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34)
마존현세강림기-1936화(1933/2125)
마존현세강림기 78권 (21화)
5장 격변하다 (1)
우드득.
홍왕이 가만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혈왕이라……
스스로는 혹비라 칭하기는 했지 만, 그에게는 혈왕이라는 이름이 조 금 더 익숙하다.
과거, 마교 이전에 마를 상징하던
문파는 다름 아닌 혈교. 그 혈교의 수뇌들은 대대로 혈마라는 이름을 이어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천하에 그 이름을 날린 이가 있었으니, 그 가 바로 혈왕. 한때 혈교의 이름으 로 천하를 피로 물들인 이가 바로 이 혈왕이었다.
‘사마(邪魔)의 제왕.’
마존이 등장하기 전, 마인을 대표 하는 이가 바로 이 혈왕이다. 그런 이를 앞에 두고 있으니 긴장하지 않 을 도리가 없었다.
아마 이 승부는 그가 신창과 치
른 격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될 게 분명했다.
“홍왕이라……
혈왕의 두 눈이 혈광을 내뿜었다.
그 모습을 본 홍왕이 자신도 모 르게 입을 열고 말았다.
매번 묻는 질문이지만, 이들이 누 군지 알 때마다 도무지 묻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대쯤 되는 이도 저 흑왕 아래 고개를 숙인다는 건가?”
혈왕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비틀 었다.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라도?”
“……자존심의 문제겠지.”
“자존심이라……
붕대로 감긴 혈왕의 입가가 비틀 렸다.
“자존심이란 어린아이나 내세우는 거지. 나이가 들면 그런 게 딱히 중 요하지 않아진다.”
“너무 오래 살았군.”
“그럴지도 모르지.”
혈왕이 고개를 돌려 별장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건 그대가 할 말은 아 닌 것 같군. 지금 이 중원 땅의 황 제는 다름 아닌 그대지. 그런 이가
외지에서 온 이에게 주도권을 내주 고 집 지키는 개 꼴로 나를 막고 있잖은가.”
“모르는 모양인데……
“음?”
홍왕이 미소를 지었다.
“자존심이란 어린아이나 내세우는 거지. 어른은 그보다는 목적과 실리 를 우선하는 법.”
“……하하.”
자신의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혈 왕이 피식 웃고 말았다.
“뭐, 좋아. 더 물어봐. 얼마든지 대답해 줄 테니까.”
“……더 물으라고?”
혈왕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홍왕의 미간이 깊은 주름 이 파였다.
“그렇다면 하나 묻지. 너희의 목 적이 뭐냐?”
“빤한 걸 묻는군. 지금은 주석을 죽이는 거다.”
“ 다음.”
홍왕이 눈을 찌푸렸다.
“나는 너희의 궁극적인 목적을 묻 는 거다.”
“세계 정복. 다음.”
“이 작자가……
흥왕이 이를 갈아붙이려 하자, 혈 왕이 손가락을 들어 까딱까딱 흔들 었다.
“거짓말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 어.”
“원한다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지. 우리는 흑왕의 목적을 따르는 이들이다. 하지만 흑왕의 목적에는 마지막이 없어.”
“……그게 무슨 의미냐?”
“우리의 목표는 혹왕으로 완성되 지 않는다는 의미지. 그러니 협력할
수 있고, 그러니 그에게 고개를 조 아릴 수 있는 것이다. 십이비도 각 자가 가진 목표는 흑왕의 존재가 있 는 이상은 절대로 이뤄질 수 없거 든 ”
“하지만 제거할 수도 없다. 그는 우리 모두가 달려들어도 어찌할 수 없는 강자니까. 하지만…… 그가 원 하는 목적을 이루는 수족이 되어준 다면, 그다음은 우리에게 자유가 주 어진다. 저 흑왕이 없는 세상에서 원하는 대로 활개 칠 자유가 말이 야.”
홍왕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 말을 믿는 건가?”
“믿지 않을 이유도 없지. 너는 타 인에게 거짓말을 하는가?”
“딱히 그럴 이유가 없겠지. 그렇 지 않나?”
홍왕이 말없이 혈왕을 바라보았 다.
“너 정도만 되어도 타인을 속이려 들지 않는다. 그로 인해 얻는 이득 보다 그로 인해 무너지는 자존심이 더 크기 때문이지. 그런 의미에서 그분은 우리에게 거짓을 논할 필요
가 없는 분이시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진심으로?”
혈왕이 하핫, 웃었다.
“설령 그분이 우리를 속인다 해도 달라질 게 뭔가?”
“……무슨 소리냐?”
“어차피 우리는 그분의 지배를 벗 어나지 못한다. 설령 그분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고 말을 바꿔 우리를 지배하려 든다고 해도 지금과 딱히 다를 것도 없다는 이야기지. 그분이 그 말을 지킬 확률이 삼 할만 되어 도 남는 장사 아닌가.”
홍왕이 눈을 찌푸렸다.
도무지 저게 무슨 논리인지 이해 할 수가 없다.
“물론 이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이 다. 우리는 너희같이 맹목적인 이들 이 아니다. 각자가 나름의 이유로 그분을 모시는 것뿐이지. 그분이 원 하는 것이 이뤄진다면, 우리는 다시 적이 되어 싸울 수도 있고, 형제가 될 수도 있겠지.”
홍왕이 고개를 내저었다.
확실히 이들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 나?”
“그래. 지금 네 목적은 뭐지?”
혈왕이 다시 웃어 대기 시작했다.
“이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군. 하지만 대답하기로 했으니 해주지. 지금 내 목적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너와 최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을 끄는 것이다.”
홍왕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그러자 혈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했 잖나.”
“……사특하기 짝이 없는.”
“기왕이면 영리하다고 해주면 좋 겠군. 이래서 무인이란 재미있단 말 이야. 본디 총명하기 짝이 없던 이 들도 제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게 되더군.”
혈왕이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손을 쓰지 않은 채 이 정도 시간 을 끌었으면 적당히 남는 장사를 했 다고 볼 수 있겠지. 그래, 이제 어 쩔 텐가? 원한다면 저 안의 인원들 이 적당히 해결을 볼 동안 티타임을 가질 의향도 있는데.”
홍왕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혈왕이라고 해서 좀 과묵한 인물
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수다쟁이 로군.”
“이미지와 선입견, 고정관념은 그 래서 좋지 않은 거지. 나는 말을 하 는 걸 좋아해. 말은 상대에게 내 의 도를 전해주잖아. 다른 이의 감정을 뒤흔드는 데 그보다 더 좋은 수단은 없지.”
홍왕이 손을 가볍게 털어내었다.
“그런 의도였다면 실패라고 해주 지. 너와 대화를 나눈 덕분에 그래 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무인을 상대 한다는 존경심이 싹 사라진 참이니 까.”
“존경이 라……
혈왕이 고개를 살짝 꺾었다.
“딱히 네 존경까지는 필요하지 않 을 것 같군. 이미 충분하니까.”
홍왕의 안색이 살짝 바뀌었다.
‘ 언제?’
누군가 이쪽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열? 스물? 아니…… 오십 이상인 가?’
하나하나가 풍기는 기운이 범상치 가 않다. 모두가 최절정급의 무인들 이다.
안색이 바뀐 홍왕의 얼굴을 본
혈왕이 낮게 웃었다.
“왜? 우리는 수하를 거느리지 않 을 거라고 생각했는가?”
“중국이나 한국, 일본과 몇몇 나 라에서는 나를 뭐라 부른 줄 아나?”
“……뭐라 불렀나.”
“보통 그렇게들 불렀지. 귀환자들 의 왕이라고 말이야.”
홍왕이 살짝 눈을 크게 떴다.
“……혹왕이 아니라?”
“그분은 그런 하찮은 일에 신경을 쓰시는 분이 아니다. 어설프게 걸리 적대는 것들은 아무리 모아봐야 도
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시는 분이 니까.”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수의 위대함을 잘 알고 있지.”
터덕! 턱!
그들의 주변으로 속속들이 무인들 이 도착한다.
혈왕과 마찬가지로 전신을 검은 붕대로 친친 감은 무인들. 그들에게 서 풍겨 나오는 음울한 기운들이 홍 왕의 털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 귀환자?’
아니, 아니다.
뭔가 다르다.
이들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각기 다르지만, 또 뭔가 일맥상통한다. 전 혀 다른 기운들 속에서 미묘한 역겨 움이 공통적으로 느껴진다.
“……무슨짓을 한 거냐?”
“혈교가 왜 사교가 되었는 줄 아 는가?”
“……사특한 짓거리들을 해 댔기 때문이지.”
“정답이야.”
혈왕이 가볍게 박수를 쳤다.
“정확하게는 죽은 이들을 일으켰 기 때문이지. 나는 인간의 혼을 삼
키고, 죽은 이들을 강시로 부리는 악귀라 불렸지. 그런데……
혈왕이 타이르듯 물어온다.
“강시라는 게 있을 리가 있나.”
“물론 우리는 과학을 벗어나는 존 재들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 드는 이들이지만, 죽은 자의 소생은 여전히 종교의 영역일 뿐이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대도 믿지 않겠지.”
“당연하다.”
“그래, 맞아. 그때 당시의 미개한 것들도 조금만 지식이 있었다면 그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소리인지 이해했겠지.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소문이 돌았지. 왜인지 아는 가?”
홍왕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 모든 대화가 그저 시간을 끌 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 에도 무턱대고 공격해 들어갈 수가 없다.
이자가 얼마나 더 많은 수를 숨 겨두고 있을지 파악할 수 없기 때문 이다.
“간단하지. 팔이 잘리고 떨어져도 싸우는 괴물. 배가 찢겨져 내장이
너덜대는데도 개의치 않고 싸우는 괴물. 인간성은 모두 사라지고, 오로 지 눈앞의 살아 있는 것을 죽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괴물.”
혈왕의 낮은 웃음소리가 홍왕의 귀를 찔러온다.
“옛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강시라 부르더군. 시체가 되살아난 게 아니 고서야 팔이 떨어져 허연 뼈가 드러 났는데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싸 울 수는 없다고 말이야. 생강시. 그 래, 그리 불렀지. 혈강시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고.”
홍왕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
다.
이제야 혈왕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를 이해한 것이다.
“너…… 이자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별것 아냐. 두려움을 없애줬을 뿐이지. 그리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 게 만들었을 뿐이야. 약간의 인지를 날리고 명령에만 절대 복종하게 만 들었지.”
혈왕의 손이 자신의 얼굴을 긁어 대듯 어루만진다.
“사람들을 멍청하지. 강시 같은 게 왜 필요해? 시체를 일으킬 수
없으면, 사람을 시체처럼 만들어 버 리면 그만인데.”
“이…… 천인공노할!”
“아아,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나는 너를 만나 너무 반가우니까. 예전에 몇 번이고 벽을 넘은 이를 실혼인으로 만들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거든.”
뚜두둑!
혈왕의 손이 입가의 붕대를 끊어 낸다. 그의 붉디붉은 혀가 뱀의 혀 처럼 비집고 나와 아직 붕대가 다 걷어지지 않은 입술을 핥아대었다.
“이제는 나도 과거보다 좀 더 진
일보했으니, 다시 한번 시도해보고 싶단 말이지. 너는 정말 최고의 생 강시가 될 거야. 내 장담하지. 물론 그 과정은 조금 따끔하겠지만……
혈왕이 낄낄대며 웃었다.
“너희는 더 강해지는 것 하나만을 보고 사는 놈들이잖아? 내 장담하 지! 너는 몇 배는 더 강해질 거야! 그리고 두려움이란 걸 모르게 되겠 지! 어때? 멋지지 않아?”
홍왕이 말없이 주먹을 움켜잡았 다.
이제 이놈의 개소리는 들을 만큼 들었다.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아쉽군. 너 정도 되는 이라 면 이해할 줄 알았는데. 뭐, 상관없 어. 결과는 같을 테니까.”
혈왕의 손가락이 까딱이는 순간, 그들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검은 붕대의 무인들이 짐승처럼 으르렁댄 다.
“최대한 상하지 않게…… 아니, 아니지. 전력으로 죽여. 발목을 잡고 늘어져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붕대인들 이 괴성을 내지르며 홍왕을 향해 달 려들었다.
들개 떼들처럼 자신을 향해 달려 드는 붕대인들을 본 홍왕의 전신이 황금빛의 서광을 뿜어냈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안식뿐이다!” 동시에 그의 주먹이 가공할 강기 를 머금고 내뿜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