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44)
마존현세강림기-1946화(1943/2125)
마존현세강림기 79권 (6화)
2장 신음하다 (1)
바토르 쪽을 바라보던 홍왕이 시 선을 앞으로 돌린다.
‘확실히 상성이라는 건 무섭군.’
과거, 홍왕은 벽을 초월한 이들끼 리의 전투는 상성에 얽매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만류귀종.
모든 강은 결국 홀러홀러 바다에 이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초인이라 불려야 마땅한 이들과 전투를 치르면서 그런 홍왕 의 생각은 완전히 수정되었다.
만류귀종이란 모든 것이 끝에 이 르러서는 같아진다는 의미가 아니 다.
창을 완벽하게 익혀낸 이는 검을 들어도 그 검을 창처럼 펼쳐 낼 수 있고, 창을 들어도 그 창을 검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단점을 보완하여 균형을 맞추는 게 아니라, 장점을 극한까지 갈고닦
아 그 단점마저 덮어버리는 게 진정 한 만류귀종이다.
결국 극한으로 갈수록 상성은 생 각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거기까지는 이제 이해가 끝난 홍 왕이지만…….
‘또 이런 경우를 마주하게 될 줄 은 몰랐군.’
홍왕의 시선이 그의 앞쪽에 서 있는 괴불에게로 향한다. 치솟던 노 기를 어느 정도 가라앉혔는지, 괴불 의 얼굴이 본래의 색을 되찾고 있었 다.
“……중치고는 성격이 급한 모양
이군.”
“아미타불.”
“아니, 성격만 급한 게 아닌가?”
괴불을 바라보는 홍왕의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물론 조금 전 혈왕을 대할 때만큼 혐오를 감추 지 못하는 표정은 아니지만, 분명 적의가 어려 있었다.
“승복을 입고도 이토록 피 냄새를 풍기는 인간이라니, 차림이 무색하군.”
홍왕이 차가운 눈으로 괴불을 노 려보았다.
저번 신창과 싸웠을 때만 해도 십이비도나 흑왕에 대한 적대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서로 다른 길을 가기에 어쩔 수 없이 싸울 수밖에 없지만, 딱히 저들을 증오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상대하는 이 들은 다르다.
인간이라고 칭하기도 역겨운 혈왕 도 그렇고,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괴 불 역시 그의 신경을 있는 대로 긁 어 대고 있다.
무엇보다 홍왕을 짜증 나게 만드 는 것은 저 승복을 입은 살귀에게서 은은한 불문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폼으로 승포를 입고 다니는 게 아니라 정말 불문의 무학을 익힌 이 라는 점.
그 순간, 홍왕의 눈이 살짝 떨렸 다.
“……너, 혹시 마불(魔佛)인가?”
“아미타불,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 름이구려.”
홍왕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 다.
마불.
저 천 년 소림이 낳은 희대의 배 덕자. 소림 역사상 최고의 천재였다 불리는 육조 혜능을 뛰어넘어 소림
을 반석에 올릴 기재라 불리던 이.
하지만 그는 소림의 바람과는 달 리 불문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자신 만의 무학을 쌓아 올렸다.
거기까지였으면 마불이라는 이름 을 얻을 이유도 없고, 그 마불이라 는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지 도 않았을 것이다.
마불이 무인계의 역사에 그 이름 을 각인시킨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 운 무학을 완성하겠다고 달마동에 제 스스로를 가둔 마불。], 어느 날 달마동을 부수고 뛰쳐나와 소림승들 을 상대로 잔혹한 학살극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날, 마불의 손에 죽은 소림승만 해도 삼백이 넘는다고 전해진다.
결국 소림승들의 합공을 이겨내지 못하고 숭산에서 달아난 마불은 소 림의 황포가 아닌 평범한 승포를 입 고, 스스로를 여래라 칭하며 강호행 을 이어갔다.
소림은 피눈물을 홀리며 그를 죽 이고 싶어 하고, 천하의 모두가 그 런 마불을 경원시했지만, 당대의 그 누구도 마불의 무학을 감당하지 못 했다. 결국 그가 스스로 모습을 감 출 때까지 강호는 수도 없는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런 이가 지금 흥왕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네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 는 네놈이 주화입마로 미쳐서 그런 일을 벌였다고 생각했다.”
“그렇소이까?”
“한데…… 지금 보니 아니로군. 주화입마라면 죽고 다시 태어난 새 로운 육체에서는 제정신을 되찾았을 터. 그럼에도 네놈에게서 흉성이 느 껴진다는 건, 그 모든 게 네 의지였 다는 말이로군.”
괴불이 빙그레 웃었다.
“그렇소이다, 시주. 소승은 단 한 번도 미쳐 본 적이 없고, 단 한 번 도 내 의지가 아닌 일을 해본 적이 없소이다.”
“그럼 왜 그랬나?”
홍왕이 이를 악물고 괴불을 노려 보았다.
딱히 스스로 소림의 제자라는 정 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소림이 이어오던 무학의 명맥은 이 미 오래전에 끊겼고, 이제 소림은 그저 커다란 사찰이자 관광지에 불 과했다.
하지만 스스로가 불문 무학의 적
통을 잇는다는 자부심은 분명히 존 재한다.
그러니 괴불을 마주하고 웃을 수 없는 것이다.
“ 왜라••••••
괴불이 빙그레 웃었다.
“시주께서는 불법을 따르시오?”
“비록 내가 출가는 하지 않았으 나, 불법을 거부해 본 적은 없다. 굳이 따지자면 불문의 속가제자라 할 수 있겠지.”
“그러시구려. 시주, 그럼 내 하나 묻겠소이다. 시주께서는 윤회에 대 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
“••••••윤회?”
“ 믿소?”
홍왕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스스로 믿는 종교를 하나만 택하 라면 주저앉고 불교를 택할 홍•왕이 지만, 윤회를 믿는가는 별개의 문제 였다.
“나는 믿소이다. 내가 그 증거이 기도 하고.”
괴불이 빙긋 웃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윤회 를 믿소. 공덕을 쌓아 윤회를 거듭 하다 보면 결국은 부처가 된다는 말 도 한 점 의심 없이 신뢰한다오.”
그 목소리에 조롱의 느낌은 조금 도 없었다. 오히려 꽤 경건해 보이 기까지 했다.
“네가 믿는 불법에서 살인하지 말 라는 말은 가르치지 않은 모양이 지?”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괴불이 더없이 맑은 미소를 입가 에 담았다.
“가르침이란 언제나 옳소이다. 하 지만 때로는 그중 더 옳은 가르침이 있는 법이지. 내가 불가에서 배운 가르침 중 가장 귀한 것은 대자대비 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외다. 중생
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제 한 몸을 아끼지 않고, 불구덩이에라도 뛰어 들라는 말 역시.”
“그런데 사형제들을, 스승을 죽였 다고?”
“그것이 바로 자비요, 시주.”
“ 뭐?”
홍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놈이 대체 뭔 소리를 하고 있 는 건가.
“자비? 지금 자비라고 했는가?”
“그렇소이다. 그게 더없는 자비요, 시주.”
“미친 소리 작작하시지.”
괴불이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이보시오, 시주. 시주는 윤회가 뭐라고 생각하오?”
“……다시 되살아나는 것 아닌가? 불법을 갈고닦아 해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
“그렇소이다. 그게 바로 윤회이지 요. 하지만 이런 말도 들어보지 않 았소? 인생은 고(苦)요,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외다.”
“다시 말하자면, 끊임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현세를 살아간다는 것 자 체가 형벌이지. 불가의 가르침대로
라면 우리 모두가 삶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된다오. 그리 고 그 고통 속에서 불법을 갈고닦아 이 형벌의 수레를 벗어나는 것이 모 두의 목표가 되어야 하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잘 들어보시오, 시주. 하지만 해 탈에 이르는 이들은 극도로 적단 말 이오. 깨우침을 얻는 것은 더없이 지난하고, 공덕을 쌓는 것 역시 쉽 지 않소. 특히나 그 시대는 더했지. 쌀 한 줌을 얻기 위해 사람을 죽여 대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시대에 공덕을 쌓는 건 불가능한 일
이오.”
홍왕이 입을 다물었다. 대체 저놈 이 무슨 요설을 늘어놓는 건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게 네가 사형제들을 죽인 것과 무슨 관계냐?”
“모르겠소, 시주?”
괴불의 얼굴이 살짝 뒤틀렸다.
“그런 세상에서 불법을 쌓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오. 결국에는 세상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죄를 저지르게 되지. 한데 삼생 동안 공 덕을 쌓는다 해도 사소한 잘못을 저 지르면 그 공덕은 모두 날아가 버린
단 말이오.”
“이 윤회의 수레는 사람을 괴롭히 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나 마찬가지 요. 가혹하지. 더없이 가혹하지. 공 덕을 쌓는 것보다 죄를 저지르지 않 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지만, 세상 은 죄를 저지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게 되어 있소.”
“너……
“그렇소이다.”
괴불의 얼굴이 마귀처럼 변해간 다.
“그럼 차라리 빨리 죽어버리는 것
이 낫소. 살면 살수록 죄를 지을 확 률은 더 올라가니까. 차라리 빨리 죽어 깨끗한 혼을 지닌 채 새 삶을 살아간다면, 공덕은 늘어나고 죄악 은 줄어드는 것이오!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소?”
“이 미친놈이!”
홍왕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게 무슨 궤변이냐, 이 마귀 같 은 놈아! 다시 생을 산다고 이전보 다 죄를 적게 짓는다는 보장이 어디 에 있다고!”
“있지.”
“••••••뭐?”
괴불이 낮게 웃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없어도, 내게는
있지. 나는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홍왕이 입을 다물었다.
“그대 역시 오래 살아왔으니 알 것이오. 그대가 어리던 시절에 비해 지금의 사람들이 얼마나 깨끗하게 살고 있는지. 불과 백 년만으로도 인간은 죄악에서 훨씬 자유로워진다 오. 그런데…… 배가 고프다고 사람 을 죽여 인육을 뜯어먹던 그 시절을 죄 짓지 않고 살아가는 게 가능 할 것 같소?”
홍왕이 아연한 얼굴로 괴불을 바 라보았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다. 하지만 저 괴불은 지금 스스로의 말을 완전 히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괴불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 렸다.
“정이 든 사형제들을, 구원받지 못하는 이들을 죽이는 것이 즐거울 리 있겠소? 하나 그 모두가 그들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기 위한 고육책일 터. 나는 나를 지옥으로 몰아 그들을 구원하려 하오.”
“미친놈……
저건 완전히 돌아버린 놈이다.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
“그리 화낼 것 없소. 생을 잃는다 는 것은 서글픈 일이나, 결국은 윤 회의 굴레에서 다시 살아가는 법. 지금 그대의 삶 역시 수백 번의 삶 중 하나에 불과하오.”
“더 큰 것을 위해서는 작은 것을 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지. 내 가 목숨을 빼앗았을 때 그들은 나를 원망했겠지만, 훗날 그들이 이 굴레 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내게 감사하 게 될 것이오.”
홍왕이 멍한 눈으로 괴불을 바라 보았다.
지금까지 그는 수많은 적을 만났 다. 하지만 이런 미친놈은 생전 처 음이다.
그를 정말 아연하게 만드는 것은 저자가 자신의 논리를 신앙처럼 믿 고 있다는 것이다. 날카로운 명검으 로 찔러 대도 홈집 하나 나지 않을 것 같은, 굳건하기 짝이 없는 믿음.
그 뒤틀린 믿음이 구역감을 자아 낸다.
“네 말대로라면……
흥왕이 이를 갈았다.
“지금 내가 이곳에서 너를 죽여주 는 것 역시 구원이고 자비겠군!”
“이해한 모양이구려, 시주.”
괴불이 빙긋 웃었다.
“하지만 사양하겠소이다. 나는 이 미 너무 많은 죄를 지은 몸. 내 발 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기로 다짐 한 몸이외다. 오시오, 시주. 그대의 삶을 내 구원해 주리니.”
“이 미친놈이!”
홍왕이 고함을 내지르며 괴불에게 로 내달렸다.
그런 홍왕을 바라보는 괴불의 두 눈에 섬뜩한 흉성이 어렸다.
“아미타불! 죽음은 곧 구원이오! 살인은 곧 자비이리니, 살계를 열어 중생을 구휼하사!”
괴불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 핏 빛 혈광과 홍왕의 금빛 권강이 허공 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