 이상하지 만……
공령의 손가락 끝에서 와이어가 팽팽히 당겨진다.
“결과만 같으면 상관없지.”
그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건물 안으로 비쳐진 달빛을 받아 희게 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